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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동물이라는 가족_길고양이와의 동거]스페인 바닷가 마을의 화가 유혜영 씨 부부와 고양이 가족 길고양이 '김치' '만두'가 가족이 되기까지
화가 유혜영 씨 부부는 스무 마리 남짓 되는 고양이들의 엄마, 아빠다. 지중해 남쪽 알타푸야에서 길고양이 김치, 만두를 돌보고 바닷가의 ‘자유 고양이’로 사는 고양이 무리에게 먹이와 사랑을 똑같이 나눠주고 있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데는 아이를 입양하는 정도의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이들의 이야기, 오래 가슴에 남는다.


바르셀로나에서 지중해를 따라 1시간 남짓 달리면 바닷가 마을 알타푸야 Altafulla가 나옵니다.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남편 엑토르 Hector, 고양이 ‘김치, 만두, 짜장면’ 그리고 수십 마리의 바닷가 고양이들과 단맛 나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에서 그림쟁이로 변신하리라, 굳게 마음먹고 1년 전 이 마을에 새처럼 둥지를 틀었지요. 도시 사람들이 바캉스 보내러 오는 곳이라 여름을 빼곤 텅 비어 있는 동네에서 내가 가장 자주 만난 건 길거리 고양이였습니다. 며칠 낯을 익힌 녀석들이 내게 살갑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낭랑한 ‘야옹’ 소리가 햇빛에 부서져 멀리 퍼져 나가고, 난 그 아이들을 아기처럼 보듬고.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닷가를 떠도는 길고양이 무리 중에 아기 고양이가 제법 보이기에 아예 고양이 사료를 큰 봉지로 사서 여기저기 놓아주기 시작했습니다.그렇게 고양이들과 친해질 무렵, 임신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내 작업실 앞에 와서 하루 종일 노는 겁니다. 어느 날 그 녀석이 사라졌는데 한두 달 뒤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정원 한쪽에서 야옹거렸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더군요. 바로 녀석을 자전거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려 동물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시작했어요. 두 달 된 작은 고양이가 날 언제 봤다고 살붙이처럼 살갑게 굴고, 우리 집이 제 집인 양 소파에 올라가 내 쿠션에 머리를 대고 새근새근 잠자고…. 인연이란 생각에 ‘만두(만두처럼 하얗게 생겨서!)’는 그날로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나부죽한 얼굴과 자그마한 복코를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할랑거리고 웃음이 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두 엄마가 나타나 집 밖에서 마구 울어대고, 만두는 베란다 위에서 엄마를 쳐다보고 울고…. 결국 만두는 엄마와 신나게 도망을 갔지요. 갑작스러운 이별과 상실에 침울해하자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만두를 찾아 나섰습니다.만두를 놓친 곳 근처에서 만두와 똑같이 생긴 만두의 형제 네 마리를 만났는데, 그중 작고 비실비실한 고양이가 눈에 띄었어요. 난 아무 생각없이 밥을 먹고 있던 만두와 그 ‘비실 고양이’(김치라고 이름 지었어요)를 안고 집으로 냉큼 뛰었지요.마침 그때 엄마가 없었거든요.^^ 둘을 깨끗이 씻기고 있는데 만두 엄마가 스튜디오 앞에 와서 야옹야옹 울어요. 문을 여니 만두는 나가고 김치는 나를 따라 들어오기에, 엄마고양이에게 한국 말로(일부러!) “너는 새끼가 네 마리나 되니 나 한 마리 줘” 했지요. 김치를 손으로 번쩍 들어 보이며 애원까지 하니 기가 막혔는지 엄마 고양이는 만두만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동화 나라에서 온소포 같은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된 날입니다.
만두는 ‘자유 고양이’로 우리 집을 들락날락, 비실이 김치는 ‘안락 고양이’로 할랑할랑 살고 있습니다. 김치도 형제를 그리워할까 봐 밖에서 다른 고양이와 놀다 집에 돌아오는 버릇을 들여줬지요. 집에선 잠만 자고 우리 부부와 노는 것도 저녁뿐입니다. 종일 동네 고양이들과 집 앞 정원이나 바닷가 절벽 사이를 오가며 노는 행복한 고양이 김치, 만두랍니다.

(위) 김치와 만두. 이 아이들에게 자유와 안락 모두를 주고 싶다.

