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룡산 연화봉에서 기천 수련 중인 박사규 씨.
박사규 씨가 새벽마다 기천을 수련하는 터 중 하나인 계룡산 연화봉에 그를 따라 올랐다. 한 발 뒤가 낭떠러지인 바위에서 수련이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의 독특한 3박자와 곡선 동작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전통 춤사위 같은 몸짓이다. 선이 유려하고 부드럽지만 사지 말단이 ‘탁’ ‘타탁’ 하고 멈출 때마다 강한 힘이 모인다. “맨손으로 수련하지만, 검을 잡으면 바로 검술로 변환하는 아주 유연한 무예지. 다른 무예와 달리 아주 다양한 보법步法이 있어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도 있고.” 동작을 찬찬히 살펴보니, 손을 갈고리처럼 오므리기는 하지만 주먹을 쥐지는 않는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면 주먹을 쥐지 않고 펼친 상태로 겨루기를 하지. 민속학자들이 나서서 아무리 밝히려고 해도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더라고. 그런데 답은 간단해. 원형으로 동작을 구사했기 때문이지. 주먹을 쥐어 말단을 닫으면 직선으로 각지게 내질러야 하거든.” 그러고 보니 그의 손끝이 탈춤을 출 때처럼 곡선을 그리며 곱게 뻗었다.
그런데 고대의 무예가 어떻게 현대까지 전해올 수 있었는지 못내 궁금하다. “세상에 기천을 처음 알린 분은 내 스승인 1대 문주 박대양 진인이야. 대양 진인은 부모를 모른 채 산중에서 태어나 원혜상인이라는 스님 슬하에서 자라면서 산중의 비기인 기천을 수련했다고 들었어.” 그러나 기천의 유일한 전수자인 대양 진인은 산중에 은거하는 때가 더 많았고, 이 때문에 다른 무예에 비해 대중화되지 않았다. 30여 년 전 박사규 씨가 대양 진인을 만났을 때 그 역시 기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합기도를 수련한 나는 무술 잘한다는 사람만 있으면 찾아가서 대결을 해봐야 직성이 풀렸지. 어느 날 약수동에 고수 한 명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어. 키가 150cm 좀 넘는 왜소한 체구에 순한 동자승처럼 생긴 도인이기에,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겠다 싶었어.” 둘은 도장에서 정식으로 대련했다. 마주한 그 도인이 잠자코 서 있는 줄 알았던 박사규 씨는 별안간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후 몇 번을 공격하려 했지만 어떠한 수도 통하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처음 보는 무술, 기천이었다. 그날로 그 도인(대양 진인)의 제자가 되기를 청해 20여 년간 모시며 사사했다. 박사규 씨처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고 특히 1980~90년대 대학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이제는 전국 각지에 수련장이 생겼다. 이제는 박사규 씨가 2대 문주로 기천을 이끌고 있다.
2 기천은 건강법으로도 각광을 받아 요즘 수련생들의 약 30%가 여성이다. 동작이 격하지 않아 여성들이 수련하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3 기천의 2대 문주인 박사규 씨. 매일 새벽 두세 시간씩 계룡산에서 수련하는 그를 따라 산에 오르면 ‘할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포근한 계룡산의 숨은 비경을 볼 수 있다.
4 기천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는 제자 조정현 씨와 정민희 씨.
대체 기천의 어떤 힘이 사람들을 이끌었을까?“기천이 어떤 무예인고? 머리로 이해하려 할 것이 아니라, 기본자세인 내가신장內家神將을 취해보는 게 어떻겠소?” ‘내 몸을 지켜주는 신장의 역할을 하는 자세’라는 뜻의 내가신장을 따라해봤다. 우선 두 다리를 어깨너비의 1.5배 정도 벌리고 서서 양쪽 발끝을 안쪽으로 향한다.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채 무릎을 안쪽으로 조인다. 두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도록 뻗어서 이마 앞 30cm 정도에서 둥글게 교차한다. 이때 손목과 허벅지 근육을 바깥으로 꺾어 비틀어 ‘역근易筋’ 자세를 취해야 한다. 20초도 안 되어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어금니를 앙다물어보지만 대략 40초 만에 기권. “역근은 여타의 무예와 기천이 차별화되는 기술이지.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역방향으로 씀으로써 몸 안의 막혔던 기맥이 뚫리는데, 처음 하는 사람들은 1분을 넘기기 힘들어. 수련을 하면 30분 정도 이 자세를 유지하지.”
그런데 왜 고문하듯 몸을 힘들게 해야 하는가? “육체에 고통이 오니 수행하는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지지. 그러나 물리적으로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일정하네.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을 다룰 수 있다면 시간에서 자유롭게 되지. 그 과정에서 인고의 가치를 새기게 되고 몸은 정신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쉽게 말해 건강한 몸을 이루어야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이다. 기천 문인들은 참선을 할 때도 반가부좌 대신 내가신장을 취한다. 그래서 망상이 들어올 틈이 바늘구멍만큼도 없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박사규 씨를 찾아와 몸을 강건히 바로잡은 이들도 많다. 계룡산 초가삼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제자 이치운·문일민 씨, 사무국장 조정현 씨와 여성 제자 정민희 씨가 그러하다. “예로부터 전쟁 등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선 위급한 상황에서 무예가 빛을 발했지. 그런데 이는 표면에 불과하고, 실상 우리 조상들은 몸과 마음을 정련하기 위해 일상에서 무예를 수련했어. 현대에서도 무예는 치고 박는 것이 아닌 건강법으로 쓰여야 하지. 몸을 바르게 하고 호흡과 의식을 조절해 건강을 찾는 심신수련법으로서 널리 퍼진다면 그야말로 활인活人의 무예라는 본뜻을 전할 수 있겠지.” 수십 년간 바르게 닦아온 몸과 마음으로 허공에 경經을 쓰러, 그는 다시 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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