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의 여유
저녁 식사 약속이 있을 때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 메뉴판을 보며 느긋하게 맥주나 막걸리 한잔 하는 순간의 여유를 즐긴다. 다들 바쁜 요즘,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을 초조하게 기다리다 보면 만나기도 전부터 스트레스받기 일쑤다. 하지만 한잔 술이 있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로워진다.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온 사람들이 웃으며 기다리는 나를 보고 긴장을 푸는 그 순간도 참 좋다. 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안주는 밑반찬 정도면 충분하다.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오후엔 집에서 마신다. 다음 날 출근하는 부담을 요리에 곁들인 한잔 반주로 털어낸다. 그럴 땐 주종을 불문하고 좋은 와인 잔에 따라 마신다. 막걸리도 맥주도 마찬가지. 술잔의 입에 닿는 부분이 얇을수록 술 맛이 좋으니까. 얼마 전 와인 잔처럼 얇은 맥주잔을 발견했는데, ‘강추’한다. 이덕진(<마이웨딩> 편집장)
배달 음식의 마리아주
나와 남편 모두 술을 좋아해 식사할 때 꼭 술을 곁들인다. 요즘엔 집 앞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서 포장해 오거나 배달시켜 먹는 일이 잦다. 중식당에서 요리를 시켜 먹을 땐 새콤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다. 알자스 지방의 게뷔르츠트라미너나 독일산 리슬링 같은 것. 특히 탕수육에 곁들이면 그만이다. 사케와도 잘 맞는다. 치킨은 달콤한 느낌의 부드러운 레드 와인이 좋다. 최근 마셔본 우리 술 중에서는 풍정사계 약주가 치킨과 잘 어울렸다. 맥주 생각이 날 때는 치킨보다 피자나 샌드위치 등 빵류가 더 좋다. 국산 맥주는 풍미가 약해서 탄산수처럼 아무 음식과도 잘 어울리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음식과도 딱 맞는다는 느낌은 없다. 개중엔 오비 프리미어 필스너, 헤페바이젠이 훌륭했다. 집 앞 생선구이집에서 삼치나 고등어구이를 사 와서 먹을 땐 문배주나 이강주 같은 증류식 소주를 탄산수와 섞어 마시거나 멥쌀로 만든 달지 않은 막걸리를 마신다. 금정산성 막걸리나 해남 해창 막걸리 같은 것. 이화 백주는 드라이하면서도 탄산이 강한 막걸리인데, 스파클링 와인처럼 여러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독한 술은 음식보다는 디저트와 함께 먹는다. 갑자기 체리가 들어간 진하고 끈적한 초콜릿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런 다디단 디저트엔 럼이 찰떡궁합이다. 강지영(음식 문화 평론가)
믹스 매치의 시너지 효과
섞어 마시는 술을 선호한다. 맛도 좋아지고, 여럿이 마실 땐 흥도 배가된다. 간단한 스낵이나 담백한 파스타엔 스파클링 와인과 향긋한 맥주를 섞어 마신다. 섞어 마실 맥주로는 호가든 로제를 추천한다. 겨울엔 데운 사케에 소주를 섞어 마시면 금세 온몸이 따뜻해진다. 안주는 어묵탕이나 김치찌개면 충분하다. 브런치를 먹을 때 보드카와 크랜베리 주스, 사이다를 섞어 마시면 샴페인도 부럽지 않다. 색은 이쪽이 훨씬 근사하다. 그리고 막걸리를 가장 깔끔하게 마시는 방법! 흔들기 전에 투명한 윗부분을 따라 사이다와 일대일 비율로 섞으면 된다. 송재영(홍보 대행사 프레데릭앤컴퍼니 이사)
한식과 레드 와인
