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래동 철재종합상가의 비좁은 골목에선 종종 예술가들의 즉석 공연이 펼쳐지곤 한다. 온앤오프 무용단의 이보라미·한창호·박영배·김은정 씨가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한복판에 들어선 허름한 거리. 일렬로 죽 늘어선 철재종합상가와 소규모 철재 공장 주위론 구멍가게와 초라한 간판의 밥집만 한두 개 눈에 띌 뿐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대규모 공장지대로 호황을 누리며 영등포의 번영을 이끌었던 지역이라곤 상상할 수조차 없다. 눈에 띄게 쇠락해버린 거리는 애잔함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러나 활기를 잃었다곤 해도 이곳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삶의 중심이고 떠날 수 없는 일터다. 아침이면 철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 불꽃을 튀기며 철을 용접하고 제련하는 이들로 수런거리는 곳. 커다란 방직 공장이 있었던 탓에 ‘문익점의 목화 전래지’라는 의미로 ‘문래동文來洞’이라 이름 붙였다는 이곳은, 지금 여러 가지 변화로 소란스럽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최신식 아파트형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이곳의 오래된 철재 상가 또한 개발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리기 직전인 것.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5~6년 전부터 꿈과 희망을 찾아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젊은 예술가들이 문래동을 예술의 거리로 바꾸고 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낡은 공장 건물은 넓은 공간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꿈꾸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안성맞춤이기 때문. 그렇게 하나 둘 모여들어 지금은 1백30여 명, 50개 작업실로 불어났다. 이젠 뉴욕의 소호나 첼시, ‘다산쯔’라 불리는 중국 베이징의 ‘798 예술특구’ 못지않은 종합예술창작촌, 자생적 예술지대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금 문래동은 삶과 예술의 열기로 용광로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 3 젊은 예술가들의 재기발랄한 그림 덕에 문래동 철재종합상가가 화사한 빛깔로 거듭났다.
4 ‘LAB 39’로 들어가는 입구. ‘We are everywhere’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콘셉트로 하는 이들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5 철재 상가 곳곳에 쌓여 있는 다양한 크기의 철근.
젊은 예술가들의 메카, 문래동 사실 서울에서 문래동만큼 서로 다른 면이 공존하는 곳도 드물다. 초현대식 공장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대도시 서울의 현재를 말해준다면, 1960년대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낡고 오래된 철재 상가는 제조업 중심의 과거를 반영한다. 게다가 공장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오순도순 어우러지는 곳이 아닌가. 전성기의 영화는 이미 시간의 잔재 속에 묻혀버렸지만, 문래동에 새롭게 불고 있는 예술과 문화의 바람은 잊혀진 거리의 전설을 새록새록 일깨우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최용호 씨는 문래동의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을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다. 2004년 문래동이 그저 퇴락한 공장지대에 불과하던 때 이곳에 안착한 그는, 판화를 이용한 일러스트 작업으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는 젊은 작가. 벌써 5년째 문래동에 머물고 있는데, 이젠 공장의 소음마저도 리드미컬하게 들릴 만큼 이곳이 익숙하고 정겹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깨끗하고 청결한 화장실 같은 건 바랄 수도 없고, 낮이면 공장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귀가 먹먹할 정도고…. 처음에는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게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무엇보다도 임대료가 싸다는 이점이 이 모든 걸 상쇄할 만큼 크기도 하고요. 게다가 최근 이곳에 모인 작가들끼리의 상호 교류도 빈번하고 함께하는 행사도 많아져서 플러스 알파의 효과까지 누리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죠.”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두 차례의 개인전과 숱한 단체전을 치르며 주목받는 젊은 작가 대열에 올라선 그는 요즘 단행본 표지 일러스트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발간한 <그림자를 훔친 남자>(문학동네), <고래여인의 속삭임>(들녘) 등이 그의 작품. “판화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판화는 기본적으로 ‘노동의 미학’이거든요. 공정을 여러 단계 거쳐야 하다 보니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죠.” 그런 면에선 자신도 철재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라며 웃는 최용호 씨. 마흔이 되기 전에 자신이 기획하고 글 쓰고 그림까지 그려 넣은 그림책을 꼭 하나 완성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문래동 철재 상가가 환히 내다뵈는 3층 작업실에서 새록새록 영글어가고 있다.
