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충남 아산 곡교천에서 열린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에서 최형국 씨가 조선시대 무과 시험 과목 중 하나인 마상무예를 시연하고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騎射 장면인데, 이때는 일반 각궁보다 작은 동개궁이라는 작은 활을 사용한다. 이는 말 위에서 자유롭게 활을 쏘기 위함이다. 화살은 시복이라는 부착용 화살집을 이용해 고정했다
조선시대 군사 무예인 ‘무예 24기’를 몸으로 수련하면서 조선 무예사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쓴 최형국 씨.
문무겸전의 이 무예인은 말한다. 正한 칼을 든 손에는 溫의 마음이 서려 있어야 한다고, 칼을 든 자는 세상의 모든 목숨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한 칼을 놀려야 한다고. 전투와 폭력을 연구하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평화학을 전공하는 아내와 함께 산다.
1 두 개의 검을 들고 구사하는 검법인 ‘쌍검’.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져 좁은 공간에서 그 위력이 배가된다.
2 쌍검을 구사하는 최형국 씨.
3 말 위에서 전후좌우로 창을 휘둘러 적을 찌르는 기법인 기창. 조선 초기부터 무과 시험의 주요한 과목이었다.
칼을 빼자 햇빛이 튕겨 나간다. 아찔한 칼 놀림 뒤로 활이 날아든다. 바투 당긴 줄을 튕겨, 시간 사이로 정과 동을 스미게 하는 활. 그야말로 칼과 활이 벌이는 춤 한 마당이다.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에서 조선시대 무과 시험이 재현되고 있었다. 무예 24기 보존회의 시범단장 최형국 씨가 마상쌍검(말 위에서 검 두 개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적을 제압하고 단원들이 쌍수도(길고 큰 칼을 쓰는 검법)를 선보였다. 무예 24기, 조선의 최정예 ‘장용영’ 무사들(드라마 <이산>에서도 막강 활약했던)이 익혔던 군사 무예가 아산 곡교천 들판으로 시공 이동해 펼쳐진 것이다.
무예 24기는 정조 시대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로, 본국검·제독검·쌍수도 등 검법 여덟 가지, 곤방·기창·월도 등 창법 열 가지, 마상쌍검·마상월도·격구 등 마상 무예 여섯 가지를 합해 ‘무예 24기’라 부른다. 구한말 구식 군대가 해체될 때까지 조선의 관군들이 익혔던 군사 무예이자 의병장들의 호국 무예였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 동작은 1천26가지나 될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호쾌하고 장중한 멋을 지녔다. “정조대왕은 하루에 활 3천 발을 쏘는 명궁일 정도로 무예를 사랑했지요. 강력한 왕권을 세우기 위해 실학자 이
덕무, 박제가, 백동수에게 조선·중국·일본 3국 무예의 정수를 뽑아내도록 했습니다. 그걸 우리 체질·기후 ·풍토·지형에 맞게 체계화해 <무예도보통지>에 담았고, 이것이 호국 무예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조대왕같은 조상을 둔 것이 자랑스럽지요.” 이 젊은 무예인의 눈빛 속에는 뜨거운 단심이 담겨 있다.
4 수원 화성에서 검법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최형국 씨. 수원 화성은 조선의 최정예 장용영 무사들이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24기를 연마했던, 한국 무예의 성지다.
5 맨손으로 하는 무예인 권법 시연을 위해 준비 중이다.
최형국 씨는 ‘무예 24기’를 치열하게 수련하면서 그 보존 모임을 10년 가까이 꾸려오고 있다. 문관들이 남겼기에 몸의 움직임보다 진법 같은 이론 위주로 돼 있는 무예 24기를 몸의 무예로 만들기 위해 15년째 몸으로 수련 중이다. 조선 후기의 무예사를 주제로 박사 논문도 썼다. 곰팡내 나도록 고서를 뒤져 조선시대 무과 시험을 고증해냈다. 역사 무예를 소재로 한 축제극이나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 공연을 연출하기도 했다. 죽은 역사가 아니라 늘 생동하는 역사를 궁구하는 그는 문무예를 아우르는 괴짜 실학자다. 고등학교 시절 허릿병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무예는 허릿병뿐만 아니라 작은 몸피에 대한 그의 콤플렉스도 잠재워줬다.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목욕하며 지리산 능선을 죽기 직전까지 달리고, 대밭의 대나무가 남아나지 않도록 진검 들고 베고 찔렀다. 한 달 정도 산속에서 무예를 익히다 내려오면 눈빛의 독기(호랑이 눈처럼 야생과 자연의 정기로 가득한)가 빠지는 데 한 달이 걸릴 정도였다. 그렇게 수련하며 배운 건 전투 본능, 기예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깨달음이다. “벨 수 없으면 살릴 수도 없다.” “칼은 본디 태생부터 누군가를 살殺하기 위해 만든 도구다. 쓸데없이 살인검이니 활인검을 논하기 전에 네 몸, 네 칼부터 먼저 철저하게 만들어라.” “베고 안 베고는 네 칼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결정하니 네 마음이 칼과 같도록 수련하라. 그것이 검법이다.” 그가 잠언처럼 읊조리는 말에는 그 깨달음이 붉게 담겨 있다.
6 조선시대 유물로 남겨진 투구 장식. 물고기 가죽으로 외곽 틀을 감싸고 그 위에 용무늬와 봉황 문양을 올렸다.
7 최형국씨는 무예를 수련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군제사와 무예사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쓴 문무겸전의 괴짜 실학자다.
8 그의 손등에서 수련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무예 24기는 단순히 호신술이 아니라 칼과 창을 쓰고 말을 타야 하는 군사 무예이기 때문에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 한데 신기하게도 풍물 하는 이들이 빨리 배운다고 한다. 무예 24기와 풍물이 모두 3박자라는 우리 리듬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검술에서 기본이 되는 보법을 가장 먼저 익히기 때문에 흐트러진 자세도 교정된다. 칼창·월도·협도처럼 위험한 무기를 사용하는 무예라 집중력 향상에도 아주 좋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무예 24기의 가장 훌륭한 덕목은 정신 함양이다. “인간은 누구나 전투해야만 살 수 있는 본능을 갖고 태어나지요.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예 24기 속에 담겨 있습니다. 본질적인 투쟁 의지를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무기를 쓰다 보면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알게 됩니다. 칼의 위력, 무서움을 알게 되기 때문에 평화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평화학을 전공하는 아내와 살고 있다.
무예인이 갖춰야 할 품성 중 제일은 정正과 온溫이라고 한다. 正 자 하나 가슴에 새겨놓고 서릿발 차가운 칼을 들더라도 세상의 모든 목숨을 가엾이 여기고 살피는 것. 이것이 무예인의 마음일 게다. ‘접촉’이 아닌 ‘접속’하는 시대에,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몸과 몸을 부대끼며 溫의 마음으로 正한 한 칼을 베는 무예인.
그가 꿈꾸는 것도 바로 이런 삶이리라. 모든 무예인의 꿈이 이러하리라. 얼마 전 딸아이를 얻은 그는 “칼이 사랑일 수도 있다”고 깨닫게 됐다.
9 무예 24기의 바탕이 되는 <무예도보통지>.
10 무예 24기 보존회 시범단원들.
11 무예 24기 보존회 전수관인 ‘조선검’에는 과거에 장용영 군사들이 쓰던 무기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사서를 바탕으로 복원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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