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새 먹을 물을 아껴 나무에 주던 부부는 일하다 그대로 잠든 적도 여러 번이다.
2 풀 한 포기가 뿌리를 내리자 희망은 시작되었다.
3 10년 넘게 인위쩐을 충실하게 도운 늙은 노새. 모래 폭풍에 갇혀 허우적대던 날, 이 노새 꼬리를 잡고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누런 모래언덕만 끝을 가늠할 수 없게 너울너울 펼쳐져 있었다. 모래 알갱이가 땀구멍을 틀어막고 입 안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날 때쯤 신기루인 듯 한 줄기 푸른빛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나무였다.
그리고 숲이었다.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중심 도시 후허하오터에서 기차로 네 시간, 다시 자동차로 일곱 시간을 달려 닿은 마오우쑤 사막. 움직이는 모래언덕, 혹은 황사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신기루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었다. 아니 아름답다기보다 차라리 안쓰럽고 눈물겨운 그 숲은 마치 풍랑 속의 외딴 섬처럼 겹겹의 모래 능선에 포위돼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는 그 숲이 세상 어떤 풍경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웠으며 만리장성보다도 피라미드보다도 위대한 유산처럼 보였다.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잊고 살았던 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그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이라는 생태 공간의 존재 이유를 그 사막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 놀란 것은 사막의 그 장한 나무와 숲이 아니라, 그 나무를 키워내고 숲을 가꾼 것이 국가도 권력도 아닌 한 평범한 농부의 손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의 고사가 떠올랐다. 1천4백만 평이나 되는 사막에 풀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어 푸른 숲으로 만들어낸 사람은 뜻밖에도 나이 마흔 줄의 키가 작달만한 여자였다. 환경 운동이니 지구 온난화니 하는 어려운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고 글은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까막눈이라고 했다. 대체 무엇이 그 평범한 여자를 그토록 강인한 사막의 전사로 만든 것일까?
인위쩐은 1985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마오우쑤 사막의 외딴 마을에 홀로 사는 총각 바이완샹과 결혼했다. 아버지가 정해준 생면부지의 배필, 모래 더미에 눌려 다 찌그러져가는 흙집, 거미줄 친 쌀독엔 좁쌀 한 줌 남아 있지 않은 살림살이, 악령처럼 거칠게 불어오는 모래 바람. 스무 살 가냘픈 처녀가 감당하기엔 절망적
인 환경이었다. 인위쩐은 그길로 달아나고 싶었지만 사방 어느 쪽으로 가도 끝없는 모래벌판뿐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없었다. 이웃은커녕 지나가는 사람 그림자도 구경하기 힘든, 그야말로 버려진 땅에 내동댕이쳐진 꼴이었다. ‘그래 달아날 수 없다면 차라리 이곳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자!
모래를 퍼 먹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인위쩐은 남편 바이완샹과 함께 양 한 마리를 팔아 묘목을 사는 것으로 사막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사막에 나무를 심다니 누가 봐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위쩐은 풀이 살면 나무도 살고, 나무가 살면 채소나 과일도 가꿀 수 있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묵묵히 풀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었다.
우물을 파고 길도 만들었다. 모래에 생명을 심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비웃는 친척들, 무심한 관리들,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나무를 땔감으로 잘라 가는 벌목꾼…. 도처에 훼방꾼뿐이었다.
누구보다 무서운 적은 봄이면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모래 바람이었다. 순식간에 해를 가리고 온 천지를 한입에 삼킬 듯 휘몰아치는 모래 바람은 어린 나무의 허리를 분질러놓거나 뿌리째 뽑아다 내동댕이치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는 실패를 통해 성난 자연과 타협하는 법을 배워갔다. 사막에선 봄보다 가을이 나무 심기에 좋은 계절이라거나, 물은 해 질 녘에 주어야 해가 빨아 올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거나, 먼저 풀이 자란 곳에 나무를 심어야 뿌리 내릴 확률이 높다거나, ‘싸류’ 같은 잡목 가지로 방사 울타리를 치면 모래 폭풍을 견디기가 수월하다거나 하는 ‘사막형 나무 심기 비법’도 하나 둘 터득했다. 처음엔 열에 한두 그루가, 다음 해엔 서너 그루가, 그 다음 해엔 너댓 그루가 모진 환경에도 살아남아 뿌리를 내렸다. 어쩌면 정말로 강한 것은 모래폭풍이 아니라 그 폭풍을 견디고 살아남은 풀과 나무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인위쩐은 힘을 얻었고, 그 힘
으로 자꾸자꾸 풀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었다.그렇게 20년. 시집올 때 한 줌밖에 안 되던 허리는 절구통처럼 굵어졌고 손은 솥뚜껑만큼이나 투박해졌다지만, 그 몸에 그 손으로 척박한 모래에 심어서 살려낸 나무가 8천 그루도 8만 그루도 아닌 80만 그루에 달한다니 훈장을 받아 마땅한 진화이지 결코 서글픈 퇴화는 아니지 않을까?
