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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들기]섬세한 남자 구동조 씨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0세를 넘겼어도 난 나비인가 봐
늘 시간 싸움에 시달리는 예민한 디자이너가 오십 줄에 들어서 할리 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했다. 엔진이 두근두근거리는 ‘철마’와 함께 주말마다 훌쩍 떠나기를 11년째, 이제 61세다. 안정된 직장을 나와 디자인을 통한 어린이 창의력 교육에 나설 용기도, 그가 일상이라는 중력에서 자꾸 벗어나는 훈련을 하면서 키워졌다. 모터사이클로 연 2막의 드라마를 그의 구수한 입담을 살린 고백체로 듣는다.

2막 1장 장년의 사내 새 사랑에 빠지다
나는 할리 데이비슨과 한 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1995년 친구와 승용차로 미국 동부를 일주하다가 잠시 휴게소에 멈췄을 때다. 모터사이클 족 20여 명이 서 있었다. ‘와, 멋지다!’ 가죽으로 된 재킷과 하의를 갖춰 입고 팔에는 문신을 한, 완벽한 히피 복장을 하고 우람한 할리 데이비슨 옆에 서 있는 그들은 압도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그들에게 말을 걸었더니 웬걸, 대부분 뉴욕의 증권맨이었고 몇몇은 의사였다. 월가의 화이트 칼라들이 주말마다 이렇게 ‘또 다른 나’로 변신해서 일주를 한단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할리 데이비슨 숍에 들락거렸다. 그러나 당장 모터사이클을 살 수는 없었다. 결국 디자인이 섹시하게 잘빠진 ‘부츠’ 한 켤레와 모자, 상의를 사 가지고 한국으로 왔다. 장롱 안에 고이 모셨다. 옷장 문을 열 때마다 “나는 라이더가 될 거야”라고 되뇌었다. 장비부터 하나씩 갖추며 스스로를 서서히 ‘바이크 족’의 마인드로 물들여갔다.

지독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인 양 모터사이클을 갈구했다. 우선 면허부터 따기로 했다. 당시엔 용량이 큰 모터사이클 면허 따기는 무척 까다로워서 네 번의 시도 끝에 붙었다. 이제 매일 충무로 모터사이클 숍들로 ‘출근’했다. 그러자 슬슬 아내와 장모님이 긴장했다! 부츠 한 켤레 살 때까지만 해도 ‘저러다 관두려니’ 했는데 모터사이클을 산다고 하니까, 처남이며 주위 친지들을 동원해 나를 만류하려 했다. 하긴 왜 아니겠는가, 늙어가는 마당에 품위 없지, 무엇보다 ‘위험한 취미’로 비쳐지니 말이다.

2막 2장 일을 저지르다
동덕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라 월급통장을 쥐고 있는 아내가 모터사이클을 사는 데 돈을 보태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저지르지 않으면 어떤 모험도 강행할 수 없는 법이다. 경리과로 가서 ‘교원공제회’를 통해 대출을 받아 결국 사고 말았다. 나의 첫 모터사이클인 ‘야마하 로열 스타’! 50세를 기념해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엔진 소리가 할리 데이비슨과 비슷했으며, 무엇보다 디자인에 반해서 구입했다. 그런데 막상 이놈을 끌고 도로로 나서려니 겁이 덜컥 났다. 연습할 때는 낡은 모터사이클을 탔으니 부담이 없었지만, 고르고 골라 손에 넣은 반짝반짝한 애마를 타고 나올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간이 충분히 커질 때까지 한 달 동안 숍에 보관해두고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으로 로열 스타를 몰고 돌아오던 날. 집 앞까지는 무사히 당도했는데,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커브 내리막길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내와 어머니가 거기 있었다. “아이고 날 죽여요.” 난리가 났다. 기겁하는 두 여인을 안심시키느라 진땀 뺐다.


2막 3장 세 번째 애마와 함께 점입가경
야마하 로열 스타는 디자인은 좋지만, 기능 면에서 순발력과 코너링(회전)할 때의 유연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얼마 뒤에 정든 로열 스타를 팔고 두 번째 애마 ‘발퀴리’를 만났다. 속도감이 훨씬 좋고 순발력이 뛰어난 기종이다. 대신 장거리를 달리기는 좀 피곤하긴 하지만. 멀쩡한 새 발퀴리를 구입하자마자 분해해서 도색을 새로 했다. 기성품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황금색 발퀴리’가 탄생했다. 도로를 달리면 바이크 족들이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폼생폼사’는 허영이 아니라 솔직한 자기 표현의 발로임을 실감했다.

