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씩씩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30분 동안 쉬지 않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남편 복 없는 여자가 자식 복이 웬 말이냐.’ 딴은 복장 터질 만도 하겠더군요. 뭐 이럴 때는 입 꼭 다물고 들어주는 게 상책입니다.
눈물 바람 콧물 범벅, 휴지깨나 축낸 끝에 겨우 진정을 되찾은 그녀, 아들 둘과 남편에 시부모까지 부양하는 고달픈 워킹맘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찌감치 은퇴(?)한 남편은 호랑이 어금니 같은 적금을 하나 둘씩 깨서 남 좋은 일만 하더니 몇 년 전부터 평생 백수로 차분하게 둥지를 틀었다고 합니다. 성격이 괄괄한 그녀는 얌전하게 대형 사고 치는 남편을 수도 없이 잡도리했지만 결국 자기 속만 뒤집어질 뿐이었습니다. “강한 것은 절대로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따악 맞더라구요.”
요즘 그녀를 펄쩍 뛰게 만드는 자는 제 애비를 쏙 빼닮은 큰아들입니다. 머리 좋고 착실했던 천사표 아들은 한때 그녀의 희망이었지요.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녀석은 머리에 뿔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1등 아니면 2등이었던 성적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학원에서 ‘그만 보내시라’는 전화를 받는 일이 다반사요, 온갖 게임의 대마왕으로 등극했던 것입니다. 중3인 지금은 ‘게임 그만 하고 공부하라’는 엄마 말에 ‘잔소리 집어치우라’며 눈을 부라리더니 급기야 방문까지 걸어 잠그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도 그녀는 학원 앞 PC방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아들을 끌어내 대판 드잡이를 한 뒤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두들겨 패기도 하고, 좋은 말로 달래도 보고, 두어 달 무관심한 척도 해보았지만 그때만 반짝할 뿐.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죠?” 그녀는 또 옷소매로 눈물을 찍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정신과 의사에게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의 고민은 섬뜩했습니다. “밤마다 침대 밑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침대 밑을 들여다보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밤새 엎치락뒤치락 잠 못 잔 지가 달포쯤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의사는 예전에도 불면증이 있었는지, 요즘 어떤 걱정거리가 있는지 한참 물어보았습니다. “한 1년 꾸준히 상담을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죄송합니다만, 치료비는 얼마나…?” “한 번 오실 때마다 5만 원입니다.” 남자는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습니다.
몇 주 후 동네 헬스클럽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의사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요즘은 어떠세요? 잠은 잘 주무시나요?” “예. 그 뒤로 싹 나았습니다.” “오호, 잘됐군요. 그런데 어떻게…?”
“친구한테 제 증상을 얘기했더니 이렇게 묻더군요. ‘네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뭐니?’ 그때 퍼뜩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서 침대 다리를 아예 없애버렸지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는지…. 껄껄껄.”
이 이야기를 듣더니 그녀도 깔깔 웃더군요. 울근불근해도 성격은 좋은 여성입니다. “제가 이제 무슨 질문을 할 것 같습니까?”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문제의 뿌리를 걷어내는 근본 대책이 뭐냐? 그리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그녀는 그동안 남의 말만 듣고 이 병원, 저 약국 찔끔거리며 대증요법만 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성이 생겨 골병이 들었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생각해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그녀에게 당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다시는 아이와 싸우지 마세요. 아이는 앞으로 강적과 싸워야 합니다. 엄마도 함께 싸워주셔야죠. 같은 편끼리 싸우면 무조건 집니다.” 
*명함에 ‘코치’라고 찍어 가지고 다닌 지 5년째. 글을 쓴 이규창 씨는 수많은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지혜를 얻고 용기를 회복했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한 일은 별로 없다지요. 그저 눈 맞추며 열심히 듣고, 질문 몇 가지 했을 뿐이랍니다. 재주가 무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랍니다. 지금도 기업인, 학부모, 학생들에게 강의・코칭합니다. 서울대 영문학과에서 배우고 <조선일보> IT 기자로 일했습니다. 블로그(blog.naver.com/jace1123)를 운영하며 책 <신나는 아빠 신나는 편지>를 냈습니다.
