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지은 시골집 앞마당은 곡식 저장소다. 지붕엔 마늘을 걸어 말리고, 그늘엔 꿀단지를 놓고, 부뚜막엔 갓 딴 채소와 곡식이 있다. 앞마당 햇살 아래 앉은 임락경 목사.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농부는 창조주의 발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며 산다. 그가 들판을 여는 소리에 씨를 뿌리고 물을 찾아 논에 대고 서늘한 바람을 보내주면 추수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부는 하늘의 별과 우주 만물도 서로 끌리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부딪쳐 깨지지 않는다는 섭리도 터득한다. 그런 인력의 법칙 덕분에 계절이 바뀌어 절기가 돌아오고 농부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자연의 끌림에 따라온 삶
늘 입던 옷이, 오래된 물건이, 조상의 가보가 새것보다 편하고 늘 잠자는 방이 편한 것도 이런 끌림의 이치다. 개울 모래에 신발 한 짝이 묻혔을 때도 마찬가지다. 남은 신발 한 짝을 끈에 매달고 다니면 신발이 묻힌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돈다. “끌리는 힘이 가장 강한 것은 부모 자식 간입니다. 부모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입었던 옷이에요. 아버지 몸에서 만들어져 어머니 자궁에서 살았던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옷이죠.” 그러니 두꺼운 책에 쓰인 말씀대로 사람은 부모가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잘 모셔야 한다. 또 이방 사람, 세상 사람 구분할 게 아니라 끌리는 곳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임락경 목사가 지난 40년을 폐결핵 환자, 장애인, 암 환자 등 시대마다 가장 어려웠던 사람을 돌보며 산 것도 끌림 때문이다.
해방되는 해에 태어난 임락경 목사는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만 마쳤고, 10대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장로이던 오방 최흥종 목사와 살았다. 의사이던 최흥종 목사는 만년까지 고아, 노인, 과부와 결핵 환자를 거두며 돌보았던 분. 이후에는 이현필 선생을 찾아가 폐결핵 환자가 모인 동광원에서 오래 살았다. 농사를 짓고 환자를 돌보고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교육을 도우며 이현필 선생의 친구이자, 우리나라 유기농 농사의 아버지요, 풀무원 원장인 원경선 선생도 그곳에서 만났다.
최신 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더 많은 수확물을 얻자고 정부가 나서서 외칠 때, 이현필과 원경선 등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현자들은 나라가 잘되려면 자연을 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느린 삶에 대한 철학을 견지했다.
“1975년에 일본 애농회 회장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는데, 일본 정부가 1940년대에 한 유독성 농약 사용을 금지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흐른 후에도 그 농약이 검출되더랍니다. 거기까지 듣던 원경선 원장이 갑자기 통역을 중단시키고 통역사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 농약이 40년 후에 산모의 모유에서 나왔다는 상세한 설명을 통역사가 놓쳤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976년에 자연을 해하지 않고 바른 농사를 짓는 정농회를 만들었습니다.”
정부의 관심 밖에 있던 지적 장애인을 돌보기로 결심한 임락경 목사는 뒤늦게 신학교에 갔고 군 복무를 했던 강원도 화천의 산골에 교회를 지었다. ‘지체와 언어가 부자유하니 장애인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이런 결심에 따라 목회를 하며 농사를 지었으니 강원도의 맑은 산천에서 성실하게 김매고 밭매며 함께 사는 장애인에게 깨끗한 세끼를 해 먹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수맥과 산맥도 창조의 원리
부모와 자식은 강하게 끌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시신을 물이 고인 곳이 아닌 햇볕 잘 드는 곳에 매장하는 문화가 있다. 임락경 목사가 마을 일을 도맡아 하고 땅속 수맥과 따뜻한 지열이 흘러 집터로 좋은 산맥을 잘 찾아내니, 장애인을 데리고 사는 외지 목사를 못마땅해하던 마을 사람들도 그를 신임하기 시작했다. 임락경 목사는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끌림 원리를 이해했고, 프랑스 신부가 한국 가톨릭계에 알려준 수맥 탐지법을 마산교구의 이종찬 신부 등에게 배웠다. 방법을 알고 경험이 많으니 실에 추나 버드나무 가지를 매달아 추가 돌고 버드나무 가지가 기우는 정도를 감지해 수맥을 찾았다.
