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동 작업실에서 사진작가 이정진 씨가 그의 최근작인 ‘Wind’ 연작을 리뷰하고 있다. 흰 벽에 흐릿하게 세겨져 있는 무수히 많은 선은 한지로 작업한 사진을 배접할 때 생긴 흔적. 우연이 빗어낸 그 흔적조차 멋스럽다.
1 이정진 씨의 구기동 작업실은 북한산 보현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자리에 마련되어 있다.
사진작가 이정진 씨의 작업실을 처음 찾은 것은 그가 뉴욕에서 귀국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망설임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는 보여줄 것이 별로 없다”며 머뭇거리던 그는 하루라도 빨리 취재를 포기시키려는 듯 먼저 작업실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해왔다. 구기동 주택가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대문으로 들어서니 담장 아래로 전나무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고, 말 그대로 우후죽순 자라난 대나무는 초록 담장을 이루고 있다. 무성한 여름 정원을 뒤로하고 작업실로 들어서니 천장만큼이나 높이 달린 창을 통해 쏟아지는 풍부한 햇살 아래 흰 벽을 배경으로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그가 사무실로 사용한다는 방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것은 창밖 풍경이다. 북한산이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내부로 돌리니 색이라고 해봐야 흑백 사진 같은 모노톤의 공간에서 몇 점 되지 않는 가구가 살점을 드러내듯 보여주는 붉고 누르스름한 나무 빛깔이 전부다. 커피를 내오겠다며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공기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사이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다. 책상 옆이나 선반 위에 조용히 자리한 작은 물건들의 실루엣이 낯설지 않다. 그의 사진 ‘Thing’ 연작의 소재가 된 것들이다. 언젠가 그의 사진을 보며 거대한 크기를 상상했던 항아리는 두 손으로 감싸 쥘 수 있는 작디작은 물건에 불과하다. 며칠 전부터 침대 머리맡에 두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열화당 사진 문고 이정진>과 그의 사진집에 실린 사진, 오늘 처음 찾은 작업실, 그리고 작가 이정진…. 모두가 닮았다. 집이 주인을 닮고 작품이 사람을 닮아 있는 풍경. 예술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제아무리 보여줄 것이 없다며 손사래 쳐도 평범한 생활인에게 예술가는 들여다볼 것 많은 존재일 수밖에.
2 한 토막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아프리카 목각 의자는 만든 이의 순수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는 이 목각 의자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만든 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미국 사막 촬영을 다니던 시절 산타페에서 구입한 것이다.
3 벽에 걸린 사진 작품은 이정진 씨의 ‘Thing’. 인화지 대신 한지에 작업하는 그의 사진은 수묵화를 닮았다. 작업실에서 그의 작품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전망창이다. 현관 입구를 측면으로 내고 정면에는 통창을 두어 실내에서 녹음이 우거진 정원 풍경을 만끽하게 했다.
사진을 닮은 사진가 작품 이외의 것으로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에 아직은 온전히 빗장을 풀지 못하는 그와 서먹하고 짧은 문장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대화를 열어가고 있을 즈음, 저음의 첼로 선율이 어울릴 것 같은 이 공간에 날카로운 하이 톤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전화기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에게서 “아직도 벨 소리 줄이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나지막한 혼잣말과 탄식이 새어 나온다. 메커니즘으로 따지자면 견줄 수 없을 만큼 복잡해 보이는 카메라를 만지는 사진가가 고작 전화기 벨 소리에 좌절하는 모습이라니!
사무실 외벽에 걸려 있는 둔탁한 실루엣의 사진과 스스로를 기계치라 부르는 사진가가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세부적인 디테일이 사라지고 명암의 대비조차 부드럽기 그지없는 이정진 씨의 사진은 수묵화를 닮았다. 이는 한지로 인화지를 대신하는 특유의 작업 방식에서 기인한다. 그는 한지에 직접 붓으로 감광유제를 발라 코팅하고 그 위에 인화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프린트마다 다른 붓 자국과 한지 고유의 특성이 맞물려 때로는 사진이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회화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화두를 사진 작업으로 옮겨가자 그의 문장은 조금씩 길어지고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진 찍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은 나를 사진가라 부르지만, 붓과 한지로 씨름하며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사진가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렇다고 그것이 그림 그리는 사람의 마음도 아니고….” 자신은 그저 아티스트인 것 같단다.
