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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중식 대가가 요리로 푼 인생 담론 여덟 단어-자존∙본질∙고전∙견∙현재∙권위∙소통∙인생
중식은 특별하다. 유구한 역사와 강한 생존력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완벽하게 현지화하고 종국에는 최고의 미식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인지 중식 주방과 홀에서 잔뼈가 굵은 대가에게서는 땀방울을 흘린 세월만큼이나 요리에도 철학이 묻어난다. 중식 대가 8인에게 여덟 가지 키워드로 중식과 인생에 대해 물었다. 인문학 서적 못지않게 의미심장한 그들의 이야기와 중국요리로 중식을 새롭게 발견하시길.

그간 우리는 중식을 그저 먹기만 했다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이 중식의 대표 요리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중국요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언컨대, 중식은 세계 최고의 미식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손꼽히는 요리다. 물론 짜장면, 짬뽕, 탕수육은 한국인에겐 막연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음식이다. 하지만 이들 음식이 친숙한 나머지 중식 자체가 폄하된 것도 사실이다. 가장 친근하면서 대중적인 외식이건만, 솔직히 그동안 우리는 중국요리에 대해 너무 모르고 그저 먹기만 한 것이다. 1883년,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산둥 지방 출신 근로자들이 몰려왔는데, 그들과 함께 오늘날의 중국요리도 자리 잡았다.

괴나리봇짐에 웍(중국식 프라이팬)만 넣으면 어디서나 식당을 차릴 정도로 생존 능력이 뛰어난 중국인은 밀가루만으로도 찌고 튀기고 굽고 삶고 지지고 볶아 현지화한 중국 음식을 선보였으며, 대표 음식이 짜장면이다. 한국으로 온 화교들이 처음부터 짜장면을 만들어 판건 아니다. 만두와 호떡을 팔던 이들은 국수 요리만 무려 1만여 가지가 될 정도로 면 요리에 능한 중국인답게 밀가루로 면을 뽑고 춘장으로 채소와 고기를 함께 볶아내 산둥의 ‘자장미엔’을 한국식 ‘짜장면’으로 선보인 것. 최초로 짜장면을 만들어 판매한 집은 1905년 제물포에 문을 연 ‘공화춘’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 을지로에 1920년대 초 개업한 ‘아서원’을 필두로 1960~1970년대에는 이른바 중식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아서원과 함께 흔히 ‘4대 문파’라 불리며 한국식 중국요리를 이끈 전설적 중식당도 모두 이때 등장했다. 쓰촨요리로 명성을 떨친 ‘홍보석’, 중식업계에 특급 호텔 시대를 연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 4대 문파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신라호텔 ‘팔선’이 그곳으로, 사교와 유흥의 장소일 뿐 아니라 당시 ‘밀실 정치’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인천과 명동에서 1세대 중식당이 명성을 떨칠 때 서민의 입맛을 잡은 곳은 연남동과 연희동 일대의 중식당이다. 1969년 한성 화교 학교가 명동에서 옮겨오면서 ‘리틀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며 명맥을 이었다.

중화요릿집에 가는 것이 집안 행사일 정도로 외식계의 터줏대감이던 중식의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즈음이다. 다양한 외식 문화의 유입으로 한순간에 배달 음식으로 전락해버린 것. 하지만 제물포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처럼 강한 생존력을 발휘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청담동 일대에서 차이니스 레스토랑들이 두각을 나타내더니, 최근에는 다시금 외식업계의 강자로 각광받고 있다.

중식을 부활시킨 이들은 다름 아닌 1970~1980년대를 호령하던 중화요리 전문점이나 호텔 중식당에서 수십 년간 내공을 쌓은 기라성 같은 요리사들이다. 이들에게서는 올곧게 한길로 세월을 살아온 이의 관록이 묻어난다. 이는 새파란 청춘의 셰프들이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되 중국 본토의 맛을 구현하고 있다. 무한한 재료와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음식 본연의 맛과 향을 중시하는 다양한 중국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것.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요구에 따라 자극적이고 기름지던 맛도 기름이 적고 간이 세지 않게 변화했고, 초기 산둥ㆍ쓰촨 요리에서 요즘은 광둥식으로 트렌드도 바뀌었다. 하지만 음식으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새롭게 발견하고, 본질과 전통(고전)을 잃지 않는 이들의 자존감은 여전하다. 그래서 현재의 중식에 가치를 더하고, 부침 많은 외식업계에서 굳건하게 권위를 지키는 중국요리 대가들의 인생과 요리는 “모든 인생은 제대로만 된다면 모두 하나의 소설감”이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두 한 편의 이야깃거리다.