수맥 찾는 물 목사라니! 지역의 토속 문화를 미신이라 여기는 개신교에서는 혀를 찰 일이지만 농부나 시골 주민에게는 물처럼 중요한 게 없다.
시골집은 1980년대 어려웠고, 1990년엔 인기가 있었고, 2000년에는 추억이 되고 있다. 이제 정부가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이 좋아졌기 때문에 시골집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많이 줄었다. 된장독은 1980년대 장애인이 많이 모여 어려웠던 시골집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이 된장을 팔아 땅을 사 집을 짓고 지금처럼 농사를 짓게 되었다. 보통 3~5년간 숙성하는 깨끗한 우리 콩 된장은 여전히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닭하고 오리를 같이 기르면 낮에는 똑같이 움직이고 같은 먹이를 먹어요. 그런데 밤에 보면 오리는 물가에 가서 자고, 닭은 높은 데 올라가서 자요. 닭하고 오리를 바꿔서 재우면 어떻게 될까요? 둘 다 앓다가 죽지요. 소나무는 마른 데서 자라고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자라요. 두 나무를 바꿔 심으면 어떻게 될까요? 둘 다 병에 걸려 죽지요.” 사람도 습한 곳에서 잠을 자면 병이 나는 동물 아니던가. 우리나라 처럼 산이 겹겹이 겹쳐 수맥과 산맥이 혼재된 지형에서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고 집을 짓는 데 수맥과 산맥을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물 목사’의 인기가 올라가니 주민도 장애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감사한 변화가 찾아왔다. 또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임락경 목사에게 중증 장애인을 데리고 왔다. 가난해서 자녀를 맡기고 일하러 떠나는 사람, 몰래 와서 버리다시피 하는 사람, 혼자 찾아오는 사람까지 그가 밥을 지어 먹여야 하는 장애인이 점점 늘어나 한때는 쉰 명 가까이 되기도 했다.
자연 농법으로 농사짓는 정농회
정농회 회원으로 산 지 40년째, 시골집 목사로 산 지는 30년째다. 1980년대에 임락경 목사의 교회에는 이애리라는 도시 교회 신자가 몸이 아파 요양을 왔다. 추천을 받아 왔지만 온종일 괴성을 지르는 정신 지체 장애인들과 같이 살아보니 힘들고 우울해서 빨리 도시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한다. 겨울을 보내고 떠나는 날, 말이 통하지 않던 지체 장애인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며 그가 탄 자동차를 쫓아왔고, 그 모습이 내내 뇌리에 남아 마음을 이끌었다.
“이제 두 달 있으면 이곳에 온 지 벌써 30년째네요. 무척 힘들었지만 지난 세월이 좋아요. 평생 내 밥상만 차릴 수는 없고 사회적으로도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니, 봉사를 한 게 아니고 여기서 내 삶을 산 거죠. 이곳을 거쳐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훈련시키고 모난 게 깎이면서 내 삶이 도움을 받았어요.”
임락경 목사가 정농회 모임과 농민 단체 강의 등으로 외출하면 이애리 원장이 농사를 지어 장애인에게 밥을 해 먹였다. 수입산 콩을 대량으로 들여오니 콩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어서 어느 해에는 전국에서 콩과 옥수수가 잘되기로 소문난 화천에도 장 담글 콩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마을 주민을 모아놓고 어떻게든 팔아줄테니 우리 콩을 지키자고 설득했다. 그랬더니 다음 해부터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기른 우리 콩이 1백 가마씩 밀려드니 그게 또 문제였다.
