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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게 듣는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비추는 거울, 얼굴
저에게는 골치 아픈 환자가 한 분 있습니다. 40대 나이에도 미스코리아 뺨치게 예쁜 얼굴이지만 얼마 전부터인가 피부가 극도로 민감해져서 시도 때도 없이 두드러기가 나고 벌겋게 부어오르기를 반복합니다. 오랜만에 재회한 외아들이 데려온 강아지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겼나 싶어서 다른 집에 맡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 약 처방을 했더니 조금 가라앉는듯 싶었지요. 제가 온갖 머리를 짜내 개발해낸 ‘진정・보습 스페셜 케어’도 좀 효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효과는 매번 오래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격렬한 과민 반응이 나타나 그 환자분도 저도 녹초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거참, ‘명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요. 도대체 무슨 피부병이기에 그러냐고요? 모교 병원에까지 의뢰해 온갖 검사를 샅샅이 다 해봤지만 이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민감성 피부’랄밖에요. 조사에 따르면 요즘 우리나라 여성의 60% 이상이 자신을 ‘민감성 피부’라고 생각한답니다. ‘민감한 피부’가 요즘 여성들의 트렌드인가 봅니다. 어찌 되었든 ‘민감성 피부’라고 하는 이 민감한 용어는 그 누구에게는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쓰라린 고통이기도 하고, 어느 누구에게는 아기같이 연약하고 순수한 피부를 갖고 싶은 열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민감성 피부’라는 말은 그 원인과 증상의 폭이 너무 넓어서 의학적으로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피부에 뭔가 불편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모두가 ‘민감성 피부’라고 뭉뚱그려버립니다.

피부가 민감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대개 피부가 가렵거나 빨개지거나 붓거나 따끔거리고 아플 때입니다. 제 고객분들에게 언제부터 그렇게 민감한 증상이 나타났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그 나쁜 화장품’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몇 달 전에 화장품을 하나 바꿔 썼는데 그때부터 얼굴이 뒤집어져서 이 모양이 됐지 뭐예요.” 그래서 그 후로 자기 피부에 맞는 무자극성 순수 자연 성분의 순결한 화장품 찾기 순례를 시작하셨다죠. 정말로 특정 화장품의 성분 하나가 피부에 알레르기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많은 ‘민감성 피부 환자분’들이 다 그렇다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다시 그 애먹이는 환자분 얘기로 돌아가볼까요? 며칠 전 그분을 만났더니 얼굴이 전에 없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명의의 처방 비결이 궁금하시다고요? 어느 날 문득 깨달은 바(내 능력으로는 못 고치겠다는)가 있어 저에게 요가와 명상을 지도해주신 교수님께 의뢰를 했습니다. 그 환자분은 지난 몇 주 동안 교수님의 지도하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헤어진 남편에게서 힘겹게 외아들을 되찾아온 후 기쁨과 불안으로 뒤범벅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을 했지요. 지금은 몸도 마음도, 그리 민감하던 피부도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피부가 민감해지셨습니까? 죄 없는 화장품이나 애꿎은 강아지 탓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몸과 마음이 지치진 않았는지, 내 욕심 때문에 상처를 준 사람은 없는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겁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저 단순합니다. 피부는 내 몸과 마음이 현재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대신해서 보여줄 뿐입니다. 민감성 피부는 스테로이드 연고나 알코올 프리 저자극성 화장품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것만 기억하셔도 오늘 이 칼럼을 읽은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하실 점. 악질적인 민감성 피부에는 명상, 요가, 태극권이 최고의 처방임을 보증합니다.
아, 노파심에서 덧붙입니다. 지나친 박피나 독한 화장품으로 피부를 무리하게 괴롭혔거나, 어떤 특정 물질에 접촉할 때마다 피부에 두드러기가 생기는 경우처럼 원인이 확실한 피부 문제라면 이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닙니다. 곧바로 병원을 찾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하지요. 이때 가장 흔히 스테로이드 성분을 처방하는데 이 약에 대해 불안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 약은 인류가 개발한 가장 탁월한 약 중 하나입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증상에 맞게 잘 쓴다면 매우 안전합니다. 늘 남용하는 것이 문제지요. 참, 이 경우라도 명상과 요가, 태극권은 얼마든지 남용하셔도 좋습니다.

이 글을 쓴 김정우 소장은 서울대와 경희대에서 각각 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했다. 현재 북촌 계동의 소담한 한옥 수락재에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을 연구하면서 강연과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라티아 안티에이징 클리닉과 대한동서노화방지의학회를 이끌고 있다.

김정우 소장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