1 판화를 이용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는 일러스트레이터 최용호 씨.
2 작가들 중 유일하게 문래동 주민인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 씨. 자칭 이곳의 ‘넘버 3’다.
최용호 씨 소개로 문래동에 들어왔다는 이소주 씨 또한 문래동 예찬론자다. 그는 아예 주소까지 옮기고 이곳 주민이 됐다. 작업실을 집 삼은 것. 건축을 전공한 그는 작은 신문사에서 삽화와 만평,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틀었다. “회사 그만두고 작업실을 구하다가 동아리 행사장에서 최용호 작가를 만났어요. 그때가 2005년 2월이었는데, 한 달 후에 바로 짐 싸서 문래동에 들어왔죠. 이제 입주 시점으로만 따지면 ‘넘버 3’라니까요(웃음).” 그에게 문래동 작업실이 특별한 건 그가 키우는 고양이 다섯 마리와도 관계가 깊다. “얘네 엄마가 사람을 아주 잘 따랐어요. 말하자면 길 고양이인 셈인데, 절 따라서 작업실에 온 거예요.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낳더라고요. 그래서 레이, 라이, 리오, 레니, 레오라고 이름을 붙여줬어요. 혼자 작업하다 보면 사람들도 잘 못 만나고 하루 종일 혼자 있을 때가 많은데 얘들이 있어서 외롭지가 않아요. 원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얘들 키우면서 완치가 됐고요. 이젠 얘네들 때문에라도 작업실 못 옮겨요.” 잡지, 단행본, 포스터 등 여러 매체의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는 포스터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9월 3일부터 7일까지 홍대 인근에서 열리는 실험예술제와 10월 1일부터 한 달간 이곳 문래예술공단에서 열리는 ‘물레아트페스티벌’의 포스터도 그의 작품. 이곳에서 그는 동료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거듭하며 점차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예술의 열기, 철을 녹이다 문래동에는 이들 일러스트레이터 외에도 디자이너, 무용가, 연극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이소주 작가의 옆에도 춤꾼 두 사람이 살고 있다. 평생의 반려자로 지난해 제1회 물레아트페스티벌을 기획해 성황리에 치러낸 김은정·한창호 씨가 바로 그들. 함께 운영하는 ‘온앤오프 무용단’을 통해 춤과 일상, 문화를 한데 엮어 춤으로 선보이는 이 두 사람은 무용계에서도 주목받는 젊은 안무가이자 무용수다. 온앤오프 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더 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공연과 안무를 전공한 김은정 씨와 2005년 젊은 안무가전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2006 평론가가 뽑은 무용가’로도 선정된 바 있는 한창호 씨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한 달에 평균 2회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
“2005년 여기에 왔는데 첫눈에 맘에 들더라고요. 공장지대라 항상 소음이 있다 보니 고성방가를 해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밤이면 고즈넉해서 작업에 몰입할 수 있고요. 주변에 있는 철재 공장이나 상가에서 공연 소품이나 무대 장치 같은 것도 저렴한 가격에 마련할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죠.” 한창호 씨의 말에 김은정 씨도 뒤질세라 문래동의 장점을 덧붙인다. “저희가 ‘춤공장’이라 부르는 지하 연습실이 원래는 다방 자리였대요.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에 지은 건물이다 보니 낡고 군데군데 삭아버린 곳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서 좋아요. 물레아트페스티벌 기간을 비롯해서 공연 올릴 때마다 작가들 특유의 개성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거든요.” 생활인들의 진정한 삶의 열기를 바로 옆에서 느끼기 위해 일부러 시장, 공장 등만 찾아다닌다는 이들은, 문래동을 역량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작가들을 초대할 예정이에요. 일본의 ‘라프트 스튜디오RAFT Studio’와 스튜디오 교환·교류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고요. 