1, 2, 3 인위쩐이 사는 징베이탕은 트럭은 고사하고 마차 한 대 들어오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이다. 이곳에 길을 냈다. 모래를 다진 뒤 풀과 나뭇가지를 깔고 다시 흙을 덮어가며 한 뼘씩 늘려서 결국 10km의 숲길을 이뤘다.
인위쩐이 사막에 심어 살린 것은 풀과 나무만이 아니었다. 전기가 들어온 뒤 우물을 파서 양수기로 물을 끌어 올려 쓸 수 있게 되자 집 앞에 텃밭을 만들고 당장 먹고 살 곡식과 채소를 심기 시작했다. 농사는 첫해부터 성공적이었다. 옥수수와 콩, 수박과 참외가 주렁주렁 열렸다.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삽 떠주지 않았
다. 농약과 비료를 사는 데 드는 엄청난 돈을 감당할 길이 없기도 했지만, 생명을 기르려고 애쓰는 이가 그것이 벌레든 잡초든 너무 모질게 죽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직 퇴비와 물 그리고 땀만으로 길렀다. 그것이 바로 친환경이며 유기농이라는 농사 철학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그럴 만한 주변머리도
없었다. 그저 남의 손이나 돈이나 기계의 도움 없이 부부가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생각으로 매달리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그야말로 완벽한 친환경 유기농작물을 생산해 내는 일등 농부가 된 셈이다. 이제는 텃밭 수준을 넘어서 수천 평의 밭을 경작하는데 징베이탕의 채소와 과일이라면 뭐든지 밭에서 여물기가 무섭게 사막 건너 먼 외지로까지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간다고 한다. 모래밖에 없던 사막 우센기 징베이탕은 뚝심 하나가 밑천이었던 한 여자의 반평생을 거름 삼아 나무가 우거지고 달콤한 과일과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는 낙원이 된 것이다.
사실 인위쩐의 숲은 우리가 흔히 알고 상상하는 그런 숲은 아니다. 어느 껌 광고에 나오는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이나 캐나다, 브라질 같은 나라의 울창한 원시림과 비교하면 “너도 숲이냐?” 하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 파노라마 영상으로 사방을 휘~ 둘러보면 솔직히 푸른색보다 누런색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난다. 최고령 나무의 수령은 기껏해야 스무 살 안팎인 데다 ‘양쑤’니 ‘싸류’니 이름만 별나지 걸출할 것도 없는 잡목 몇 가지에 꽃과 나무와 벌레까지도 한나절이면 이름을 달달 외고 낯을 익힐 정도로 몇 종 되지 않는다. 그러니 숲치고는 빈약하달 밖에. 하지만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모래 바람이 마을을 통째로 삼키며, 사람들을 밀어내고 지도를 바꾸는 사막화의 최전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푸른 띠를 만들고 저항하는 징베이탕의
아름다운 풍경을 나는 오래도록 지우지 못할 것이다. 요즘은 인간 승리의 주인공을 만나려는 이들의 탐방 코스로, 사막을 임대해 나무를 심으려는 농부들의 실습 현장으로, 숲 예찬론자나 환경운동가들의 순례지로 징베이탕을 찾는 방문객이 넘친다는 소식도 들린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땅을 모두를 불러 모으는 땅으로 가꾼 기적의 여인 인위쩐은 중국 정부가 높이 치하하는 인민 영웅이 된 지 오래고,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와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아마존보다 아름답고 눈물 나는 숲이다.
몇 해 전 한 환경단체의 초청으로 서울에 온 그가 실눈을 반짝이며 본 것은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이나 거리에 넘치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그는 여의도공원의 나무들을 손으로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백양나무를 친정 식구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워하며 끌어안았고 소나무를 한류 스타 바라보듯 넋을 잃고 올려다봤다.
나는 연신 나무 허리만 쓰다듬는 그이의 손을 괜히 한번 잡아보고 싶어졌다. 화장품은 냄새조차 가까이한 적 없을 듯 거칠고 두툼하고 바람 자국이 선명한 손…. 그이는 손이 못났다며 수줍게 등 뒤로 감췄지만 나는 그 투박한 손에 순도 100%의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평생 잡아본 그 어떤 손보다도 아름답고 따뜻하며 위대한 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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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쓴 이미애 씨는 <일요 스페셜> <한국의 미> 등 다큐멘터리를 주로 쓴 방송 작가다. 현재는 독립 프로덕션 허브넷의 대표이사다. 동화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실제로 해낸 인위쩐의 이야기를 여럿이 공유하고 싶어 책 <사막에 숲이 있다>(서해문집)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