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일은 공교롭게도 2년 전 61.1%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던 선거일과 같은 5월 31일. 오세훈 시장 인터뷰에 앞선 하루 전날, 취재 전초전이 있었다. ‘대한공공의학회 2008년 춘계학술대회’에서 ‘디자인 도시 서울’을 주제로 특별 강연에 나선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아니, 그의 청중이 되었다. 2년 전, 5·31 서울시장 선거를 하루 앞둔 그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잠깐 궁금해졌다.
실제 목격한 바 없으니 비교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로부터 꼬박 2년이 지난 그날, 그는 분명 신명이나 있었다(실제로 인터뷰 당일, 오세훈 시장은 “어제 내가 좀 신이 많이 났었다, 요즘 내가 가장 신이 날 때가 서울시가 하고 있는 일을 자랑할 때다”라고 말했다). ‘한 시간 동안 여러분을 즐겁게 해주겠다’며 시작된 그의 강연은 ‘즐겁게 해주겠다’는 약속 그대로, 약속보다 시간을 조금 넘긴 ‘1시간 20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또한 비교 대상이 없어, 그러니까 전직 서울시장의 연설을 이전에 미처 들어본 바 없어 비교우위라 말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심정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공직자’의 ‘정책’ 관련 ‘연설’이 그처럼 흥미진진하기란 좀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축사 정도일 줄 알았던 ‘시장님 강연’이 마치 EBS 특강처럼 흥미로운 주제들로 조목조목 펼쳐졌기 때문일까…, 열강으로 이어진 특강급 강연이 나 사는 곳, 서울을 행복하게 만들겠노라는 포부 앞에 압도되고 만 것일까, 미온의 중년이라 예상했던 그에게서 마치 전사와도 같은 고온의 에너지가 감지된다. 강연 시작 전, 양복 상의와 함께 벗어놓은 것일까, 좌중을 쥐락펴락하며 종횡무진 열변을 토하는 오세훈 시장에게선 서울시장 선거 당시 ‘훈풍’이라 불리며 덧입게 된 서울시 대표 훈남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목격담을 전하자면 그날 그 80여 분간의 오세훈 시장은 오히려 쾌남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사장형 시장 vs. 실장형 시장 궁금증 하나. 물론 서울시민 모두가 ‘지금 서울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사는 서울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시장에게 듣는 것처럼 확실한 것도 없을 테지만 이렇듯 시장이 ‘직접 떠서’ 서울시 정책을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 당연지사일까. 청중이 서울시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다기보다는 공공 의학회 학술대회에 서울시장 강연이 한자리를 차지한 셈. 오세훈 시장은 취임 후 줄곧 일주일에 서너 번은 크고 작은 모임에서 직접 나서 시정 브리핑을 한다고.
이날의 감상평 하나. 만약 시장을, 관리자 입장에서 조직의 흐름을 파악하고 독려하고 이끄는 ‘사장형’ 시장과 실무자 입장에서 전략을 구상하고 흐름을 만들며 시스템을 꾸리는 ‘실장형’ 시장으로 구분한다면 그는 후자에 속할 확률이 높다. 실무자들에게 ‘보고받아 파악된 것’으로 서울 시정을 그리 소상히, 일사천리로 시민들에게 ‘보고하는’ 것은 제아무리 변호사 출신에 방송인 경력을 지녔다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물론 그는 달변인 데다가 호감형 인상이다. 변호사 시절, MBC TV <오 변호사 배 변호사>를 시작으로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정도니 전달 능력과 설득의 기술이 남다를밖에. 그 능력과 기술로 전하는, 그 어떤 서울시 관련 보도자료와 기사보다 분명 몇 배는 더 명쾌하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준 ‘지금 서울’은 과연 어떻게 ‘디자인’되고 있을까.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장이 되고나서다. 드럼을 즐기는 어느 외국 대사가 함께 연주해보자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을 가장 좋아하는 그이기도 하지만 ‘신나게 두들기는’ 드럼이기에 더욱 신이 났다. 거대 도시의 수장이라 해서 답답한 일이 없을까, 아니 오히려 그 자리에 있기에 머리 무겁고 마음 복잡한 일이 더 많으리라. 신나게 드럼 한 바탕 두드리고 나면 마음과 몸이 좀 후련해지지 않았을까
‘데카르트 마케팅’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데카르트’라 해서 철학적인 그 무언가를 연상한다면 오해다. 데카르트 마케팅이란 기술의 ‘technology’와 예술의 ‘art’를 조합한 테크아트(tech+art)를 의미하는 신조어로 기술에 예술을 더할 때 더욱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것. 이는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대입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라고. 도시의 경쟁력과 고부가가치는 더 이상 하드웨어인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것이라 판단, ‘맑고 매력 있는 세계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그 매력 포인트를 문화예술로 삼겠다고 나선 것. 마케팅 전문가에게나 들을 법한 마케팅 전문용어를, 기업의 브랜드 전략에서나 활용할 만한 마케팅 전략을 공직자가 전하고 그것이 현재 진행 중인 시정이라 말한다.
