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흥 아틀리에로 출근해 매일 낮부터 동트기 직전인 새벽 4~5시까지 커다란 캔버스에 가시를 심고 꽃을 피워내는 정지현 씨. 그의 붓 터치는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사물의 표면을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는 듯 섬세하다. 따끔따끔, 폭신폭신, 오돌토돌할 것 같은 그림. 피부에 닿을 듯 생생해서 어떤 관람객은 ‘불쾌하다’는 반응도 보였다는 그림. “어떤 사물에 대한 ‘이끌림’이 제 영감의 발단입니다. 길을 가다가 선인장을 봤을 때도 이끌렸지요. 대개 그림 그리는 사람은 형태를 보고 시각적으로 끌리곤 하는데, 저는 공감각적으로 매료되는 것 같아요. 시각뿐 아니라 촉각적으로, 때론 후각적으로 반응해요.” 촉각은 뭔가를 더듬는 감각이기에 자극을 받아들이고 환경에 반응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는 세계와 자신의 관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촉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단다.
(왼쪽) 화가 정지현 씨 뒤로 보이는 작품 ‘피어나다’(2008)는 지난 <사막 정원> 전시 에 출품한 ‘얼룩지다, 스며들다’ 시리즈 중 하나다.

한데 이 작품은 어느 때, 어느 곳을 묘사한 것일까? 아리송하다. 서랍장은 음영도 없는 흰 공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상하좌우가 사라져버리고 시간의 흐름도 끊긴 진공 상태 같다. 이때 선인장은 붉은 가시를 뻗으며 이 정적을 깨고 나온다. “사물이 영원히 쉬고 있는, 마치 노스탤지어 같은 진공 상태를 그렸어요. 하지만 사실 이런 상태는 세상에 없어요. 그래서 붉은 가시가 돋고 곰팡이가 핀 그림을 등장시켰어요. 멈춘 시간을 깨트려서 영원한 노스텔지어는 허구임을 말하려고요.”
만지면 검붉은 색소가 뚝뚝 묻어날 것 같은 처연한 꽃잎, 손가락을 대면 예리한 가시가 고통도 없이 쑥 들어박힐 것 같은 고운 선인장, 입술 벌린 야생 동물 같은 묘한 변종 꽃…. 정지현 씨의 연작들은 한결같이 세상의 모순을 주제로 삼았다. 이 주제로 한참 고민하다가 문득 자신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없는 변종 식물을 창조하지 않더라도 방에 늘 놓여 있는 친근한 서랍장을 통해 이중성을 묘사했다. “이들은 부드러우나 날카롭고, 편안하지만 불길하고, 아름답지만 불편한 것들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고 싶어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영원성과 유한성 사이의 괴리를 그렸습니다.” 선인장 가시에 손을 대는 그 순간, 우리는 삶의 무상함을 깨닫지 않을까? 작업이 안 풀리면 속이 쓰려서 한동안 딴짓을 해야 한다는 그는 섬뜩한 아름다움을 그리기 위해 고심한다. 아름다움, 바로 세상 모든 인간이 살아내는 ‘삶’을 그리기 위해서. 
* 2월호 ‘표지가 궁금해요’ 칼럼은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02-720-5789)의 협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작년 11월에 정지현 작가의 개인전 <사막 정원>이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