4 작업실에서 발견한 아프리카 목각 인형. 그가 매우 아끼는 것이다.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보니 이정진 씨가 카메라와 연을 맺은 때는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홍대 공예과에 입학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사진에 빠져들었다. 어릴 적부터 여러 미술 활동을 했고 디자인도 공부해봤지만 사진만큼 그의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없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니 내가 그리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내 안의 느낌들이 세상에 널려 있는 거예요. 굳이 애써 그림을 그리거나 흙을 빚어 나를 표현할 필요가 없었지요. 이미 세상에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내 감정들을 포착해내면 그만인 것을.” 그는 그렇게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 4학년, 그는 파리 국제사진대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파리에서 한 달간 체류하며 촬영을 하는 기회를 얻었다. “파리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을 들고 무작정 프랑스 문화원을 찾아갔죠. 놀라운 것은 문화원장이 사진에 대한 조예가 꽤 깊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사진은 좋은데 어쩌면 이리도 프린트를 못하냐며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서 전시 사이즈로 프린트해오면 그걸 보고 결정하겠다는 거예요. 프랑스 문화원의 전시는 그렇게 이루어진 거예요.” 선배도 있고 스승도 있는 사진과 학생이었다면 감히 그렇게 까불지는 못했을 거라며 당찬 20대를 회상한다.
졸업 후 그는 1년간 월간 <샘이 깊은 물>의 사진기자를 거쳐 프리랜스 사진가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한다. 1년간 울릉도 심마니 노부부를 따라다니며 찍은 다큐멘터리 작업 ‘먼 집 외딴섬’을 발표하고 나니 20대 중반의 사진가는 이미 원로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더란다. 전시를 마치고 그는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 “두 달치 여비를 갖고 떠났지만 비행기를 탈 때 나는 이미 서울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두 달 여행길에서 그가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8년. “지루한 서부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도착하니 머리를 때리는 듯한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 거예요. 뉴욕을 그냥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을 다닐 때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듯, NYU 재학 시절에도 ‘이 나이에 학생인 것이 부끄러워’, 부끄러움도 잊은 채 수많은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그 치열했던 시절 그는 랠프 깁슨, 조지 로저, 로버트 프랭크 같은 사진계의 거장들과 연을 맺을 수 있었다.
1 뉴욕 빈티지 책방에서 구입한 1860년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원판 액자
2 벽에 걸린 사진은 미국에서 그의 첫 전시를 기념해 로버트 프랭크가 선물한 것. 빈티지 캐비닛과 의자 모두 ‘Thing’ 연작의 소재가 되었다.
3 사진작가 이정진 씨. 그의 작품 세계와 중성적인 이름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그를 남자로 오해하곤 한다.
내 인생의 뉴욕 스토리 “지금 생각해도 내가 기특한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사진과 관련한 일이 아니라면 돈벌이에 나서지 않았다는 거예요. 집세를 내기 위해 라이카 카메라를 팔아야 하기도 했지만, 사진이 아닌 다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면 뉴욕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여겼지요.” 그 무렵 <행복>에도 뉴욕 스토리나 캘리포니아 여행에 관한 사진을 기고한 적이 있다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이 집중해서 노력하다 보면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그 가까이는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진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그에게 따사로운 햇살이 찾아들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그의 사진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 뉴욕 현대미술관의 작품 리뷰에서 수차례 탈락한 그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또다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American Desert’ 연작의 초기 작품이었다. “다음 날 작품을 찾으러 갔더니 뮤지엄 디렉터가 잠깐 보자는 거예요. 그를 따라 들어가니 내 작품을 모두 걸어놓은 방에 서너 명이 모여 앉아서 제 작품을 보고 있었어요.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작품 가격도 묻더군요. 10분 후에 다시 보자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그 긴장과 설렘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듯한 표정으로 들려주는 뉴욕 스토리에서 그 시절의 열정이 배어난다. 비슷한 시기 그는 뉴욕 최고의 사진 전문 화랑인 페이스맥길 Pace/MacGill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된다. 그 결과 5년 동안 뉴욕에서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여는 등 30대 초반의 사진가는 뉴욕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린다.
4 그의 시선을 잡아끈 사물들. 이 중 몇몇은 ‘Thing’ 연작에 등장한다.
