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집을 짓는다는 것,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2008 행복 크리에이터 콘테스트 응모자 중 직접 집을 지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 건축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리라.’ 그러나 그는 이따금 지인들의 집이나 카페에 그림을 그려주며 전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였다. 바로 이 사람, 김연미 씨가 2008 베스트 행복 크리에이터로 선정된 것. 웹 투표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였다. 그의 작품인 집에서는 그의 열정에 비례하는 행복의 깊이가 느껴졌다.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지은 집은 수없이 다녀보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직접 지은 집에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주에 있는 김연미 씨와 캐나다 사람인 남편 앤드류 핸더슨 씨 부부의 아기자기한 집으로 향했다. 그 집에는 사진에서 느낀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한 공기가 스며 있었다. 집의 온기에 유달리 추웠던 날씨에 무뎌진 손과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밖에서 뛰노느라 꽁꽁 언 발을 시골 할머니 댁 아랫목 이불 사이로 밀어 넣을 때의 기분처럼.
1 앤디네의 현관.
2 블루와 블루네.
3 거실의 난로와 하네스, 장작으로 장식한 벽이 인상적이다. 마루는 재활용품, 벽은 합판으로 마감했다.
4 대문에 걸린 푯말‘언덕 위 앤디네’. 다정함이 느껴지는 문패다. 왼쪽 2층에서 내려다본 거실. 그 안에 앤디 씨, 김연미 씨와 그를 꼭 닮은 인형이 앉아 있다.
집 지으며 보낸 10개월의 신혼 일기
전주시 금산동 공덕마을, 겨울이라 황량해 보이는 배 밭과 복숭아 밭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 위에 김연미 씨의 집이 보였다. 언덕을 오르자 제일 먼저 ‘블루네’ 앞에 얌전히 앉은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보였다. 커튼에 방충망까지 달린 아기자기한 집에 살고 있는 이 집의 또 다른 식구 ‘블루’였다. 블루네를 지나면 김연미 씨 집의 현관. 그곳에는 그네가 하나 걸려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김연미 씨는 여기에 앉아 손님을 맞이할 것이다. 대문에는 ‘언덕 위 앤디네’(앤디는 남편 앤드류 핸더슨 씨의 애칭)라는 물고기 모양의 푯말이 걸려 있었다.
반듯하고 야무진 첫인상에 일반인이 지은 집 같지 않았다. “자세히 보세요. 벽은 미송 합판으로 마감했고, 바닥도 그렇고, 군데군데 허점이 있어요. 몰딩 처리도 엉성하고 모서리 각이 정확하게 맞지 않은 곳도 있고요.” 부끄러운 듯 웃으며 말하는 김연미 씨의 말 속에는 ‘우리가 직접 다 만들어서 그래요’ 하는 자랑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 집은 그렇게 자랑할 만큼 충분한 애정이 느껴졌다.
2007년 10월에 결혼한 김연미 씨와 앤디 씨. 두 사람은 신혼 생활을 텐트에서 시작했다. 2007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해 이제야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겨울에 공사를 시작한 터라 집의 골격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이들은 장작 때는 난로부터 샀다. 동화 속에서 본 듯한 철제 주물 난로였다. 그리고 엉성하나마 방의 모양새를 갖춘 2층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마당에 텐트를 치고 지냈다. 두 사람이야 신혼 재미, 집 짓는 재미에 힘든 것도 잊었다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은 물론이며 동네 어르신들도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만큼 이웃 간의 훈훈한 정을 받으며 완성한 집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부부가 공덕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들이라고 하니 어르신들에겐 그저 예뻐 보였을 것이다.
1 2층 다락방은 두 사람의 작업실이자 손님방이다. 난로의 열기로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이 공간에서 김연미 씨는 종종 그림을 그린다.
2 직접 방수 공사까지 하며 완성한 욕실.
3 아담한 식탁 위에는 앤디 씨가 손님을 위해 만든 쿠키와 시나몬롤이 놓여 있다. 합판 위에 만든 갤러리 창이 아늑함을 더한다.
다락방, 욕실, 가구까지 모두 다 부부 솜씨
서울에 살던 김연미 씨는 언니가 전주에 살고 있어 종종 전주를 찾았고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남편 앤디 씨는 전북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그렇게 시작한 전주에서의 신혼 생활. 둘이 함께 살 집을 짓자는 데에는 서로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진진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예산이 넉넉했더라면 전주 시내 어딘가에 집을 지었을 거라 한다. 하지만 정해진 예산으로 원하는 집을 지으려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빈 땅에 기초를 닦고 철골 구조를 세우고 지붕을 얹는 작업까지는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내부 구조(방과 2층 다락, 계단 등)를 만들고, 내부 마감을 하고, 문 달고, 욕실 방수 공사부터 가구 제작까지 어지간한 것들은 직접 했다. 집 짓기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던 김연미 씨 부부에게 <건축 설계에서 시공까지>(한국전원문화연구소), <주택 건축, 자재 백과>(주택문화사)는 쉽고 유익한 참고서였다. 이 집에 사용한 자재의 50%는 재활용품이다. 아는 사람이 집을 리모델링하며 멀쩡한 바닥을 뜯어낸다고 하자 그걸 가져와 바닥재로 사용했다. 김연미 씨가 즐겨 타던 패러글라이더는 하네스(앉는 부분)만 잘라내어 거실 천장에 매달아 의자로 재활용했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라는 남편 앤디 씨는 작업방으로 가더니 자신의 블로그(www.eyesage.blogspot.com)에 올려놓은 공사 장면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블로그에는 그가 한국 생활을 하며 발견한 크고 작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진과 에세이로 기록되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신의 한국 생활을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앤디 씨. 그 책의 중요한 내용은 바로 이 집을 지으며 보낸 시간의 기록이라 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 속 신혼부부의 모습은 마치‘공사장 일꾼’ 같았다. 중간 중간 두 사람이 작업 현장에서 장난치며 노는 사진도 있고, 가족과 동네 사람들 모습도 보였다. 알록달록 예쁘고 아기자기한 집에서 두 사람이 방긋 웃는 신혼 사진보다도 몇 배는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사진들이었다.
“집을 짓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으니까 했죠. 알았다면 못했을 거예요. 또다시 지으라고 하면 아마 못할 거예요.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루하루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가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말하는 김연미 씨는 늘 웃는 얼굴에 쾌활한 아내이다. 그는 거실 벽을 파랗게 칠하고 새 두 마리와 새들의 보금자리를 그려 넣어 동화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처음 이 집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 강한 인상을 준 그 벽이다. 두 손 꼭 붙잡고 새 출발하던 날, ‘우리 손으로 우리 집을 만들어보자’던 약속이 이뤄진 그날, 이 집에는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꿈속에서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날아들었다.
4 파란 벽의 거실을 지나 주방에 김연미 씨와 앤디 씨가 있다. 이틀 전 완성한 아일랜드 테이블은 남편의 작품이다.
5 두 사람의 이름을 새긴 우체통이 나무에 매달렸다. 구슬치기 하던 구슬로 나무 를 장식했다.
6 거실에 는 오래된 문짝으로 만든 테이블과 결혼사진이 있다. 그 뒤로 블루의 친구가 마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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