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의 대가 다비드 베가 재해석한 트레저 아일랜드. 소설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가 망원경산에 올라 상상의 세계를 조망 중이다.
“유용함은 인간을 억압한다.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쓸모없는 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를 밝힌 김현 선생의 글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문학은 위대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상상력의 세계, 그 무용無用의 경지에서 서사를 끌어내 컬렉션으로 완성해온 반클리프 아펠. 일찍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샤를 페로의 <당나귀 가죽>, 그림 형제의 동화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위대한 문학작품에 경의를 표해왔다. “고전에는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이 깃든 강렬한 상징들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문화도, 성별도, 세대도 뛰어넘는 보편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메종의 CEO 캐서린 레니에의 이야기처럼 반클리프 아펠은 문학에서, 특히 고전에서 인간다움의 진수를 발견해왔다.
반클리프 아펠이 새로 선보인 트레저 아일랜드Treasure Island. 이름으로 가늠하듯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소설 <보물섬>에서 비롯한 ‘테마틱thematic’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다(무용, 문학 등 다양한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메종은 테마틱이란 이름을 붙여왔다). 메종의 디자이너, 장인, 스톤 전문가는 <보물섬>의 어떤 진귀함에 매료된 것일까?
소년이 삶을 항해하는 법
<보물섬>은 1881년 잡지 <영 포크스Young Falks>에 ‘선박 요리사’라는 제목으로 2년간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당시 가독 인구에 새로 편입한 중산층의 ‘읽을거리’ 탐닉 덕분에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영국 수상조차 밤새워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이 소설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의붓아들과 함께 한 ‘지도 그리기 놀이’에서 비롯했다. 스코틀랜드 태생이지만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프랑스·미국 등을 떠돌다 파리에서 만난 미국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그녀의 아들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여행과 방랑으로 획득한 정보(방위나 수심, 지형 등)를 의붓아들이 그린 지도 위에 덧붙이면서 <보물섬>은 시작되었다.
남루한 하숙집 소년 짐 호킨스가 어른들과 보물섬을 찾아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홀로 해적선을 차지하고 스스로를 ‘선장’이라 부르게 되는 모험기. 한 문장으로 갈음하기에 <보물섬>은 다층적이다. 호킨스 앞에는 두 세계가 있다. 하나는 의사이자 치안판사 리브시와 지주 트렐로니 등으로 대표되는 ‘신사’의 세계, 또 하나는 변절과 잔인무도함으로 무장한 존 실버 및 빌리 본즈로 대표되는 ‘해적’의 세계다. 그런데 두 세계는 단순한 선악의 잣대로 가를 수 없다. 선한 사람도 결국엔 욕망을 좇는다. 정의가 아닌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어른의 세계다. 선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도 않는다. 내내 밀리다가 겨우 승기를 잡는 식이다. 대표 악당인 존 실버는 벌을 받는 대신, 보물 한 줌을 챙겨 섬을 빠져나간다(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또 다른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떠올리면 그 세계관이 이해될 것이다). 그 혼미한 세계 속에서 소년 호킨스만은 주저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발적이고, 즉흥적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항해’한다. 눈에 보이는 보물을 발견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내면의 보물’, 즉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찾아 나선다.
트레저 아일랜드라는 서사시
이 매력적인 서사에 반클리프 아펠은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동양과 극동 지역의 문화, 머나먼 섬나라, 콜럼버스 이전 문화 등 그동안 메종에 영감을 불어넣은 원천을 떠올리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메종은 ‘트레저 아일랜드’라는 한 편의 서사시를 위해 세 개의 챕터를 구성했다. 자애로운 바다 생물과 육상 생물, 배 위에서의 생활, 꿈처럼 환상적인 섬, 대체 불가 매력의 해적 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세 개 챕터의 작품 중 포에트리의 정수라 할 만한 것만 골라 소개한다.
Chapter 1 바다에서 펼쳐지는 모험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돛대 꼭대기는 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대담한 해적들은 지평선을 향해 항로를 정하고 바다 너머로 뻗어나간다. 닻을 오르내리고, 거친 물결을 헤치고, 수평선을 넘나들며 경이로운 물고기들과 해저에 숨긴 보물을 만난다.
