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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고집스러워지는 친정아버지 껴안기 어른 대 어른으로 게임하라

친정아버지가 전과 달리 몸이 부쩍 쇠약해지자 딸은 정기검진 한번 받아보자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럴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아빠,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요? 제발 병원에 가자니까요?”라고 딸이 말하자, 친정아버지는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가 참견하지 마라. 난 아프지 않다”라며 고집을 피운다. 딸은 친정아버지가 나이 들수록 번번이 고집을 피우고 막무가내가 되어가는 것이 화가 난다. 그래서 엄마에게 응원을 청한다. “엄마, 아빠 도대체 왜 그래? 속상해 죽겠어.” 엄마는 “너희 아빠 원래 그래. 몰랐니? 수십 년을 그렇게 자기 좋은 대로 살아왔는데 사람이 바뀌니? 그냥 내버려둬라”라며 끼어들기를 거절한다.

친정아버지와 딸 사이의 갈등은 교류 분석 이론으로 풀어보자. 어려운 이론이 아니다. 복잡하고 답답해 보이는 갈등을 게임처럼 풀 수 있는 이론이다. 에릭 번 Eric Berne이라는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만든 것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게임으로 풀이한 이론이다. 게임 내용은 이렇다. 사람에게는 사용 가능한 카드(자아)가 세 가지 있는데, 바로 ‘부모 자아’ ‘어른 자아’ 그리고 ‘아이 자아’다. 이 모두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사람이 서로 교류할 때는 나의 세 가지 자아 중 하나를 내밀어 상대방이 갖고 있는 세 가지 자아 중 하나와 서로 만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마음 안의 ‘부모 자아’가 상대의 ‘아이 자아’를 자극하면, 상대 마음 안의 ‘어른 자아’는 내 ‘부모 자아’를 향해 반응하는 식이다.

이 교류 분석 이론의 틀로 위의 상황을 해석해보면, 딸은 ‘아버지의 딸’로서가 아니라, 마음속 ‘부모 자아’가 작동해 어떻게든 도와주고 보살펴주려는 의도로 아버지를 자극한 것이다. 한편 아버지는 이 순간 ‘딸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마음속 ‘아이 자아’가 작동해 딸의 올바른 지적에 대해 뻗대고 거부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우선 딸은 더 이상 아버지만 바라보고 의지하던 어린 소녀가 아니다. 이제 딸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며, 사회의 일부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 반면 딸이 어릴 때 부녀 관계를 들여다보면, 딸의 마음속 ‘아이 자아’와 아버지의 마음속 세 가지 자아가 두루 교류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딸은 이제 자식을 돌보는 데 익숙해져 ‘부모 자아’가 자주 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으로 아버지를 본다. 이에 반해 아버지는 여전히 딸을 아이로 여긴다. 그래서 딸이 ‘부모 자아’로 자신을 자극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의존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성이 커지지만 여전히 딸에게만큼은 의지하고 싶지 않다. 아버지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딸의 ‘부모 자아’가 아버지를 자극하면 아버지 내면의 ‘아이 자아’가 때때로 튀어나온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억누르려 해도 말이다. 그래서 딸은 아버지가 나이 들수록 고집만 세진다고 하고,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려 한다고 여긴다. 이렇게 해서 갈등은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 게임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타난다. 다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딸의 ‘부모 자아’가 작동하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고, 딸도 아버지 내면의 ‘아이 자아’가 작동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심리 게임을 응용해야 한다. 먼저 어떤 이유로 아버지 내면의 ‘아이 자아’가 반응하는지 이해하도록 한다. 아버지의 고집과 의존 성향은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 더 나아가 내가 내면의 ‘부모 자아’로 아버지를 자극했기에 아버지가 더욱 거세게 반응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내 안의 ‘부모 자아’를 ‘어른 자아’로 바꿔서 부모와 교류하도록 하자. ‘부모 자아’에는 상대에게 뭔가 해주려 하고, 상대가 내 말을 듣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반면 ‘어른 자아’는 여러 가지 상황을 중립적인 자세로 보고, 상대가 그중 최선을 선택하도록 도우며, 그 선택을 존중할 줄 아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내 안에 ‘어른 자아’를 키우면 갈등이 줄어들 뿐 아니라 아버지 내면에서도 서서히 ‘어른 자아’가 작동하게 만들어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다. 가장 좋은 심리 게임은 역시 ‘어른 자아’와 ‘어른 자아’의 교류일 테니까. 

나도연, 하지현(건국대 의대 정신과 교수, <도시심리학> 저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