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씨의 하마 시리즈는 언뜻 보기에는 색감과 구도가 점잖고 차분한 한국화다. 그러나 모티프를 찬찬히 짚어보면 작품이 사뭇 초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람에게 가장 위협적인 동물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하마를 정숙한 여인네들이 부릴 정도로 유순하게 묘사했다. 몸무게가 4톤 정도 되는 육중한 초식 동물 하마가 범을 쫓아 껑충껑충 뛰기도 한다. 또 하마와 성장盛粧한 여인의 만남, 하마에 얼룩무늬를 입힌 점 등 어울리지 않을 법한 모티프를 결합시켰다. 그가 하마를 알아가면서 마주한 반전의 묘미를 작품에 실은 것이다.
하마가 있을 자리에 윤기 나고 쭉 뻗은 준마를 데려오면 낯익은 풍속화다. ‘하마河馬’를 풀이하면 ‘강에 사는 말’로, 중국인들은 아프리카 동물인 하마가 말을 닮았다고 여겨 이렇게 명명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말 대신 하마가 등장한 장면이 엉뚱하지만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초원을 뒹굴던 그 하마 같지 않고 말이나 소처럼 정감 있는 동물 같다.
<행복> 12월호 표지 작품 ‘하마취홍河馬醉紅’에서 작가의 애정을 듬뿍 먹고 섬세한 감수성을 부여받은 하마는 꽃에, 그리고 여인네들의 향기에 취한다. 어디에서 노닐고 있으며 어딜 향해 가는지 모르겠다. 다만 큰 나무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꽃과 열매뿐 아니라 산짐승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어 꼭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로 풍요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넉넉한 터전에 나비와 새가 날아들고, 호랑이도 넘나듭니다.” 그래서 나무 한 그루가 끝을 알 수 없는 숲처럼 느껴진다.
(위쪽) <행복> 12월호 표지를 빛낸 이유진 작가의 ‘하마취홍’(2000, 한지에 분채).
작가는 그 나무에 검은색을 입혔다. “제게 검은색은 가장 화려하며 빛이 나는 색입니다. 신비로우면서 풍요로운 색이지요.” 검은색을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르다. 검은색에 대해 오랫동안 고집스러운 애정을 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학생일 때부터 먹으로 농담을 표현하는 작업이 공간감과 깊이감을 느끼게 해주어서 먹색에 매료되었습니다. 검은색을 쓰면 시원한 기분이었어요.” 이유진 씨는 주로 분채와 먹을 함께 써서 검은색을 낸다. 분채로 낸 검은색이 참 강렬해서 좋아하지만, 먹이 곁들여지지 않고 분채로만 칠하면 갑갑하기 때문이다. 하마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작품 ‘하마수연도’에서도 무수한 생명이 탄생하는 시초인 연못을 온통 새카맣게 표현했다. 까맣지만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고 신비롭다. 작가 스스로도 미처 죄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의 내면 세계와 잠재력이 그러하듯.
앞으로 탄생할 이유진 작가의 작품에서는 한동안 하마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마처럼 그에게 폭발적인 상상력을 태동하게 만들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갈 예정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풍요로움을 발견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엔 어쩌면 낯선 하마를 길들이는 대신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무언가에서 새로운 의미를 조망하는 작업에 열중할지도 모르겠다.
(왼쪽) ‘하마몽유도’(2007), 한지에 분채.
(오른쪽) ’하마수연도’(2006), 한지에 분채.
동양화가 이유진 씨는 올해 첫 개인전을 통해 데뷔했다. 1979년에 태어난 그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열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첫 개인전인 <하마인연설화>는 지난봄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하마가 있을 자리에 윤기 나고 쭉 뻗은 준마를 데려오면 낯익은 풍속화다. ‘하마河馬’를 풀이하면 ‘강에 사는 말’로, 중국인들은 아프리카 동물인 하마가 말을 닮았다고 여겨 이렇게 명명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말 대신 하마가 등장한 장면이 엉뚱하지만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초원을 뒹굴던 그 하마 같지 않고 말이나 소처럼 정감 있는 동물 같다.
<행복> 12월호 표지 작품 ‘하마취홍河馬醉紅’에서 작가의 애정을 듬뿍 먹고 섬세한 감수성을 부여받은 하마는 꽃에, 그리고 여인네들의 향기에 취한다. 어디에서 노닐고 있으며 어딜 향해 가는지 모르겠다. 다만 큰 나무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꽃과 열매뿐 아니라 산짐승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어 꼭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로 풍요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넉넉한 터전에 나비와 새가 날아들고, 호랑이도 넘나듭니다.” 그래서 나무 한 그루가 끝을 알 수 없는 숲처럼 느껴진다.
(위쪽) <행복> 12월호 표지를 빛낸 이유진 작가의 ‘하마취홍’(2000, 한지에 분채).
작가는 그 나무에 검은색을 입혔다. “제게 검은색은 가장 화려하며 빛이 나는 색입니다. 신비로우면서 풍요로운 색이지요.” 검은색을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르다. 검은색에 대해 오랫동안 고집스러운 애정을 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학생일 때부터 먹으로 농담을 표현하는 작업이 공간감과 깊이감을 느끼게 해주어서 먹색에 매료되었습니다. 검은색을 쓰면 시원한 기분이었어요.” 이유진 씨는 주로 분채와 먹을 함께 써서 검은색을 낸다. 분채로 낸 검은색이 참 강렬해서 좋아하지만, 먹이 곁들여지지 않고 분채로만 칠하면 갑갑하기 때문이다. 하마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작품 ‘하마수연도’에서도 무수한 생명이 탄생하는 시초인 연못을 온통 새카맣게 표현했다. 까맣지만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고 신비롭다. 작가 스스로도 미처 죄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의 내면 세계와 잠재력이 그러하듯.
앞으로 탄생할 이유진 작가의 작품에서는 한동안 하마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마처럼 그에게 폭발적인 상상력을 태동하게 만들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갈 예정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풍요로움을 발견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엔 어쩌면 낯선 하마를 길들이는 대신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무언가에서 새로운 의미를 조망하는 작업에 열중할지도 모르겠다.
(왼쪽) ‘하마몽유도’(2007), 한지에 분채.
(오른쪽) ’하마수연도’(2006), 한지에 분채.
동양화가 이유진 씨는 올해 첫 개인전을 통해 데뷔했다. 1979년에 태어난 그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열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첫 개인전인 <하마인연설화>는 지난봄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