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에서, 약국에서, 광고에서 저마다 비슷한 약속을 합니다. “무슨 무슨 레이저로 세균을 끝내주게 죽여줍니다” “이 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피지를 싹 말려줍니다” 등등. 숱한 여드름 환자 덕분에 꽤 짭짤한 돈벌이를 해온 저 역시 이런 말초적 약속들을 했습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고, 뭐 꼭 틀린 말은 아니잖아?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잠깐 여드름을 감춰놓는 데만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피지, 각질 그리고 세균. 이것들이 성인 여드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극히 말초적 원인들에 불과합니다. 방 천장의 벽지 여기저기가 눅눅해지면서 얼룩덜룩 곰팡이로 지저분해졌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팡이제포’를 뿌릴까요? 좀 더 방습 기능이 있는 고급 벽지로 바꿔 도배해볼까요? 분명 일시적으로 깨끗해 보이겠지요. 그러나 만약 건물 속의 파이프에서 물이 새어 곰팡이가 생긴 것이라면? 온갖 치료를 다 받아봤어도 지긋한 나이에 여드름이 지긋지긋하게 계속된다면 반성해보세요. 물 새는 벽에 매번 새 벽지로 도배하고 ‘팡이제로’를 뿌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가.
자명종이 채 울리기도 전에 아침 햇살을 받고 가뿐하게 눈을 뜨셨어요? 허겁지겁 양말을 신기 전에 우유와 시리얼 정도는 챙겨 먹을 짬이 있죠? 매일 시원하게 변을 보시나요? 오늘 하루 꼭 해야 할 일보다 꼭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 신나죠? 건강한 식단으로 즐겁고 느긋하게 꼭꼭 씹어 먹고, 단맛 나는 콜라나 커피보다 은은한 향의 차를 훨씬 더 좋아하시나요? 하루 종일 마음 나누고 고마워할 일이 많은가요? 실수 좀 하면 어때, 일이 좀 안 풀리면 어때, 타고난 낙천주의자세요?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내가 머무는 공간이 늘 쾌적하도록 가꾸고 초록 식물 몇 가지쯤은 안 죽이고 키울 자신이 있죠? 저녁 약속 없이 일찍 들어가 따뜻하게 샤워하고 나만의 시간을 만끽할 예정이라고요? 보송보송한 베개와 포근한 이불이 꿀맛 나는 잠결로 나를 인도하겠지요?
10개의 질문에 ‘아니요’가 7개 이상이라면 여드름의 원인과 치료법을 너무 멀리서 찾지 마세요. 뒤바꾸어 매일 10개 중 7개만 자신 있는 ‘예’로 바꾸어보세요. ‘예’라고 대답하는 항목은 매일 바뀌어도 좋습니다. 이번 봄, 앞으로 한 달 동안만 무조건 매일 7개 이상의 ‘예’를 만들어보시고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세요. 몸과 마음의 소소한 여유 그리고 평화. 이것이 성인 여드름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비방입니다. 그렇게 했는데 성인 여드름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그땐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평생 책임지고 무료로 진료해드리지요!
이 글을 쓴 김정우 소장은 서울대와 경희대에서 각각 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했다. 현재 북촌 계동의 소담한 한옥 수락재에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을 연구하면서 강연과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라티아 안티에이징 클리닉과 대한동서노화방지의학회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