오세훈 시장은 2008년 신년사를 통해 ‘문화’로써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를 합한 신조어, 컬처노믹스를 서울시의 핵심 전략으로 발표, 문화로써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 경제를 살리는 ‘창의 문화 도시’로 만들겠다 다짐했다.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문화 관광이 전체 관광 중 무려 37%에 해당하고 26명의 관광객이 일자리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통계 수치를 감안할 때, 이 같은 굳은 의지가 이루어진다면 서울은, 그러니까 서울도 뮤지컬을 보기 위해 브로드웨이로 몰려드는 뉴욕처럼,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기 위해 관광버스 행렬이 줄을 서는 파리 안 부러운, 롯폰기 힐스와 미드타운을 랜드마크로 지닌 도쿄 못지않은 문화적・경제적 선진 도시가 되고 그로 인하여 서울에 살고 있는 이들의 행복지수가 상향 곡선을 만들지 않을까.
Seoul 마케터 vs. Soul 디자이너 데카르트 마케팅, 컬처노믹스 전략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서울 산 지 벌써 몇 해인데도 도통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다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겠고. 볕 좋은 날 정동길을 거닐다가 가구 디자이너 최병훈 씨의 아트 벤치를 본 적이 있다면 , 얼마 전 ‘천 원의 행복’ 덕분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와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단돈 1천 원으로 관람했다는 누군가의 행운을 부러워한 적 있다면, 지난 5월 한 달 동안 뮤지컬 <명성황후>가 경희궁에서 열린 것을 알고 있다면, 낯선 이름이긴 해도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하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가칭)이 궁금하다면 당신은 이러한 서울의 마케팅 전략과 무관한 이가 아니다. 서울이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이미 그 성과를 확인한 것이다.
이렇듯 도시를 디자인하려는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바로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 선정의 쾌거. ‘디자인 수도 시범 도시’로 선정된 이탈리아의 토리노에 이어 두 번째지만, 그러나 경쟁 과정을 거쳐서 공식적인 ‘디자인 수도’로 지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국제적인 도시 싱가포르, 두바이 등을 제치고 아직 문화 인프라, 디자인 인프라가 미약한 서울이 지정된 것은 ‘미완의 대기’이나 도시의 핵심 프로젝트가 디자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관심과 격려가 선정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후문을 남겼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는 서울이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뉴욕*밀라노 등에 뒤지지 않는 도시 경쟁력을 지니려면 모든 것이 ‘디자인’에 달려 있다 확신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다. 사람을 모이게 하려면, 그 공간이 남다른 의미를 지니려면 디자인이 관건이다. 그 도시만의 특별한 문화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하려면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의 모양이 중요하다.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역시도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된 문화 인프라를 멋지게 포장하는 것도 디자인이다. 그러므로 디자인으로 도시 경쟁력을, 시민의 행복을 만들 수 있다. 도시 디자인이란 결국 행복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신조어 ‘스페이스 마케팅’(공간에 대한 특별한 경험과 기억이 힘을 갖는다는)을 예로 들면서, 서울의 소울soul인 문화를 디자인해서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겠다 말하며 영락없는 디자이너 그리고 마케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1961년생, 역대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인 그의 인생 행보는 도무지 숨가쁘다. 1985년 지금의 아내 송현옥 씨와 결혼, 1988년 사법연수원 수료, 1991년 변호사로 개업, 대한변호사협회 환경위원회·환경운동연합 법률자문역으로 활동, 1994년 국내 최초 아파트 일조권 관련 소송에 승소, 환경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TV 시사 프로그램 진행, CF 모델 출연 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 당선, 의정 활동 당시 검은 돈의 정치권 유입을 막기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과 더불어 ‘수도권 대기 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었다(환경 전문 변호사 출신, 일명 ‘오세훈법’이라 불리는 이 두 법안을 만든 국회의원 출신으로서의 이력을 보자면 현재 ‘맑고’ 매력 있는 세계 도시, 서울을 기치로 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 은퇴 후 2년 동안 로펌을 운영했고 2006년 돌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등장, 선거운동 보름 만에 당선됐다. 올해 7월 1일이면 임기 4년 중 정확히 절반이 지난다.
