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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이콘 오, 나의 플랫 슈즈
플랫 슈즈의 매력을 단지 편안함이라고 일축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자극적인 조미료를 덜어낸 듯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은 감히 하이힐이 넘볼 수 없는 플랫 슈즈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그 모습도 각양각색,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에서나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으로 거듭난 플랫 슈즈는 지금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다.

 

1 레페토 플랫 슈즈의 제작 공정. 2 2017 페라가모 에미 발레리나 플랫 슈즈. 3 피에르 아르디의 뉴 슬링백 플랫 슈즈. 4 2017 S/S 에르메스 컬렉션. 5 브리지트 바르도는 레페토 플랫 슈즈를 신고 영화에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6, 7 프라다와 샤넬의 2017 S/S 런웨이. 8 페라가모가 오드리 헵번을 위해 만든 플랫 슈즈는 오드리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사랑받는다.

플랫 슈즈는 언제나 스타일리시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플랫 슈즈는 한순간도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적이 없다. 플랫 슈즈를 논할 때 ‘편안함’보다 ‘스타일’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오드리 헵번, 트위기, 케이트 모스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패션 아이콘들의 플랫 슈즈 사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그들의 스타일 속 플랫 슈즈는 사랑스럽고 우아하며 매우 시크하기까지 하다. 현재의 플랫 슈즈는 굽이 낮은 평평한 단화를 통칭해서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플랫 슈즈 하면 떠오르는 발레리나 플랫 슈즈는 18세기 중엽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무용수 카마르고가 신은 굽 없는 발레 슈즈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1956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에서 브리지트 바르도가 말괄량이 10대 역할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그녀가 신은 발레리나 플랫 슈즈 역시 대중적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로즈 레페토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이 빨간색 플랫 슈즈는 자유분방한 브리지트 바르도의 역할과 부합하며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산드리옹’이라는 이름으로 플랫 슈즈의 대명사처럼 기억된다. 불멸의 패션 아이콘인 오드리 헵번은 또 어떤가. 그녀가 헵번 룩의 상징인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플레어스커트,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사브리나 팬츠와 함께 매치한 신발이 바로 플랫 슈즈였다.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이 납작한 플랫 슈즈 대신 하이힐을 신었다면 사랑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앤 공주가 탄생했을까? 그다음 해 영화 <사브리나>에서 그녀가 신은 플랫 슈즈는 더욱 빛을 발한다. 발목까지 떨어지는 팬츠와 블랙 니트, 그리고 심플한 페라가모의 사브리나 플랫 슈즈는 그녀의 보디라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줬으며 세련된 룩을 완성시켰다. 이후 플랫 슈즈는 또 다른 패션계의 영원한 뮤즈 트위기 룩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이시한 쇼트커트에 걸리시한 미니 원피스, 그리고 굽 낮은 메리제인 플랫 슈즈는 트위기 룩에 정점을 찍었다. 현재 독보적 스타일 아이콘인 톱 모델 케이트 모스는 스키니 진과 헐렁한 티셔츠에 플랫 슈즈를 매치해 대충 걸친 듯한 시크한 룩을 전 세계에 유행시켰다. 아무렇게 입은 듯한 무심함 속에서 배어나는 자연스러운 시크함은 플랫 슈즈가 아니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편안하고 스포티한 애슬레저 룩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플랫 슈즈의 유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발레리나 플랫 슈즈 이외에도 옥스퍼드화, 에스파드리유 등 종류도 다양하며, 단지 굽이 없을 뿐이지 어떤 옷에도 매치하기 쉽다.


하이힐에서 발을 해방시키다
패리스 힐턴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테니스화보다 하이힐을 신고 더 잘 달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편 패션 저널리스트 해나 로셸은 자신은 하이힐을 잘 못 신는 사람이지만, 패션계에서 일을 시작할 때 하이힐을 신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하이힐을 신고 걷다 무수히 넘어지고, 발에 상처를 입는 경험을 반복하다 그녀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어떤 자리에서든 과감하게 플랫 슈즈를 신기로 말이다. 그녀는 이후 자신의 블로그 엔브로그닷컴(EnBrogue.com)을 통해 그날그날 신은 플랫 슈즈를 올리며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스타일만큼 편안함은 플랫 슈즈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아마 수많은 여성이 패리스 힐턴보다 해나 로셸의 경험에 더 큰 공감을 표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이힐의 잘빠진 실루엣, 아찔한 굽 높이가 선사하는 자신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또각또각 소리의 스틸레토 힐은 플랫 슈즈가 흉내 낼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하지만 발 앞부분으로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하이힐은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만큼 피로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여성의 척추와 발 모양을 변화시키는 하이힐을 과거 호흡곤란까지 일으킨 코르셋에 비유하면 너무 과한 걸까? 다행인 것은 최근 트렌드가 하이힐에서 플랫 슈즈로 이동한 것이다. 이제 포멀한 룩에도 플랫 슈즈는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하이힐에 혹사당하던 발이 활동성 뛰어난 플랫 슈즈 덕에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플랫 슈즈도 발 건강을 위한 완벽한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 다른 신발에 비해 바닥이 딱딱한 소재를 주로 사용하므로 신발 바닥이 받는 충격이 완화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로 전해져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2cm 정도 굽이 있거나 쿠션감이 있는 슈즈를 택하는 것이 발 건강을 위한 좋은 선택이다.


지금 유행의 최전선
한창 유행했던 프렌치 시크를 지나 미니멀리즘, 편안하고 스포티한 애슬레저 룩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플랫 슈즈의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봄・여름 런웨이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눈에 띄는데, 대표적으로 샤넬은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트위드를 바탕으로 경쾌하고 페미닌한 스포티 룩을 연출했다. 여기에 클래식한 샤넬의 플랫 슈즈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은 우아한 스포티 스타일을 제안한 것이다. 더불어 플랫 슈즈를 드레스와도 매치했으며, 걸을 때마다 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플랫 슈즈는 우아한 드레스와도 잘 어우러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연스럽고 럭셔리한 룩도 플랫 슈즈와 만나 절제된 미를 배가시킨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고급스러운 소재, 플랫 슈즈로 심플한 아름다움을 제안한 에르메스의 2017 봄・여름 룩을 참고하자. 플랫 슈즈가 가장 눈에 띈 컬렉션은 프라다다. 스포티한 투피스, 레트로 무드의 셔츠, 비즈 장식, 볼드한 패턴과 납작한 슈즈의 조합!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와 아이템이 어우러져 강력한 파워를 발산했다. 이 화려한 룩에서도 플랫 슈즈는 기죽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러버 소재의 슬리퍼, 퍼를 트리밍한 뮬 스타일, 앞코가 뾰족한 포인티 펌프스 스타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플랫 슈즈는 이제 스타일 자체다. 발레리나 플랫 슈즈 이외에도 바이거 부츠, 옥스퍼드화, 첼시 부츠, 에스파드리유 등 종류도 다양하며, 단지 굽이 없을 뿐이지 어떤 옷에도 제약 없이 매치하기 쉽다. 아직도 플랫 슈즈를 키가 크고 날씬한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인터뷰를 위해 만난 파티시에 유민주 씨는 옷으로 비율을 만들어 작은 키를 커버하고, 뮤지컬 배우 임혜영 씨는 작은 키 자체의 내추럴함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플랫 슈즈는 누구나 신을 수 있는, 스타일리시한 신발이다. 단지 하이힐에서 내려올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참고 도서 <슈즈 시크릿>(위즈덤 하우스)

글 김현정 사진 김규한 기자 어시스턴트 박현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