“처음에는 두부를 만들어 새벽 시장 아주머니들이 모인다는 목욕탕에 가서 팔기도 했어요. 그러다 아궁이에 불을 때 된장을 담갔는데 수입산 된장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 우리 종자 콩으로 만들었으니 시골집 된장 맛이 소문나서 아주 잘 팔렸어요. 덕분에 땅을 사서 장애인들이 좀 더 편히 생활할 수 있는 시골집을 짓고 지금 이곳에서 농사를 짓게 됐지요.” 이애리 원장의 설명처럼 1980년대 중반에 이르자 농촌에서조차 우리 농산물 종자가 희귀해졌다. 대량생산이 잘되는 개량 종자를 들여와 제초제를 뿌려 정리한 밭에서 비료와 성장촉진제와 영양제를 주며 기르고, 병이 들까 봐 농약을 쳐서 수확을 했다. 그런 농산물을 공장에서 재가공하고 첨가물을 넣고 2년이든 5년이든 썩지 않는 방부제를 넣어 식품으로 만들면 우리가 밑반찬부터 디저트까지 삼시 세끼 그 음식을 먹고 산다.
반면, 정농회 회원들은 지난 40년간 오직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시골집에서도 그 흔한 비료 한 번, 영양제 한 방울도 뿌린 적이 없으니 사람에게도 해가 없다. 우리 종자를 기르고 요리도 옛 방식대로 해 먹는다. 온갖 채소와 소, 돼지, 사슴, 닭 등의 가축도 있으니 시장에 갈 일이 없고 소금과 해산물 정도만 외지에서 들여온다.
놀라운 건 시골집에 쉰 명 가까이 모여 살았어도 지난 30년간 단 한 번도 누군가 병이 들어 병원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국의 정농회 회원 중에도 40년째 암환자가 나오지 않았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느린 밥상, 즉 슬로 라이프를 세계 사회가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일찍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종일 볕에서 일하고 천연의 먹거리를 섭취하니 겉모습은 늙어지나 속은 깨끗하고, 삶에 지혜와 건강이 깃든다. 현대인이 자아도취에 빠져 잊어버린 오랜 자연의 이치다.
땅에서 금방 뽑아 이내 만드는 시골집의 소박한 식사.
지금 필요한 건 중의보감
“돼지기름이 손에 묻으면 36℃ 물로 비누칠을 하면 없어져요. 그러니 돼지기름은 일상 체온에서도 밖으로 빠져나가겠지요. 소기름은 좀 더 뜨거운 물로 닦아야 씻깁니다. 그러니 그 기름을 내보내려면 몸에 열이 나겠지요. 가끔 열이 나는 건 몸에서 독소를 내보내려는 신호입니다. 그때 해열제를 먹으면 열은 내리겠지만 병은 낫지 않아요. 열이 해야 할 일을 다 못 했으니까요.” 농사를 지으며 느린 삶을 살다 보면 이 같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깨달을 기회가 허다하다. 그래서 시골 마을의 어르신 중에는 돌팔이가 많다. 배 아픈 손자, 열나는 손녀를 금세 고치고이를 뽑고 아기도 받는 ‘이치를 알아 돌파하는’ 자연 생태계의 지식인들이다.
“유럽의 스위스 같은 곳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추운데 눈 밑에서도 풀이 나요. 그러니 목축이 잘되고 고기와 우유가 흔해 대부분의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는 태양 체질입니다. 열이 많아 겨울에도 찬물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체질이지요.” 이 사람들이 수천 년간 그들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해서 발전시킨 의학을 우리가 받아들여 진료를 받고 있다. 그들이 사는 자연환경은 우리와 많이 다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얼음찜질을 하면 열은 내리는데 병은 안 나아요. 열이 나면 뜨거운 물을 마시거나 찜질방에 가야 합니다. 반대로 열 체질인 백인을 열이 난다고 숯가마에 데려가면 큰일 납니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도 미국 가서 백인을 고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는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해 자신의 의술을 익혔기 때문이죠. 서양의학이나 의사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들이 임상 시험을 한 자연환경과 체질이 우리와 다른 게 문제지요.”
