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모든 것이 연초록 빛깔로 다시 태어나는 계절이다. 여자들도 마르크 샤갈의 그림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여자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싶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날아오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잠자리 날개 닮은 옷이라도 한 벌 장만하자! 그것이 바로 4월의 시작이다. 옷은 여자에게 영원한 유혹의 느낌표! 겨우내 여자들은 항아리 속의 묵은지처럼 살아왔다. 이제 4월을 맞아 사각사각한 샐러드처럼 싱싱한 에너지로 풀가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상에서 70m쯤 붕~ 하늘로 치솟아 올라 나풀나풀 나비가 되어 살아보겠다는 희망 사항은 아름다운 ‘행복추구권’이다. 시인 이상도 ‘날자 날자 날자꾸나…’ 유혹의 멘트를 날린 바 있다. 그렇다. 4월은 여자들 몸속에 연초록 물감을 마구마구 뿌려준다. 살랑살랑 봄바람도 여자들 몸속으로 0.1톤쯤 휘감기듯 파고 들어온다. 그러니 세포가 어찌 부풀지 않으랴. 어딘가 떠나고 싶고, 누군가 만나고 싶고, 싶고, 싶고! 날개옷을 만들어 입고 지구 끝까지, 아니 가능하다면 지구 밖으로까지 날아가고 싶다. 훨훨~.
(왼쪽) 김혜연, ‘유리 구두-기다림’, 2008
그래서일까, 남편의 목소리가 하이 톤으로 높아지는 집이 늘어난다. “이것 봐, 당신 제정신이야? 그걸 옷이라고 걸쳤어? 가슴은 다 나오고 허벅지는 또 그게 뭐야? 당신은 아줌마지 슈퍼모델이 아니라구!” “하이고, 말 한번 잘하시네! 당신은 요즘 패숑도 모르냐? 이 정도는 눈에도 안 띄어. 당신은 당신 마누라가 꼬질꼬질하고 초라해 보이면 좋겠어?” ‘당신은 이미 비매품이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편은 꿀꺽 삼킨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을 판매대에 올려놓고 ‘디스플레이’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전적으로 남편의 오해다. 여자들의 옷에 대한 욕구는 원초적 본능이다. 나는 20~30대 전업주부로 살 때 일본에서 지진만 나도 “옷 사러 가자~”, 유명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만 보고도 “옷 사러 가자~” 했다. 지지리 가난했지만 옷은 유일한 현실 탈출구였다. 그러나 옷을 사도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103호 살던 나는 507호 집으로 새로 산 옷을 입고 놀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별 다섯 개짜리 희열을 느꼈다. 그만큼 나에게 옷은 최고의 기쁨이었다.
여자들이 옷을 사는 이유를 구태여 따져본다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여자로서의 매력이 아직도 유효한지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다. ‘매력 배터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2 항상 무덤덤한 남편의 질투를 유발시켜 새로운 사랑을 복원하고 싶다. 사랑의 단청 작업 개시?
3 자기 만족, 해방감 만끽.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세상 여자들의 90% 정도는 옷장을 열면서 똑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 뭘 입지?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남편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다. “내가 보기엔 옷투성인데 뭘.” “이게 뭐가 옷이야? 전부 갑옷이지! 내가 사극 찍을 일 있어?”
그렇다. 형식은 내용을 압도한다. 옷이 무거우면 생각도 무거워진다. 가뿐 사뿐 날개옷은 자유, 해방감을 준다. 동화 <나무꾼과 선녀>에서처럼 날개옷을 감추면 오히려 여자들은 도망가 버릴 확률이 높다.
남편이 스스로 날개옷을 사줘 ‘뻐’려라. 남편과 아내가 함께 쇼핑을 와서 아내 옷을 골라주는 남편을 간혹 보는데 참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렇게 자신 있는 남편이라면 아내가 가슴이 파인 옷을 입든 허벅지가 보이는 옷을 입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법이다. ‘이 세상 어떤 남자를 만나도 나처럼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겠어? 당신에겐 오직 나뿐이야’라는 자신감으로 4월엔 아내를 마음껏 해방시켜주자.
아내가 행복하다면 그 보너스가 누구에게 돌아오겠는가. 아내의 ‘행복 마일리지’는 결국 가족들에게 다양한 아이템으로 보상되어 돌아온다. 아이들에게도 더 방긋방긋~ 남편한테도 더 사근사근~ 시댁 어른들한테도 더 야들야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했다. 요즘 땅값이 얼마나 비싼지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제 아내에게도 마음껏 옷 입을 자유를 주자. 자기 몸에 걸칠 옷을 자기 맘대로 선택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리겠는가.
