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 단순하기 짝이 없는
“오래전이었다. 음식 관련 책을 보이는 대로 사 모으던 시절이었다. 2001년 출간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초판을 그저 채식주의자의 간단한 조리법을 소개하는 책으로 생각한 나는 펼치자마자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럴싸한 음식 사진 한 장 없는 책의 무모함에 놀랐다. 입 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흥건한 소스와 총천연색 접시는 없었다. 낯설기까지 했지만 황폐해진 인간의 심성을 치유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먹거리라는 생각에 열심히 읽었다. 헬렌 니어링의 세계에 빠질수록 내 시각은 넓어졌다. 레시피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고 천박한 허세나 허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프를 맛있게 만들려면 반드시 고기 국물을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며 저자가 소개한 여러 가지 수프 조리법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 하나인 대파 수프를 만들어보니 은은하고 담백해서 맛있었다. 이 책은 나의 소중한 길라잡이였다. 그 후 나는 먹는 것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고민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책장엔 누렇고 허름한 이 책이 팔랑거리며 꽂혀 있다.”_ 박미향
박미향은 한겨레신문 ESC 팀장이며 10여 년 넘게 음식 문화 기자로 활동 중이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하다> 등 음식 관련 책을 펴냈다.
가을의 수프
재료 양배추(곱게 자른 것) 1컵, 셀러리(다진 것) 1컵, 브로콜리(다진 것) 1컵, 파슬리(다진 것) ½컵, 끓는 물 4컵, 간장이나 소금 혹은 레몬즙 약간
만들기 냄비에 채소를 모두 담고 끓는 물을 부은 뒤 간장이나 소금 혹은 레몬즙을 뿌린다. 냄비 뚜껑을 덮고 30분간 가열한다. 수프는 온종일 끓여야 제맛이 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 수프는 끓는 물을 붓기 때문에 끓이는 시간이 짧다.
탐욕의 식탁을 부끄러워하며
“세상의 요리책을 다 모으면 아마 커다란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 많은 요리책에 또 한 권을 보태는 일이 대양에 물 한 스푼을 더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을까마는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아주 특별하다. 세상의 요리책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라면 과식이나 폭식도 마다하지 않는 미식가와 탐험가를 위한 것이라면 헬렌 니어링의 요리책은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와 정확하게 반대 지점을 가리킨다. 이 책은 ‘반反요리책’, 즉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과 소박하게 먹으려는 사람을 위한 요리책이다. 헬렌 니어링의 레시피는 밭에서 방금 수확한 생채소류로 식탁을 차리는 소소함과 소박함에서 빛난다. 그것은 온갖 재료를 굽고 지지고 볶고 삶고 튀겨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내는 탐욕의 식탁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소박한 밥상’의 건강함을 되살리고, 자연의 맛을 살린 간소한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의 즐거움과 고결함을 각인시킨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_ 장석주
장석주는 시인이자 인문학 저술가다. 단행본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철학자의 사물들> 등이 있으며,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를 새로 펴냈다.
감자 샐러드
재료 감자(중간 크기) 6개, 양파(곱게 다진 것) 1개, 파슬리(곱게 다진 것) ½컵, 식용유 4큰술, 식초 2큰술, 천일염 약간
만들기 큰 냄비에 감자를 넣고 냉수를 넉넉히 부어 꼬챙이가 들어갈 때까지 삶는다. 이때 너무 푹 삶지 않는다. 감자 삶은 물은 따라 버리고, 껍질을 벗긴 다음 따뜻할 때 썬다. 썬 감자에 양파와 파슬리를 넣고 감자가 부서지지 않게 섞는다. 여기에 식용유, 식초, 천일염을 골고루 뿌린다.
토마토는 토마토 맛이 날 때 가장 맛있다는 사실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다. 맛있는 음식이 어디에 있으며, 잘 탐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역할도 내 일의 일부분이다. 미사여구로 가득한 문장, 조명과 세팅으로 연출한 사진을 다른 이들의 눈앞에 흔들며 말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차 있는지 느껴보시길.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지겨워졌다. 탐욕스럽고 죄스럽게까지 느껴지진 않았지만, 딱히 더 이상 흥미롭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읽었다. 어둡던 머리 한구석이 환해졌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텃밭을 가꾸었다. 아이들과 함께 토마토와 가지, 오이, 감자를 길렀다. 저녁이면 그것들을 따다가 식탁을 차렸다. 정성 들여 씻고 단순하게 요리했다. 식탁은 소박했지만 풍성했고, 겸손했으며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1년을 먹었다. 과식하지 않았고 폭식하지 않았다. 삶이 그렇게 단순해졌다. 허기진다는 것이 맑아진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책은 오이는 오이 맛이 날 때, 토마토는 토마토 맛이 날 때 가장 맛있다는 걸 내게 가르쳐주었다.”_ 최갑수
최갑수는 여행 작가이자 시인이다. 오랜 세월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쓰며 사진을 찍고 있다. 대표 저서로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당신에게, 여행> 등이 있다.