앙 오뜨 메르 네크리스
고대부터 내려오는 선원들의 매듭 기술을 재현했다. 짐 호킨스와 선원들의 여정을 메종만의 창의성과 기술로 구현한 것. 네크리스 또는 링으로 변형 가능하다. 로즈 골드, 옐로 골드, 화이트 골드, 55.34캐럿의 에메랄드 컷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피라트 존 클립
엉뚱한 발상과 위트라는 반클리프 아펠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 존 실버의 손동작, 물결치는 재킷 디테일, 머리 장식까지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모험의 열망과 보물을 발견하겠다는 집념까지 인물의 자세에 담아내기 위해 그린 왁스를 조각하는 복잡한 공정을 거쳤다. 세 가지 컬러의 골드, 루비 사파이어, 블랙 래커, 다이아몬드.
Chapter 2 섬의 탐험
“하늘을 배경으로 물결치듯 솟아오르는 광채의 존재를 발견했어요. 이 섬에서 남자가 활활 치솟는 불 앞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해적들은 꿈처럼 환상적 풍경이 펼쳐지는 섬의 해안에 도착한다. 그 섬의 황금빛 해변에는 고귀한 조개껍데기가, 보물을 숨긴 열대식물이 즐비하다.
코키야쥬 미스테리유 클립
표면에 버프톱 루비를 트래디셔널 미스터리 세팅으로 배치하고, 핑크 다이아몬드와 화이트 다이아몬드로 그러데이션 효과를 연출했다. 뒷면에는 화이트 골드로 조각한 페어리가 그린 컬러의 에메랄드를 들고 숨어 있다. 반클리프 아펠만의 메타포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팔미에 미스테리유 클립
야자수 옆 보물 상자 모티프를 보트, 태양 모티프로 교체 가능하다. <보물섬>의 스토리라인뿐 아니라 메종의 역사와 이번 컬렉션의 모든 챕터를 향한 경의를 담고 있다. 메종의 시그너처 기법인 트래디셔널 미스터리 세팅 기법으로 젬스톤을 세팅했다.
Chapter 3 트레저 헌터
“모닥불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쪽 구석에는 엄청난 금화와 사각형으로 쌓아 올린 금괴 더미가 보였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고, 또 히스파니올라호에 탔던 사람들 가운데 열일곱 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린트의 보물이었다.”
반클리프 아펠의 상상으로 탄생한 미지의 섬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4대 대륙에서 발견된 주얼리, 매혹적 컬러의 젬스톤, 정교하게 조각한 골드 장식 등 다양한 소재와 컬러가 이번 컬렉션에 방점을 찍는다.
카르트 오 트레저 클립
골드 소재로 돌돌 말아놓은 듯한 지도, 꼬임 처리한 태슬 두 개가 보물 탐험이라는 꿈을 금방이라도 실현해줄 것만 같다. 피스 중앙에 배치한 루비는 보물 상자가 숨겨진 장소를 암시한다. 옐로 골드, 로즈 골드, 루비, 다이아몬드.
코프르 프레시유 링
반지에 보물 상자의 윤곽과 디테일을 새겨 넣었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같은 전통적 프레셔스 스톤으로 존재감을 부여한 작품이다. 옐로 골드, 화이트 골드, 14.32캐럿의 쿠션 컷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다비드 베가 해석한 또 다른 보물섬
1959년 남프랑스 님 태생의 만화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다비드 베(David B.)는 메종과 협업해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 중 일부분을 그만의 해석으로 선보였다. 그는 프랑스의 ‘새로운 만화(nouvelle bande dessinee)’ 경향을 주도하는 리더로, 현대 프랑스 만화의 기념비적 작품 <발작>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작가다. 조르주 피샤르와 자크 타르디의 영향을 받은 독창적 흑백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번 컬렉션에서 다비드 베는 메종의 영감과 소설의 견고한 스토리라인을 신비로운 컬러 그림으로 재해석했다. 길들지 않은 자연, 모험심 가득한 등장인물을 디테일 가득한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구현한 것. ‘망원경산(The Spy-glass)’이라고 부르는 산에 올라 상상의 섬을 조망하는 호킨스의 모습, 인어를 비롯한 신비로운 바다 생명체들, 활활 치솟는 불 앞에 모여 앉은 해적 등이 꿈결 같은 그림으로 펼쳐진다.
- 커버 스토리 반클리프 아펠이 찾아낸 새로운 보물섬 Treasure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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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이라는 미지의 세계, 항해의 꿈, 해적이라는 해방의 존재…. 반클리프 아펠이 선보인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트레저 아일랜드’가 2월호 <행복> 표지를 장식했다. 메종 특유의 우아한 디자인과 장인 정신을 통해 완성한 상상력의 세계 속으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