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슈퍼마켓 체인인 울워스에서 만든 ‘오드 번치’ 제품 라인. 폐기하던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저럼한 가격에 판매한다.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자원연구소(WRI, World Resources Institute)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의 3분의 1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약 10억 톤,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7천5백억 달러(약 8백86조 원)에 이른다. 식량이 풍족하고 잘사는 선진국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음식물 쓰레기의 56%가 선진국, 44%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음식물 쓰레기는 남긴 음식을 버릴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ㆍ저장ㆍ유통ㆍ조리ㆍ소비 등 여러 단계에서 발생하는데, 북미와 오세아니아에서는 소비자가 많은 양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는 반면, 동남아시아에서는 대부분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가 국제사회에서 이토록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 외에도, 온실가스 배출(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25배 더 강하다), 수거와 처리 시 악취 발생, 고농도 폐수로 인한 수질오염 등 환경문제까지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에 2012년 1월 유럽연합(EU)은 2025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50%까지 줄이겠다는 결의안을 발표하고, 2014년을 ‘음식물 쓰레기 반대의 해’로 정해 유럽연합 국민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 동참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런던 협약(폐기물의 해양투기로 인한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국제 협약)에 의해 음식물 쓰레기 폐수를 해양에 버리는 것을 전면 금지했으나 여전히 ‘쓰레기 해양투기 나라’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환경관리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생활 폐기물 중 음식물 쓰레기의 비중이 약 30%이며, 처리 비용으로 연간 6천억 원 이상이 든다. 특히 우리 음식의 특성상 약 80%까지 차지하는 높은 수분 함량과 고농도의 염분은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 사료, 에너지 등으로 재활용하거나 소각, 매립하는 데 어려움을 주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환경문제를 더 이상 남의 일로 여길 수 없는 이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국내외 기업의 사례를 소개한다.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 오히려 패셔너블하게 느껴지도록 디자인한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엥테르마르세의 포스터.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트렌디한 상품으로 만든 유통 대기업
작년, 프랑스의 3대 슈퍼마켓 체인인 엥테르마르세Intermarch 는 ‘불명예스러운 과일과 채소’라는 의미의 ‘레 프뤼이&레쥠 모슈Les fruits & l gumes moches’ 브랜드를 론칭했다. 못생기거나 크기가 일정치 않아 유통하지 못하는 과일과 채소를 상품화한 것이다.
그동안 정상 모양과 크기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B급으로 분류될 운명이었던 과일과 채소들이 대규모 슈퍼마켓의 상품 진열대에 놓여 소비자의 손을 기다리게 된 이 사건(?)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의 언론과 여론을 통해 큰 박수를 받았다. 심지어 이 상품들은 마트 한편의 작은 코너가 아닌 정상 상품 옆에 당당히 놓였고, 정상 제품보다 3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해 경제적 이유로 과일과 채소를 쉽게 살 수 없었던 소비자와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그로테스크한 사과’ ‘무시무시한 오렌지’ ‘바보 같은 감자’ ‘못생긴 당근’ 등 직설적인 형용사와 꾸미지 않은 모양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오히려 패셔너블하게 느껴지도록 디자인한 포스터는 더 이상 생긴 것만으로 품질을 저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틀 동안 매장별로 평균 1.2톤이 판매 되었고, 전체 매장의 방문객 수는 24%가 증가해 농부, 소비자, 유통 기업 모두 만족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오샹Auchan, 모노프리Monoprix 등 경쟁사들도 앞다투어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매하기 시작했다. 엥테르마르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활용해 만든 주스와 수프까지 선보이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호주의 1위 슈퍼마켓 체인인 울워스Woolworths에서도 볼 수 있다. 호주 내 8백7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울워스는 ‘프레시 푸드 피플Fresh Food People’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먹거리의 품질과 건강, 환경에 많은 관심을 쏟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울워스는 지난해 12월 ‘오드 번치Odd Bunch’라는 이름의 제품 라인을 만들었다. 판매 불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폐기되던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정상 제품에 비해 최고 80%까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 특히 같은 해 5월 이 회사와 파트너십을 통해 간편 가정식(HMR) 메뉴 라인을 론칭한 영국 출신의 유명 셰프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가 어린 아들과 함께 출연한 오드 번치 홍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제이미 올리버는 울워스의 사례를 영국 내 2위 유통업체인 아스다ASDA와 협업하는 것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올 1월 초 관련 캠페인의 시작을 언론을 통해 알리고, 그의 TV 프로그램에서 못생긴 과채 제품 소비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아스다는 시범 판매 후 올 1월부터 다섯 개 매장을 시작으로 못생긴 과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유통 기업의 사례는 세계적으로 낭비되고 버려지는 음식물 문제 이면에 여전히 존재하는 기아 문제와 환경문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사람들이 더 이상 이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못생긴 세 종류의 과일을 헐값에 사서 장시간 저온 건조해 육포 모양으로 만든 제품으로, 똑똑한 영국 청년 두 명의 스타트업 결과물이다.
