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눈망울을 기억한다면
다니엘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아이다. 눈망울 때문이다. 두 눈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앓은 선천성 뇌수종과 합병증 때문이다. <행복>의 오랜 독자라면 다니엘의 눈이 쉽게 건조해져 늘 눈물이 맺힌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사진가 준초이(당시 최명준이라는 본명으로 소개되었다) 씨가 촬영한 <행복> 2004년 6월호의 ‘사람들이 아름답다’라는 시리즈를 통해 이 아이의 아름다운 모습이 세상에 알려졌으니까.당시 일곱 살이던 꼬마 다니엘은 열두 살 소년 다니엘로 자랐다. 일곱 살이 되도록 기어 다니지도 못하고 온몸으로 뱅글뱅글 굴러다니던 아이가 이제 걷는다(원래 의학적으로는 걸을 수 없는 병이라고 한다). 말도 할 줄 모르던 아이가 이제 노래도 부른다. 미음을 겨우 삼키던 아이가 이제 숟가락 쥐고 밥에 김치를 얹어 먹는다. 덕분에 지난 5년간, 다니엘이 살고 있는 가브리엘의 집에서는 경사가 많았다. “아이가 태어나 8개월 만에 걷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절로 박수를 칩니다. 다니엘이 여덟 살이 되어 처음 걸었을 때 저는 울었습니다. 기쁨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다니엘의 엄마이자 다니엘처럼 모든 병약한 어린 아이들의 엄마인 가브리엘의 집 김정희 원장. 다니엘을 안고 봄이 무르익은 농장에서 으아리 꽃을 바라봤다. 꽃말은 ‘마음이 아름답다’. 호기심 많은 다니엘, 보들보들한 꽃잎을 뺨에 대었다. 5년 전 그때처럼.
모두가 함께 보살피는 등불
예수님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여인의 헌금이 가장 크다. 궁핍한 가운데 자기의 전부를 바쳤기 때문이다.” 묘하게 부처님도 같은 설법을 하셨다. 모든 백성이 석가에게 공양하던날,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은 온종일 구걸한 돈으로 기름 한 푼어치를 사서 등불을 올렸다. 시간이 갈수록 차츰 등불이 하나둘 꺼져갔으나 난타의 초라한 등불만 더욱 밝게 빛났다. 부처님은 “가난한 여인이 간절한 정성으로 켠 불이니 누구도 끌 수 없다”고 하셨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하고 나약한 등불 같은 아이 다니엘. 일면식도 없는 이 아이가 다만 그대로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복> 독자들은 정성껏 후원금을 보탰다. “지방에서 횟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맛있는 김치를 담가 보내주셨고, 미국에 사는 익명의 독자는 5년 전부터 매월 4백 달러씩 후원금을 보내주세요. 프로 골퍼 최경주 선수의 부인도 한국에 잠시 왔다가 <행복>을 보시고 후원금을 전해주러 이곳에 방문하셨고요.” 십시일반의 도움으로 몰라보게 자란 다니엘. 2004년 6월호에 실렸던 옛 사진을 보면 ‘저리 작을 때도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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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새순을 내린다
다니엘에게는 동생이 둘 있다. 여섯 살 진명이와 유나(유나는 예전에 촬영을 함께 한 친구 고은이처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를 무척 예뻐한다. 동생들에게는 먹던 것, 가지고 놀던 것 모두 양보한다. 진명이를 부를 때는 ‘아들~ 우리 아들~’이라 한다. 개구쟁이 진명이가 밥도 안 먹고 놀고 있으면 다니엘이 밥그릇 들고 쫓아다니며 떠먹인다. 우리가 모르는 새,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새순을 내리고 있었다.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여느 형제들처럼 서로 시샘하거나, 엄마의 손길이 치우치는 대상을 질투하지도 않는다. 김정희 원장이 일부러 새로 들어온 아이만 품에 안고 예뻐한 적이 있단다. “심통 부릴 법도 한데, 이 아이들은 ‘질투’라는 개념을 몰라요. 오히려 제게 이러더군요. 엄마, 얘는 늦게 왔으니까 더 많이 안아줘야 해.” 그래서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김정희 원장의 가슴이 넓어진다. 이 아이들이 자유로울 때, 제 맘껏 피어날 때 그는 제일 행복하단다. 혼자서 밥 한 술 못 뜨는 장애아 30명의 엄마로 평생 살기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어려운 일일 텐데도. “아유, 저희도 그냥, 가족이에요. 자기 얼굴만 한 가위를 들고 형제 머리카락을 죄다 쑹덩 잘라놓은 애, 양치질 안 하겠다고 숨는 애들 얼러가며 살아요. 사소한 일에 모두 함께 울고 웃는, 그런 평범한 가족요.”
