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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아버지가 전하는 제언 2PM 박재범 군에게 톨레랑스를!
원시시대 알타미라 벽화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쓰여 있던 걸 보면 부모에게 아이들은 늘 불완전한 존재이면서 갈등 요소 집합체인가 보다. 문화와 매너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온 손일락 교수가 ‘요즘 애들’에게 필요한 ‘삶의 매너’를 시리즈로 들려줄 예정이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멤버 손동운 군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아들에게 편지 쓰듯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관계의 미숙아’인 ‘요즘 애들’에게, 그리고 요즘 어른들에게 전하는 제언.

아들아! 프랑스 사람들은 개성이 매우 강하단다.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들은 곧잘 갑론을박, 난상 토론을 벌이지만 결론은 제각각이기 십상이지. 프랑스인의 개성이 다양하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아.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치즈와 포도주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지. 오죽하면 드골 대통령이 개탄을 금치 못했을까. “이렇게 취향이 다양한 민족을 통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처럼 개성 넘치는 프랑스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또 세계에서 정치적 스펙트럼이 가장 다양한 나라라는 프랑스가 제대로 굴러가는 배경은 무얼까? 그건 바로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조정하고 아우를 수 있는 관념인 ‘톨레랑스 tolérance(관용)’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란다.
톨레랑스! 아빠는 이 말을 들으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에세이가 생각난다. 이 책의 저자는 홍세화 선생으로,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K중・고를 거쳐 S대학에서 수학한 수재이지. 태평성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라를 위해 큰일 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사독재 시절,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연루돼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망명했지. 인간의 운명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누가 믿을까? 아무튼 최고의 엘리트가 이국에서 호구지책으로 관광 안내나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단할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게다.

홍세화 선생의 인생 역정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에세이를 보면 가슴이 짠해지는 대목도 있고, 인상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프랑스를 지탱하는 위대한 힘을 톨레랑스라고 확신하는 관점도 그중 하나지. 선생께서 프랑스어 사전의 해설을 토대로 톨레랑스를 설명한 바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권력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와 관계된 개념이기도 하지.
내친김에 선생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하자. “톨레랑스는 극단주213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한다.” 그렇다고 보면 톨레랑스는 매너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와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개념이라고 보아야겠지. 물론 문화의 상대주의와 사상의 자유를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톨레랑스는 혹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 情이라는 개념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점에 대해 선생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정’의 사회적 의미는 애매한 반면, ‘톨레랑스’의 사회적 의미는 명확하다.”고 정리해주었지. 그리고 덧붙여 “우리의 ‘정’은 감성의 표현인 것에 비해 톨레랑스는 이성의 소리”라고 선생은 설명한다.

재범 군을 위한 변명
아들아! 2PM의 재범 군이 오래전에 자신의 싸이월드인가에 올린 글로 말미암아 결국은 날개를 접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생의 꿈인 가수가 된 지 1년도 못 돼 말이다. 한국을 비하하는 글이 문제가 되었다지?
재범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 교포 2세로, 이른바 비보이 출신이다. 미국에서 진행된 콘테스트에서 JYP에게 발탁되면서 청운의 꿈을 안고 2005년 한국에 들어온 친구지. 그때는 아마도 재범이가 고등학생이었거나 갓 졸업하지 않았나 싶구나. 아무튼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재범이가 한국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는 너끈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우리말도 서툴지, 음식도 맞지 않지, 가족도 친구도 없지. 게다가 재범이를 기다린 것은 언제 데뷔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모르는, 그야말로 막연하고 암담한 상황뿐이었다. 재범은 원더걸스나 비가 그랬던 것처럼 햇볕도 들지 않고 공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하 연습실에서 근 5년간, 감옥 생활과도 같은 생활을 하며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데뷔를 하고, 이제 막 여유를 가질 만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 암담하던 시절, 고독과 아픔에 겨워 끼적거린 낙서를 네티즌 누군가가 발견했고, 그것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재범이는 서둘러 미숙한 시절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물어뜯고, 돌팔매질을 했다. 그것도 비겁하게 익명의 그늘에 숨어 무자비하게. 결국 스물두 살 청년의 날개는 꺾이고 말았다.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오열했다. 일부 네티즌들의 승리로 끝난 것이지. 노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해본 일이 없는 아이, 가수만을 꿈꾸며 달려온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빠는 재범의 추락-일시적인 추락이라 믿지만-을 보면서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인 여인을 감싸며 예수가 하셨다는, “죄 없는 자가 있으면 이 여인을 쳐라”는 말씀 말이다. 아빠는 이 사건을 접하며 대한민국의 포용력이랄지 도량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이제 갓 소년기를 넘긴 청년에게 종교인이나 교육자를 넘어서는 도덕성과 완벽성을 요구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실수를, 그것도 치기에 겨워 저지른 사소한 과오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축출해버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곳일까? 아빠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줄 생각은 않고, 외려 돌팔매질을 해댄 이들이 누군지 짐작이 간다. 그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도덕군자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나쁜 사람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시크릿>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의 기운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의 기운에 휩싸인다는 것.
아빠가 존경하는, 맥도날드의 실질적 창업자 레이 크록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게 똑같은 생각을 지닌 두 명의 뛰어난 중역이 있다면, 난 한 사람을 자르겠다.” 이 얘기는 결국 발전과 진보의 전제나 토대는 다양성이라는 의미겠지? 아빠는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정신, 즉 톨레랑스야말로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강력한 매너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편견과 아집과 차별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한국의 네티즌들이 하루빨리 이성을 되찾고 톨레랑스를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스트 멤버에게도 필요한 건 톨레랑스
아들아! 네가 열망하는 연예인이란 직업은 보면 볼수록 유리 어항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일거수일투족, 늘 감시를 당하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이지. 하지만 그것이 네 꿈임에랴!
아무쪼록 말 한마디, 행동 한 자락에도 삼가는 자세로 살아라. 그리고 행여 누가 실수나 과오를 범해도, 넘어진 사람을 만나도 너만큼은 함부로 돌팔매질을 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 아빠는 재범이가 2PM에 다시 합류하기를 기대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톨레랑스를 지녀 진정으로 성숙한 나라, 정이 넘치는 나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Go! Korea!
* 이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