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강운구 씨는 말한다. “한국에, 서울에, 광화문 근처에 있다가도 문득 없고 없다가도 슬그머니 나타난다. 내가 고작 며칠간 기껏 장흥, 해남, 완도로 바람 쐬러 간 사이에 그는 - 브라질에서 일하던 중 잠시 귀국했는가 싶더니 한 주일쯤을 타이에 가서 일 보고 왔다가- 하던 작업을 마쳐야 한다며 브라질로 다시 떠났다.” 넓디넓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말겠다는 듯 스무 해가 넘는 동안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닌 이, 다큐멘터리 작가 박종우 씨의 이야기다. 1984년부터 <한국일보>에서 사진기자로 일한 박종우 작가는 입사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이유는 단 하나, 생애 첫 히말라야 여행이 남긴 아쉬움 때문이었다. 산소가 희박한 그곳에서 차가 뒤집히고, 폭설에 갇히고, 카메라가 고장 나는 별의별 일을 다 겪었으면서도 그는 제 발로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대도시의 일상이 어깨를 짓누를 때면 눈앞에는 언제나 하얀 설산이 아른거렸어요. 그때마다 히말라야를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죠.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히말라야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왼쪽) 일 년 중 2/3의 시간을 오지에서 보내는 박종우 작가. 한국에 잠시 머물 때는 사진 전시회를 열고, 책을 내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왼쪽)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빙하호.
(오른쪽) 티베트 창탕 고원의 즈라브예차카 염호에서 소금을 채취 중인 부족들.
새벽녘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걸린 붉은 양떼구름, 인생살이에서 불가피하게 얻게 된 생채기는 모두 잊으라는 듯 무시무시하게 불어치던 몬순 계절의 비바람, 대자연의 숭고함을 보고 난 후, 그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졌다. ‘자연’은 선인의 가르침 백 마디만큼이나 그의 인생길에 큰 지침이 돼주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으로서, 아등바등 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처음에는 만년설을 머리에 인 7천미터 높이의 거대한 설산이 뿜어내는 압도적이고 위풍당당한 모습에 매료돼 시작한 오지 여행. 그런데 박종우 작가가 그 길에서 발견한 것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연은 자신의 뒤에 꼭꼭 숨겨두었던 그곳의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이름도 낯선 히말라야의 여러 부족.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지켜오던 오래된 삶의 풍경이 조금씩 뒤바뀌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히말라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마치 산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길이 뚫리고 전기가 연결됐죠. 일단 길이 뚫리면 바깥세상의 문물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이죠.” 어느 순간 가 보니 텔레비전이 떡 하니 놓여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고, 부족들의 복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카메라는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른쪽) 중국과 티베트 사이에 자리 잡은 캄 지역 어느 사원, 한 승려의 뒷모습에서 엄숙함이 느껴진다.
1 북인도 라훌의 수도 키롱을 출발해 마날리로 가는 버스에 탄 사람들.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망울에 순수함이 묻어난다.
2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빙하호에 피어난 야생화.
3 불경이 적힌 기도 깃발을 살펴보는 한 승려의 모습.
4 차카롱 마을에서 생산된 소금을 실은 캐러밴이 차마고도를 따라 산을 오르고 있 다.
5 카슈미르 인더스 계곡의 드록파족은 꽃을 좋아해서 항상 머리에 야생화를 꽂고 살아간다.
6 네팔 테라이 지역에서 시속 16킬로미터로 움직이는 꼬마 기차를 탄 승객이 인도로 향하고 있다.
1995년, 그때부터 박종우 작가는 한 손에는 사진용 카메라를, 또 다른 손에는 방송용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사진과 동시에 영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SBS 다큐 스페셜 <티벳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 <동방대협곡>,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사향지로> 등 일련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이다. 사실 박종우 작가처럼 히말라야의 남과 북 모두를 섭렵한 이는 드물다. 히말라야 산맥이 갈라놓은 남과 북은 단순히 지리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문화가 싹트는 기준점이다. 이것이 박종우 작가로 하여금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을 그곳에 오롯이 공들이게 한 이유다. 인도양에서 만들어진 몬순 구름조차 자연의 장벽인 히말라야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산에 막힌 구름이 많은 비를 뿌리는 네팔, 부탄 같은 남쪽 지역에서는 농사가 가능한 반면, 북쪽의 티베트 고원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가 형성된다.“비록 구름은 산을 넘어 북쪽으로 가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험난한 계곡의 가느다란 길을 통해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삶을 나눠왔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수확물을 나누기 위해 교역로들이 생겨났고, 그 길에서 사람들은 차와 소금뿐만 아니라 종교와 풍습까지도 교환했습니다. 히말라야는 만년설의 집이자 잉태의 집이며 소통의 길입니다.”
