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당 넓은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 선 중국의 젊은 조각가 그룹 언마스크. 왼쪽부터 탄톈웨이, 류잔, 쾅쥔. 각각 개성이 강한 이들은 작업에 들어가면 말 없이도 척척 손발이 맞는다.
2 첫 공동 작업이었던 오브제 작품을 걸어둔 작업실 벽면.
작업실 문을 열자 봉봉 캔디처럼 알록달록한 차림의 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중국의 떠오르는 조각가 그룹 ‘언마스크 Unmask’의 탄톈웨이, 쾅쥔, 류잔. 각자 벽을 보고 앉아 뭔가에 열중하던 터였다. 두 사람은 찰흙으로 토르소를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두상을 조각하고 있었다. 의아했다. 신소재를 활용한 작업이나 전위적인 구상에 빠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젊은 작가들이 조각의 정석인 찰흙 작업이라니. 게다가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한 프로 작가들이 기본기 훈련이라니!
언마스크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잠시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겠다. 속이 텅 비어 있고 표면은 반쯤 녹아내린 듯한 거대한 인체 조각상을 본 적 있는지? 묘한 표정의 이 ‘반투명 시리즈’는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대표작이다. 중국 및 해외 평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물론, 2006년 서울 아르코 미술관과 2007년 선 컨템퍼러리 갤러리에서도 전시를 열어 신선한 표현력을 인정받았다. 서울 청계천 광통교 부근에 설치한 붉은색 대형 로봇 ‘카 맨’도 이들의 작품이다.
찰흙을 만지던 세 남자가 이렇듯 자유분방한 컨템포러리 작업을 하는 그 언마스크가 맞나 싶어 작업실 문 앞에서 주춤거렸다. 언마스크의 작품을 이들의 졸업 전시회 때부터 지켜봐온 한종무(컬렉터이자 전시 기획자이며 중국의 갤러리 H 대표) 씨가 안내를 맡아 설명해주었다. “베이징 중앙미술대학교 조각과를 다닐 때부터 기본기를 충실히 쌓은 작가들입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응용력을 발휘하는 게 이들의 장점이죠.” 젊은 조각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기획해온 그의 눈에 언마스크는 원석 같았다. ‘독특한 콘셉트’만 내세우는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고전 조각의 정교함까지 갖춘 언마스크는 확실히 보배였다. 한종무 씨가 작품을 좀 더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애써서 만든 조각품을 ‘신문지로 대충 둘둘 말아서’ 가져왔다는 청년들. 그는 이들에게 작품 운송과 보관법부터 가르쳤다. 이때부터 그들은 작품 구상과 전시 기획을 의논하며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3 미팅룸으로 사용하는 방.
4 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 각자 벽을 보고 앉아 스케치를 하고, 조각을 하고, 작품 구상을 한다.
한지붕 아래 세 작가 세 청년이 동고동락하는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은 복작이는 베이징 798 예술지구에서 차로 15분쯤 거리인 한적한 농촌 마을에 있었다. 마당이 넓은 농가가 마음에 쏙 들어 세 사람이 직접 작업실로 개조했다. 각자의 살림집은 따로 있고,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데도 모이기만 하면 재미난 일이 그치질 않는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고유 세계를 펼쳐내는 사람인데 어떻게 세 명이 공동으로, 그것도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연분은 각별해요. 세상을 보는 시각도 비슷하고, 서로 힘이 되기도 하지요.” 특히 작품을 할 때 신기하리만큼 뜻이 일치한다. 각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인물상을 빚고, 이를 놓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조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황당한 의견을 주장하면, 그 또한 재미있다. 혼자 작업할 때 풀리지 않던 점이 함께 있으면 해결된다. 흩어질 이유가 없잖은가.
그렇다면 대개 프로젝트 그룹이 그러하듯 각자 잘하는 영역이 있어서 분업 형태로 일하지 않을까? 답은 ‘아니요’다. 맡은 역할이 따로 있지 않고 구상도, 만들기도, 마무리도 모두 같이 한다. 아무리 그래도 각자 뛰어난 점이 있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세 청년은 고민 끝에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탄톈웨이는 귀엽고 유머러스하고, 쾅쥔은 부지런하고, 류잔은 진지하고 성숙한 것이 장점입니다.”