결혼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전부를 소유한다는 ‘소유권 이전 등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더 존중하고 더 인정해준다는 ‘자기 포기 각서’이기도 하다. 자, 이쯤 되면 현명한 남편들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어쨌든 아내들은 4월이 되면 새가 되고 선녀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한다는 사실~. 그러니 아내가 동화 속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리지 않고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미리미리 봄옷 마련해주는 멋진 남편이 되자. 그게 싫다면 아내 맘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자유만이라도 보장하라!
지상에서 70m쯤 붕~ 하늘로 치솟아 올라 나풀나풀 나비가 되어 살아보겠다는 희망 사항은 아름다운 ‘행복추구권’이다. 시인 이상도 ‘날자 날자 날자꾸나…’ 유혹의 멘트를 날린 바 있다. 그렇다. 4월은 여자들 몸속에 연초록 물감을 마구마구 뿌려준다. 살랑살랑 봄바람도 여자들 몸속으로 0.1톤쯤 휘감기듯 파고 들어온다. 그러니 세포가 어찌 부풀지 않으랴. 어딘가 떠나고 싶고, 누군가 만나고 싶고, 싶고, 싶고! 날개옷을 만들어 입고 지구 끝까지, 아니 가능하다면 지구 밖으로까지 날아가고 싶다. 훨훨~.
(왼쪽) 김혜연, ‘유리 구두-기다림’, 2008
그래서일까, 남편의 목소리가 하이 톤으로 높아지는 집이 늘어난다. “이것 봐, 당신 제정신이야? 그걸 옷이라고 걸쳤어? 가슴은 다 나오고 허벅지는 또 그게 뭐야? 당신은 아줌마지 슈퍼모델이 아니라구!” “하이고, 말 한번 잘하시네! 당신은 요즘 패숑도 모르냐? 이 정도는 눈에도 안 띄어. 당신은 당신 마누라가 꼬질꼬질하고 초라해 보이면 좋겠어?” ‘당신은 이미 비매품이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편은 꿀꺽 삼킨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을 판매대에 올려놓고 ‘디스플레이’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전적으로 남편의 오해다. 여자들의 옷에 대한 욕구는 원초적 본능이다. 나는 20~30대 전업주부로 살 때 일본에서 지진만 나도 “옷 사러 가자~”, 유명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만 보고도 “옷 사러 가자~” 했다. 지지리 가난했지만 옷은 유일한 현실 탈출구였다. 그러나 옷을 사도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103호 살던 나는 507호 집으로 새로 산 옷을 입고 놀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별 다섯 개짜리 희열을 느꼈다. 그만큼 나에게 옷은 최고의 기쁨이었다.
여자들이 옷을 사는 이유를 구태여 따져본다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여자로서의 매력이 아직도 유효한지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다. ‘매력 배터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2 항상 무덤덤한 남편의 질투를 유발시켜 새로운 사랑을 복원하고 싶다. 사랑의 단청 작업 개시?
3 자기 만족, 해방감 만끽.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세상 여자들의 90% 정도는 옷장을 열면서 똑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 뭘 입지?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남편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다. “내가 보기엔 옷투성인데 뭘.” “이게 뭐가 옷이야? 전부 갑옷이지! 내가 사극 찍을 일 있어?”
그렇다. 형식은 내용을 압도한다. 옷이 무거우면 생각도 무거워진다. 가뿐 사뿐 날개옷은 자유, 해방감을 준다. 동화 <나무꾼과 선녀>에서처럼 날개옷을 감추면 오히려 여자들은 도망가 버릴 확률이 높다.
남편이 스스로 날개옷을 사줘 ‘뻐’려라. 남편과 아내가 함께 쇼핑을 와서 아내 옷을 골라주는 남편을 간혹 보는데 참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렇게 자신 있는 남편이라면 아내가 가슴이 파인 옷을 입든 허벅지가 보이는 옷을 입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법이다. ‘이 세상 어떤 남자를 만나도 나처럼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겠어? 당신에겐 오직 나뿐이야’라는 자신감으로 4월엔 아내를 마음껏 해방시켜주자.
아내가 행복하다면 그 보너스가 누구에게 돌아오겠는가. 아내의 ‘행복 마일리지’는 결국 가족들에게 다양한 아이템으로 보상되어 돌아온다. 아이들에게도 더 방긋방긋~ 남편한테도 더 사근사근~ 시댁 어른들한테도 더 야들야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했다. 요즘 땅값이 얼마나 비싼지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제 아내에게도 마음껏 옷 입을 자유를 주자. 자기 몸에 걸칠 옷을 자기 맘대로 선택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리겠는가.
결혼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전부를 소유한다는 ‘소유권 이전 등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더 존중하고 더 인정해준다는 ‘자기 포기 각서’이기도 하다. 자, 이쯤 되면 현명한 남편들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어쨌든 아내들은 4월이 되면 새가 되고 선녀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한다는 사실~. 그러니 아내가 동화 속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리지 않고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미리미리 봄옷 마련해주는 멋진 남편이 되자. 그게 싫다면 아내 맘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자유만이라도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