다니엘, 너를 만난 지 5년이 되었구나.
그 후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기준이 눈에서 가슴으로 옮겨왔다는 고백을, 네게 들려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삶을 향한 네 애절한 몸짓이 눈으로 보아서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가슴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에서 아름다움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아! 아름다움은 보이기도 하지만 가슴으로도 느껴지는구나.
그 후로 미의 근원은 눈에서 가슴으로 조금씩 옮겨왔다.
그런데 너는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하는구나.
언제인가부터 네가 장차 목사님이 되겠다는 말을 했다고
네 엄마, 김정희 원장님을 통해 들었다.
나는 사실 네가 생사를 넘나드는 대수술을 몇 번이나 받는 걸 보고 ‘이게 과연 하늘의 뜻인가’ 하며 원망도 했다.
그런데 목사님이 되겠다는 네 한마디로 그 의문의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고난이 위대한 목사님이
되기 위한 길인 듯싶다.
목사님!
큰 목사님!
꼭 되어라!
그때가 되면 네가 겪어온 아픔에서
분명 무언가 피어 있을 게다.
이 노인 사진가는 ‘다니엘 목사님’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게다.
카메라 뒤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이다.
- 준초이 아저씨 씀
애기 목사님의 기도
다니엘은 소녀 가수 그룹 카라와 원더걸스의 팬이고, 운동을 좋아한다.
관심사는 여느 소년과 다를 바 없지만, 몸이 성치 않으니 자기만의 놀이법이 있다. 노래할 때는 한 손으로 목에 꽂은 호스를 막고(그래야 목소리가 나온다) 한 손으로 마이크를 쥔 채 온몸을 흔들며 춤춘다. 한쪽 귀는 아예 안 들리고, 다른 쪽 귀는 바늘구멍만 하게 열려 있는데도 음감과 리듬감이 기가 막히게 좋다. 수술 후 눈 주위와 뒷머리에 쇠침이 박혀 있어서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방에 웅크려 있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보조 바퀴 달린 두발자전거와 씽씽이에 조심스럽게 오르더니, 혼자 연습해 능숙하게 타고 다닌다. 대신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킨다. 진명이가 “다니 형!” 부르며 뛰어와 와락 안기면 씩 웃으면서도 몸을 살짝 움츠린다. 다니엘은 목사님이 꿈이다. 혼자 놀 때는 목사님 흉내를 내서, 이곳 선생님들은 다니엘을 ‘애기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애기 목사님이 한 손으로 목에 있는 호스를 막고 나직이 기도해준다. “우리 루빈이 누나가 빨리 낫게 하옵시고, 내일은 건강하게 해주세요.” 다니엘의 기도는 김 원장의 둘째 딸이자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이곳에서 특수 교사로 일하는 김루빈 씨가 맛본 가장 달콤한 감기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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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몸짓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니엘은 은행에서 손님의 순번을 알리는 ‘딩-동-’ 하는 벨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은행 가는 김정희 원장과 항상 동행한다.다니엘이 입원한 날, 혼자 은행에 간 김 원장에게 여직원이 하얗게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사회성을 키우려고 다니엘을 데리고 가는 시장에서도 아이가 보이지 않으면 상인들이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그 때문에 김 원장은 먼저 아이의 안부를 알려주어야 한다. 왜 모든 사람들은 다니엘을 특별하게 생각할까? 이 아이를 통해 문득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제 생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몸짓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탐심을 부리지 않고 자기보다 더 약한 존재에게 양보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지. 유리처럼 깨질 듯한 이 아이를 통해 깨닫는다. 다니엘은 거울이다.
우리의 얼굴이 아닌 마음을 비춘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의 비밀은 ‘연민의 마음’임을 알려준다. 모든 여리고, 바스라질 듯 위태롭고, 아파하는 존재를 지나치지 못하는 연민이 세상을 살찌운다. 오종종하게 모여 앉은 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찌운다. 언젠가 다니엘은 청년이 될 것이다. 목사님이 되는 날, 혹은 장가가는 날,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다니엘, 열두 살의 봄날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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