현재는 발퀴리와 함께 할리 데이비슨 울트라 클래식도 가지고 있다. 뭇 사내들의 로망인 할리 데이비슨은 ‘생명이 있는 철마’다. ‘두구두둥 두구두둥 두구둥 둥둥’. 엔진 소리는 심장 박동과 닮았다. 몸을 차체에 바짝 붙이면 전율이 그대로 전해진다. 사실 할리 데이비슨 울트라 클래식을 타려면 신장 176cm에 체중 75kg 이상 되어야 한다고 매뉴얼에 나와 있다. 그러나 나는 키 167cm에 체중 55kg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술을 연마하는 데 무진 애썼다. 덕분에 나이에 비해 기술이 출중한 편이다.

주위의 만류에도 모터사이클에 빠졌던 건 왜일까? 아마도 기업 CI 등을 만들던 전업 디자이너 시절부터 섬세하고 정밀한 작업에 몰두했고, 교수가 된 뒤에도 기획을 맡느라 촉수가 한껏 복잡한 채로 살았기에 자석의 양극처럼 터프한 취미에 이끌린 게 아닐까? 심장 박동 같은 엔진 소리를 느끼며 바람을 가르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스트레스? 남아 있을 리 없다.


2막 4장 긴 머리 휘날리는 아가씨를 태우다
함께 라이딩하는 동호회는 나처럼 60대 전후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말만 되면 속초에서 점심 먹고 당일에 돌아오는 코스부터 전국을 일주하는 2박3일 여행까지 틈만 나면 달렸다. 몇 년 동안 내가 다닌 도로를 지도에 표시하니 거미줄이다. ‘국토가 참 작긴 작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토가 좁으니 자라나는 어린이의 생각을 키워서, 상상력으로 큰 세상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지식만 외워서는 글로벌 시대에 넓게 뻗어나가는 데 한계가 많다. 그래서 어린이 창의력 교육의 장을 열기로 결심했다. 21년 동안 몸담았던 교수직을 6년 전 미련 없이 버리고 ‘블루닷 디자인 영재 교육 개발원(02-583-8855, www.ibluedot.co.kr)’을 열었다.

할리 데이비슨에 ‘퀸카’를 태운 적도 있다. 6년 전, 대학생이었던 큰딸을 태우고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진해 벚꽃축제에 들러 남해, 거제, 마산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두 남녀가 할리 데이비슨에서 내려 헬멧을 벗자 하나는 은발의 장년 사내요, 또 하나는 꽃다운 아가씨였으니 주위에서 수군거렸다. 대강 “영계 꼬셔서 데려왔구나” 하는 말이었다. 속으로 웃었다.

아내를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결사반대하던 아내를 ‘일단 한 번만 타봐라’고 꼬신 뒤, 그날 바로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 원주까지 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적막한 데 세우고 차 한잔 했다. 아내 왈 “생각보다는 상쾌하네!” 아내는 바람을 맛본 거다. 자동차 드라이브보다 경치도 훨씬 실감난다. 요즘에는 달리는 도중에 헬멧에 장착된 무전기로 아내와 대화한다. 거실에 둘이 오도카니 앉아 있을 때는 아무 이야기도 안 하는데,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에는 내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끝이 없다.

그리고 잡힐 것 같은 3막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부부 동반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뒤 이런 기행문을 써서 돌렸다. ‘나는 오늘 신사동 백구두 같은 지극히 신파조의 기행문을 써야지. 벌써 무자년 새해를 맞으려는데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아. 가는 세월 어찌할꼬, 되돌릴 수 없는 세월 앞에 못내 아쉬워 가슴을 도닥인다. 나이 60세를 넘겼어도 나는 아직 나비인가 봐. (중략)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여행이었다.’

언젠가 정말 나비가 될 것 같다. 장차 기력이 달려서 할리 데이비슨을 타지 못하게 되면 글라이더 조정 자격증을 딸 것이므로. 글라이더는 물리적인 힘을 덜 쓰고 핸들로만 조정할 수 있는 운동이다. 아, 바람 부는 대로 가벼이 날고 싶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