못생겨서 고마운 과일, 청년 창업의 파트너가 되다
2009년 7월까지 유럽연합에는 26종의 과일과 채소에 대해 모양과 크기가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 규제로 영국에서 생산한 과채 제품 중 20~40%가 그대로 버려졌고, 규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이 문제는 관행에 따른 탓에 바로 해결되지 못했다. 농부에게 많은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쓰레기로 인해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두 명의 영국인 청년은 2014년 영국의 온라인 펀딩 사이트에 새로운 사업 모델을 소개하면서, 1만 2천 파운드(약 2천만 원)를 목표 금액으로 세웠다.
그들은 판매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세 종류의 못생긴 과일을 헐값에 구매한 뒤 장시간 저온 건조해 육포(jerky) 모양의 제품을 만들었고, 이를 회원 집으로 매달 배송해주는 스타트업, 스낵트SNACT를 창업했다. 결과는 한 달 남짓 만에 2백73명으로부터 목표 금액을 뛰어넘은 1만 3천5백16파운드(약 2천4백만 원)를 투자 받았다. 사과와 망고, 라즈베리 등 100% 과일만으로 만든 제품을 매일 먹는 소비자는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고, 회원 80명당 배송을 위해 일자리 한 개가 창출되며, 폐기되는 과일을 활용해 농부와 환경을 돕는 이 착한 스타트업은 런던의 유명 빈티지 마켓인 캠든마켓과 영국의 유기농 건강식품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기업인 라이프박스LIFE BOX에서 판매되는 등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판매하지 못할 운명의 못생긴 과일을 이용해 사업을 일구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부산의 동아대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시작한 파머스페이스㈜(대표 서호정)가 그 주인공. 2012년 한국사회 적기업진흥원의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 SK의 행복나눔재단 최초 임팩트 투자 유치 기업, 부산광역시의 지원 사업으로도 선정된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이 기업은 2013년 부산대 앞에 못생긴 과일을 활용한 디저트와 음료를 판매하는 ‘열매가 맛있다’ 카페를 오픈해 현재 부산과 창원, 서울의 강남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시럽이나 얼음 등 첨가물이 없는 100% 생과일주스를 비롯해 대표 메뉴인 속을 파낸 멜론에 재료를 담아내는 멜론 빙수, 일반 과일과 못생긴 과일을 섞어놓은 과일 종합 세트 네이처 박스 등을 판매한다.
1 판매하지 못하는 과일을 활용한 디저트 카페 ‘열매는 맛있다’의 음료.
2 상파울루 엘도라도 쇼핑몰은 음식물 쓰레기를 유기농 퇴비로 만들어 옥상에 조성한 친환경 채소밭을 가꾼다.
푸드 코트의 리사이클링 해법
브라질 상파울루의 유명 쇼핑몰인 쇼핑 엘도라도Shopping Eldorado는 7만 6천m²의 규모에 걸맞게 하루 1만 명분의 음식을 판매한다. 이 쇼핑몰은 적극적 분리수거를 통해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400kg가량 수거한다. 일반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는 비용을 들여 전문 업체를 통해 버리지만, 이 쇼핑몰은 좀 더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내 실천으로 옮겼다. 쇼핑몰 옥상에 친환경 채소밭을 만든 것.
