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지은 개인 주택 ‘카사 델 레고레타’. 그의 건축에서 여백은 빛이 들어올 자리이다. ⓒ이한구
“건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품위를 가지며 동시에 아름답게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삶의 가치에 근거를 두어 디자인해야 한다. 건축을 영원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는 바로 빛과 그림자, 질감과 색깔, 물과 벽, 바닥과 천장 같은 것이다.”_ 리카르도 레고레타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그는 지금 제주도 중문관광단지 옆에 ‘카사 델 아구아 Casa del Agua’란 이름의 세컨드 하우스(호텔・ 레지던스・문화 공간을 갖춘 리조트)를 짓고 있다. 2010년 5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곳은 일본에 지은 개인 주택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다. 공공성을 지닌 건축물로는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아시아에 짓는 첫 번째 건축물이다. 어쩌면 노장의 건축가가 아시아에 짓는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건축가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또한 다분히 멕시코적인 정서가 제주도 풍경 속에 어떻게 녹아들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멕시코 건축의 역사와 더불어 성장했다. 멕시코에 국제주의 양식이 유입되면서 건축의 패러다임이 바뀌던 1930년대에 태어나, 멕시코 곳곳을 여행하며 멕시코 전통 건축과 식민 통치 시절의 건축물을 보고 자랐으며, 멕시코 근대 건축의 아버지 호세 비야그란 가르시아 Jose Villagran Garcia의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시작했다. 또한 그의 스승이었던 멕시코 현대 건축의 아버지 루이스 바라간 Louis Barragan은 전통 건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장본인이었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지금 멕시코에서 아들 빅토르와 함께 ‘레고레타+레고레타’라는 이름의 건축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 건축에서부터 근현대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접해본 아버지 레고레타는 결국 멕시코 전통 건축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두꺼운 흙벽으로 지은 멕시코의 토속적인 건축이 경량화된 철골과 유리로 지은 첨단 건축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그다. 무엇보다도 환경 친화적인 면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멕시코에서는 기후적 요인으로 인해 실내외를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공간적 장치가 필수인데, 그는 테라스를 들이는 것 외에도 분절된 벽체를 여러 겹으로 세우는 방식을 시도해 바람이 드나드는 길과 그늘을 만들었다.
(위) 아버지 리카르도 레고레타와 아들 빅토르 레고레타는 ‘레고레타+레고레타’라는 이름의 건축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Taller Graciela Iturbide
1, 2, 3, 4 일본의 한 해변가에 지은 개인 주택으로 레고레타가 처음으로 아시아에 지은 주거공간이다. 그의 건축에서는 항상 물, 빛, 색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주인공이다. 사무실이건 주택이건 학교건 물에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부터 건축 설계를 시작한다. ⓒ이한구
그가 사용하는 강렬한 색상은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반사하기 위함이며 내부 공간에 사용한 색상은 공간의 특징을 설명해주는 일종의 기호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이러한 방식으로 멕시코의 지역색을 꾸준히 작품 속에 반영하면서도 이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화했다. 그래서 세계 건축계에서는 그를 ‘보편성을 가진 동시에 지역성을 가진, 현대 건축계에서 보기 드문 건축가’라고 평한다. 지금은 아들 레고레타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아들을 통해 젊은 건축가들과 소통하며 멕시코의 전통 건축을 보편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전통 건축에도 색채가 많이 사용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안타깝게도 현대에 지은 건축물들은 색감을 많이 배제하고 있다. 여기 제주도에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미가 느껴지게 밝고 즐거운 공간을 짓고 있다.”_ 빅토르 레고레타
파란 바다 위에 그린 그림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빛, 색, 물이다.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 화려한 색채를 조화롭게 사용하고, 수영장이건 분수대건 호수이건 바다이건 높은 기온과 건조한 기후 속에 좀 더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줄 물이란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가 지은 건축물의 상당수는 바닷가에 위치한다. 눈부신 해변의 풍경과 파란 바다는 레고레타 건축의 강렬함을 포용하는 가장 이상적인 조화이다.