5 사무실 벽을 장식하는 사진액자. 맨 위 왼쪽 사진은 이갑철, 맨 아래 두 작품은 매그넘 창시자 중 하나인 조지 로저, 나머지는 이정진 씨의 스승이자 멘토인 로버트 프랭크 작품이다.
1995년 서울로 돌아온 그는 한국 탑을 소재로 한 ‘Pagoda’, 인간의 삶이 배어 있는 풍경의 단면을 보여주는 ‘On Road’, 정물을 주제로 한 ‘Thing’, 지난해 전시를 연 ‘Wind’ 등의 연작을 발표하며 뉴욕과 서울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매우 활동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사진들에서 전해지는 정적인 느낌과 달리. 그는 사진 하는 사람이 어찌 정적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점점 더 정적으로 변해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1 그의 최근작인 ‘Wind’ 사진집. ‘Wind’ 연작은 조만간 미국 사진전문출판사 아파추어 Aparture에서도 사진집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사물에게 말걸기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지 인화 작업은 그야말로 도 닦는 도공의 그것과 다름 아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도 마찬가지. 그는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은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투영된 자아를 만나는 순간이라 말한다. “사물에 최면을 걸어보면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본질을 갖고 있어요.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 같은 물건조차도 사용하던 사람의 혼이 담기게 마련이고…. 이런 것들과 소통하려고 작업한 것이 ‘Thing’ 이예요. ‘Thing’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건은 시각적 소재가 아닌 명상의 오브제로, 집중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죠.” ‘Thing’의 소재가 된 아프리카 목각 의자, 뉴욕 거리에서 주웠다는 구부러진 못, 손바닥만큼 작은 항아리 등을 보여준다. 그는 소유는 짐이라고 생각해 주변에 물건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몇 가지 되지 않는 이 소품들은 ‘Thing’ 작업으로 곁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소통하고 교감을 하는 ‘혼이 느껴지는’ 물건들이다.
바람이 좋다며 자리를 옮기자는 그를 따라 뜰로 나섰다. 북한산 보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가 막힌 풍경을 안고 있는 이 작업실은 지난 7년간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라 한다. 지난해 평창동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찾았으나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해 결국 살림집을 옮기는 것을 택했다. 평범한 살림집을 ‘주인과 꼭 닮은’ 공간으로 변화시킨 이는 건축가 최욱 씨다. 작업실 공사를 계획하고 있던 즈음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건축가 최욱 씨를 추천하더란다. 예견된 궁합이었을까? 사진가 건축주와 건축가의 만남으로 사진가를 꼭 닮은 작업실이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인연은 다시 사진가와 컬렉터의 관계로 발전했다. 작업실은 기존의 건물을 증・개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원래 1층이던 건물의 한쪽을 터서 공간을 넓히고, 확장부의 천장고를 2층 높이로 높여 대형 프린트 작업이 많은 그를 위해 암실과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북한산을 바라보는 전망 좋은 자리에는 사무실로 쓸 수 있는 방을 만들고 넓은 덱을 설치해, 산을 품고 사는 마을 구기동의 정취를 한껏 끌어안았다.
2 오랫만에 작업실을 방문한 아들 상하와 함께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3 책장 위를 장식하는 소품들.
4 구기동 작업실은 원래 살림집으로 사용하던 곳을 증・개축했다. 건축가 최욱 씨가 설계했다.
5 미국에서 사막 촬영을 다닐 때 주어온 돌. 자연 풍화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막 꽃망울을 터뜨린 물망초의 여린 꽃잎에 감탄하고 고목에 기대어 한 송이 꽃을 피운 능소화를 바라보며 나무가 머리에 핀을 꽂았다고 말하는 그. 그가 요즘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이번에 뉴욕 갈 때는 카메라도 가져가지 않았어요. 사진가가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아주 잘 지냈어요. 이렇게 작업을 안 하고도 잘 지낼 수 있구나 싶었죠.” 그는 작가 생활 30년 중 20년간 한지 작업을 했고 35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문득문득 또 똑같은 소리를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란다. 그는 요즘 다시 뉴욕행을 준비하고 있다. 익숙한 것들과 이별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단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을 알기에 그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암실을 떠나 한동안 느릿느릿 심심하고 지루하게 놀아볼 생각이다. 이미 그 안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위해 내 안의 방을 비워내기 위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 사진 대표작가 10인전>(8월 18일까지)에서 이정진 씨의 사진 작품 ‘Thing’ 연작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