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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스토리] 가족의 이름으로, 페라가모적인 삶과 철학
페라가모 패밀리를 이끄는 세 명의 리더는 그들의 할아버지인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여전히 그들의 영감 속에 존재한다. 페라가모의 부인이자명예 회장을 맡고 있는 ‘완다’의 경영 50주년을 맞아 페라가모가의 삶과 철학 그리고 가족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어보았다.


1 집 안의 벽난로 앞에 선 제임스와 루이즈.
2 일 보로의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아침 식사를하고 있는 살바토레와 크리스틴.
3 디에고와 피오나 디 산 줄리아노, 그리고 세 딸들, 파비올라, 피아마, 자라.
4 1950년대 그가 디자인한 많은 슈즈 중 하나를 들고 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쌍둥이 형제인 살바토레 Salvatore와 제임스 페라가모 James Ferragamo 그리고 그들의 사촌인 디에고 디 산 줄리아노 Diegodo San Guiliano를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임무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의 할아버지인 살바토레가 80년 전에 시작한 일을 계속이어나가는 것이다. 페라가모라는 이름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럭셔리’의 대명사로 간주되었으며, 피렌체를 기반으로 하는 이 가족 회사는 여전히 전세계의 셀러브리티가 탐내는 슈즈를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은 물론 액세서리 라인까지 선보이고 있다. 명품 브랜드를 한 단계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하나의 아이템에 몰입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터.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경우에는 그 제품이 슈즈인데, 다행히 제임스 페라가모가 신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숍에서 세일즈어시스턴트로 잠시 근무하다가 삭스 피프스 애버뉴 Saks Fifth Avenue에서 남성용 스포츠웨어 바이어로 일하는 등 12년 동안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승진을 계속해 서른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페라가모 왕국의 높은 자리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그는 구두 디자이너인 할아버지처럼 늘 신발에 매료되었다고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제임스는 현재 살바토레 페라가모 그룹의 회장인 페루치오 Ferruccio(살바토레와 완다 부부의 큰아들)의 여섯아들 중 첫째다. 여성 가죽 제품 디렉터로 가죽으로 만드는 여성용 가방, 신발, 액세서리 등의 제품을 총괄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페라가모가 나아갈 방향에 보다 큰 그림을 제시한다.

(왼쪽) 왼쪽 제임스와 루이즈가 그들의 집 정원에 서있다. 제임스는 페라가모의 짙은 파란색 블레이저와 팬츠를, 루이즈는 페라가모의 실크 스카프 드레스를 멋지게 소화했다.


1 제임스와 루이스의 집 현관. 가족사진과 앤티크 가구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2 전설적 셀러브리티들의 나무 구두 골.



3 피렌체에 위치한 페라가모 본사.
4 제임스와 루이즈의 결혼 사진.


그의 표는 페라가모를 신발에 중점을 둔 럭셔리 브랜드에서 다양한 제품군을 생산하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계속해서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페라가모 그룹의 좌장인 살바토레의 미망인 완다 Wanda 여사는 여전히 그룹 내에서 큰 존재감을 갖고 있다. 여든이라는 나이에 회사의 명예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녀는 지금도 매일 아침 9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일한다. “할머니께서는 아직도 많은 일에 관여하세요. 지난 일요일에는 이번 새 컬렉션에 포함되었으면 하는 핸드백 그림을 몇 가지 주시기도 했으니까요.” 제임스의 말이다. 페라가모 그룹은 성장을 거듭하면서 가족 가운데 세 명 이상이 회사에서 함께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가족이라도 저절로 직책을 얻을 수 없으며 회사에 들어오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을 갖춰야 한다. 가족 중 어떤 위치든 페라가모 그룹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다른 회사에서 적어도 2년 이상은 국제적 업무 경력을 쌓아야 하며, MBA 과정을 거친 다음 회사 임원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제임스 역시 이에 찬성한다. “페라가모는 항상 최고만을 원합니다. 자질이 충분하고 사업적안목을 갖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쌍둥이 형제인 살바토레(창립자인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제임스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페라가모가에서 소유한 투스카니의 리조트 겸 부티크 와이너리인 일 보로 Il Borro의 복구 작업을 지휘하면서 자신의 창조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디에고와 피오나 디 산줄리아노의 세 딸 파비올로, 피아마, 자라.