자연 생태계가 다르니 서양 사람은 서의보감으로, 동양 사람은 동의보감으로 진료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은 한의원에 가면 다 나을까? 그것도 아니다. 우리 식생활이 반서구화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사람은 아무리 허준이라 해도 못 고칠 것이다. 그 옛날 허준이 임상 시험을 한 오장육부와 지금 우리 몸은 아주 많이 다를 게 틀림없다. 그 때문에 임락경 목사는 지금은 ‘중의보감’이 필요한 때라고 농 아닌 농을 한다. 우리의 먹거리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느리고 건강하게 사는 삶
개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최근 수십 년 사이 우리가 너무 많이 먹기 시작한 식품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 아울러 요리법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산삼이 아무리 좋아도 아침저녁으로 산삼나물을 해 먹고 산삼비빔밥을 해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조들이 지져 먹고 무쳐 먹고 쪄 먹던 것을 아침저녁으로 기름에 볶아 먹지는 않는가? 제철에 먹을 것을 다른 계절에 먹으려고 방부제를 넣어 보관하지는 않는가? 시골집 식사와 요즘 사람의 식사에는 이런 차이가 확연하다.
우리 몸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잘 알면 병원에 갈 일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시골집에서 한 아이가 음식을 먹고 체한 후 간질 증상을 보였는데, 병원이 멀어서 급한 대로 체기부터 내려보았다. 그랬더니 간질 증상이 사라졌다. 그 뒤로는 간질로 쓰러진 아이는 다 고쳤다. 중학생까지는 가능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이 방법이 듣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급체하면 X-선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환자는 까무러치며 배를 잡고 구른다. 그럴 때는 물을 한 대접 가득 먹인 후 만져서 아픈 곳을 손으로 주무르며 쓸어내리면 낫는다. 해산물을 먹고 탈이 나면 미나리를 먹이고, 돼지고기에는 새우젓을, 고기에는 배를 먹이면 된다. 가장 좋은 건 체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도 많이 체하는 밥, 떡, 고구마와 다른 음식의 끌림을 이해하면 쉽게 보완책을 찾을 수 있다.
장애인과 암 환자가 기거하는 시골집 앞마당 앞에 찻집을 새로 지었다. 지붕 위에 구수한 된장독이 놓인 이 찻집은 손님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차를 마시거나 빵을 먹거나 무인 가판대에서 농산물을 가져갈 때에도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만큼 비용을 넣도록 작은 함을 마련해놓았다.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어느 집에 가든지 꼭 간장을 먼저 찍어 먹고 밥을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반드시 발효 식품을 먼저 먹은 다음에 밥을 먹어야 해요. 요즘 유치원에서 아이들 간식으로 과자 대신 고구마 하나를 손에 쥐여주지요? 김치나 동치미 없이 고구마만 먹이면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고구마를 먹일 때 꼭 물이라도 먼저 먹여야 해요. 고기에도 잘 체합니다. 고추장, 간장을 넣고 주물러놓은 고기는 괜찮아요. 구운 고기는 새우젓이나 된장이 없으면 먹지 마세요. 떡도 잘 체합니다. 팥이 들어간 떡은 괜찮아요. 그러니 어르신들 놀러 가실 때 고물 흘린다고 시루떡 대신 절편을 해드리면 안 됩니다. 그럴 땐 꿀을 찍어 먹거나 조청 또는 간장에라도 찍어 먹어야 해요. 그리고 무엇이든 싹이 나면 소화제로 바뀝니다. 콩이 싹이 나서 콩나물이 되면, 보리가 엿기름이 되면 해독제로 변합니다.”
