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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제안 널리 이롭게, 전통도 새롭게 이새ISAE
자연 소재와 핸드메이드 기법으로 한국적 옷과 살림살이를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새가 20주년을 맞았다. 자연을 닮고, 자연을 담은 옷에서 시작한 그들의 활동은 건강한 식문화, 브랜드 가치를 품은 공간으로 확장하며 사람과 자연에 두루 이로운 의식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새한옥에서 만난 정경아 대표. 고즈넉한 한옥 곳곳에 목기와 액세서리, 옹기 등 이새의 제품이 자리한다. 위 선반의 인형은 오래된 건물의 계단 난간을 리사이클링해 만들었다.
이제 브랜드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존재다.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이 마음에 드는지에서 더 나아가 브랜드가 제품을 친환경적으로 제조하는지, 제조 과정에서 비윤리적 노동 행위는 없는지 살피고, 자신의 소비가 사회적·환경적·정치적으로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 때로는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구입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이새 또한 품질 좋은 제품만큼이나 라이프스타일의 본보기가 될 철학을 만들어가는 브랜드다. 이새는 자연에서 난 소재와 자연 염색, 지역의 전통 기법으로 옷과 살림 도구를 짓는다. 소재와 기법은 물론 전 제조 과정에서 친환경을 추구하며, 사람과 자연에 모두 친화적인 제품을 만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브랜드 철학을 삶에서 몸소 실천하는 정경아 대표가 있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이로움을 잇다’라는 이새의 슬로건도 같은 의미예요. 우리의 행위가 사람은 물론 생물, 자연까지 널리 이롭게 하기를 바라며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왼쪽 리사이클 소재와 자연 염색 기법으로 탄생한 이새의 의류. 소재의 질감과 색감을 살려 여유 있는 매무새로 디자인한다. 오른쪽 자연 재료에서 추출한 색을 입힌 직물들.

정경아 대표가 이러한 철학을 품은 것은 오래전,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당시 지도 교수님이 늘 강조한 것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그들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하는 것, 한국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무명이나 감물 염색 같은 전통 기법도 그때 처음 접했죠. 그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저는 그 이면에 자리한 철학에 더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자연과 내가 일치되는 물아일체의 정신이 생활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거든요. 가령 선조들은 설거지를 하면서 나온 뜨거운 물도 흙바닥에 함부로 버리지 않았어요. 흙 안에 사는 생물들이 다칠까 봐서요. 집을 지을 때도 본래 있던 나무를 베는 대신 피해서 건물을 세웠고요. 이 시대에도 필요한 정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생각은 졸업 후 한국 문화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더욱 구체화됐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지역 문화를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한국적 옷과 살림살이를 제안하는 브랜드 ‘잇빛’을 만들었고, 5년 후 재정비를 거쳐 지금의 ‘이새’를 론칭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이상 발효한 푸른 감의 즙을 내어 물을 들이고 햇빛에 말리면 사진과 같은 브라운색이 완성된다.
제주 커뮤니티 공간 흘에는 감물로 색을 입힌 침구를 준비했다.
현재 이새는 의류와 액세서리, 코스터나 침구 같은 라이프 상품의 세 가지 제품군으로 컬렉션을 선보인다. 모든 제품은 모시·무명·삼베 등 한국 전통 소재 또는 리넨이나 울처럼 동식물에서 얻은 원료로 만들고, 화학 염료 대신 감물·진흙·소금 등 자연 재료에서 추출한 색을 입힌다. 한국의 전통만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전통 자체보다 자연과 사람에게 모두 이로운 과정을 만드는 것에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랑이라는 뿌리 식물과 진흙으로 염색하는 방식은 중국에서 1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고, 이새의 시그너처 패브릭 중 하나인 잠다니는 베틀로 직물을 짜면서 패턴까지 완성하는 방글라데시의 직조 기법으로 짓는다. 청바지를 워싱할 때 물의 사용을 기존 대비 10%까지 줄여주는 오존 워싱, 항균 소취와 전자파 차단 및 정전기 방지 등의 기능을 갖춘 구리 섬유를 함께 방적한 특수 원사, 생활 방수와 오염에 강한 실리콘 코팅 등 신공법도 부지런히 접목하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 소재와 제품 개발을 위한 노력에 힘입어 2024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흘에서 푸른부엌 진여원 명인이 선보이는 다이닝 프로그램.
‘의’로 시작한 이새의 행보는 이제 ‘식’과 ‘주’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촌 ‘이새한옥’에서는 매일 점심 직원들에게 제철 식재료로 건강하게 지은 한 끼를 제공하고, 최근 제주에 문을 연 커뮤니티 공간 ‘흘’은 이새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간 안팎으로 보여준다. “침구나 커튼 등의 패브릭은 제주 감물 염색으로 제작했고, 제주 해녀로 오랫동안 토박이 음식을 연구하신 푸른부엌 진여원 명인(2024 행복작당 북촌 당시, 이새한옥에서 다이닝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의 음식을 저희가 만든 제주 옹기에 담아 맛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흘이 자리한 동네는 생태 마을로 지정될 만큼 고유한 문화를 잘 지키고 있어 근처 곶자왈의 동백 숲을 비롯한 자연과 역사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가장 제주다우며 이새다운 공간입니다.” 브랜드의 확장도 계속된다. 현재 이새는 컨템퍼러리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하이엔드 브랜드 ‘엄버 포스트파스트’, 전통의 본질을 미래의 빈티지 감성으로 재해석한 ‘소 레디투웨어SOH ready-to-wear’를 함께 운영한다. 놀라운 점은 소재의 뿌리는 하나라는 것.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렇게 이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의식주와 브랜드를 넘나들며 하나의 무브먼트가 되어가는 중이다. 자연과 더불어 이로운 생활까지 라이프스타일로 들일 기회가 여기에 있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원단을 코스터, 파우치 등 생활 소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R 프로젝트.
제주에서 나는 흙으로 만드는 제주 옹기. 유약을 바르지 않고 물과 흙으로만 만들어 숨 쉬는 옹기라 불린다.

