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공간의 특색이 되는 레이스 펜스.
1, 2 요에프 페르호번의 작품 ‘레이스 펜스’. 기능만 남은 대상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디자이너 요에프 페르호번
펜스에 레이스를 입히다
어차피 필요한 것이라면 아름다운 게 더 좋지 않을까. 요에프 페르호번 Joep Verhoeven은 2005년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 프로젝트로 ‘펜스를 설치하는 법(How to Plant a Fence)’을 발표하면서, 졸업도 하기 전에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펜스의 철망을 레이스 패턴으로 디자인했고 아름답게 바뀐 펜스를 본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펜스를 떠올려보자. 그저 공간을 나누는 기능만 있을 뿐이다.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 단순한 펜스에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여행을 하던 중 누군가가 임시로 고쳐놓은 펜스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무미건조한 패턴에 장식을 넣어보면 어떨까?” 계속해서 떠오르던 펜스에 대한 생각은 ‘레이스 펜스’라는 디자인 콘셉트를 완성했다.
3 네덜란드에서 활동 중인 데마커스판.
그는 레이스 패턴을 이용해 펜스에 다양한 표정을 불어넣었다. 네덜란드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레이스 제작 기법을 활용해 정교한 패턴을 짜 넣었다. 꽃과 잎사귀 모양에서 사자, 여자의 얼굴 등으로 펜스의 패턴은 점차 다양해졌다. 그의 독특한 레이스 펜스는 주변을 아름답게 바꾸었고, 그 지역의 특색을 만들어냈다.
그는 레이스 펜스를 장식적 요소로도 사용하기를 제안했다. 실제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그의 레이스 펜스로 외벽을 장식한 아파트가 있고, 중국 상하이 휴고 보스 매장의 계단 난간도 그의 펜스로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 결과는 그의 작품이 장식적 요소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혹시 레이스 패턴이 기존 마름모꼴 와이어보다 약하지 않을까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그의 펜스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강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요에프 페르호번은 2006년부터 쌍둥이 형제 예룬 페르호번 Jeroen Verhoeven과 또 다른 동료 위디트 데 흐라우 Judith de Graauw와 함께 데마커스판 Demakersvan이라는 디자인 팀을 이끌어가고 있다. 대중과 호흡하길 원하는 젊은 세 명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미술관에 갇혀 있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레이스 펜스는 노동력이 좀 더 싼 인도에서 제작하는 중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작품으로 레이스 펜스가 울타리 역할만 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 또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레이스 펜스를 직접 보는 기회, 놓치지 말길 바란다.
1 2006 프랑크푸르트 루미날레에서 선보인 ‘Light_Light’.
2 2007년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한 ‘Shadow Play’. 관객의 그림자는 움직이는 장난감 괴수들의 그림자와 함께 작품이 된다.
조명 디자이너 조민상 씨
빛에 날개를 달아주다
최근 열린 밀라노디자인위크에서 알 수 있듯이 빛은 조명 기구 속 전구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 “제가 진정 하고픈 건 빛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조명 디자이너 조민상 씨의 활동이 이목을 끄는 이유는 ‘조명 기구’ 자체의 아름다움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빛’ 자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은은한 조명이 음식 맛을 배가하고, 분위기를 돋우는 것처럼 알게 모르게 빛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로등 불빛이 밤새 집 안으로 침범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따라서 빛을 다룰 때는 자칫 불빛이 공해로 느껴지지 않도록 책임감을 갖고 디자인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영국에서 ‘스튜디오 메이크 라이트 Studio Make Light’를 운영한다. 조명 기구 디자인부터 라이팅 컨설팅까지 빛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라이팅 컨설팅이란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지붕이나 캐노피 형태를 고려해 자연 채광을 조절하고, 밤에 사용할 인공 빛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어디에 쓸 것인지, 어떤 사람이 쓸 것인지,이를 먼저 생각한 후 디자인합니다.” 실제 그 집에서 살게 될 사람의 생활을 고려해 조명의 색깔과 조도를 조절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더한다. 최근 조민상 씨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했다. 바로 내년 초 막을 올릴 뮤지컬 무대 디자인이다. “굉장히 미니멀한 무대가 될 거예요. 어떻게 빛이 공간을 나누고, 상황을 연출하는지 이 공연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백화점에는 차가운 백색 조명을 쓸 것이고 집에는 깜빡거리는 등을 써서 푸근한 정서를 연출할 생각입니다.” 조민상 씨는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자전거 동력을 이용한 키네틱 kinetic(관객이 작품을 움직여 외관을 변화시키거나 동력에 의해 작품 자체가 움직이는 것) 조명 ‘플라잉 레슨 Flying lesson’을 준비하고 있다. 자전거에 발전기를 달아서 페달을 돌리면 날개들이 빛을 뿜으며 움직인다. “제 작품을 보고 한 번쯤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본 전시 중 섹션 2에 선보일 플라잉 레슨 Flying lesson과 더불어 섹션 3을 위한 야외 전시 조명도 설치할 예정이니 그가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 패스트푸드를 위해 만든 ‘Mc Donalds Plate’.
2, 3 튀김을 위한 테이블웨어, ‘Tempura Plate’.
4 ‘Tea Bag Squeezer’.테이블에 물을 흘리지 않게 티백을 건지는 동시에 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금속공예 작가 임효정 씨
밥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다
“쉽게 먹을 수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라도 우아한 접시 위에 놓여 있고 포크와 나이프를 준비해준다면 먹는 태도가 달라지겠죠?” ‘맥도날드를 위한 플레이트’ ‘덴푸라 플레이트’ 등 빠르고 편리한 것만 찾는 음식 문화를 되짚어보는 작품을 발표한 작가 임효정 씨. 그는 학생 때부터 테이블웨어를 매개로 음식과 먹는 행위를 둘러싼 현대인의 행위를 돌아봤다. 그가 테이블웨어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오랜 유학 생활에 있다. “혼자 밥을 자주 먹었죠.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으나 허기를 채워도 허전함은 계속됐습니다. 그때 음식이 허기진 배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채운다는 걸 알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먹는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면서, 그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놀이가 되는 조립 가능한 테이블웨어를 만들었다. 가족의 식사 시간에서 출발한 관심은 현대인의 전반적인 식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패스트푸드가 퍼져 있고 이로 인해 음식을 먹는 행위도, 그 시간도 별 의미 없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패스트푸드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것만을 위한 우아한 테이블웨어를 만드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패스트푸드를 먹는 동안이라도 그 음식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맥도날드 플레이트이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전시하게 될 컵라면을 위한 장식이다. 두 작품 모두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만을 위한 장식을 만들었다. “분명히 사용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를 비교해보면 음식을 먹을 때 태도와 마음가짐이 다를 거예요.” 임효정 씨는 테이블웨어를 만들 때 식기 원래의 기능도 잊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정의하는 ‘우아함, 재치, 기능성’ 세 가지 키워드는 작품 ‘덴푸라 플레이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의 외양은 우아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름기를 흡수하는 동시에 음식을 받치기 위해 구불구불 감은 종이를 사용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부터 지금 준비 중인 작품까지 10여 점을 동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감상하며 우리의 밥상 풍경은 어떠한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뜻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