자존 ‘이름값’ 하는 동파육

“재료의 향이 잘 어우러지고 제대로 나야 좋은 음식이다.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은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삼겹살이 결대로 흩어질 정도로 부드러워야 하는데, 시중에서 파는 것은 그저 삼겹살찜것이 대부분이다. 황주에 간장, 꿀, 파, 생강, 소금을 넣고 두 시간 정도 뭉근한 불에서 조리며, 이때 약간 태워야 색도 까매지고 향이 난다.” _유방녕(‘신’ 오너 셰프)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체구가 작아 웍이나 들겠느냐고 얕잡아보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이 악물고 연습하는 게 최선이었어요.”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신Xin’의 유방녕 셰프는 중국요리의 명인이자 달인으로 통한다. 중국요리 대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화교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중국 전통의 깊은 맛과 정서를 익혀왔고 자연스럽게 중식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가 지존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진짜 중국요리는 구이·찜·조림·훈제 등 조리법이 매우 다양합니다. 재료나 요리법에서 그 한계가 없다고 봐야 해요. 그 때문에 만드는 사람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루에 5분만 일한 과정을 되돌아보세요. 부족한 부분을 메우다 보면 어느 순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대표 요리도 제대로 만든 것일 뿐 한 가지를 꼽을 수 없다는 유방녕 셰프가 선보인 동파육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육질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그가 만든 음식은 시쳇말로 ‘이름값’을 한다. 이는 여전히 얼굴에 덴 자국을 연습의 훈장처럼 지니고 있는 쉼 없는 노력의 결과물일 터. 이것이 그의 자존감이고, 중식에 대한 존중이다.

본질 ‘맛’을 화두로 불 맛을 살린 고추잡채
“고추잡채 등 볶음 요리에서는 불 조절이 관건으로 센 불에서 순식간에 볶아야 한다. 돼지고기 대신 1등급 한우와 피망, 콩나물로 만든 고추잡채로 시대의 요구에 따라 기름과 소금을 최소한으로 넣어 만들어 식감이 아삭하고 맛이 담백하다.” _여경옥(롯데호텔서울 ‘도림’ 최고 책임자)
본질은 ‘있는 그대로’를 이른다.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도 달라지는 법. 급변하는 시대인 만큼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본질을 찾고, 이를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중국요리의 본질은 무엇일까. 삶의 본질이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요리의 본질은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식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의 여경옥 상무는 강조한다. “요리를 하면서 마음에 두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맛’이지요. 흔히 중국요리를 불 맛이라고 단정하는데, 영화에서처럼 웍에 불을 지르는 듯한 비주얼은 ‘불 쇼’에 불과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인 고추잡채의 생채소를 볶을 때도 센 불에 살짝 볶아야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도 살짝 붙었다가 꺼지는 게 정상입니다. 불 맛이 아니라 ‘불 조절의 맛’이 중식의 매력이라 할 수 있지요.” 불을 잘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조리법이 다양하고 중국의 음식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겠지만, 땅덩이만도 어마어마하게 넓은 중국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음식을 해 먹고 살아가는 나라인가. 중국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 중국요리의 본질을 특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리사가 맛을 따르면 좋은 식재료를 쓰게 되고, 먹는 이는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중식은 물론 요리의 본질이 맛있어야 하는 이유다.

고전
중국 역사 속의 대표 보양식, 사보탕
“사보탕을 만드는 데는 여간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식재료와 약재를 여덟 시간 동안 고아 육수를 낸 다음, 주재료를 넣고 네 시간 동안 찐다. 찌는 과정을 통해 재료 본연의 향을 살리고 영양분의 파괴를 줄인 것이 이 요리의 특징으로 깊은 맛이 일품이다.” _육향성(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금륭’ 조리장)
“근원이 있어야 새로운 것도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그 근원이 전통이고, 고전이지요. 오랜 시간과 고유한 문화가 만들어온 중국요리 특유의 향미는 옛 음식이 지닌 본질을 이해해야 비로소 진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요리도 고전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곳이 늘고 있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중식당 ‘금륭’의 조리장인 육향성 셰프가 선보이는 사보탕이 그러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밥상인 만한전석滿漢全席에도 등장하는 요리로, 건륭 황제가 즐겨 먹은 보양식을 재해석한 사보탕에는 재료 본연의 영양과 미각 등 건강을 중시하는 전통 요리의 덕목이 두루 녹아 있다. “고전을 보고 읽고 들으며 고된 삶을 위로받고 성찰하듯, 고전 요리를 먹으면 심신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네 가지 보배를 뜻하는 사보四寶의 주재료는 해삼, 전복, 자연 송이, 생선 부레입니다. 여기에 각종 진귀한 해산물과 약재를 넣되 끓이지 않고 ‘찌는’ 방식으로 조리하지요. 식재료와 입맛은 현대에 맞추더라도 전통 조리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고전을 가까이하고, 그 본질을 이해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물론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법. 중식도 예외가 아니다.

