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그룹 아워레이보 이정형 대표는 공간의 얼굴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많은 정보를 주기 보다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세 장면에 공을 들인다는 그들이 오뚜기 안양 공장에 자리할 기념관 프로젝트에서 보여줄 세 컷은 무엇일까? 이는 소비자가 찾고 만끽할 과정이기도 하다.
“위대함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Nothing Great Comes Easy).” 오래전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명한 카피다. 음악이나 영화 등 창작물이 누려야 할 정당한 대가와 함께 불법 복제물에 반대하는 캠페인의 메시지로, 오늘날엔 한 줄 명언으로 자리한다.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복잡한 미술과 디자인의 생태계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과 행위의 가치가 당연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순수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 여럿이 모여 굵직한 전시 디자인을 비롯해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에서 공간 디자이너로, 작가로, 기획자로 활동하는 아워레이보our labour가 그들이다. 디자인, 설계, 제작, 설치, 시공, 기획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들은 예술 노동의 브랜드화에 가장 성공한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꼽힌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척척 해내는 이정형 대표와 독보적인 꽃을 만드는 장충동 플라워 숍 ‘오차원’의 오유미 플로리스트.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이들은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꾸린다.
“레이보(노동)는 개인 작업의 화두였어요.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 ‘아워레이보’는 노동의 주체로서 함께 작업하는 우리의 일을 가리키는 의미였고요. 실제로 포트폴리오의 표제였는데, 지금은 이름이자 정체성이 되었지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정형 대표를 중심으로 2012년에 서울 성북구 삼선동 주민 셋이 모여 시작한 아워레이보는 현재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세종문화회관, 리움미술관 등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 공공기관과 상업 공간을 넘나들며 크고 작은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미술계의 트렌드세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대한 작업 스펙트럼만큼이나 구석구석에 자리한 작품과 소장품으로 가득한 아워레이보의 사무실. 스스로를 만연체를 즐겨 쓰는 맥시멀리스트라 칭하는 음악 애호가 이정형 대표의 취향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간의 얼굴’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에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든, 브랜드의 철학을 담아내는 거대한 프로젝트든 우선 캐릭터를 분석해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요. 콘셉트가 잡히면 기억에 남을 세 장면을 만드는 데 집중해요. 거기에 다다르기 위한 유연한 사고는 아이레이보의 장점이자 아이덴티티가 되었지요.”
모호한 것을 구현하는 데 독보적인 그들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키워드는 ‘진심’이다. 이는 식품 회사 오뚜기가 추구하는 가치로, 아워레이보가 맡고 있는,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오뚜기 안양 공장에 자리할 ‘오뚜기기념관(가칭)’ 프로젝트의 화두이기도 하다.
30년은 족히 넘은 교회 건물을 2020년부터 그대로 사용 중인 아워레이보의 사무실 일부. 아래층에는 ‘This is not a church’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 공간이 있다. 아치형 창문 간판, 예배당 모습이 그대로라 SNS에서 핫한 공간으로 회자된다.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대표 프로젝트나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아달라는 거예요. 대답은 늘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대표적이고 가장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는 거예요. 이번 오뚜기기념관은 상설 전시라 특히 그 의미가 남달라요. 기간이 정해져 있는 비상설 전시는 트렌디해야 하기 때문에 시쳇말로 MSG를 팍팍 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타임리스해야 하거든요. 그만큼 본질에 집중해야 하죠. 시간이 흐른다고 진심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창업주 풍림 함태호 명예회장의 서거 10주기인 2026년 6월부터 순차적으로 개관할 예정인 오뚜기기념관은 지하 두 개 층과 지상 다섯 개 층, 2만 4456㎡ 부지에 연면적 2만 495㎡ 규모로 짓는데, 건축물은 신스랩의 신형철 교수가 맡고, 아워레이보는 내부 공간 기획과 인테리어 등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창립 당시 제품을 만들던 카레 공장 부지에 함태호 명예회장의 생애와 경영 철학을 보여주는 공간과 한국 근현대 식문화를 이끌어온 오뚜기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 과거부터 현재까지 오뚜기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오뚜기 브랜드를 전 세대가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정형 대표에게도 카레는 가족을 연결해주는 음식이다. 식구 모두 다진 고기를 드라이하게 볶은 키마카레를 좋아하는데, 오뚜기의 카레 레토르트 제품을 자주 활용한다고. 고수 등 신선한 샐러드를 올리고 당근 라페만 곁들여도 근사한 식사가 완성된다.
열린 마인드와 유연함은 오뚜기와 아워레이보의 공통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오즈키친 월드퀴진 카레는 세계의 카레 맛을 경험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크랩푸팟퐁, 포크키마, 치킨마크니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위대함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일상을 맛있고 건강하게 영위하는 일도 그러하다. 오늘날 안전한 식품으로 하루 세 끼를 건강하게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해진 데에는 식품 회사의 역할이 적잖다. 그리고 대한민국 굴지의 식품 회사로서 먹거리를 선보이는 생산자에 머물지 않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 땅의 음식 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오뚜기의 진심과 노력도 한몫했다. 본질을 찾아가는 그들의 행보를 아워레이보만의 유연함으로 표현해낼 오뚜기기념관이 기대되고 주목받는 이유다.
- 오뚜기_스위트 홈 아워레이보 대표 이정형의 진심 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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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알겠는데, 어떤 건지 모르겠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진심’ 같은 것 말이다. 견고한 껍질 안의 알맹이와 같아서 존재하지만 그 모양새는 가늠이 안 된다. 모호하고 까다로운 화두를 기획하고 정리하고 그리하여 시각화하고 구조화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아워레이보라면 어떨까. 이정형 대표가 이야기하는 먹거리 속 진심의 반짝임이 자못 궁금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