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50년도 더 된 헌 집, 게다가 10년 이상 비어 있던 집을 사서 한 달 동안 손수 고치고 다듬었다.
마당엔 잡초 좀 덜 자라라고 잔디도 깔았다. 바람이 잘 드나들도록 들창문도 낸 글 방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다.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과 연애하는 일이라는 안도현 시인. 그는 전라북도 완주군 신원마을의
작은 작업실에서 달콤하고 쌉쌀한 연애에 빠져 있다. 시 한 수에 파지 수백 장을 쏟아내면서 공양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시골 마을의 느린 시간은 이 사랑을 곰삭게 하는 묘약이다.
이 집 마당에 와서 마음을 내려놓는다. 밥벌이 걱정이며 보기 싫은 내 마음이며 다 잊어버리고, 외갓집 고방의 귀뚜라미처럼 태연하게 앉아서 마음을 쉰다. 신원마을의 물도랑 옆, 안도현 시인의 집 마당에서. 돌담 아래로 붉은 상사화며 백일홍이며 감나무 어우러진 마당에서.
시인은 가뭄더위로 허리 꺾은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물 주는 일은 죄다 재미가 있어요.” 시만 보고는 한 떨기 실국화 같을 줄 알았는데, 참기름 바른 차돌 같은 몸씨의 시인. 좀 더 살피니 순정한 악동의 그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맵싸하다는 느낌을 주는 눈매가 눈에 들었다. 고래 등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인 경각산 자락이 시인의 눈매를 더 짙게 만들었다.
‘<연어> 판 돈’ 덕분에 폐가 하나를 사 신원마을에 들어앉은 게 1998년이었다.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국어 선생 자리를 물리고 들어앉은 이 집에서 그는 정작 ‘밥벌이’를 위해 밤새워 자판을 두드렸다. 전주의 전세 아파트에 떼놓고 온 가족을 위해 한 해 동안 2천 매 가까운 산문을 쓴 적도 있었다. 혼자 먹을 쌀을 안치며 ‘시인은 시대를 설거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쌀을 안치는 사람’이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아침마다 마당을 쓸면서 독자들의 마음도 쓸어 줄 시를 그렸다. “가을로 접어들자 단풍나무는 / 자기 몸에다 전향서를 쓰고 있었다. / 너무 냉정해서 / 내가 말을 걸어볼 틈도 없었다.”(‘단풍나무’)
1 집 옆에는 죽림온천의 물줄기와 통하는 물도랑이 흐른다. 바닥이 바위인 데다 물이 맑아 탁족하기 참 좋다. 2 이 대문을 나서면 신원마을의 들이 펼쳐진다.
3 돌담, 나무, 잔디로 둘러싸인 이 집에서 주말마다 머물며 시를 쓰고 글을 읽는다.
그렇게 문학으로 밥을 얻으려 한 날들이 지나고, 2005년 전주의 한 대학 교수가 되면서 이 집에서 쌀을 안치는 날은 주말만으로 줄었다. 대신 시인을 불러내고 독촉하고 그 옆에 불러 살도록 명령하는 전화벨 소리를 피해, 그는 주말마다 이 집에서 ‘외로움’의 사치를 누린다. 전화 한 대 없는 집에(그는 휴대전화도 가지지 않았다) 자신을 가둔 채, 묵정밭에 고추와 장미꽃을 함께 심고, 동네 꼬마 현오를 위해 꽃밭도 만들어주고, 감잎 떨어진 마당도 쓸면서.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지요. 문인은 세상의 파도에서 비껴나 은둔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참 무서운 말입니다. 난 시인이라면서 동화도 쓰지, 강연한다고 전국 방방곡곡 다니며 약장수처럼 떠들지, 가끔 방송에도 나오지, 북한에 나무 보내기 운동 한다고 나서지. 근데 나 이런 거 진짜 싫거든요. 요즘 외롭고 고독한 자유시간이 없다는 게 시인 안도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 ‘은둔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숨어드는 이 집을 친구들은 ‘구이구산九耳九山’이라 불러주었다. 구이면에 있어 ‘구이’고, 달마의 선법을 전한 아홉 산문이라 ‘구산’이니, 이 집에서 아홉 구만큼 많은 글을 쓰라는 뜻이란다. 아홉 구만큼 많은 글 쓰라는 구이구산에서 시 한 수에 파지 수백 장을 쏟아 내고 점 하나, 쉼표 하나 찍는 것에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정말 많이도 쓰고 또 쓴다. “글이라는 게 금방 쌓이는 게 아니고 천천히 쌓이는 거잖아요. 말 하나에 목숨 건 시, 시간의 숙성을 견딘 시가 참 좋죠.” 그렇게 즉흥적인 ‘글쓰기’보다는 ‘글 만들기’의 마음으로, 공양하는 마음으로 오래 묵힌 시를 쓰며 그는 시골 마을의 느린 시간을 누린다.