바쁜 남편 vs. 더 바쁜 아내 이렇듯 숨가쁜 인생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그가 현재 나침반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디자인. 공직에 몸담은 바 결코 없는 프레시맨 공무원이, 그 시작이 어디이고 끝도 알 수 없는 ‘문화’와 ‘디자인’을 정책의 화두로 삼게 된 용기는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오히려 공직자 경험이 전무했기에 엄두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공공기관의 공무원 시스템에서 힘들고 어려운 것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보다는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을 헤아리게 됩니다. 누군가 묻더군요, 서울시장 임기 동안 이루어낼 오세훈의 청계천은 무엇이냐고. 지금 당장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망은 그닥 없습니다. 임기를 마칠 때 그리운 사람,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는 사람이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오세훈의 청계천은 무엇이냐고요? 청계천이 서울시 한복판을 흐르듯, 서울시민의 마음에 문화적 정서가 흐르도록 서울의 일상을 디자인하겠다는 말로 그 답을 채우고 싶습니다.”
그 용기의 정체가 그렇다 해도 ‘디자인’에 대한 그의 확신과 신념은 어느 세월에 그렇게 다져진 것일까. 서울시장 취임 순간부터 태생이 디자이너인 듯 디자인 철학을 펼치는 그는 과연 언제부터, 어찌하여 디자인 개념을 꿰뚫게 된 것일까. “제가 제일 신이 날 때가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 요즘 제일 신이 날 때가 서울시가 이루어놓은 것을 자랑할 때예요. 원래 새로운 것을 빨리 배우는 편이에요. 디자인은 사실, 마음먹고 공부를 한 것이지요. 국회의원 시절 각국의 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들은 왜 이렇게 잘사나’ 싶더라고요. 가만 지켜보니 디자인이 관건이었어요. 이거다 싶었지요,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지요.” “철이 든 남자는 사흘을 못 봤을 때 무엇이든 달라져 있다고 하더군요. 새로운 경험이 그 사람을 어떻게든 변화시킨다는 것인데, 그 말이 맞다면 그동안 저에게도 많은 변화와 깨우침이 생겼겠지요.”
‘시장의 아내’라는 자리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송현옥 씨는 ‘예전보다 많이 조심스러워졌다’는 답으로 말을 아낀다. 최근 연극 무대 연출로 서울시장인 남편보다도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오세훈 시장의 작은 원망이 있었다.
“시정에 바쁜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제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자신의 일에 열심인 것은 남편에게 배운 것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게 저니까요”라는 말엔 다소 힘이 들어가 있다.
