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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호주 케언스의 여름 남국의 훈풍은 가슴에 남아
새소리에 잠을 깨는 밀림의 아침, 파도 소리에 잠드는 해변의 저녁만으로도 당신이 바라던 ‘게으른 자유’는 완성된다. 호주 북동부의 퀸즐랜드 주 케언스에서 만난 원시림과 산호초 섬들은 이 게으른 자유에 원시의 생명이라는 덤을 보태줄 것이다. 케언스의 대자연으로 떠난 에코 투어.


퀸즐랜드 주 해안을 따라 세계 최대 산호초군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일명 대보초)가 자리해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몸 냄새가 달큼한 계절, 떠나고 싶다. 가서는, 곧 돌아와야 한다는 집착에 빠질지라도 일단은 떠나고 싶다. 그곳에서 붉고 뜨거운 남국의 바람을 맛보게 된다면? 평생을 나그네연 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떠나게 하는 곳, 원시림과 비취 빛 바다로 둘러싸인 호주 동북부의 땅 케언스다. 달에서 유일하게 관측 가능한 지구 상 자연물이라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 Great Barrier Reef(대보초. 세계 최대 산호초군인 이곳은 총 2000km에 달하는 길이로 영국이나 이탈리아 면적보다 더 큰 규모다)로의 여행. 1백20만 년 전부터 호주 대륙을 뒤덮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림으로의 여행. 이곳에서의 날들은 문명 속에서 무뎌진 몸의 본성을 천혜의 상태로 돌려놓을 것이다.
케언스 공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양명한 햇살 속을 내달리고, 버스와 함께 유람선에 실린 채 데인트리 리버 Daintree River를 건너고, 다시 버스로 여러 시간을 내달려야 이 땅은 그 속살을 객에게 보여준다. 너무 울창해 대낮에도 어두울 지경인 밀림은 어딘지 탈물질화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좀 더 나아가자 왼쪽으로는 밀림 지대가, 오른쪽으로는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절세의 풍경에 마음은 어느새 노곤해진다. 이 정취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케이프 트리뷸레이션 Cape Tribulation에 닿아 있었다. 데인트리 국립공원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아마존보다 더 오래된 열대우림으로, 깊은 정글로 들어가려면 전문적인 안내자와 동행해야 하는 곳이다(이곳에 도로를 닦을 때만 해도 원시림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가 심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원시림이 철저하게 보호되는 곳이다). 눈앞에 드러난 어마어마한 열대 정글에 어느새 시각은 초록으로 마비된다.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케이프 트리뷸레이션 리조트에 도착하자 깊은 숲의 해는 어느새 지고 있었다. 간사한 시각이 맥을 못 추자 의뭉스러운 청각이 제 힘을 뻗는다. 열대 정글 속에 숨어 우는 새 소리, 벌레 소리,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 빗소리 같은 파도 소리까지 모두 귀를 파고든다. 원초의 감각이 제 힘을 얻자 맞게 된 두렵기까지 한 자유. 태고의 순간 같은 그 정적은 결코 잊기 힘든 것이다.


1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1천5백여 종의 어종과 3백 종 이상의 산호, 4천 종 이상의 연체동물이 서식하는 생명체의 자궁 같은 곳이다.
2, 3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을 둘러보려면 케언스 시티의 부두에서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돛이 달린 쌍동선으로 갈아탄 후 바다 수영을 즐기거나 갑판에서 선탠을 즐길 수도 있다. 이곳은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시 워커 같은 해양 스포츠의 천국이기도 하다.



열대우림을 둘러보는 또 하나의 방법인 스카이레일을 탑승하기 위해 대기 중인 관광객들.

