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의 흰떡
조선시대 서울의 풍속을 담은 <열양세시기>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 발처럼 늘이는데, 이를 권모拳摸(골무떡)라고 한다. 섣달그믐에 엽전 모양으로 잘게 썰어 장국에 넣어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를 떡국이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순백색의 흰떡은 다름 아닌 가래떡으로, 예전에는 그 당시의 화폐인 엽전 모양으로 즐겼다. 떡국은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상징적 음식이자 1년 내내 돈을 모으라는 기원이 담긴 음식인 것.
2 복을 부르는 만두와 밀쌈
만두는 정성스레 복을 빚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만두피의 재료나 모양, 익히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흰색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대표 양념거리인 대파의 흰 대 부분이 만두피 역할을 하는 파만두는 본래 옥잠화처럼 아름답게 만들지만 가운데에 소만 넣기도 한다. 밀전병에 재료를 올려 돌돌 말아 먹는 밀쌈도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다. 유두 절식의 하나로 ‘재수를 부르는 음식’인 구절판의 간편 버전인 셈. 무나물을 소로 올려 말면 겨울철 별미로도 제격이다. 조상들은 돌돌 만 음식을 그릇에 볏단처럼 높이 쌓아 담는 걸 즐겼는데, 이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1 미덕 있는 두부
하얗고 맑은 빛깔 덕에 백아순白雅馴이라고도 부른 두부는 예나 지금이나 건강 음식의 상징이다. 그 옛날에도 미덕이 있는 음식으로 찬사받았는데, 두부를 가리켜 오미五美를 갖춘 음식이라 했다. 맛이 부드럽고 좋음이 일덕이요, 은은한 향이 이덕이요, 아름다운 색과 광택이 삼덕이요, 반듯한 모양이 사덕이요, 먹기에 간편함이 오덕이라는 것. 특히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건강과 액막이를 위해 두부를 꼭 먹었으며, 이날 먹는 두부를 ‘복두부’라 했다.
2 가장 위대한 두붓국
음식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던 선비에게도 잘 만든 두부는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즐기는 음식이었다. 음식에 관한 시를 많이 쓴 서거정은 ‘두부’라는 시에서 “옥 같은 두부 덩이 상머리에 가득하다/ 아침저녁 두부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거니/ 구태여 고기 음식 번거로이 구하랴”고 읊으며 예찬했을 정도다. 꽤나 미식가로 알려진 추사 김정희의 충남 예산 고택 기둥에는 “대팽두부과장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그가 꼽은 가장 위대한 음식은 두부ㆍ생강ㆍ나물 등을 넣고 끓인 소박한 두붓국으로 부부, 아들딸, 손주와 함께하는 가족 식사 자리가 가장 즐거운 모임이라는 것을 이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1 특별한 국수
그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하디귀했기에 밀가루로 만든 희고 가는 국수는 아무 때나 먹지 못하고 잔칫날에나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국수는 온갖 잔치에서, 조반이나 점심에 안 쓰는 데가 없으니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누구를 대접하든 국수가 밥보다 낫다”라고 국수를 소개한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혼례에서는 백년해로를, 회갑 등 어르신의 생신 잔치에서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이니 별미 중 별미가 희고 가는 국수다.
2 귀한 흰밥, 백반
요즘은 백반白飯이 식당에서 흰쌀밥에 국과 반찬을 곁들여 내는 가정식 메뉴를 뜻하지만, 한자어를 풀이하면 잡곡을 섞지 않고 멥쌀로만 지은 흰밥을 가리킨다. 조상들은 흰밥을 밥상 위 음식 중 으뜸으로 여겼는데, 곡물 중에 흰쌀을 가장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백김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순백의 음식이다. 고춧가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즈음이므로 배추 본래의 맛과 양념 맛이 어우러진 담박한 백김치는 김치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흰쌀밥과 백김치, 한약재로도 쓰는 백도라지와 겨울 무로 만든 나물, 은빛 갈치구이로 차린 밥상은 정갈한 맛에 완전한 영양을 갖춘 ‘백반’이다.
1 몸을 보하는 죽
죽은 곡식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음식이다. 흰쌀을 기본으로 만들며, 쌀알 그대로 끓이는 옹근죽과 쌀알을 반 정도 갈아서 만드는 원미죽, 곱게 갈아서 쑤는 무리죽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보양식이자 별미로 인기인데, 그 옛날 궁중에서는 우유죽인 타락죽과 잣죽을 즐겼다. 눈빛이나 젖빛을 띠며 임금의 첫 끼니인 초조반상에 오르던 보양식인 것. 서민은 구경하기도 힘든 타락죽과 잣죽을 대신해 백성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고마운 죽이 있었으니 바로 입맛을 돋우는 콩죽이다.
2 조화로운 계절의 맛, 산적
산적은 양념한 고기나 생선 등을 꼬치에 꿰어 불에 굽는 음식을 이르는데, 기본 재료에 따라 어산적ㆍ육산적ㆍ잡산적 등으로 나눈다. 흰 살 생선의 살을 다른 재료와 함께 꿰어 구운 것이 어산적이고, 주로 쇠고기와 버섯, 대파를 꿰면 육산적, 여러 재료를 번갈아 꿰어 만들면 잡산적이 된다. 재료의 선별에 따라 제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조화로운 음식인 것. 산적 종류에 상관없이 쇠고기를 기본 재료로 쓰며, 이를 대신해 쇠고기 육수에 삶은 흰 배추와 무를 흰 살 생선과 함께 꼬치에 꿰면 순백의 어산적을 즐길 수 있다.
