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k하다고? 시니컬하다고? 분당 정자동의 어느 카페, 큰애 학원 엄마들의 티타임. “어머, 오늘 되게 쉬~크하시다.” 엥? ‘sick’하다고? 아파 보인다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시니컬하다’도 상황상 안 맞고. 뭔 뜻인지 궁금했지만, 그날 ‘시크한 앵클부츠’ ‘시크한 눈매’가 줄줄이 화제로 올라 묻기 민망하던 경험, 한 번쯤은 있었을 거다. 시크의 연보 사실 ‘시크하다’를 딱 떨어지게 번역할 우리말은 없다. 영어사전에 나온 ‘chic’의 의미는 ‘(독특한) 스타일이나 멋/ 유행, 현대풍/ (복장 등이) 우아한, 세련된’이다.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는 ‘세련되고 멋지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대중적 유행어가 된 것은 1년쯤 전이지만, 패션 잡지업계에서는 5~6년 전부터 쓰던 단어였다. 그러다가 드라마 <스타일>에서 ‘에지 있다’와 함께 나오며 유행했다.
‘쿨하다’의 최신 버전 이제 시크는 패션을 넘어 문화 전반을 수식하는 단어가 되었다. 대중문화 평론가 강명석 씨는 ‘시크’란 대중문화와 세태에 관한 유행어 중 하나라고 본다. “한때 ‘쿨하다’는 표현이 유행이었습니다. 쿨한 사랑, 쿨한 여자…. 솔직하되 집착하지 않고, 지나치게 격정적이지 않아 멋있는 상태를 말했습니다. 이제 ‘쿨’의 유행이 가고 ‘시크’가 들어선 거죠. 각종 유행 의상을 남발해 입는 게 아니라 남이 예상치 못한 아이템 하나만 쓱 걸친 옷차림을 시크하다고 하는데, 점차 문화 전반을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시크와 쿨의 공통점이라면 젊은 도시 남녀가 ‘멋지다’며 선망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록시크, 에코시크, 시코노믹스 패션계에서는 시크의 종류가 좀 더 다양해졌다. 칩시크(저렴한 아이템으로 연출하는 시크), 록시크(로커의 스타일을 응용해 파워풀한 시크), 바이커시크(바이커 재킷을 활용한 시크) 등이 지난 가을・겨울 시즌 트렌드였다. 대중음악계를 점령한 아이돌이 각각의 매력에 따라 ‘짐승돌’ ‘예능돌’ 등으로 분화되는 가운데 ‘시크돌(엠블랙의 별명으로, 카리스마 넘치고 세련된 아이돌)’이 등장했다. ‘시크’와 ‘경제 economics’의 합성어인 ‘시코노믹스’는 불황에도 패션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는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친환경 상품에 세련된 멋을 더한 ‘에코시크 eco-chic’ 제품도 각광받고 있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시크하려면 독특하고 세련되어야 하지만, 핵심은 ‘무심한 듯’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10>은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일’의 유행을 이렇게 진단한다. “자연스러움과 특별함 사이의 믹스 매치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억지로 설정하거나 인공적으로 조작한 것은 싫어하면서도 특별함을 포기하지 못한다. 인공적이고 과잉된 장식과 연출은 혐오하고, 자연스러움 안에 보일 듯 말 듯 한 특별함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노력해야 완성할 수 있지만, 노력한 흔적을 남기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이 트렌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김치찌개라는 시크한 취향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 무심한 멋이 시크함이라면, 시크함 속에는 자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런 의미로 보면 신중현이 폐부에서 훅 토해낸 음성도 시크하고, 황색증에 걸린 반 고흐가 보이는 대로 그린 거친 풍경화도 시크하다. 우리가 시크한 스타일에서 배울 점은 자유의 정신인 것이다. 다만 시크함에는 덫이 있다. 진짜 무심함이 아닌 무심해 보이기 위해 애쓴 무심함이라면 결국 유행에 끌려간 것일 뿐이다. 잡지 기자 출신이자 소설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 씨는 이렇게 평한다. “시크함이란 좋아하는 것을 나름대로 즐기며 사는 방식이라 생각해요. 그 취향이 여러 사람과 일치할 수도 있는 일이에요. 희한한 취향만 시크한 것은 아니고, 평범한 취향을 죄악시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신껏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것도 시크한 취향이에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좋아해야 시크해 보이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