모든 생명체의 자궁, 대보초 짧은 밤을 보내고, 붉은 일출 후 드러난 리조트 앞바다에 마음의 습도는 더해진다. 트로피컬 열대우림을 병풍처럼 등에 이고 해안선으로 수백 킬로미터의 모래 해변이 펼쳐진 장관에 취할 새도 없이 우리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로 향했다. 크루즈를 타고 대양 한가운데로 나아가 다시 돛이 달린 쌍동선을 타고 내달리니 산호초와 섬들이 아리도록 눈에 가득 찬다. 이 풍경 앞에선 내 마음에 바다가 비친다기보다 크고 위대한 바다에 내 마음이 흠뻑 빠져든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파푸아뉴기니의 플라이 강에서 시작해 호주 퀸즐랜드 해안을 거쳐 레이디 엘리엇 섬에 이른다는 이 거대한 산호초군은 생명체의 자궁 같은 곳이기도 하다. 1천5백여 종의 물고기와 3백 종 이상의 산호, 4천 종 이상의 연체동물, 4백 종 이상의 해면동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198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됐다).
전문 스쿠버다이버가 안내하는 대로 스쿠버다이빙으로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세상은 온통 푸른빛뿐이다. 살짝 입을 다무는 산호, 유영하는 해초, 가오리…. 공들여 모아놓은 마음이 물처럼 풀려버리고 만다. 스쿠버다이빙이 자신 없다면 시 워커 sea walker(산소가 공급되도록 특별 제작한 헬멧을 착용하고 바닷속을 거닐어보는 해양 스포츠)를 경험해봐도 좋다. 헬리콥터를 타고 대보초 지역을 둘러보는 ‘헬기 투어’도 있는데,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그야말로 숨이 멎을 정도라고 한다. 케언스에서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로 향하는 선박마다 섬이나 암초 등 목적지가 각각 다르다.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적지를 분산하는 것이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크루즈 프로그램은 보통 오전 10시에 출발해 대양 위에서 시 워커,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 등을 즐기다 오후 4~5시경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퀸즐랜드 열대습윤지역을 관통하는 쿠란다 열차. 1백 년 전 홍수로 인한 물자 운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이 철도는 현재 원시림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열차로 사용되고 있다.


6 열대우림의 한 마을 파마기리에서는 매일 원주민 공연이 벌어진다.
7 레인포레스테이션 야생동물 공원에선 코알라, 캥거루, 화식조 등 호주의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법적으로 코알라는 연속 3일 이상, 하루 30분 이상 일할 수 없습니다. 3일 동안 일한 후에는 하루를 쉬어야 하며, 코알라의 주당 최대 근무시간은 3시간입니다. 그리고 격일제로 일합니다”라는 재미난 안내문을 찾아볼 것.



