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저녁, 잠실 한강공원은 들뜬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에르메스의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 쇼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한강을 무대로 펼치는 이번 컬렉션의 콘셉트는 ‘에르메스 보드워크Boardwalk(해변 도시와 휴양지의 나무 덱으로 만든 산책로)’.도심과 자연이 공존하는 한강 변에서 진행한 에르메스 보드워크 쇼. 끝없이 움직이는 바다의 이미지로 둘러싸인 런웨이가 인상적이다. ©︎KYUNGSUB SHIN145
이번 쇼는 멘즈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Véronique Nichanian과 악셀 뒤마Axel Dumas 에르메스 회장까지 총출동했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파리 본쇼 이후 전 세계 한 곳에서만 진행하는 쇼에 서울이 낙점된 것만으로도 K-컬처의 위상이 높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개최되는 쇼는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데, ‘바다와 도시를 아우르는 남성’을 테마로 하는 컬렉션을 보여주기에 화려한 스카이라인이 펼쳐지는 한강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다채로운 공연과 파티가 이어진 백스테이지 시노그래피. 한강 변에 설치한 거대한 회색 건물 안에는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보드워크를 지그재그로 이은 런웨이가 설치되었다. 쇼가 시작되자 48명의 모델은 보드워크를 자유로이 오르내리며 한강의 푸른빛을 닮은 컬러 팔레트를 펼쳐 보였다. 스카프 칼라가 달린 셔츠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다 거친 승마 드로잉이 램스킨 스웨트셔츠 위를 가로질러 달리고, 섬세하게 수놓은 자수 꽃이 재킷 위로 흐드러지기도 하며, 물결치는 강처럼 또 나부끼는 바람처럼 가볍고 우아한 룩들이 등장했다.
터킨 블루, 오션, 네이비, 미스트 등 온통 바다 색상으로 펼쳐진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 ©DANIEL SHEA기존 컬렉션 외에 아홉 개 서울 에디션 익스클루시브 룩을 선보인 것이 이번 쇼의 특징. 모델이 아닌 이들이 펼친 캣워크는 더욱 흥미로웠다. 배우 차승원, 펜싱 선수 오상욱, 래퍼 빈지노, 영화 및 CF 감독 신우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인물이 런웨이에 오른 것은 단순히 패션을 넘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감도를 전달하기 위한 브랜드의 철학이 담긴 명민한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쇼가 끝나자 모델들이 걸어 나오는 백스테이지는 순식간에 파티장 입구로 변모했다. 딥 블루 컬러의 배경에 닻과 사슬, 잠수경 등을 설치해 마치 바닷속에 들어온 듯하던 무대에서는 다채로운 액티비티, 밴드 및 디제잉 공연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이번 서울 쇼에서 처음 선보이는 아홉 벌의 서울 에디션 익스클루시브 룩. ©︎HYUK KIM옷감이 깨어나고 패턴이 진동하며 서로 다른 소재들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룩이 탄생한다. 자연과 도심, 장인 정신과 스타일이 우아하게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준 에르메스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 이제 패션, 음악, 스포츠, 예술,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진 서울의 새로운 물결을 즐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