레몬 나무 창고에 서 있는 디에고와 피오나.

대를 잇는 가족 중심 라이프스타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여섯 자녀 가운데 오직 첫째 딸인 피아마만이 구두 장인의 지도 아래 디자인 공부를 마쳤다. 그것도 단 1년 만에. 이 재능 있는 수제자는 클래식한 디자인뿐 아니라 여전히 인기있는 ‘베라 Vera’ 슈즈로 여러 차례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난 1998년에 요절하고 말았다. 피아마의 영향으로 그녀의 큰아들 디에고 디 산 줄리아노가 구두 만드는 일을 잇게 됐다. 디에고는 “어머니께서는 귀중한 가르침을 몸소 전해주셨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나 인성, 가족과 역사에 대한 애착, 일의 문화 등을 말이죠.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역사와 예술, 문학, 음악과 관련한 모든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감상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문화의 모든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식들에게 알려주려고 굉장히 애쓰셨죠” 라고 회상한다. 디에고와 두 여동생은 피아마로부터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으며 자라났다. “어머니께서는 1957년 출판된 할아버지의 자서전 <꿈을 꾸는 구두장이 Shoemaker of Dreams>를 정말 일찍부터 여러 번 읽어주셨어요. 그리고 할아버지에대해 많이 말씀해주셨죠. 할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강하셨는지, 그렇지만 또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는지 말이죠.” 디에고가 지난 이야기를 즐겁게 곱씹으며 말한다. 그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할아버지는 1960년에 돌아가셨고 저는 1970년에 태어났으니까요.” 빈틈없고 기민한 디에고는 그의 어머니와 할아버지처럼 개척자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는 밀라노의 루이지 보코니 코메르시알 대학 Luigi Bocconi Commercial University에서 정치경제학으로 학위를 받고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1999년, 온라인 유통 회사 육스 Yoox에 입사했다. 정말 운 좋게 타이밍이 들어맞았는데, 당시에는 옷과 패션 액세서리 사업에서 전자 상거래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5년 뒤 디에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입사했다. 그는 현재 페라가모의 임원을 맡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 주세페가 20년 전에 시작한 사업, 옷과 액세서리의 도매 유통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마흔 살인 디에고는 온라인 유통에도 많이 관여하며 이 분야에서 회사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페라가모는 육스를 설립한 파트너로서, 약간의 지분도 갖고 있죠. 하지만 페라가모만의 온라인 아웃렛 ‘시그마 지 Sigma Gi’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1 제임스와 루이즈의 집. 페라가모가 사람들이 대부분 어두운 컬러의 가구를 사용하는데 반해 밝고 화사한 워싱 화이트 톤의 가구로 꾸몄다.