8 수륙양용차를 타고 열대우림 깊숙이 들어가볼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열대 원생림 바다가 뿜어내는 취기에 휩싸여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우리는 열대우림으로 향했다. 1백20만 년 됐다는 원시림, 그보다 더 앞서 약 1억 4천만 년 전에 존재했던 양치식물인 소철류가 아직도 남아 있는 원시 삼림지대. 이곳에서 우리는 허파에 담기 벅찰 정도의 생생한 자연을 맛보게 될 것이다. 스카이레일 skyrail(케이블카의 일종)을 타고 거대한 숲을 둘러보는 여정에는 또 다른 아찔함이 자리한다. 공중에 매달려 7.5km의 거리(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웨이)를 느리게 순항하며 내려다본 숲은 그야말로 태고의 자연이었다. 거대한 수목들이 지붕처럼 숲을 덮은 그 광경은 ‘에덴’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부족하지 않다. 호주인들은 이 에덴을 지키기 위해 자재를 헬기로 운반해 정확한 지점에 낙하하는 방법으로 타워를 설치했다. 설치가 끝난 후에는 주변에 있던 식물을 모두 다시 제자리에 심는 정성을 쏟았다.
숲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두꺼운 수목층 때문에 ‘열대우림 캐노피’라고까지 불리는 이 우림에는 화식조(날지 못하는 타조의 일종), 원시 사향 쥐캥거루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카우리 소나무, 비단 단풍나무 등 3천 종의 식물이 자란다. 열대우림 캐너피가 담요처럼 습도를 유지하고, 태양열 집열기처럼 태양 에너지를 적절하게 공급하기 때문에 동식물의 천연 요람이 되는 것. 1988년 유네스코에서는 호주 동북부 연안을 따라 450km에 걸쳐 있는 ‘퀸즐랜드 열대습윤지역(Wet Tropics of Queensland)’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정했다.
퀸즐랜드 열대습윤지역을 둘러보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고풍스러운 기차를 타고 달리는 쿠란다 Kuranda 열차 여행. 1백여 년 전에 만든 철도를 운행하는 쿠란다 열차는 케언스 역을 출발해 15개 터널, 37개 다리를 지나 쿠란다 역에 도착한다. 그 여정 동안 열대우림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배런 폭포 역에서는 10분 동안 정차하는데, 해발 329m를 낙하하는 배런 폭포는 딱 그 속도로 마음에 내리꽂힌다. 가장 장엄한 장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대우림에 다가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수륙양용차인 아미 덕 army duck(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수륙양용차를 관광용 차량으로 개조한 것) 투어. 열대우림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원시 생태계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기회다. 1억 5천만 년의 역사를 가진 고사리과 식물 ‘트리 펀스’부터 원주민들이 부메랑을 만드는 ‘펜슬 시다’, 다른 나무에 착생해 나무줄기를 둘러싸면서 자라는 ‘버드 네스트 핀’까지 지구와 함께 나이 먹은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1 데인트리 국립공원 안에 있는 케이프 트리뷸레이션 리조트&스파. 이 리조트가 속해 있는 케이프 트리뷸레이션 지역은 호주에서 10위 안에 드는 인기 관광지이지만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열대우림과 산호초가 만나는 천혜의 위치에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www.capetribulation.net.au
2, 3 케언스 시티는 ‘트로피컬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눈부신 원색의 자연과 현대화된 시가지가 어우러진 곳이다. 해안을 따라 만든 인공 수영장 ‘에스플러네이드 라군’. 바다에는 악어가 서식해 수영이 금지되기 때문에 이 라군을 만들었다.




원시의 대자연이 준 평화 그야말로 이 땅은 이렇게 역사가 시작돼 이대로 세상의 역사가 끝날 것 같은 착각을 안기는 땅이다. 팔을 벌린 것처럼 하늘 향해 선 원시 수목들, 대보초를 채운 열기 가득한 비취 빛 바닷물, 욕망처럼 입술을 마르게 하는 바람, 그리고 붉게 멸망하는 남국의 태양. 이런 땅에서라면 순한 짐승처럼 바다를 보고 앉아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 열대의 정원에 갇혀 커피나 홀짝이며 책 읽고 싶은 자, 살갗을 스치는 열대 생명의 텐션을 느끼고 싶은 자, 해양 스포츠로 몸을 달궈 일 년의 노고를 덜어내고 싶은 자, 그 모두를 보듬어줄 땅이 이곳이다. 의무가 아닌 축제의 기념일을 바라는 부부에게도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마음에 부는 모래바람을 잠재우려 떠나온 누군가에게도, 남국의 훈풍은 오래 가슴에 남을 것이다.
문의 퀸즐랜드 주 관광청 02-399-5767 여행 상품 문의 블루여행사 02-516-0552, www.bluetravel.co.kr



케언스 시티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에스플러네이드 Esplanade 2.5km에 달하는 해안 산책로. 산책로와 이어진 인공 수영장 에스플러네이드 라군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고, 무료로 진행하는 타이치, 요가, 아쿠아 에어로빅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나이트 마켓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영업하며 기념품점, 공예품점, 마사지 숍, 푸드코트까지 몰려 있다. 원주민이 만든 공예품이나 디자이너가 호주의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장신구 등이 추천 아이템.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