중식의 진수를 발견케 하는 불도장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든 불도장에는 샥스핀, 해삼, 전복, 송이버섯, 오골계 등 고급 식재료를 포함해 대략 스무 가지 정도의 재료가 들어간다. 1박 2일 정도 푹 고아 만드는 중국의 대표 보양식으로, 재료의 영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국물의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다. 건더기도 곁들이는 두반장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_여경래(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홍보각’ 오너 셰프)
문득, 뜻밖에 ‘발견’을 하는 때가 있다. 무언가를 눈여겨보면 그간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의 진면목을 잘 볼 수 있게 된다. 무엇이든 내 인생에서 찬란하게 꽃피우려면 먼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의 중식당 ‘홍보각’ 여경래 오너셰프가 보배인 ‘꽃’을 발견하는 방법은 이렇다. 제대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 “무엇이든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한다면 대상의 이면을 볼 수 없어요. 중식도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갖춰야만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지요. 제가 ‘사상누각沙上樓閣’ ‘저변확대底邊擴大’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리사가 음식의 참맛을 발견하려면 첫째 기초를 튼튼히 하고, 둘째 견문을 넓혀야 하지요.” 세계적으로 중식당만 40만 개 정도 있을 정도로 어느 음식 문화에나 잘 스며들어 현지화에 강한 것이 중식의 강점이지만, 시대의 트렌드와 고객의 입맛을 반영하려면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안목을 갖춰야 참맛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식 중국요리를 일컫는 ‘한중채’ 대가다운 이야기다. 물론 중식의 진면목을 만끽하려면 즐기는 입장에서도 정수를 맛봐야 한다. “문자 그대로 ‘스님도 담을 뛰어넘어 맛본 요리’로 그 유래가 알려진 불도장佛跳牆은 대표 보양식으로 중식의 진수를 발견하려면 꼭 맛보야 하는 요리입니다.”

현재
원재료의 맛과 질감에 충실한 모던 중식
“참소라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얼음물에 담가놓는다. 살이 응집돼 탄탄해지면 물기를 꽉 짜고, 작은 오이를 얇게 썰어 세 시간쯤 소금을 뿌려 숨 죽인 것도 물기를 짜서 준비한다. 웍에 생강, 파, 마늘 등을 볶다가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볶아서 양념하고, 참소라와 오이를 넣어 살짝 볶으면 아삭한 식감과 감칠맛을 만끽할 수 있다.” _김정석('Js.가든’ 대표)
2000년대 청담동의 아이콘이던 차이니스 레스토랑 ‘이닝’을 선보인 주인공으로, 요즘 인기인 ‘js.가든’ ‘js.가든 블랙’ 등 중식당을 모던하게 진화시켜나가는 이가 김정석 대표다. 한식 궁중 요리와 일식 전문가로 신라호텔의 홀 매니저 출신인 그는 중식 요리사가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식과 문화를 즐기는 쟁이다. “호텔에서의 경험을 살렸습니다. 특히 여성이 즐기기 좋도록 작은 접시에 담고, 최상의 재료만 썼어요. 처음에는 요리사와 부침도 심했지만 밀어붙였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 매니저 시절에도 그는 짬만 나면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음식에 관해선 뭐든 다 배우고자 했다. 워낙에 음식 자체도 좋아했지만 현재에 충실하며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음식도 진화하는 법이에요. 옛것을 고집하면 고루해지니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죠. 그래서 퓨전이 아니라 모던이 맞아요.” 기름과 전분은 적게, 단 최상의 재료로 고유한 맛과 질감에 충실한 것이 그가 선보이는 모던한 중식의 특징이다. 그래서 참소라와 오이를 볶아낸 요리도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다. 그의 행보대로 지금 가장 좋은 식재료와 현대인의 입맛과 요구를 녹여내 진화하는 것, 현재의 중식이 가야 할 길일 테다.

권위
으뜸으로 꼽히는 북경오리
“겉면을 기름에 튀겨내는 대신 화덕에서 참나무 숯으로 오랜 시간 구워내는 북경오리는 겉면은 바삭하고 촉촉한 속살의 육즙이 일품이다. 구운 오리 껍질과 고기를 가늘게 썰어 밀전병에 얹고 파와 오이도 썰어 함께 올려 양념장에 찍어 먹는데, 고객 앞에서 통구이한 오리를 직접 카빙해 보는 재미도 제공한다.” _ 곡성락(더 플라자 '도원’ 주방장)
진정한 권위는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다. 요리도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특급 호텔 중식당의 살아 있는 역사라 불리는 더 플라자의 ‘도원’은 권위 있는 레스토랑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 서로 다른 사람들이 뜻을 모아 결의를 한다는 뜻의 이름 그대로 예부터 정·재계의 명사들이 드나들던 곳이지만, 이곳의 권위는 권력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닌 눈높이를 맞춘 ‘공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권위를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 고유의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응대하며 원하는 바를 음식으로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식당을 자연스레 권위 있는 곳으로 만들었지요. 중식 중에서는 북경오리가 권위 있는 요리 중 하나입니다.” 도원의 곡성락 셰프는 거대한 대륙의 중심지인 베이징을 대표하는 명물로, 중국에 “북경에 와서 만리장성을 보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고, 북경오리를 먹지 않으면 평생 여한으로 남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이 유난히 사랑하는 요리라고 덧붙인다. 힘이 세어서도 아니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 맛과 멋, 건강이라는 삼박자를 갖추어 여러 사람에게 두루 사랑받는 것이 품격 있는 요리의 요건인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합리적 권위’가 아닐까.