아시아부터 시작해서 스튜디오 작업을 확산시키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네트워킹하는 작업이 저희들의 목표예요.” 70여 팀의 작가들이 참여하게 될 이번 물레아트페스티벌. 이들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재미난 일들로 꽉 찬 신나는 축제 마당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3, 4 최용호 작가의 작업실 풍경. 최근 작품들과 도구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온앤오프 무용단에서 나와 문래 지구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3층에 자리 잡은 극단 ‘몸꼴’의 작업실이 눈에 띈다. 영국 에티엔 드크루 마임학교에서 수학한 마이미스트 윤종연 씨가 이끄는 이 극단은 지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올릴 <돈키호테-인간적 열광>의 연습으로 분주하다. 2002년 창단해 <불, 꼴>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숱한 공연을 무대에 올린 이들이 문래동으로 온 건 2006년 겨울. “친구 소개로 문래동에 와봤는데 월세도 싸고 철재 상가가 바로 앞이다 보니 세트 제작도 용이해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삶의 열기가 뜨거운 곳이잖아요. 무대는 정직하기 때문에 배우나 연출가, 스태프들의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바로 눈에 보이거든요. 서바이벌 정신이 절로 생기겠더라고요. 우리 극단 식구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았죠(웃음).” 몸에 대한 끝없는 성찰을 토대로 지금, 현재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는 이들은 <구도> <리어카, 뒤집어지다> 같은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유럽 투어 공연까지 성황리에 마친 실력파들. 앞으로의 공연 스케줄도 빽빽하게 잡혀 있다. “9월 21일부터 23일까지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출품작인 <돈키호테>를 구 서울역사 무대에 올릴 예정이고요, 물레아트페스티벌에선 <리어카, 뒤집어지다>를 선보일 계획이에요. 9월에는 마카오 공연까지 잡혀 있어서 여러모로 정신이 없네요.” 땀으로 뒤범벅이 된 이들의 무대는 젊은 열기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5 이소주 작가의 작업실은 함께 사는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6 동반자로 함께 온앤오프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무용가이자 안무가 김은정·한창호 씨.
7 호젓한 문래동 철재종합상가 풍경.
공간 리폼 프로젝트, 문래동을 바꾸다 ‘이름 없는 것들의 이름 만들기, 상품화될 수 없었던 것들의 상품 만들기’를 표방하는 ‘노 네임 노 샵No Name No Shop’은 홍익대 가구제품디자인학과 졸업 동기 여섯 명(김건태, 김종범, 전지향, 박경옥, 이혜연, 이신혜)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디자인 공동체다. 오랫동안 머물던 홍대 근처의 작업실을 떠나 이곳 문래동으로 옮겨 온 게 지난해 11월이니 문래예술공단 구성원 중에선 새내기에 속하는 셈이다. “작업실 계약이 끝나가던 찰나에 문래동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철재 빔 같은 게 남아 있는 멋진 곳이 있다고. 와보니 월세도 저렴하고 공간도 맘에 들어서 바로 결정했죠. 예전 작업실보다 세 배나 넓어서 작업 공간도 충분하고, 3층 꼭대기라 옥상도 쓸 수 있어서 아주 좋아요.” 리더인 김건태 씨의 말을 전지향 씨가 받아 잇는다. “홍대 작업실은 비좁은 건 둘째치고 주변 환경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어버려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여기 분들은 너무 순박하셔서 좋더라고요.” 박경옥 씨도 문래동이 자신들에겐 ‘최적의 장소’라며 말을 거든다. “저희가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로 하다 보니 철재 작업이 많거든요. 그런데 바로 앞이 철재 공장이라 도움을 많이 받아요.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시거든요.” 이혜연 씨도 맞장구를 친다. “주변에 작가들 작업실이 많은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 교류하면서 ‘오픈 스튜디오’ 같은 프로젝트도 함께 하고. 아주 만족스러워요.”