4 해진 문풍지, 손때 잘 먹은 마루가 정겹다. 조금만 게으르게 집을 비우면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자욱해져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집이다.
5 지리산 자락에 사는 박남준 시인이 그려준 부채와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얼레.
6 ‘구이면’에서 아홉 산만큼 많은 글 쓰라고 친구들이 지어준 옥호 ‘구이구산’.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 벌의 날갯짓 소리 일곱 근 /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 두치 반 /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공양’)
‘광주’로 일컬어지는 당대의 현실을 드러낸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하고, 5년 동안 ‘거리의 교사’로 투쟁했던 시인 안도현. 그때까지 그의 시는 민중의 구겨진 삶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시였다. 1994년 전교조 가입 포기 각서를 쓴 후 장수군 산서고등학교의 ‘신규 채용교사 안도현’으로 복직되고, 월 3만 원짜리 자취방에서 시 쓰는 선생으로 살면서 ‘호박잎을 두드리는 빗줄기, 경운기를 몰고 가는 농부의 등 위에 벌레처럼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름답다는 걸 비로소 발견하고, 2년 만에 퇴직해 황토 골방에 들어앉게 된 시인 안도현. 그때부터 그의 시는 시대라는 강박을 벗어버렸다. 대신 자연과 인간이라는 가엾은 생명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시가 됐다. 작고 사소한 것에 귀 기울이니 ‘너무 쉽게 쓴 시’라고 평이 돌 정도로 쉬운 시, 암송하고 싶은 시, 읽다 보면 문득 젖은 목소리로 누군가 부르고 싶은 시가 풀어져 나왔다. “시인은 보일러 공장 아저씨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에요. 얼어 있는 걸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 난 그냥 아저씨 같은 시만 쓰려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시를 두고 평론가들은 ‘소월의 계보를 잇는 시’(재미나게도 1998년 그는 ‘소월시 문학상’을 받았다. 실제로 그의 시는 소월의 시처럼 운치 있게 읊기 좋다), ‘하이쿠(17자로 된 일본의 단시)를 가장 잘 쓸 것 같은 한국 작가’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그 유명한 ‘연탄 시’로 전국적인 대박을 터뜨렸고, 국정교과서에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과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가 실리면서 1년에 1백50만 원씩, 6년인가 7년인가 ‘국록’도 받게 됐다. 양희은 안치환 같은 가수가 그의 시를 노랫말로 쓰기도 했다. “너에게 묻는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7 시를 쓰는 것만큼 좋은 시를 읽는 것도 사랑하는 그의 서가.
