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모, ‘휴식’, 160×6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9
왜 올해는 백호랑이해일까 음력설을 쇠고 나면 명실상부한 경인년 庚寅年, 호랑이해다. 같은 띠는 어김없이 12년마다 찾아온다. 예부터 십이지라 하여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 열두 동물을 정해놓고 그해 태어난 사람은 그 동물 띠라 일컬었다. 흔히 띠를 속상 屬相 또는 생초 生肖라 한다. 상이란 면상, 즉 얼굴을 뜻한다. 한마디로 자아의 내면세계를 열두 가지 동물의 얼굴로 대변한 것이 십이지다. 그래서 그해의 동물 이미지가 심성에 투영되어 성격이나 운명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올해처럼 호랑이해에 태어나면 범처럼 용맹하고 날쌜 것이라고 여겼다.
올 경인년은 호랑이해 중에서도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랑이해다. 역술가들은 백호랑이띠를 ‘황금돼지띠 못지않게 좋은 띠’라 말한다. 왜 올해를 호랑이해가 아닌 백호랑이해라고 한 것일까?
새해 경인년의 경 庚과 인 寅은 천간 天干과 지지 地支를 짜 맞춘 60갑자 가운데 호랑이해다. 호랑이해는 갑인, 병인, 무인, 경인, 임인의 순으로 순환해 경인년이 돌아오는 데 60년이 걸린다. 2008년 정해년은 ‘황금돼지해’라며 한바탕 떠들썩했다. 정해년을 황금돼지해라고 할 만한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올 경인년은 호랑이해 중에서도 백호랑이해가 맞다. 경인년의 경 庚은 색으로 봤을 때 흰색이고, 방위로 보면 서쪽이고, 오행으로는 금 金을 뜻한다. 서쪽과 흰색, 금을 상징하는 호랑이(寅)가 서로 만나 겹쳤기 때문에 백호랑이해가 맞다.
우리 민족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처럼 양수가 겹치는 날은 양기가 강한 날이라 하여 길일로 경축했다. 호랑이는 열두 동물 중에서도 양에 속하며 밤에 활동이 강한 야행성 동물이다. 닭이 홰를 치면 사냥하던 것도 멈추고 굴로 들어간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는 기왕이면 낮보다는 밤에, 그것도 한밤중에 태어나면 더욱 좋다.
경인년은 새롭게 변화하고 힘차게 뻗는 해 호랑이는 열두 동물 중 쥐와 소를 잇는 세 번째 동물이다. 달로는 음력 정월을 가리키며, 시간상으로는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다. 방위로는 동북동쪽을 관장한다. 호랑이는 이 시간과 방향에서 오는 부정과 나쁜 기를 막아주는 수호신이다.
‘경’ 자가 들어간 올 경인년은 만물이 새롭게 변화해 힘차게 뻗는 해다. 천간 중 경신 庚申은 만물이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 새로이 이루는 모습이다. 여기에 호랑이의 속성인 신성함과 용맹스러움이 더해졌으니 올 한 해는 누가 뭐라 해도 희망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호랑이는 부귀와 권위의 상징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호랑이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두려운 존재가 아닌 잡귀와 부정을 막는 수호신이다. 한마디로 호랑이는 신령스럽고, 위엄 있고, 해학적이며 인간미가 넘치는 동물이다.
때로는 우리 삶의 길융화복을 관장하는 신의 사자로, 왕의 무덤을 지키는 호랑이로 등장한다. 또 바람과 불, 물의 삼재를 막아주는 부적 삼재부에도 머리가 셋 달린 매와 함께 호랑이를 그려 잡귀를 막았다. 시집가는 새색시 가마 위에는 호랑이 가죽을 덮어 부정과 잡귀를 막았고, 액을 막기 위해 호랑이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차고 다녔다. 심지어 밥상 다리를 호랑이 다리 모양으로 만들어 호족반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무관이 입는 관복 앞뒤에 단 흉배에도 늠름한 호랑이를 수놓았고, 호랑이 가죽으로 의자를 만들어 부귀와 권세를 상징했다. 새해 첫 달인 정월에는 문배라 하여 호랑이 그림을 문에 붙여 부정과 잡귀를 막았다.