박종우 작가는 오지로 떠나기 전, 그곳에 감춰진 부족에 대한 낱낱의 정보들을 입수하느라 늘 바쁘다. 그네들의 풍습, 습성, 문화를 상세히 알고가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얻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에스키모인이 귀한 손님이 왔다고 3개월 동안 땅에서 묵힌 해마 고기를 입 안에 넣어줘서, 또 어느 날은 족장이 50도가 넘는 고량주를 권하는 터에 곤욕을 치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박종우 작가는 히말라야를 섭렵한 후 네팔, 티베트, 아프리카, 남미의 오지를 찾아 계속 여행을 하고 있다. 해발고도 몇 천 미터가 넘는 오지에서 두통, 오한을 동반한 고산병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또 오지로 향한다. 거기, 지친 영혼을 다독여주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박종우 작가가 말하는 오지 여행 준비하는 방법 박종우 작가는 오지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곳에 사는 부족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챙겨 가라고 조언한다. 가령 부족의 축제 날짜를 알고 가면, 운 좋게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지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같은 잡지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올리며,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도 있으니 참고할 것. www.flicker.com
(왼쪽) 일 년 중 2/3의 시간을 오지에서 보내는 박종우 작가. 한국에 잠시 머물 때는 사진 전시회를 열고, 책을 내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왼쪽)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빙하호.
(오른쪽) 티베트 창탕 고원의 즈라브예차카 염호에서 소금을 채취 중인 부족들.
새벽녘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걸린 붉은 양떼구름, 인생살이에서 불가피하게 얻게 된 생채기는 모두 잊으라는 듯 무시무시하게 불어치던 몬순 계절의 비바람, 대자연의 숭고함을 보고 난 후, 그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졌다. ‘자연’은 선인의 가르침 백 마디만큼이나 그의 인생길에 큰 지침이 돼주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으로서, 아등바등 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처음에는 만년설을 머리에 인 7천미터 높이의 거대한 설산이 뿜어내는 압도적이고 위풍당당한 모습에 매료돼 시작한 오지 여행. 그런데 박종우 작가가 그 길에서 발견한 것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연은 자신의 뒤에 꼭꼭 숨겨두었던 그곳의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이름도 낯선 히말라야의 여러 부족.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지켜오던 오래된 삶의 풍경이 조금씩 뒤바뀌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히말라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마치 산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길이 뚫리고 전기가 연결됐죠. 일단 길이 뚫리면 바깥세상의 문물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이죠.” 어느 순간 가 보니 텔레비전이 떡 하니 놓여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고, 부족들의 복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카메라는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른쪽) 중국과 티베트 사이에 자리 잡은 캄 지역 어느 사원, 한 승려의 뒷모습에서 엄숙함이 느껴진다.
1 북인도 라훌의 수도 키롱을 출발해 마날리로 가는 버스에 탄 사람들.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망울에 순수함이 묻어난다.
2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빙하호에 피어난 야생화.
3 불경이 적힌 기도 깃발을 살펴보는 한 승려의 모습.
4 차카롱 마을에서 생산된 소금을 실은 캐러밴이 차마고도를 따라 산을 오르고 있 다.
5 카슈미르 인더스 계곡의 드록파족은 꽃을 좋아해서 항상 머리에 야생화를 꽂고 살아간다.
6 네팔 테라이 지역에서 시속 16킬로미터로 움직이는 꼬마 기차를 탄 승객이 인도로 향하고 있다.
1995년, 그때부터 박종우 작가는 한 손에는 사진용 카메라를, 또 다른 손에는 방송용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사진과 동시에 영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SBS 다큐 스페셜 <티벳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 <동방대협곡>,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사향지로> 등 일련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이다. 사실 박종우 작가처럼 히말라야의 남과 북 모두를 섭렵한 이는 드물다. 히말라야 산맥이 갈라놓은 남과 북은 단순히 지리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문화가 싹트는 기준점이다. 이것이 박종우 작가로 하여금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을 그곳에 오롯이 공들이게 한 이유다. 인도양에서 만들어진 몬순 구름조차 자연의 장벽인 히말라야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산에 막힌 구름이 많은 비를 뿌리는 네팔, 부탄 같은 남쪽 지역에서는 농사가 가능한 반면, 북쪽의 티베트 고원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가 형성된다.“비록 구름은 산을 넘어 북쪽으로 가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험난한 계곡의 가느다란 길을 통해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삶을 나눠왔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수확물을 나누기 위해 교역로들이 생겨났고, 그 길에서 사람들은 차와 소금뿐만 아니라 종교와 풍습까지도 교환했습니다. 히말라야는 만년설의 집이자 잉태의 집이며 소통의 길입니다.”
박종우 작가는 오지로 떠나기 전, 그곳에 감춰진 부족에 대한 낱낱의 정보들을 입수하느라 늘 바쁘다. 그네들의 풍습, 습성, 문화를 상세히 알고가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얻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에스키모인이 귀한 손님이 왔다고 3개월 동안 땅에서 묵힌 해마 고기를 입 안에 넣어줘서, 또 어느 날은 족장이 50도가 넘는 고량주를 권하는 터에 곤욕을 치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박종우 작가는 히말라야를 섭렵한 후 네팔, 티베트, 아프리카, 남미의 오지를 찾아 계속 여행을 하고 있다. 해발고도 몇 천 미터가 넘는 오지에서 두통, 오한을 동반한 고산병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또 오지로 향한다. 거기, 지친 영혼을 다독여주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박종우 작가가 말하는 오지 여행 준비하는 방법 박종우 작가는 오지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곳에 사는 부족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챙겨 가라고 조언한다. 가령 부족의 축제 날짜를 알고 가면, 운 좋게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지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같은 잡지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올리며,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도 있으니 참고할 것. www.flick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