1 대형 작품을 손질할 수 있는 뒤쪽의 창고. 커다란 개도 키우고 탄톈웨이의 아내가 러시아에서 사다준 거북이도 10년째 키우고 있다.
2 언마스크는 자신들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격려해준 전시 기획자 한종무 씨와 돈독하게 지낸다.
작품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완성할 만큼 돈독한 신뢰는 오랜 우정에서 비롯되었다. 셋은 전시회를 하려고 급조된 팀이 아니라 대학 때부터 함께 자취하던 사이다. 각각 후난 성, 장시 성, 허난 성 출신인 이들이 베이징에서 만나 공부도 같이 하고 아르바이트도 같이 했다.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함께 모아 자동차를 한 대 사서 여행도 다녔다. 졸업 전 프랑스 미술학교와의 교류전을 위해 처음 합동 작업을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졸업 작품을 위해서도 의기투합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들의 작품이 졸업전에서 1등 상을 받은 것이다. 상 자체보다도 세 청년은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몸을 떨었다.
3 찰흙으로 먼저 인물 형태를 잡는다.
4 마당에 설치한 작품 ‘LulluL’(2006).
5 ‘반투명 시리즈 1’(2006).
겉보다 속이 닮은 자화상 함께하니 재능은 세 배 더해지고 두려움은 3분의 1로 줄었나 보다. 이들은 성장도 빨랐다. ‘반투명’ 시리즈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더니, 최근에는 양모를 사용해 촉각에 주목한 신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신인류’의 피부를 덮은 보드라운 털은 만지고 싶게 만들기도 하는 반면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소재와 표현법은 다르지만 전작과 신작을 관통하는 정서는 ‘모호함’이다. “세상은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예요.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언마스크는 한목소리로 말했다. 모호한 이 세상을 마주했을 때의 낯선 느낌을 작품의 주제로 삼기로 했다고. 그래서 작품은 자기 자신이다. 겉보다도 속이 닮은 자화상이다.
“언마스크처럼 소비주의 경향이나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은 이들을 4세대 작가로 분류하지요.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정치적 격동기를 고발하던 2~3세대 냉소적 리얼리즘 작가들과 다른 경향을 보입니다.” 한종무 씨의 설명처럼 4세대 작가들은 중국 개방 이후 변화된 사회상과 급속한 경제 발전을 체험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장샤오강, 팡리쥔, 쩡판즈 등 2~3세대 작가들처럼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주제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감성과 일상을 작품에 녹여낸다.
남성인 듯 여성인 듯, 슬픈 듯 즐거운 듯, 현실에 있는 듯 허구에 있는 듯한 인물상. 작품의 아리송한 표정이 시선을 오래 붙든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더니 쾅쥔 씨가 하는 말. “‘단언’하고 ‘선언’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에요. 지금 우리는 알 듯 모를 듯한 세상에서 뭔가를 계속 찾아가는 것이 흥미로워요. 그야말로 ‘언마스크(정체를 밝히다)’하는 거죠. 현재는 인물상을 통해 삶을 모색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사람이란 형상도 사라지겠지요.”
(위) ‘반투명 시리즈 5’ (2006). 세 작가의 탄탄한 기본기와 상상력으로 빚은 작품이다.
* 중국 베이징 798 예술지구에 있는 한종무 씨의 ‘H 갤러리’(11월 중순)에서도 언마스크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문의 86-10-8459-9476
- 중국 문화 예술 유람기 - 중국의 젊은 조각가 그룹 언마스트 세 남자의 동거동작 同居同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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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설치한 로봇 조형물 ‘카 맨’으로도 익숙한 중국의 젊은 조각가 그룹 언마스크. 한국뿐 아니라 해외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빠르게 부상한 이들을 만나보았다.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톡톡 튀는 젊은 작가 세 명이 한뜻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