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를 해야 했던 시대에도,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에게 책을 읽혀 대학자로 키웠던 시대에도, 그리고 2009년 현재도 교육은 세상 모든 엄마들의 화두입니다. 최근에는 성공적인 자녀 교육의 두 가지 모델인 ‘알파맘’과 ‘베타맘’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알파맘은 자녀 교육에 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해 체계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엄마, 베타맘은 자녀에게 자유를 주고 스스로 미래의 자기 인생을 선택하게 하는 엄마입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라 할 학교 선생님이지만 워킹맘으로 사느라 정작 자신의 자녀에 대해서는 ‘학습 매니저’가 되어 일일이 챙기지 못했던 두 어머니 이원홍 씨와 최현숙 씨. 이들은 베타맘의 전형입니다. 이원홍 씨는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금나나 씨를, 최현숙 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손열음 씨를 길러냈습니다. 마음은 느긋한 베타맘이 되고 싶지만 아이가 과연 입시 지옥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타고난 재능의 싹을 시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요? 자녀의 행복을 일순위로 생각했다는 두 베타맘 어머니로부터 어떻게 자녀의 컨설턴트 역할을 했는지 들어봅니다.(왼쪽) 늘씬한 키와 큼직한 눈・코・입은 아버지를 닮고 과감한 성격은 어머니를 닮은 금나나 씨. 그를 더욱 훌쩍 크게 만든 것은 어머니 이원홍 씨의 끊임없는 칭찬이었다.
스승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먼저라고 생각한 이원홍 씨는 심지어 한글도 깨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을 학교에 보냈다.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라는 생각에서다. 첫 받아쓰기 점수가 40점이었던 금나나 씨. 그러나 모르니까 자꾸 질문하고, 그럴수록 일취월장했고, 결국 하버드 입학의 길이 열렸다.
경북대 의대에 입학한 뒤 2002년 미스코리아 진에 입상한 금나나 씨. 의대 출신 첫 미스코리아라는 점도 이슈였지만, 얼마 뒤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엄마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입학보다 졸업이 훨씬 더 어렵다는 하버드 대학교를 성적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 영양학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금나나 씨는 요즘 유행어대로 ‘엄친딸(엄마 친구의 예쁘고 능력 있는 딸)’이다. 어머니 이원홍(경북 봉화군 봉화중학교 가정 과목 교사) 씨는 어떻게 이리도 똑 소리 나는 딸을 길러낸 것일까?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나나한테 뒷바라지를 하나도 못해줬어요. 나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 머리를 삐뚤삐뚤하게 묶고, 옷도 자기가 알아서 입고 다니느라 여름에 겨울 모직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기도 했어요. 일곱 살 때부터 동생에게 밥을 해줬고요.” 이원홍 씨는 결혼한 여성이 직장 생활 하려면 눈치가 보였던 27년 전부터 지금까지 워킹맘으로 사느라, 일찌감치 “너희들 할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한다”라고 못박아두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교직 생활도 계속하면서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자녀들에게 독립심과 자주성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맞벌이 가정과 별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이원홍 씨의 남다른 점은 벅찬 일과 가사를 혼자 끌어안지 않고, 금나나 씨와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하며 공유했다는 점이다. 그는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소탈한 성격이다. 덕분에 금나나 씨는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길 수 있게 됐다.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녀가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자신감이 생겨요. 대개 엄마들은 자녀가 늘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과정을 못 참고 중도에 거들거나 참견하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서툴더라도 스스로 헤쳐가는 동안 커가더군요.”
그렇다고 자녀의 생활에 무관심해도 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학습에 대해서는 딱 세 가지만 체크했어요. 첫째, 글씨 쓰는 법. 그때는 경필대회란 것도 있었잖아요. 네모 칸에 글씨를 또박또박 쓰도록 가르쳤어요. 두 번째, 발표하는 법. 수업 시간에 자꾸 발표를 하다 보면 스스로 준비도 하게 되고 아는 것도 정리하게 되거든요. 세 번째는 글쓰기 연습. 독후감을 써야 할 때 처음에는 제가 옆에서 한 줄씩 일러주고 고쳐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나나가 저의 글쓰기 방식에서 못 벗어나더군요.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어설프더라도 스스로 글을 써서 발표하도록 했어요.”
어린아이가 처음부터 독립성과 자주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되도록 빨리 두 발로 서게 할수록 아이의 자아가 일찌감치 팽창할 수 있다고 이원홍 씨는 믿었다. 단 한 번도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해본 적도 없다. 이원홍 씨가 집에서 학습 진도표를 짜고 있을 때 딸이 슬며시 다가오면 “나나야, 공부 이렇게 하면 되게 재밌데이” 한마디 던지고 말았다. 그러면 꼬맹이 나나는 책을 들고 와서 엄마 옆에 앉았다.
