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편은 여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외모만 보면 여행가, 그것도 오지 여행가처럼 생겼지만 실상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과 신혼여행 다녀온 게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니까.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는 남편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여행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이라서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돌발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 여름휴가 때 어디 가?” 아내가 던진 질문에 남편은 적절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서라도 질문을 아내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어디가 좋을까?” “아예 생각 자체를 안 했구나. 가기 싫은 거지?” “아냐, 그럴 리가 있나?” 남편은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다. 남편은 여행 가는 게 싫다. 도무지 여행을 왜 가는지, 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왼쪽) 전영근, ‘ 여행’, 2008
휴가란 쉰다는 거 아닌가? 쉰다는 것은 안정적인 상태라야 가능하다. 그것은 긴장과 신경을 최대한 느슨하게 풀어놓은 그런 방심의 상태인 것이다. 가령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거실 소파에서 뒹굴며 책을 읽는 것 같은 이완의 상태,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120쪽을 넘기면 121쪽이 나오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상태, 졸리면 그 자리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도 괜찮은 안전한 상태, 다시 눈을 떠도 익숙한 집의 거실 소파 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확실한 상태 말이다. 휴식이란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할 수 없지. 이번 여름휴가도 뭐 집에서 보내겠네. 누굴 원망해. 사람 잘못 본 내가 바보지.” 아내의 자책은 은근히 남편의 좁은 속을 긁는다. 남편은 짜증을 낸다. “휴가 때 꼭 여행을 가야 한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냥 편하게 지내면 그게 진짜 휴가지.” “나는 집에 있는 게 하나도 안 편하거든. 더 힘들단 말야.”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남편은 버럭 큰소리를 치지만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몸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아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아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휴가 기간 내내 게으른 남편이 소파 위에서 뒹굴며 때만 되면 밥 달라고 할 생각을 하면 아내는 숨이 막힌다. 물론 여행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아내도 안다. 그래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약간의 고생과 불안은 오히려 참을 만한 즐거움일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때론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 않는가. 여행을 남편과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고 또 돌아와서 추억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아내에게는 여행 자체보다 더 소중한 순간들이다.
아무리 무심하다 해도 아내가 속상한데 남편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이 그렇게 갈구하는 휴식도 어디까지나 아내가 만들어놓은 일상의 공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니까.
시간이 갈수록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안해하는 남편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 아내의 마음은 풀어질 수 있다. 남편과 아내는 어디로 여행할지, 교통편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 잠은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지 의견을 나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아내의 생각처럼 그렇게 흥미롭거나 즐겁지도 않고, 남편의 염려처럼 그렇게 고생스럽거나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삶의 다른 일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여행도 꼭 그만큼 즐겁고 그만큼 고생스럽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남편은 깨닫는다.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내 집뿐이라는 사실을. 물론 그 깨달음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금세 잊혀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또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이고 남편과 아내는 여행을 가기 위해, 혹은 안 가기 위해 다시 다투기 시작할 것이다. 즐거운 그리고 괴로운 가족여행을.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는 남편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여행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이라서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돌발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 여름휴가 때 어디 가?” 아내가 던진 질문에 남편은 적절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서라도 질문을 아내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어디가 좋을까?” “아예 생각 자체를 안 했구나. 가기 싫은 거지?” “아냐, 그럴 리가 있나?” 남편은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다. 남편은 여행 가는 게 싫다. 도무지 여행을 왜 가는지, 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왼쪽) 전영근, ‘ 여행’, 2008
휴가란 쉰다는 거 아닌가? 쉰다는 것은 안정적인 상태라야 가능하다. 그것은 긴장과 신경을 최대한 느슨하게 풀어놓은 그런 방심의 상태인 것이다. 가령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거실 소파에서 뒹굴며 책을 읽는 것 같은 이완의 상태,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120쪽을 넘기면 121쪽이 나오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상태, 졸리면 그 자리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도 괜찮은 안전한 상태, 다시 눈을 떠도 익숙한 집의 거실 소파 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확실한 상태 말이다. 휴식이란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할 수 없지. 이번 여름휴가도 뭐 집에서 보내겠네. 누굴 원망해. 사람 잘못 본 내가 바보지.” 아내의 자책은 은근히 남편의 좁은 속을 긁는다. 남편은 짜증을 낸다. “휴가 때 꼭 여행을 가야 한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냥 편하게 지내면 그게 진짜 휴가지.” “나는 집에 있는 게 하나도 안 편하거든. 더 힘들단 말야.”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남편은 버럭 큰소리를 치지만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몸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아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아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휴가 기간 내내 게으른 남편이 소파 위에서 뒹굴며 때만 되면 밥 달라고 할 생각을 하면 아내는 숨이 막힌다. 물론 여행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아내도 안다. 그래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약간의 고생과 불안은 오히려 참을 만한 즐거움일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때론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 않는가. 여행을 남편과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고 또 돌아와서 추억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아내에게는 여행 자체보다 더 소중한 순간들이다.
아무리 무심하다 해도 아내가 속상한데 남편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이 그렇게 갈구하는 휴식도 어디까지나 아내가 만들어놓은 일상의 공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니까.
시간이 갈수록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안해하는 남편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 아내의 마음은 풀어질 수 있다. 남편과 아내는 어디로 여행할지, 교통편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 잠은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지 의견을 나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아내의 생각처럼 그렇게 흥미롭거나 즐겁지도 않고, 남편의 염려처럼 그렇게 고생스럽거나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삶의 다른 일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여행도 꼭 그만큼 즐겁고 그만큼 고생스럽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남편은 깨닫는다.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내 집뿐이라는 사실을. 물론 그 깨달음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금세 잊혀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또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이고 남편과 아내는 여행을 가기 위해, 혹은 안 가기 위해 다시 다투기 시작할 것이다. 즐거운 그리고 괴로운 가족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