음식물 쓰레기를 유기농 퇴비로 만들어 채소밭을 가꾸고, 거기서 수확한 작물은 전부 신메뉴를 개발하는 데 쓰거나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 직원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분리수거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뿐 아니라 함께 가꾼 채소를 나눔으로써 동료애가 돈독해지는 것은 물론,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강화되는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쇼핑몰은 음식물 쓰레기 외에도 매월 수거하는 3백 톤의 쓰레기 중 약 25%까지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처리하는 등 대형 쇼핑몰 기업의 모범적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의 ‘배설물 축제’에 운좋게 당첨된 이들이 초식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를 직접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냄새나는 배설물로 꽃과 열매를 피우는 동물원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우드랜드 파크Woodland Park 동물원에서 키우는 세 마리의 코끼리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하루 400kg에 육박한다. 다른 동물의 배설물까지 합하면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는 배설물을 처리하는 것은 늘 골칫거리였다. 동물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획기적 아이템을 개발했다. 화학 성분을 섭취하지 않는 코끼리, 기린, 하마, 얼룩말 등 초식동물의 배설물에 천연 비료와 지푸라기를 혼합해 물 뿌리기와 섞기를 반복하는 긴 과정을 통해 질좋은 유기농 퇴비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한 ‘주 두Zoo Doo’라는 퇴비는 작은 통에 담겨 저렴한 가격으로 기념품 매장에서 판매되는데, 정원에 꽃과 나무를 키우는 관람객과 아이를 둔 부모에게 매력적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연을 살리기 위해 만든 퇴비가 튼튼하고 예쁜 꽃과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주니, 자연이 자연을 살리는 아름다운 선순환이다.
고급 퇴비가 점점 전문가에게 인정받으면서 봄가을에 대량의 퇴비를 직접 트럭에 실어 가거나 대용량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배설물 축제(Fecal Fest)’가 열리는데, 이 축제의 인기가 너무 높아 사전 신청한 사람들 중 구매자를 추첨하고,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양에 제한을 둘 정도다. 이 역발상은 연간 최대 8만 달러(약 9천만 원)의 비용을 쓰게 만들던 골칫덩어리 배설물을 연간 1만 5천 달러(약 1천7백만 원)를 벌어주는 효자 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동물원은 꾸준한 연구로 새로운 퇴비를 개발하고 있는데, 프리미엄 급 제품을 개발한데 이어 최근에는 곤충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 판매를 시작했다.
한국의 동물원도 환경과 자원을 생각하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올 3월 말, 서울시는 열다섯 개 소셜 벤처, 사회적 기업과 손잡고 서울대공원의 자원 활용도를 높여 이용 가치를 극대화하는 ‘액션대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 중에도 ‘코끼리 배설물 종이 만들기’와 ‘커피 찌꺼기와 코끼리 배설물을 혼합한 신재생 연료 펠릿 생산’ 계획도 포함되었다니 관심을 갖고 기대해볼 일이다.
지구를 지키는 것은 슈퍼 히어로만의 영역이 아니다. 자연을 지키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가장 근본 방법이 된 지금, “지구는 모든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만, 모든 인간의 탐욕을 채워주지 않는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깊이 새겨볼 때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그대로를 잘 사용하고, 우리의 자연이 그야말로 자연스러워지도록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글을 쓴 남윤정은 국내 중견 기업에서 10여 년간 와인, 외식, 문화 교육 사업의 기획과 마케팅을 총괄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대학에서 마케팅과 외식경영을 가르친다. 초등학생 아들과 요리하기, 아파트 베란다에서 채소와 식물 키우기 등 음식과 자연을 가족과 함께 만끽하는 소소한 시간에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 힐링이 필요한 지구 자연을 살리는 자연
-
지구의 환경은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자연을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지키기 위한 세계 곳곳의 움직임을 식생활 위주로 소개한다.#음식물쓰레기 #레프뤼이&레쥠모슈 #엥테르마르세 #울워스 #주두 #배설물축제글 남윤정(F&B 마케팅 프리랜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