쥐는 어떻게 열두 동물의 첫자리를 차지했을까 쥐는 가장 덩치도 작고 못생겼는데, 어떻게 첫자리에 들었을까? 덩치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런 일화가 전해온다. “옛날 옥황상제가 동물들에게 정월 초하룻날 제일 먼저 도착한 짐승부터 1등에서 12등까지 지위를 주기로 했다. 달리기라면 소는 자신이 없다. 말이나 개나 호랑이에게는 어림도 없고 돼지나 토끼에게도 이길 가망이 없는 소는 워낙 느리다 보니 남들이 다 잠든 그믐날 밤에 일찍 길을 나섰다. 눈치 빠른 쥐가 잽싸게 소의 등에 올라탔다. 마침내 소는 동이 틀 무렵 옥황상제가 사는 궁정 앞에 도착했다. 막 문이 열리는 순간, 쥐가 날쌔게 소보다 한발 앞으로 뛰어내려 1등을 했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천 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 호랑이는 3등이 되었고 달리기에 자신 있는 토끼는 도중에 낮잠을 자는 바람에 4등이 되고, 그 뒤를 이어 용・뱀・양・원숭이・닭・개・돼지가 차례로 들어왔다.”(이종환의 <열두 띠 이야기> 중)
쥐는 자신의 미약한 힘을 일찍 간파하고 약삭빠르게 꾀를 쓴 것이다. 이야기치고는 꽤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것은 누군가가 쥐는 약삭빠르고 소는 정직하고 고지식하다는 교훈적인 뜻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들어보자.
“선조대왕이 어느 날 경연에 참석했는데, 쥐 한 마리가 어전을 지나갔다. 왕은 매우 미심쩍은 기색으로 ‘쥐란 짐승은 저렇게 외모도 못생기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많거늘 어찌하여 육갑의 쥐로 십이간지 중 첫자리에 놓았는고. 경들은 그 까닭을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때 유희춘이 대답하기를, ‘다름이 아니오라 쥐는 앞발가락이 넷이고, 뒷발가락이 다섯입니다. 그러하온데 음양으로 보아 짝이 맞는 수는 음에 속하옵고, 짝이 맞지 않는 수는 양에 속하므로 넷은 음수요, 다섯은 양수입니다. 여러 짐승 중 한 몸뚱이에 이와 같이 음양이 상반되는 짐승은 쥐 이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원래 밤중이 되면 음기가 사라지고 뒤미처 양기가 생깁니다. 쥐를 열두 시 중에 첫 꼭대기에 놓은 것은 쥐가 음에 속하는 앞발을 내디딘 후 양에 속하는 뒷발을 내딛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밤 12시는 양기가 생기는 때이니 쥐가 첫 꼭대기에 설 만하지요.” 하였다.
풀어 말하면, 쥐는 앞발가락이 4개, 뒷발가락이 5개이기 때문에 한 몸에 음의 성질과 양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보았다. 또 앞발가락(4개-음)을 먼저 내디딘 후 뒷발가락(5개-양)을 내딛기 때문에 음과 양을 넘나드는 동물이라 생각했다. 자시(밤 11시부터 새벽 1시)는 오늘과 내일이 교체되는 시각이다. 어제는 과거이므로 음에 속하고, 내일은 다가오는 미래이기 때문에 양에 속한다. 이렇게 쥐는 음양의 이치를 동시에 구비했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이 바뀌는 자리, 양이 처음 생기는 시초의 자리, 즉 12지의 첫째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또 쥐는 번식력이 대단하다. 쥐의 앞뒤 발가락을 합치면 9개가 되는데 9라는 숫자는 왕성한 번식력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9의 수상 數相은 3×3=9인 곱셈의 수로, 9×9=81로 무한히 늘어나는 도깨비 수를 의미한다. 실제 열두 동물 중 쥐의 번식력이 가장 뛰어나다. 쥐는 태어난 지 3주 후면 새끼를 낳는데 한번에 낳는 수가 6~22마리다. 한 쌍의 쥐가 한배에 10마리씩 일 년에 다섯 번 낳는다면 그 새끼와 또 그 새끼가 낳는 것까지 일 년 동안 1만 마리, 3년 후면 3억 5천만 마리가 된다. 이 같은 번식력 때문에 쥐는 다산의 상징으로 비유되었다.