호박 캐서롤
재료 양파(얇게 썬 것) 2개, 호박(껍질이 연하면 벗기지 않고 깍둑썰기) 3개, 토마토(다진 것) 2개, 치즈(간 것) ½컵, 식용유 약간
만들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를 볶고, 호박과 토마토를 넣고 잘 섞어 5분간 더 볶는다. 찜 냄비에 볶은 채소를 모두 담고 그 위에 치즈를 뿌린다. 뚜껑을 덮지 말고 중간 불로 예열한 오븐에서 30~45분쯤 굽는다.
제대로, 제철대로 먹는다는 것
“들판을 뛰어다니며 보리똥이나 앵두를 따 먹던 어린 시절, 16년째 과실나무를 키우는 부모님, 행복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일상, 내 책을 만들기 위해 3년째 아들과 함께 한 전국의 농장 나들이…. 이 모든 것이 ‘먹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더 진지하게 만들었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같지만 오히려 점점 더 ‘제대로 먹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던 중 만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이러한 고민을 풀어줄 실마리가 되었다. 편의점 인스턴트식품을 주식으로 여기며 항상 피곤해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서 온갖 첨가제에 대한 헬렌 니어링의 충고가 떠올랐다. 재료 본연의 맛과 향에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비법인 헬렌 니어링의 조리법을 보면서 아이에게 재료가 곧 요리인 집밥을 먹이려 한 내 노력에 확신을 갖기도 했다. 제철 먹거리를 먹는 즐거움은 맛 이상의 추억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고민과 확신의 시간은 대한민국 제철 과일 요리 2백80여 가지를 담은 내 책 <계절과일레시피>로 이어졌다.”_ 김윤정
김윤정은 요리 연구가이자 푸드 스타일리스트다. 자연이 가득 담긴 행복한 먹거리를 만들며, 대표 저서로 <자연주의 홈쿡 수업> <샌드위치 수업> <샐러드 수업> 등이 있다.
맛있는 사과
재료 사과 소스 4컵, 바나나(잘 익은 것을 으깬 것) 3개, 사워크림 1컵, 메이플 시럽 3큰술, 레몬즙 약간, 호두나 피칸 등 너트(다진 것) ½컵
사과 소스 사과(4등분해서 씨 부분 제거한 것) 6개, 메이플 시럽 ½컵, 버터 2큰술
만들기 사과는 껍질이 질기지 않으면 벗기지 않는다. 사과를 오븐용 팬에 넣고 팬 밑바닥에 물을 넉넉히 부은 후 메이플 시럽과 버터를 뿌린다. 센 불로 예열한 오븐에서 30분쯤 구워 사과 소스를 완성한다. 큰 그릇에 사과 소스와 바나나, 사워크림, 메이플 시럽, 레몬즙을 넣고 섞어서 각자의 그릇에 담는다. 이때 곧바로 상에 내지 않을 경우 냉장고에 보관한다. 상에 내기 전에 다진 견과를 뿌린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자연주의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헬렌 니어링이 건강한 삶을 지켜낸 철학인 ‘먹는 법이 사는 법’을 담은 요리 에세이다. 2001년 한국에 소개되어 10만 명의 독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책으로, 올가을 보다 정연한 본문 디자인, 화가 김시문의 표지 그림으로 독자에게 새롭게 선보인다.
-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건넨 이야기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하게, 먹다
-
몸이 진정 바라는 음식은 무엇일까? 각각 91세, 1백 세까지 무병장수한 헬렌 니어링과 니코타 니어링의 삶의 비밀은 밥상 위에 있다. 이 부부의 참먹거리에 공감한 전문가 네 명이 네 편의 글을 보내왔고 <행복>은 이를 오늘의 식탁 위에 구현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