사람이나 생물이나 자연의 시간에 맞춰 성장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가축을 길러보면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의 수명은 보통 성장 기간의 5~7배 정도 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요. 가축은 대부분 2년간 성장하고 수명이 10~15년이에요. 벚꽃나무는 빨리 크고 꽃이 빨리 지니 나무의 수명이 짧고, 매화나무나 은행나무는 천천히 자라니 수명이 1천 년이나 됩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사람은 스무 살까지 성장하니 수명이 1백 세가 넘어야 합니다. 요즘 태어난 아기들은 눈 맞춤이 빠르고 빨리 걷고 빨리 자랍니다. 그래서 기특한가요? 빨리 성장하는 것과 수명의 관계를 자연에 비추어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환경문제
베트남전에서 풀잎을 없애려고 뿌렸다가 20년이 지난 후 우리 아버지 세대를 병들게 만든 고엽제 같은 제초제나 독한 농약도 무섭지만, 일명 영양제라고 불리는장촉진제를 더 경계해야 한다. 농산물은 물론 각종 가공식품에도 사용하는 성장 촉진제를 먹고 산모가 아이를 가지니 아이가 자연 생태계의 성장 속도를 거스르며 빨리 자란다. 의식주 전부를 환경문제로 다루어야겠지만 우선 먹거리부터, 특히 산모와 아이의 먹거리부터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가능하면 유기농 식품을 먹는게 좋다. 임신부는 7~8개월부터라도 녹두죽을 먹으며 먹거리를 바꾸면 아이가 좀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이런 기준으로 농산물을 소비하면 농부들이 농사짓는 법을 바꿀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자연환경도 지킬 수 있다.
“해방되던 해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70년을 살면서 사람에 위아래가 없다는 천민운동, 근검절약, 민주화 운동, 통일과 복지까지 시대마다 할 일을 하며 살았는데 제대로 해결된 건 없지요. 선진국도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1백 년씩 걸렸으니 30년 후에는 이런 문제가 다 해결되고 우리 사회가 안정될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환경문제를 가장 우선시해야 합니다. 양반 때문에 죽은 사람, 독립운동하다 죽은 사람, 배고파 죽은 사람, 민주화 운동 하다가 죽은 사람, 복지 정책이 잘못되어 죽은 사람은 다 합해도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환경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는 환자 본인도 의사도 우리도 모르니까요.”
하필 가장 힘든 시대에 태어나 가난하게 크느라 남만큼 키도 자라지 못한 농부, 이토록 놀라운 자연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느라 평생 착하게 농사짓고, 어려운 사람에게 사랑으로 밥을 해 먹인 목사. 그는 배불리 먹지 못했는데 사람답게 성장했고, 폐결핵 환자와 15년을 살았는데도 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도시에 살아보지 않았지만 시대를 앞서는 혜안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본디 사람은 느리게 살고 넓게 보며 자연에 깨끗이 깃들여 있을 때 지혜를 얻게끔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임락경 목사의 삶은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건강하려면 몸에 들어가는 음식부터 깨끗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우리 몸도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면서 살면 느려도 조바심 나지 않고, 남만큼 못 먹어도 내 것만으로 족하다. 이런 사람이 참된 신앙인이고 만물의 영장이리라. 슬로 라이프의 궁극적 가치는 이런 지혜에 있다.
- 임락경 목사 자연과 건강한 삶에 대한 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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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들려주지 않는 건강 이야기다. 40년간 자연 농법으로 농사짓고 깨끗한 먹거리로 장애인과 암 환자에게 밥을 해 먹이며 돌보아온 칠순의 농사꾼 임락경 목사. 그가 자연 속에서 살며 깨우친 느린 삶의 이로움에 대한 보고다.#자연농법 #임락경 #정농회 #슬로라이프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민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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