눈물 바람 콧물 범벅, 휴지깨나 축낸 끝에 겨우 진정을 되찾은 그녀, 아들 둘과 남편에 시부모까지 부양하는 고달픈 워킹맘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찌감치 은퇴(?)한 남편은 호랑이 어금니 같은 적금을 하나 둘씩 깨서 남 좋은 일만 하더니 몇 년 전부터 평생 백수로 차분하게 둥지를 틀었다고 합니다. 성격이 괄괄한 그녀는 얌전하게 대형 사고 치는 남편을 수도 없이 잡도리했지만 결국 자기 속만 뒤집어질 뿐이었습니다. “강한 것은 절대로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따악 맞더라구요.”
요즘 그녀를 펄쩍 뛰게 만드는 자는 제 애비를 쏙 빼닮은 큰아들입니다. 머리 좋고 착실했던 천사표 아들은 한때 그녀의 희망이었지요.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녀석은 머리에 뿔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1등 아니면 2등이었던 성적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학원에서 ‘그만 보내시라’는 전화를 받는 일이 다반사요, 온갖 게임의 대마왕으로 등극했던 것입니다. 중3인 지금은 ‘게임 그만 하고 공부하라’는 엄마 말에 ‘잔소리 집어치우라’며 눈을 부라리더니 급기야 방문까지 걸어 잠그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도 그녀는 학원 앞 PC방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아들을 끌어내 대판 드잡이를 한 뒤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두들겨 패기도 하고, 좋은 말로 달래도 보고, 두어 달 무관심한 척도 해보았지만 그때만 반짝할 뿐.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죠?” 그녀는 또 옷소매로 눈물을 찍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정신과 의사에게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의 고민은 섬뜩했습니다. “밤마다 침대 밑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침대 밑을 들여다보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밤새 엎치락뒤치락 잠 못 잔 지가 달포쯤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의사는 예전에도 불면증이 있었는지, 요즘 어떤 걱정거리가 있는지 한참 물어보았습니다. “한 1년 꾸준히 상담을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죄송합니다만, 치료비는 얼마나…?” “한 번 오실 때마다 5만 원입니다.” 남자는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습니다.
몇 주 후 동네 헬스클럽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의사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요즘은 어떠세요? 잠은 잘 주무시나요?” “예. 그 뒤로 싹 나았습니다.” “오호, 잘됐군요. 그런데 어떻게…?”
“친구한테 제 증상을 얘기했더니 이렇게 묻더군요. ‘네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뭐니?’ 그때 퍼뜩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서 침대 다리를 아예 없애버렸지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는지…. 껄껄껄.”
이 이야기를 듣더니 그녀도 깔깔 웃더군요. 울근불근해도 성격은 좋은 여성입니다. “제가 이제 무슨 질문을 할 것 같습니까?”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문제의 뿌리를 걷어내는 근본 대책이 뭐냐? 그리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그녀는 그동안 남의 말만 듣고 이 병원, 저 약국 찔끔거리며 대증요법만 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성이 생겨 골병이 들었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생각해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그녀에게 당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다시는 아이와 싸우지 마세요. 아이는 앞으로 강적과 싸워야 합니다. 엄마도 함께 싸워주셔야죠. 같은 편끼리 싸우면 무조건 집니다.” 
*명함에 ‘코치’라고 찍어 가지고 다닌 지 5년째. 글을 쓴 이규창 씨는 수많은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지혜를 얻고 용기를 회복했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한 일은 별로 없다지요. 그저 눈 맞추며 열심히 듣고, 질문 몇 가지 했을 뿐이랍니다. 재주가 무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랍니다. 지금도 기업인, 학부모, 학생들에게 강의・코칭합니다. 서울대 영문학과에서 배우고 <조선일보> IT 기자로 일했습니다. 블로그(blog.naver.com/jace1123)를 운영하며 책 <신나는 아빠 신나는 편지>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