(오른쪽) 사미 브리스 작 ‘앨리스의 새’ 이미지 제공 오페라 갤러리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라 “어느 일본 수상도 자기 아이의 선생님이 오시면 ‘나는 지금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집에 가봐야 합니다’하며 하던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현관문 앞에서 선생님을 맞이했답니다. 자녀는 수상인 자기 아빠가 깍듯하게 모시는 제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따르겠어요.” 스승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먼저라고 생각한 이원홍 씨는 심지어 한글도 깨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을 학교에 보냈다.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라는 생각에서다. 첫 받아쓰기 점수가 40점이었던 금나나 씨. 그러나 모르니까 자꾸 질문하고, 그럴수록 일취월장했고, 결국 하버드 입학의 길이 열렸다. 금나나 씨의 자서전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김영사)를 보면 하버드에 가서도 교수와 조교들이 두 손을 들 때까지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 쟁쟁한 교수들에게 가정교습 받듯 일대일로 배운 셈이다. ‘받아쓰기 40점’도 괜찮다며 스승을 신뢰할 것을 강조했던 어머니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 금나나 씨는 그 덕분에 영어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준에서 시작해 첫 학기 올 A 성적표를 받기에 이르렀다.
꼴찌를 해도 좋지만 중도 포기는 안 된다 이원홍 씨는 딸에게 ‘뭔가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라’고 강조하며 키웠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6학년까지 하던 서예를 그만 하라는 엄마의 말에 금나나 씨는 “아냐, 엄마 지금 천자문을 쓰고 있는데 다 쓸 때까지는 계속할래”라고 했다. 결국 중학교까지 가서 천자문 쓰기를 완성했다. “천재도 좋지만, 어떤 한 가지를 갈고 닦을 줄 아는 끈기가 중요해요.” 이원홍 씨는 금나나 씨가 훗날 아이를 낳으면 천자문 붓글씨를 보여주겠다며 가보로 간직하고 있단다.
금나나 씨는 ‘목표 중독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1백 일 동안 체중 10kg을 뺐던 대단한 다이어트 경험이나 분초를 다투며 공부에 매진하는 ‘하버드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운동을 했다는 철저한 습관처럼 목표를 세우면 무섭게 돌진하는 성격이다. 혹시 지나친 강박증이 아닐까? 금나나 씨가 메디컬 스쿨 26곳에 도전해 실패했을 때 죽을 만큼 몸살을 앓았던 것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강박증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원홍 씨는 그것을 강박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는 크게 숨차고 힘들기 마련이거든요. 부석사 큰 스님도 수양의 어느 단계에서는 온몸에서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는 말씀을 주시더군요. 저는 힘들지만 그 ‘라스트 스퍼트’ 시간을 견디라고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1등 하던 나나가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름방학이 되자 ‘엄마, 도저히 못하겠어. 그만둘래’라고 했을 때 저는 ‘꼴찌를 해도 좋다. 그러나 네가 그 길을 선택했지 않느냐. 1등을 하라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다만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엄마는 용서 못한다’라고 말했어요.나나는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지요.”
무한한 칭찬과 무한한 자유를 준 어머니 세계의 영재들과 겨루고 온 금나나 씨는 ‘그곳에 있으니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평범한 듯 특별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신기했던 것은, 미국에도 한국과 같은 극성 엄마가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특히 제 룸메이트는 엄마, 아빠가 다 하버드 출신이어서 그런지 딸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더라고요. 그 친구가 웬만큼 잘해도 부모님 눈에는 그게 잘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보였대요. 그래서 칭찬과 애정 어린 눈빛에 목말라했어요. 반면 저희 부모님은 조그만 일에도 항상 칭찬을 해주셨어요.” 금나나 씨가 마늘 한 톨을 5분 동안 곱게 다지고 있으면 엄마는 ‘왜 그렇게 느리냐’고 하지 않고 “너는 뭐 하나를 시켜도 정말 꼼꼼하고 세심하게 하는구나”라고 칭찬해주었다. 이 티끌만 한 칭찬이 모여 태산 같은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이뤘다.
또한 금나나 씨는 뒷일과 결과를 책임지기만 하면 무한한 자유를 주었던 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국자 탄다’며 설탕 녹여 먹는 ‘뽑기’를 못 만들게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가능했어요.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실컷 먹은 후 엄마가 오시기 전에 설탕이 눌어붙고 타버린 국자를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아놓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금나나 씨는 자기 방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도 좋아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책상 위치를 바꾸거나 어수선한 모빌을 만들어 붙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어머니 덕분에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단다.
딸 키우는 엄마라면 자신의 소중한 딸이 예쁘게 자라주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원홍 씨는 어릴 때부터 예뻤던 딸이 ‘손 타고 눈 탈까 봐’ 사촌 언니가 입던 옷이나 남동생에게 물려줄 수 있는 바지를 입히고 선머슴처럼 키웠단다. 예쁘게 키우는 대신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성인이 된 금나나 씨는 자기의 매력을 표현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는 여성으로 자라 미스코리아 진에 올랐다. 어머니가 준 끝없는 칭찬과 자유 덕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