잘 만든 모던 한식을 내는 레스토랑이 부쩍 많아졌다. 기존엔 오크통에 숙성하지 않은 상큼한 화이트 와인과 한식이 어울린다고들 했지만, 요즘엔 한식과 레드 와인의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을 느낀다. 저녁보다는 점심시간에 서너 명 정도가 함께 식사할 때 와인 한 병쯤 가볍게 마시는 걸 즐긴다. 한식당의 와인 리스트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한식에 레드 와인을 곁들일 때는 신맛이 강한 것으로 고르면 두루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는 바르베라 품종 와인이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산미가 훌륭하다. 간장으로 양념한 돼지고기나 전 종류와 함께할 때 특히 좋다. 한두 잔 기분 좋게 반주하고 나면 오후 시간을 보낼 힘이 절로 샘솟는다. 안준범(이탈리아 와인 전문가)
반주 실험가
전통주와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음식을 찾느라 음식 하나 두고 소주와 약주, 탁주까지 세 가지 술을 번갈아 마시는 일이 보통이다. 실제로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니까. 그렇게 찾아낸 조합이 ‘피막(피자와 막걸리)’이다. 곡물로 만든 술이다 보니 막걸리가 고소한 피자 도와 참 잘 어울린다.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럴 때 피자는 느끼한 것보다는 매콤하거나 담백한 종류로 고르는 게 좋다. 치킨과는 전통 증류식 소주가 참 잘 어울린다. 사과로 만들어 깔끔한 ‘문경바람’도 좋고, 약 냄새가 달짝지근하게 나는 이강주도 치킨과 궁합이 잘 맞는다. 치킨뿐 아니라 다양한 튀김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리는 술이다. 과일 샐러드 같은 요리에는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솔송주를 추천한다. 요즘 여기저기 소리 높여 추천하는 조합이 있는데, 떠먹는 막걸리인 이화주와 딸기다. 요구르트처럼 한 스푼 뜬 후 딸기를 올려 먹으면 된다. 그야말로 막강 궁합! 이지민(대동여주도 콘텐츠 제작자)
진정한 반주
선친은 반주를 밥술 뜨기 전 한 잔, 다 먹고 나서 한 잔, 딱 두 잔만 하셨다. 그런 게 진짜 반주가 아닐까? 술 마시는 데 배부르기 싫고, 밥 먹을 땐 취하고 싶지 않다. 체질 탓인지 모르겠지만, 밥 먹으면서는 술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 복잡한 술에 섬세한 음식이 더해지면 미각이 지나치게 혼란스러워진다. 내게 반주는 그저 입맛을 가볍게 돋우는 정도면 충분하다. 유용석(칵테일 위크 대표)
풍미 작렬! 독한 술 반주
보드카나 진 등 도수가 높은 화이트 스피릿을 식사에 곁들일 땐 온더록스 스타일로 마신다. 한두 조각 얼음이 자칫 음식의 풍미를 느끼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날카로운 알코올 향을 가볍고 섬세하게 눌러주기 때문. 하지만 위스키나 브랜디를 반주로 마실 때는 얼음을 넣지 않는다. 특유의 향은 위스키와 브랜디를 즐기는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음식보다 술의 풍미가 너무 강할 땐 물이나 탄산수를 약간 섞으면 된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잘 숙성된 위스키를 약간 떨어뜨려 먹으면 그 풍미가 기가 막힌다. 코냑이나 브랜디의 경우 아이스크림 등 달콤한 디저트에 뿌려 먹는다. 입안에 천국이 따로 없다. 성중용(월드클래스 아카데미 원장)
한식엔 하이볼
위스키에 탄산수를 더한 하이볼이 한식과 두루 잘 맞는다. 오크 향이 살짝 돌아 기름기 있는 음식과 잘 맞고, 드라이한 탄산 느낌이 입맛을 돋운다. 일본에서 하이볼이 인기 있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물 종류를 곁들여마시면 특히 좋다. 유성운(<위스키 바이블> 저자)
밥이 최고의 안주
예전 어르신들은 밥이 최고의 안주라 하셨다. 무슨 뜻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요즘엔 술 약속 생기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대신 전골이나 볶음 요릿집에 간다. 음식 다 먹고 마지막에 밥을 볶아 먹으면, 그 이상 가는 안주가 없다. 그럴 때 술은 무조건 소주다. 이호준(만화 스토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