우리 부부는 이 아이들을 애완 동물로 소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원래 야생에서 온 동물이니 제 본성대로 원 없이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만두와 김치에게 자유와 안락 두 가지를 모두 주려고 노력합니다. 낮엔 밖에서 친구들과 실컷 놀고, 밤엔 집에 들어와 우리와도 좀 놀아주면 더 좋고. 종종 낯선 고양이들을 데려와 제 밥을 먹여주는 기특한 아이들로, 엄마 잃은 새끼 고양이를 데려오는 오지랖 넓은 아이들로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애완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기에 이런 마음이 드나 봅니다.
이 아이들 덕분에 나와 엑토르의 일상도 봄방학을 맞은 것처럼 달큰해 졌습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김치와 만두는 존재의 소중함, 그 존재를 돌보는 책임감을 알게 해줬습니다. 먹을 것에 욕심이 많은 만두는 신기하게도 형제들에게만은 먹이를 양보하죠. 만두는 맏형이거든요.^^ 병원에 다녀온 김치를 목욕시키면 만두가 혓바닥으로 김치의 젖은 몸을 다 말려주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절대 싸우지도 않습니다. 독립적이지만 서로에게 더없이 친절하죠. 김치와 만두를 키우면서 나도 남편에게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아이를 싫어하던 남편은 이제 아기도 갖고 싶어 합니다.
이 아이들 지내는 걸 보면 ‘사는 거, 뭐 그리 신산스럽고 복잡할 것 있겠나’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인간이건 고양이건, 새같이 조그만 생물이건 존재를 사랑하며 사는 것의 ‘속 깊은 즐거움’도 알게 해준 아이들입니다. 만두와 김치는 우리 부부에게 산타클로스의 선물 같습니다.


화가 유혜영 씨가 그림을 그리고 법대 교수이자 작가인 엑토르 씨가 글을 쓴 고양이 책을 조만간 펴낼 예정이라고 한다. 품에 안은 고양이는 길고양이 ‘짜장면’.

물론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데는 아이를 입양하는 정도의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스페인에서도 봄쯤 되면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동물을 건사하지 못하고 유기하는 이가 종종 있습니다. 한번은 동네 길고양이들이 한순간에 반 이상 사라진 적이 있는데, 듣자 하니 나쁜 사람들이 음식에 독을 탔다는군요. 이 사실을 이웃들과 함께 시청에 알린 이후 갑자기 동물들이 사라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김치와 만두를 사랑하게 된 우리 부부는 아기 길고양이가 보이면 우유도 먹이고 병원에도 데려가며 돌보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 고양이’로. 집에서 함께 살든 밖에 나가 살든 그 스무 마리 남짓한 아이들을 다 가족의 마음으로 대하지요. 고양이를 집에 두고 사람만 기쁨을 얻는 것보다 고양이도, 사람도 각자 자유롭게 살면서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겁니다. 떠도는 유기 동물을 꼭 집에 데려와 보살펴줘야 그들이 행복해지는 건 아닌 듯합니다. 밖에서 잘 먹고 강하게 살 수 있는 조건만 만들어주면 그 아이들은 얼마든지 건강하고 행복할 테니까요.
봄기운이 난분분한 때 바닷가에 나가 휘파람을 불면 15~20마리가 늘모여듭니다. 밥을 먹으러 신나게 뛰어오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요. 최고의 기쁨이지요. 이 길고양이들을 김치, 만두랑 차별하지 않고 같은 걸 먹이고 똑같이 관심을 기울이려고 애씁니다.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 다음으로 나를 따르는 걸 보면 또 얼마나 기쁜지요. 한 달 정도 한국에 갔다 돌아온 다음 날, 날 보러 온 고양이들이 정원에 진을 치고 있는 풍경은 장관입니다. 덩굴장미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신나게 노는 그 모습에 홍알홍알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요즘 김치와 만두는 발정기여서 내 무릎에 가만히 있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짝을 찾느라 밥도 조금밖에 안 먹지요. 나는 그 아이들을 응원해준답니다. 오늘은 꼭 성공하라고. 내게 만약 아들이 생긴다면 아마김치와 만두를 응원하듯 똑같이 응원해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기쁨의 잔기침을 해가며.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