소통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물만두
“위엔바오 모양의 물만두는 소를 돼지고기와 부추만 넣고 만든 것으로, 금화햄 등 고급 재료로 만든 얼탕인 홍연의 특급 육수를 맛볼 수 있는 요리다. 물만두와 함께 화합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으로는 월병이 있다. 함께 모여 둥글게 살아가자는 의미를 지닌 중국의 대표 디저트이다.” _정수주(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홍연’ 주방장)
“중국에서 모든 관계는 식탁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의 화평 또한 식탁에서 비롯한다고 믿지요.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도 명절에는 한집에 모두 모이는데, 이때 만들어 먹는 음식이 위엔바오(원보元寶)라고, 옛날 중국 화폐 모양의 만두입니다. 육수를 부어 물만두로 즐기지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중식당 ‘홍연’의 정수주 주방장은 배달 중식당의 영향으로 물만두를 서비스 메뉴로 인식하는 이가 많지만 원래는 특별한 날 빚어 먹는 음식이라고 강조한다. 새해 전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만두를 빚는 자리는 마음을 나누는 시간으로, 위엔바오에 넣는 소의 내용물에 따라 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대신하기도 한다. “중국인은 위엔바오를 먹으면 금(돈)이 집 안에 들어온다고 믿어요. 실제 돈을 넣거나 사탕, 견과류를 넣기도 하는데 사탕은 좋은 말만 하라는 뜻이고, 견과류나 대추는 건강하라는 의미입니다.” 흔히 중국식 작은 만두 요리를 뜻하는 딤섬은 사실 ‘점심點心’의 광둥식 발음으로 , 풀이하면 ‘마음에 점을 찍는다’이다. 중국인이 위엔바오로 정을 나누듯 음식은 마음을 나누는 데 가장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음식을 함께 먹고 선물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점을 찍는 것. 점이 이어질 때 비로소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인생
베풀고 나누는 삶의 여유, 홍문선어
“생선은 내가 좋아하는 재료다. ‘금처럼 귀한 어종’이라 불리는 금태를 사용한 생선 요리인 홍문선어는 요리법이 단순하지만 어지간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 손질한 생선에 양념을 고루 배게 한 후 센 불에서 튀겨내는데, 이때 기름을 붓고 불이 확 붙어야 생선 비린내가 제거되고 고유한 향이 난다.” _왕육성('진진’ 사부)
“흔히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거라잖아요? 나는 그런 얘기 들으면 속으로 그랬어요. ‘아닌데, 행복해야 성공하는 건데….’ 40년 넘게 주방 일만 하다가, 나이 육십이 되니까 그만 쉬고 싶었어요. 내 재주와 기술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나도 행복해지겠더군요.” 올해 1월 11일 오전 11시에 정식 오픈한 ‘진진’에는 중식계의 대부이자 진정한 ‘사부’라 불리는 왕육성 셰프가 있다. 제자들의 인생 멘토로 그들이 기반 잡는 것을 돕기 위한 곳이 진진인 것. 또한 정통 중식을 가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1’이 다섯 개나 들어가는 오픈 일자에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식당 최초의 회원제(평생 회비 3만 원)로, 유일하게 짜장면·짬뽕·탕수육을 팔지 않고, 가격이 합리적인 최고의 중화요릿집이 되고자 하는 것. “최초이자 최고가 되는 것은 요리사로서 커다란 명예지만, 모든 사람의 입맛에 간이 맞을 수는 없어요. 중식은 정형화된 레시피도 없어서 요리사는 소신이 있어야 해요. 내 입맛에 간이 맞다 싶으면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면 안 돼요.” 요리사로서는 고집스럽고 기준이 엄하지만, 인생은 베풀며 살고자 하는 그가 선보인 요리도 중국인이 여유 있는 삶의 상징물처럼 여기는 생선 요리다. “몸은 바쁘지만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어요.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기에,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세트 제작 강혜림, 김지나 캘리그래피 강병인 *‘여덟 단어’의 화두는 박웅현 작가의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여덟 단어>(북하우스)를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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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신민주 | 사진 김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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