 

Interview_ 이새 정경아 대표
과정까지 이로운 제품을 짓는 이새의 라이프 레시피

2025년은 이새 20주년, 이새의 원조 브랜드인 잇빛의 25주년을 맞는 해다.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며 정경아 대표와 나눈 이새의 더 깊은 이야기.

대표님이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이새의 핵심 철학은 무엇인가요?
이로운 물건은 결과물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도 모두 좋아야 해요. 유기농 제품이 농약을 쓰지 않아 내 몸에 좋은 것만이 아니라 땅을 황폐화하지 않기 때문에 더 친환경적인 것처럼요. 이새 제품도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재도, 염색을 비롯한 기법도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궁금합니다.
옷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많은 환경오염을 발생시켜요. 제조 과정에서 친환경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본질은 옷을 더 오래 입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좋은 소재를 쓰는 것, 몸에 닿는 안감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부자재에 신경 쓰는 것은 모두 이를 위함입니다. 전통 기법이 좋은 것은 자연 친화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지속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솥은 오래 쓰다 보면 내열 코팅이 벗겨지는데, 돌을 깎아 만든 곱돌 솥은 갈라지지만 않으면 평생 쓸 수 있어요. 감물로 염색한 패브릭은 자연스러운 멋도 있지만, 감의 탄닌 성분이 자외선을 차단해주고 항균 소취 효과를 높여줍니다. 오염에 강하면 자주 세탁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옷이 덜 망가지고, 더 오래 입게 되죠.

이로운 만큼 아름다워야 오래가는 패션업계에서는 디자인 또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디자인 디렉터로서 제품을 디자인할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고려하나요?
패션업계에서는 대부분 디자인을 하고 나서 소재를 고르는데, 저희는 소재를 보고 디자인을 해요. 소재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기능과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또한 옷은 사람이 몸에 걸치는 것이어서 오브제나 작품과는 달라요. 자연 소재의 본질에 맞게 몸을 구속하지 않는 디자인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으면서 보기에도 멋스러운 옷을 짓습니다.

앞으로 이새의 10년 후, 20년 후는 어땠으면 하나요?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면 해요. 더 나아가 우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전 세계에도 알려지길 바라요. 그럴 만한 가치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이새는 수많은 사람이 밑바탕부터 같은 마음으로 닦아내며 탄생한 결과예요. 이새를 매개로 함께 빛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 정경화 | 사진 이우경(인물) | 취재 협조 이새(02-763-6818)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