5 2003년 스페인 빌바오에 지은 셰라톤 아반도이바라 호텔 Sheraton Abandoibarra Hotel. ⓒJosé Latova
6 2002년 하와이에 지은 개인 주택 코나 하우스 Kona House의 수영장. ⓒLourdes Legorreta
레고레타의 건축은 감성적이다. 시적이고 회화적이다. 그에게 땅(사이트)은 캔버스이다. 땅 위에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바탕에 자연의 색을 칠한다. 그리고 선 안쪽에는 프리다 칼로 Frida Kahlo의 원색적인 회화에서처럼 노랑, 파랑, 보라, 분홍 등의 색을 입힌다. 캔버스 안의 평면이 벽이 되고 바닥이 되고 천장이 되면 공간이 완성된다. 그가 색을 사용하는 데에는 규칙이 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로비나 홀처럼 연속적이고 넓은 공간에는 노란색을 사용한다. 빛을 차단하고 규모가 한정된 공간이나 한쪽 부분만 개방된 공간에는 분홍색을 사용한다. 수영장처럼 물과 연관이 있는 공간이나 호수,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곳에는 파란색이나 보라색을 사용한다. 그의 건축에서 종종 보게 되는 붉은빛이 감도는 색은 바로 멕시코의 흙색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을 마주하면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원색적인 동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시절로 돌아가 레고레타가 연출해놓은 다양한 색감의 비일상적인 공간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색이 살아 있는 건축을 하게 된 데에는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멕시코 구석구석을 여행했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 스페인 식민 통치 시절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은 건물을 보았고 농장을 보았고 식민 정권의 상징인 위엄 있는 건축물도 보았다. 그는 ‘건축이 무엇인지는 대학에서 배웠지만, 색채나 건축의 비례와 같은 것은 여행을 하며 멕시코의 도시나 시골 마을에서 배웠다’고 했다.
멕시코 푸에블라 Puebla에 있는 라 푸리피카도라 부티크 호텔 La Purificadora Boutique Hotel. 19세기에
지은 수질 정화 공장을 2007년 레노베이션했다. ⓒUndine Prohl cortesia de La Purificadora hotel en Puebla
1991년 멕시코 칸쿤에 세운 웨스틴 레지나 칸쿤 호텔 Westin Regina Cancun Hotel. 그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만들어준 프로젝트이다. ⓒLourdes Legorreta
여백에 물을 들여 지은 집 그의 건축은 여백의 건축이다. 그 여백은 자연을 위해 마련한 빈 터다. 태양과 물이 만들어내는 자연 효과를 담기 위해 마련한 여백. 빛의 음영 대비, 물의 반사와 투영으로 그 여백에는 시시각각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공간에 청량감을 불어넣는다. 제주도에 짓고 있는 카사 델 아구아도 그 좋은 예이다. 카사 델 아구아의 핵심은 물이다. ‘물의 집’을 주제로 바닷가의 경사진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층을 내고 평평한 부분에 레지던스를 배치했다. 이는 사이트 가장 위쪽의 호텔로 연결된다. 그 사이에는 수영장과 분수대 등을 배치해 항상 물과 함께할 수 있게 했다. 물은 카사 델 아구아 전체를 감싸 안으며 그의 조각품 같은 건축물에서는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빛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제주도 카사 델 아구아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한국을 찾았다. 방한을 기념해 제주도에서는 그의 건축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서로 주목받고 싶어 안달하며 자연을 등한시하는 요즘 건축계의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삶이 녹아든 건축’이 진정한 건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카사 델 아구아를 시작할 때 그는 ‘오름의 곡선, 땅과 바다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지형을 지닌’ 제주도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이런 아름다운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 많지 않음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제주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모델하우스이기도 한 이곳은 건축, 미술, 음악이 어우러진 문화 공간으로서의 리조트 청사진을 보여준다. ⓒ박우진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설계를 시작할 때 오직 환경(자연)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생각한다고 한다. 스스로를 뽐내려 한다거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설계는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을 생각하다 보면 다른 건축물과의 경쟁도 무의미하다. 그래서일까,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축’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현대 건축가들이 시도하는 기술적이고 차가운 건축과는 분명 다른 그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으며 즐거움, 평화로움을 만끽하도록 여유를 심어주는 건축, 그것이 리카르도 레고레타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만들어준 것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라틴의 전통문화에 담긴 지역성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흰 회벽의 단순한 기하 형태에 화려한 색채가 만들어내는 빛을 통해 신비한 공간 분위기를 창조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빛은 ‘색의 흔적’으로써의 빛이 된다. (중략) 그는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 색을 사용했으며 그 색은 우리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경험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_ 김주연 홍익대학교 교수의 글‘빛이 빚는 공간시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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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카사 델 아구아는 갤러리(모델하우스)만 완성된 상태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이 궁금한 사람들은 사전 예약을 한 후 방문하면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건축, 미술, 음악이 적절히 어우러진 공간, 후에 완성될 호텔과 레지던스를 포함한 리조트 전체가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어우러져 하나의 문화 공간처럼 느껴지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5월 28일부터 7월 28일까지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1층에서 흰색을 통해 한국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문의 02-557-9799, 064-739-0012, www.casadelagu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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