1 문래동은 예술가들의 창작촌이기 이전에 이곳에 오래 머물러온 철재촌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2, 3 극단 몸꼴의 윤종연 대표와 단원들. 곧 있을 공연 준비로 비지땀을 쏟고 있다.
비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작업대 모두를 2층으로 만들고 바닥에는 바퀴를 달아 언제든 이합집산이 가능하게 한 ‘노 네임 노 샵’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문래동 작업실에서도 여전하지만, 넉넉한 공동 작업대와 공구 수납공간은 보기만 해도 흐뭇함을 더한다. 서울시의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인 <정동: 멋진 신세계 꽃이 피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4, 5 디자인 공동체 ‘노 네임 노 샵’(왼쪽부터 이혜연·전지향·박경옥·김건태 씨). 작업실에 놓인 가구 대부분은 바퀴가 달려 있어 언제든 이동 가능하다.
‘LAB 39’의 디렉터 김윤환 씨는 예술과 도시 사회 연구소에서 발간한 <문래 창작촌 연구> 등의 보고서를 통해 문래동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노 네임 노 샵의 ‘이름 없는 것들의 이름 만들기’와 같은 맥락이다. “저희 LAB 39는 공간 재생 프로젝트를 하는 팀이에요.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탓에 점차 슬럼화되어 가는 유휴 공간을 예술의 힘으로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거죠.” 각자 홀로 작업에 열중하던 작가들의 모임을 결성해 ‘문래예술공단’으로 커뮤니티화한 것도 그와 LAB 39가 이뤄낸 성과다. “그전까진 작가들끼리 소통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12일에 ‘문래예술공단’이란 모임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씩 반상회도 열고 있죠. 덕분에 올해 물레아트페스티벌에는 더 많은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미대에서 조각과 회화를 전공한 탓에 시각예술에 가까운 실험적 프로젝트를 주로 한다는 그는, 아시아 작가들의 교환·교류 프로젝트인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문래동에서 작업을 시작한 싱가포르 작가 앤지 시아Angie Seah 씨는 문래예술공단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함께 참여한 일본의 비주얼 아티스트 아라이 신이치 씨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문래예술공단은 베이징의 다산쯔 798 예술특구의 초기 단계와 아주 비슷해요. 지금은 ‘다산쯔’가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초기의 순수성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문래예술공단은 작가들의 자발적인 동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니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6 ‘LAB 39’의 독특한 실내 풍경은 디렉터 김윤환 씨의 취향을 반영한다. 전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공간.
7 LAB 39 디렉터 김윤환 씨.
신이치 씨의 말처럼 문래예술공단은 지금 변화에 직면해 있다. 다행인 건 이 변화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오래된 철재 공장의 셔터 문엔 화려한 색감의 그림이 수놓이고, 비좁은 거리에선 크고 작은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 그뿐인가. 일 년에 한 번은 오픈 스튜디오와 축제로 거리 전체가 떠들썩하다. 50여 팀의 예술가들이 회색 공장지대에 불어넣는 문화와 예술의 향기는 이곳 원주민들과의 행복한 공존으로 더욱 아름답게 채색되고 있다. 문래동 文來洞. 이름 그대로 지금 문래동엔 문화가 오고 있는 것이다.
2008 물레아트페스티벌 오는 10월 1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 달간 열리는 문래예술공단의 가장 큰 행사다. 온앤오프 무용단, 극단 몸꼴 등이 참여하는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국제 스튜디오 아티스트 교류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 자세한 내용은 http://cafe.naver.com/mullaeart/를 참고. 문의 물레아트페스티벌 사무국 02-3667-9171
문래예술공단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150m가량 걸으면 ‘광명수산’ 간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광명수산’을 끼고 철공소 길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면 기업은행이 보이고, 기업은행 옆 ‘신흥상회’ 길부터 문래예술공단이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