아내 송현옥 씨 역시 그에게는 생각의 변화, 인생의 변수를 만드는 이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얼마 전 연극 <폭풍의 언덕>을 연출, 무대에 올린 프로페셔널 연출가이기도 하다. 무용을 하는 큰딸 주원 씨가 이 무대에 함께 등장,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나 대학 동기동창 동갑내기로 1985년 결혼한 이들은 낼모레면 결혼 전 부모 슬하에서 산 것보다 어느덧 더 많은 세월을 같이하게 된다. 연애시절부터 계산을 꼽아보면 두 사람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게 함께해왔기에, 함께 어른이 되었고 함께 변화했고 함께 꿈을 꾸고 있다. 아내는 남편을 시정을 펼치느라 주말도 없는 ‘바쁜 남편’이라 설명하고 남편은 아내를 학생 가르치랴, 무대 연출하랴 밤낮도 구분 없는 ‘더 바쁜 아내’라 소개한다. 이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묻자, 송현옥 씨는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어질 때, 누군가에게 배려받았을 때’라며 눈으로 웃고 오세훈 시장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 실현되었을 때’라며 입으로 웃는다. 아내 송현옥 씨는 남편과 ‘토론이 될 때’ 역시 행복한 순간이라 덧붙인다. 다른 의견, 미처 몰랐던 생각을 토론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느끼는 것이 많고 아내는 남편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고.
인터뷰 도중 이들 부부의 짧은 토론이 발생했다. 서울시장 공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장 공관(현재는 1981년부터 시장공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혜화동에 위치. 1959년부터 1979년까지는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했다.)이 한옥이라면 외국 손님들을 맞이할 때 더 깊은 인상을 만들 수 있어 좋을 듯하다고 말하자 송현옥 씨는 외국에 있는 공관이라면 모를까, 서울에 있는 공관이 한옥일 필요는 없지 않냐며 서울의 인상을 꼭 전통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반대편에 선다. 서로 다른 집을 그리는 듯하더니만 이내 ‘그렇다면 가장 서울다운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공통 화제를 대화의 소실점으로 찾는다. 때론 팽팽하고 어느덧 느슨해지는 이 둘 사이의 공기가 시장 공관에서 대접받은 카푸치노의 고운 거품을 닮았다.
이들 부부는 <행복이 가득한 집>과 인연이 깊다. 오세훈 시장의 변호사 시절, 함께 1997년 7월호 <행복> 표지모델로 등장했던 것. 당시의 사진을 선물로 건네자 “그때만 해도 주름이 덜했네”라며 반가워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들 부부에겐 제법 큰 변화들이 생겨났다. 앞으로 10년 후 모습이 궁금하다 했더니 송현옥 씨가 먼저 답한다. “지금보다 좀 더 주름살이 생길 테지만,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행동하고, 여전히 꿈을 꾸겠지요.” 오세훈 시장이 꾸고 있는 꿈은 과연 무엇일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외는 그의 애송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성공이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신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건강한 아이를 낳든 /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그가 꿈꾸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다. 그는 지금 서울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서울이 행복해지기를 꿈꾸고 있다. 이제 임기 중 꼬박 절반을 달려왔다. 전반전이 그러했든 후반전 역시도 환호와 야유는 공존할 게다. 운동장을 뛰고 있는 선수들에겐 관중들의 박수 세례와 비난 공세는 피할 수 없는 공기와도 같은 운명이므로. 뛰는 선수가 후반전에 전의를 더욱 불태우듯 관중 역시도 후반전에 거는 기대가 만만치 않다. 전반전 스코어가 좋았으면 좋은 대로, 맥을 못추었으면 더욱더. 호각 소리와 함께 서울시 디자인, 후반전이 시작된다.
취재 후기 아무래도 혜화동 시장 공관 마당에서 마신 카푸치노 얘기를 해야겠다. ‘얼마 전 아내가 카푸치노 기계를 사 왔다’며 오세훈 시장이 커피를 권했다. 부드러운 카푸치노 덕분일까, ‘공직자’와의 대화가 기대 이상의 윤기를 띠게 된다. 서울을 문화의 도시로 디자인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다만 문화와 디자인에 대해서 마음먹고 공부한 뒤에 갑자기 생겨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이 카푸치노 거품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생겨난다. 일상의 작은 순간을 디자인할 줄 아는 이였기에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쁨을 아는 이였기에, 자연스레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서울을 디자인하겠다 나선 것은 아닐까. 볕이 유난히 좋았나 보다. 카푸치노 한 잔에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