그래서 쥐는 비록 몸집은 보잘것없지만 번식력이 가장 왕성하기 때문에 열두 동물 중 첫자리를 차지하고 중심축이 된 것이다. 하고많은 한자 중 쥐를 ‘자식’이란 뜻의 ‘子’ 자로 표시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쥐(子)는 정북 방향을 가리키고 지구 상의 북극과 남극의 양극을 이은 선을 자오선 子午線이라 한 것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위) 안윤모, ‘책 읽는 호랑이’, 53X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9
12지 동물의 배열엔 비밀이 있다 많고 많은 동물 중 왜 열두 동물만 선택되었을까? 덩치가 큰 코끼리는 왜 빠졌을까? 또 그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열두 띠 동물의 배열 순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나름대로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가 양에 속하는 동물이면 그다음 동물은 음에 속한다든가, 하나가 크면 다른 하나는 작다든가, 또 한쪽이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라면 다른 한쪽은 야수다. 이처럼 열두 동물의 배열은 무작위로 한 것이 아닌 무엇인가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12지 열두 동물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그 선택 기준에 대해서는 예부터 많은 설이 전해온다. 그중 하나가 신체 결함설이다. 12지 동물은 하나같이 신체적 결함이 한 가지씩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쥐는 쓸개(혹은 어금니)가 없고, 소는 윗니가 없고, 호랑이는 목이 없고, 토끼는 신장(혹은 입술)이 없고, 용은 귀가 없고, 뱀은 다리가 없고, 말은 쓸개가 없고, 양은 눈동자가 없다. 원숭이는 엉덩이가 없고, 닭은 양물이 없고, 개는 위가 없고, 돼지는 힘줄, 즉 근육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원숭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엉덩이가 거의 나와 있지 않고 지라가 없어 그런지 비위도 약하고 화도 잘 낸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설득력 있는 선정 기준은 음양 관련설이다. 12지 열두 동물은 많은 동물 가운데 하늘과 땅의 기운, 즉 음양의 기운을 가장 순수하게 타고난 동물만 골랐다는 것이다. 그 서열도 품기, 즉 음양의 정도에 따라 정했다고 한다. 짐승의 타고난 기운이 음인지 양인지는 짐승의 발가락 수로 결정한다. 발가락이 하나로 된 것은 순수한 양기로 태어난 것으로, 가장 강한 양기를 뜻하기도 한다. 실제 발굽이 하나로 된 동물 가운데 크기나 색깔, 성격 등이 가장 순수한 것은 말이다. 말은 발가락이 갈라지지 않은 단제 單蹄다. 양기가 가장 왕성한 시간인 한낮 12시에 말을 배치한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또 쥐를 정북으로 하고 말을 정남으로 삼은 것도 말이 가장 양기가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 열두 동물은 과연 음양으로 배치되었을까? 쥐・호랑이・용・말・개는 모두 음양으로 볼 때 양이다. 이들의 발가락을 보면 쥐・호랑이・용・개・원숭이는 모두 발가락이 5개이고, 말은 발가락이 1개다. 그런 까닭에 발가락이 홀수인 동물을 골라 양으로 본 것이다. 반면 소・토끼・뱀・양・돼지는 모두 음이다. 즉 소는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고, 토끼는 입술이 갈라져 있고, 뱀은 발가락이 없는 대신 혀가 2개고, 양과 돼지는 모두 발톱이 4개다. 열두 동물을 음양으로 나누어 첫 번째가 양이면 다음은 음, 이런 순서로 12지 동물을 상반되게 배정했다. 이같은 ‘발가락 우기설’로 열두 동물을 선정한 것에 대해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매우 이치에 맞는 설이라 했다.
또 12지 동물 중 하나가 크면 다른 하나는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쥐는 작고 소는 크다. 호랑이는 크고 토끼는 작다. 용은 크고 뱀은 작다. 말은 크고 양은 작다. 원숭이는 크고 닭은 작다. 개는 작고 돼지는 크다. 이와 같이 12지는 ‘일소일대 一小一大’, 즉 하나가 작으면 다음에는 큰 동물을 배치했다.
열두 동물의 수 12는 어디서 나왔나 동양에서는 12라는 수를 많이 쓴다. 예를 들면 12월, 12방위, 12지가 그것이다. 12지는 일 년의 12개월을 말한다. 12라는 수는 그 근원을 태극에서 찾을 수 있다. 태극에는 음과 양이 있다. 이 음과 양이 다시 변해 태양과 태음, 소양과 소음의 사상 四象이 된다. 이 사상에다 하늘(天), 땅(地), 사람(人) 등 삼재 三才의 수를 곱하면 12라는 수가 된다. 다시 말해 땅에도 사상이 있고, 하늘에도 사상이 있으며, 마찬가지 사람에게도 똑같은 사상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 다른 설은 12라는 숫자가 지구의 공전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12개월은 12절기와 관련이 있다. 또 12절기는 12방위와 관련을 맺는다. 그래서 12지는 연과 월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특히 시간의 개념과 방위의 개념으로 함께 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우리 문화 들여다보기] 백호랑이 해, 한밤중에 태어난 아기가 큰 인물 된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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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음력 정월. 60년 만에 찾아오는 상서로운 해, 백호랑이해가 밝았습니다.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강건한 아이를 만나기 위해 출산을 늦춘 산모도 있을 정도로 운기 가득한 올해. 그 시작은 열두 띠의 유래와 배열의 비밀로부터 시작합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