2 제임스와 루이즈의 테라스 정원에서는 저 멀리 피렌체의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현재의 페라가모가 家 자손들에게 역사가 ‘먹을 것 meat’이라면 가족은 ‘마실것 drink’과 같다. 살바토레와 제임스의 세 누이는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살지만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제임스는 쌍둥이 형제인 살바토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경쟁하죠. 골프부터 축구, 세일링을 비롯해서 그 어떤 것이든지 말이죠.” 쌍둥이 형제 제임스와 살바토레 둘 다 금발의 미인과 결혼했다. 제임스는 덴마크 출신인 루이즈홀름과, 살바토레는 오스트리아 귀족 출신인 크리스틴과 결혼했다. 루이즈는 미국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제품 서비스와 텍스타일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 메이드 Made를 운영하고 있다. “그때는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지는 않았어요. 결혼보다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제임스를 만났고, 그가 내 모든 계획을 바꾸어버렸죠.” 쌍둥이의 사촌 디에고는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갖춘 페라가모 왕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지 이탈리아 귀족인 피오나 코르시니를 만나 결혼했다. 피렌체의 도심에 자리한 그들의 멋진 궁전은 아름다운 정원이 딸려 있고, 아트 컬렉션으로 꾸며져 있다. 피오나가의 자랑거리인 팔라초 코르시니 궁은 1600년대 말에 지어 지금까지도 피렌체에 자리한 바로크 건축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조부모님이 이곳에서 사셨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살았어요.” 피오나는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궁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정원에서 그림 교실을 연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귀족이라는 출신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라며 늘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피오나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세 아이(쌍둥이인 레오네와 네리 그리고 자라)와 디에고와의 결혼으로 얻은 세 아이(피아마, 파비올로, 루치오)를 돌보느라 바쁘다. 부부는 가족과 최대한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어떤 일이든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종종 이탈리아 여행도 즐긴다.하지만 디에고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따로 있다. 8월은 그가 좋아하는 세일링을 위한 달이다. “세일링에 대한 열정은 집안 내력이에요.” 그의 할아버지인 살바토레는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투스카니의 북쪽에 있는 해안 도시 포르테 데 마르미 Porte de Marmi에 집을 한 채 샀다. 그 덕분인지 그의 아들들인 페루치오, 레오나르도, 마시모 역시 어릴 때부터 바다를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바다에 대한 사랑이 디에고를 통해 3대까지 전해졌으니 유전임에 틀림없다.


1 피렌체 제임스의 집은 대문 옆 작은 문을 열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2 일 보로의 와인셀러에 있는 제임스의 쌍둥이 형제 살바토레와 그의 아내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저지 톱과 브라운 레깅스, 부츠를 착용했고 살바토레는 핀 스트라이프 슈트와 타이, 구두를 착용했다.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제품.



3 삼나무가 유명한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한 빌라 일 보로의 입구.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는 여러 채의 저택과 와인 셀러, 정원 등이 자리한다.

‘완다’의 이름으로, 가문의 영광을 누리다
살바토레가 죽고 나서 페라가모가를 그대로 유지시켜주는 끈은 바로 완다이다. 디에고는 할머니 완다가 모든 가족이 함께하고, 각자의 회사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다고 말한다. 63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완다는 미래의 남편인 살바토레에게 사랑의 마법을 걸던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직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아름답고 상냥한 처녀 완다는 아버지가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소개시켜주던 그 기쁨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살바토레는 이미 유명한 구두 디자이너였다. 완다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매료된 살바토레는 그의 누이에게 돌아서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여자는 내 부인이 될 거야.” 완다는 영어를 할줄 몰랐지만 그가 좋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 달 뒤에 그들은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1960년 살바토레가 죽으면서 그들의 행복한 20년간의 결혼 생활은 끝을 맺었다. 완다는 여섯 명의 아이와 집을 떠맡으면서 큰 결심을 했다. 남편이 남긴 사업을 팔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직접 운영할 것인지를 놓고…. “그전에는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없었기 때문에 준비가 하나도 안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가 일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는데도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옷, 핸드백, 벨트 등으로 제품군을 늘려나갔고, 1996년에는 파리의 패션 하우스엠마누엘 웅가로를 인수했다. 그녀가 페라가모 사업에 뛰어든 지 45년이 지난 2006년 8월, 완다는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큰아들 페루치오 페라가모에게 그룹의 회장직을 넘겨주었다. 명예 회장을맡고 있는 완다는 혼이 담긴 경영방식과 패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그녀는 1995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고, 2007년에는 뉴욕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로부터 순수 예술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배움에대해 사는 내내 늘 목말랐던 그녀는계속해서 공부했고 1986년에는 문학으로, 1996년에는 경제학으로 두 개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지난9월 1일은 완다가 페라가모에서 일한지 50년이 되는 기념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피렌체의 페라가모 뮤지엄에서 가족들이 축하전시를 열어줄 예정이다.

(오른쪽) 완다 페라가모(가운데)와 가족들.
사진 프랭크 호프스미트 Frank Hoefsmit 번역 박진영 자료 제공 페라가모 코리아(02-2140-9641) 

담당 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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