8 박남준 시인이 대문대용으로 쓰려던 사슴뿔 모양의 나무를 안도현 시인이 ‘강탈해와’ 벽 걸개로 쓰고 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고, 교통이 붐비지 않는 마을일 것. 축사나 돈사가 없는 마을일 것. 산이 있고 집 앞에 개울물이 흐르는 곳일 것’. 그가 ‘글집’을 찾으며 까다롭게 세운 기준이었다. 경각산 자락, 죽림온천의 물줄기와 통하는 도랑이 흐르는 동네, 10년 이상 비어 있던 초가삼간은 시인에게 품을 내주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생가와 비슷한 지형이라니 시인의 시심을 발원하기엔 이보다 좋은 터가 없을 터였다. 사람 키를 넘는 덤불숲 마당, 해진 문풍지, 쓰러져가는 헛간을 시인은 한 달 동안 직접 고쳤다. 바람이 넘나들도록 이리저리 들창문을 내고, 뒤란에 팽개쳐졌던 툇마루를 다시 뜰로 들이고, 부엌과 안방 사이에 있던 벽장을 뜯어내자 글쓰기의 천국 ‘구이구산’이 완성됐다. 삐걱이는 부엌문은 옛 흔적을 두고 싶어 그대로 두고, 담쟁이 넝쿨 대신 더 운치 있는 마삭덩굴로 담장을 두르고, 잡초 자라지 말라고 마당에 잔디도 깔았다. “그렇다고 이 ‘구이구산’에서의 일상이 마냥 목가적이지만은 않아요. 조금만 게으르게 집을 비워놓으면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자욱해지고, 잔디 속에 잡초의 침입 속도도 만만찮지요. 엇, 저기 담벼락에 다람쥐다, 다람쥐. 이런 맛은 좀 있죠.”
“산은 위로 오를수록 더 깊어지는데/나는 저 아래 도시에서 한 뼘이라도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 얼마나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기만 했던가 / 세상을 휘감고 흐르는 강물이 되지 못하고 / 하릴없이 바짓가랭이만 적셔왔던가.”(‘모악산을 오르며’)
9 유럽 여행 중 풀밭에서 양말 벗고 책 읽던 아가씨가 너무 예뻐 보여서 그다음부턴 시인도 양말을 자주 벗는다.
10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동네, 새 소리와 개 짖는 소리만 가끔 들릴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다. 시 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그가 자랑했다.
11 동네 꼬마 ‘김현오’를 위해 만들어준 꽃밭.
“시를 쓰는 동안에는 시간이 잘 가요. 마치 애인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처럼.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하고 연애하는 일이라고 종종 생각해요. 난 참 행복하죠.” 그 사랑의 시작은 비명이고 사랑의 끝은 화농일지라도, 그래서 그 사랑은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증기기관차처럼’ 달려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시인은 웅변하는 것이다. 김광석 노래만 들으면 속수무책이 된다는 386세대 아저씨, 자신은 그렇게 순수한 사람이 아니며 알고 보면 이기적이고 똥배가 나왔다는 것을 비밀로 둔 시인이 갑자기 뭉게구름처럼 웃었다. ‘당신의 시는 낭만적인 구름 위에서 거친 땅으로 좀 내려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청맹과니의 물음에 “그 주문에 답을 할 때지요. 하지만 취중에 떠들거나 어쭙잖은 산문으로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오직 시로 말해야 합니다. 서두를 필요도 없지요. 시는 천천히 오래도록 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라고 화답한다. 신원마을 초가삼간 지붕 위에 느린 구름이 잠시 쉬었다 간다. 경각산 자락, 시인 안도현의 안빈낙도.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연애’)
시인 안도현 씨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등단했으며,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등의 시집과 <연어> <짜장면> 등의 어른을 위한 동화를 펴냈다. 2007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고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문인들의 시골살이 1] 시인 안도현 씨의 완주살이 안도현식 안빈낙도 安貧樂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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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보리싹 같은 웃음을 모두 솎아내버렸나요? 시는커녕 신문 한 줄 읽을 기운도 빠지셨나요? 도시의 화려하고 모던한 일상을 뒤로한 채 산골로 들어간 문인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그들이 산중에 들자, 담 너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시심을 일으켰고 지빠귀새의 다툼이 소설의 화두를 만들어주었답니다. 시가, 소설이 지닌 느림의 박자와 은유의 리듬을 자연의 품에서 즐기는 문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신원마을의 시인 안도현 씨, 강원도 영월군 예밀리의 시인 유승도 씨, 전라남도 화순군 증리의 소설가 정찬주 씨. 그 청명한 인생을 들여다보면 삶도, 사랑도, 여름도 한 박자 천천히 살게 될 것입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