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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의 재발견, 사카린
수많은 화학 실험을 거친 끝에 탄생한 인공 감미료가 과연 몸에 좋을까? 그런데 그중에는 분명 오해와 편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인공 감미료도 있다. 바로 사카린이다. 최근 ‘몸에 해롭다’ ‘발암물질’ 등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던 누명을 벗으면서 사카린은 설탕의 대체 물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논문과 국제기구, 전문가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카린의 실체는 무엇일까.

1백 년이 넘는 역사 
올해는 사카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백38년이 되는 해다. 사카린은 주로 석유류에서 추출한 톨루엔을 원료로 만든 화확물질로,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인공 감미료다. 얼핏 백설탕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카린은 무색에서 백색의 결정 또는 백색의 결정성 분말 형태를 띤다. 냄새 또한 없다. 사카린은1878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교수이던 아이러 렘슨Ira Remsen과 그의 제자이자 러시아의 화학자이던 콘스탄틴 팔베르크 Konstantin Fahlberg가 우연히 발견한다. 그 일화 역시 재미나다. 어느 날 실험을 마친 두 사람은 식사를 하던 도중 음식에서 강한 단맛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 원인이 손에 묻은 흰 가루라는 것을 알아 냈는데, 이 화학물질이 바로 사카린이었던 것. 1년 뒤 두 사람은 공동 논문을 발표하고 설탕을 뜻하는 라틴어 사카룸saccharum에서 이름을 따와 사카린이라 부르며 세상에 선보였다. 그 후 1884년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사카린 제조법을 특허 등록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설탕보다 싸고 단맛이 강한데도 칼로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주목받으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안전한가? vs. 안전하다!
사카린은 미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필수 감미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인공 감미료라는 이유 하나로 “먹어도 과연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1977년 사카린의 발목을 잡은 충격적인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캐나다 국립 보건방어연구소는 1974년부터 3년 동안 1백 마리의 쥐를 대상으로 사카린을 투여하는 실험을 한 결과, 수컷 쥐 열네 마리의 방광에서 종양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후 결과가 잘못됐다고 밝히지만 이미 사카린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해졌고, 인기도 명성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미국은 사카린을 발암물질로 규정하며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 역시 별다를 바 없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카린은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유해성 논란과 캐나다 연구소 쥐 실험 결과로 인해 사카린은 ‘공포의 백색 가루’로 낙인찍히고야 말았다. 사카린이 유해하다는 누명을 벗기까지 무려 약 20년 가까이나 걸렸다. 

199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밝히면서 사카린은 안전한 감미료라고 발표한 것이다. 뒤이어 국제암연구소(IARC)와 미국의 국립독성물질관리 프로그램(NTP)도 발암물질에서 사카린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안전성이 확보되자 사용 규제가 완화되었고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사카린을 허용된 범위 내에서 사용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식품, 화장품, 의약품에 사카린을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음료와 추잉껌에 사카린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부정적인 시선이 많지만, 2012년부터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 사카린에 관한 국제 기구 및 미국의 관련 기관 조치 내용
1993년 세계보건기구(WHO), 사카린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
1999년 국제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인체 발암물질 분류에서 제외 
2000년 미국 국립독성물질관리프로그램(NTP), 발 암물질 항목에서 사카린 제외 
2010년 미국 환경보호청(EPA), 유해 물질 항목에서 사카린 삭제 


맛과 사카린의 상관관계

사카린은 단맛이 설탕보다 약 3백 배나 높다. 요리할 때 설탕 대신 사카린을 사용하면 맛뿐만 아니라 식감, 냄새도 달라진다. 세계김치연구소의 이선애 연구원에 따르면 김치를 담글 때 사카린과 설탕의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치의 유기산은 김치의 숙성 정도, 미생물의 생육 정도, 향미의 변화를 평가하는 척도입니다. 설탕을 넣은 김치의 경우 미생물이 탄소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양원의 함량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유기산의 생성량이 많아지고 발효가 촉진됩니다. 반면 사카린을 넣은 김치는 미생물이 사카린을 탄소원으로 사용하지 못해요. 사카린 속에는 영양원이 없기 때문이죠. 발효가 진행될수록 설탕을 첨가한 김치보다 신맛이 낮고 오히려 김치의 단맛과 이삭아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해줍니다.” 이선애 연구원은 사카린은 김치 담글 때 단맛을 더해주는 것뿐 아니라 깍두기 국물의 균일화나 김치 발효 지연에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사카린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반드시 식품의약안전처가 만든 ‘식품첨가물공전’을 확인하고 식품에 따라 허용된 양만 사용해야 한다. 

· 각국의 사용량 허용 기준

(단위 g/kg)

열량과 혈당 지수 모두 0
처음 당뇨 환자에게 사카린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의아했던 것이 사실이다. 설탕을 대체하는 물질이자 단맛이 강한 사카린이 당뇨 환자에게 이롭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사카린이 당뇨 환자에게 좋은 이유는 열량과 혈당 지수가 모두 0이기 때문. 설탕 1g의 열량이 4kcal인 반면, 사카린은 0kcal다. 설탕의 혈당 지수가 65, 포도당이 100인 반면 사카린의 혈당 지수 역시 0이다. 어떻게 이러한 수치가 가능한 것일까? 단순당인 설탕은 화학 구조가 단순해 체내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분해되면서 혈당이 순식간에 올라간다. 이와 달리 사카린은 설탕에 비해 단맛이 3백 배나 높지만 대사 작용을 거치지 않고 소변을 통해 그대로 배출된다. 체중과 혈당 지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당뇨 환자뿐 아니라 비만 환자의 단맛 섭취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대한당뇨병학회에서도 사카린 같은 인공 감미료는 단맛을 내지만, 혈당과 체중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당뇨병이 있는 경우 설탕 대용품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Interview_차윤환(숭의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제 사카린에 대한 시선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왜 사카린이 다시 주목받는가 ?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빵, 과자, 잼 등을 먹으며 설탕을 과잉 섭취하고 있다.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당연히 체내에 열량이 쌓일 수밖에 없고 비만, 영양 불균형 같은 건강 문제가 나타날 위험이 높다. 그러다 보니 단맛은 있으면서 열량이 없는 인공 감미료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사카린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
사카린이 알려진 게 1백 년이 넘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사카린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식품 위생 면에서 크게 문제 된 바 없다. 극소량만 사용해도 단맛을 충분히 낼 수 있기에 단맛을 내는 기능 면에서 봤을 때 인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용량이 워낙 미미해 좋다, 나쁘다 판단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를 고려해본다면 이제는 충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단맛과 낮은 혈당 지수 외에 사카린의 장점이 있다면? 경제적 효과다. 사카린 1g이면 설탕 300g을 대체할 수 있다. 가격 역시 사카린이 설탕의 30분의 1 정도다. 식품 회사 입장에서는 제조 원가를 낮출 수 있고, 가공식품의 가격도 자연스레 낮아질 수 있다. 
사카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식품첨가물, 인공 감미료라고 해서 모두 인체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사카린의 규제가 강화되기 전까지 사카린이 들어 있는 소주를 몇십 년 동안이나 마셨다. 이로 인해 수명이 크게 단축되거나 질병의 증가율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허용된 양 안에서 먹되 전문가의 말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참고 도서 <비만·당뇨 환자여, 사카린을 먹어라> (기파랑) 도움말 차윤환(숭의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미애(세계김치연구소 연구원)

#사카린 #감미료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