1 신성한 백설기
쌀가루에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백의 백설기는 순수함을 상징한다. 그 때문에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 되거나 첫돌 때 백설기를 만들어 이웃 친지와 나누어 먹으며 아기의 건강과 복을 빌었다. 특히 백일떡은 1백 명의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아기가 장수한다고 믿어 되도록 여러 집에 돌려 나누어 먹었다.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음식이어서인지 백일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그릇을 보내지 않고 반드시 흰 무명실이나 흰쌀을 담아 보내는 풍속이 전해진다.
2 격조 있는 순백 다과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말갛게 나오는 더덕은 ‘백삼白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더덕에 찹쌀가루를 묻혀 튀겨낸 겨울철 다과가 섭산삼이다. 집안 잔치나 명절 때 후식으로 즐기던 것으로, 바삭한 식감과 입에서 향긋하게 퍼지는 더덕 향이 일품이다. 씹을수록 느껴지는 깊은 맛 덕분에 풍류가의 주안상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던 그야말로 미식美食인 것. 약용으로도 즐기는 백도라지와 배로 만든 차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파만두
재료 대파 흰 대 3~4대분 소 생선 흰 살 150g, 숙주・두부 30g씩, 다진 마늘・국간장・참기름 1/3작은술씩,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밀가루・녹말가루 적당량 초간장 진간장・맛술・식초 1큰술씩,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대파 흰 대는 3cm로 토막 내 12개 준비한다. 길이로 칼집을 내 겉의 한 겹을 벗겨내고 안쪽에 밀가루를 고루 묻힌다.
2 생선살은 다지고, 숙주는 데쳐서 송송 썰어 물기를 짠다. 으깨어 물기를 뺀 두부와 섞어서 다진 마늘, 국간장, 참기름,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양념한다.
3 ①의 대파에 ②의 소를 올려 돌돌 만 뒤 녹말가루를 고루 묻힌다. 김이 오른 찜통에 젖은 면포를 깔고 5분간 찐 뒤 분량의 재료를 섞은 초간장을 곁들인다.
밀쌈말이
재료(4인분) 밀가루(중력분)・물 1컵씩, 달걀흰자 1개분, 소금 약간, 식용유 적당량 소 무나물 200g (채 썬 무 200g, 육수 1/2컵, 식용유 1/2큰술, 소금・생강즙 약간씩)
만들기
1 냄비에 채 썬 무를 넣고 육수, 식용유, 소금, 생강즙을 넣어 뚜껑을 덮어서 끓이다가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볶아 무나물을 만든다.
2 볼에 물, 달걀흰자, 소금을 넣어 섞고 밀가루를 넣어 거품기로 섞은 뒤, 체에 내린 다음 랩을 씌워서 실온에 1시간 정도 둔다.
3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키친타월로 여분의 기름을 닦아낸 다음 ②의 반죽을 지름 20cm 크기로 떠놓고 밀전병을 부친다.
4 ③의 밀전병에 ①의 무나물을 올리고 돌돌 말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두붓국
재료(4인분) 두부 2모, 다시마(가로세로 10cm) 1장, 새송이버섯 2개, 팽이버섯 2봉지, 대파 1대 생강 간장 간장 3큰술, 간 생강 2작은술
만들기
1 두부는 반으로 잘라 칼등으로 으깬 뒤 젖은 면포에 싸서 양 끝을 비틀어 물기를 꼭 짠다.
2 냄비에 다시마를 담고 물 4컵을 부어 불린다.
3 새송이버섯은 반 토막 내서 손으로 굵게 찢고, 팽이버섯은 밑동을 잘라내고 씻는다.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4 ②의 냄비를 불에 올려 끓어오르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①의 두부와 ③의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대파를 넣어 끓인다. 두부와 채소를 찍어 먹을 생강 간장을 곁들인다.
무초나물
재료 무 400g 초절이즙 물 100ml, 식초 6큰술, 설탕 4큰술, 소금 2작은술
만들기
1 무는 채 썬다.
2 볼에 물, 식초, 설탕, 소금을 넣고 저어 녹인 다음 채 썬 무를 넣고 버무린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들어 1시간 정도 후에 먹는다.
도라지나물
재료 도라지 200g, 다진 마늘 1/2큰술, 다진 파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식용유 2큰술, 육수 1/2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도라지는 가늘게 찢어 소금 1작은술을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 쓴맛을 빼내고 씻어서 물기를 짠다.
2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다진 파를 볶다가 ①의 도라지를 넣고 볶는다. 도라지가 살짝 익으면 육수를 부어 뜸을 들이고 소금으로 간한 뒤 참기름을 넣어 섞는다.
잣죽(원미죽)
재료(2인분) 쌀 1컵, 잣 2/3컵, 물 5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쌀은 씻어서 물에 담가 1시간 정도 불려 체에 밭친 다음 물 2컵을 부어 굵게 간다.
2 잣은 고깔을 떼고 마른 면포에 문질러 씻어서 물 2컵을 붓고 곱게 간다.
3 냄비에 ①의 쌀과 물 1컵을 붓고 주걱으로 저으며 끓이다가 ②의 잣을 넣고 끓인다. 소금으로 긴한다.
타락죽(무리죽)
재료(2인분) 찹쌀가루 1컵, 물・우유 2컵씩, 소금 약간
만들기
1 마른 팬에 찹쌀가루를 넣고 색이 약간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2 냄비에 ①의 찹쌀가루와 물을 붓고 중간 불에서 주걱으로 계속 저으면서 끓인다. 10~15분 정도 끓이다가 우유를 붓고 다시 저으면서 10분 정도 더 끓인 후 불을 끄고 소금으로 간한다.
콩죽(옹근죽)
재료(2인분) 쌀 1컵, 물 6컵, 흰콩 1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콩은 씻어서 4시간 정도 불린다. 쌀은 씻어서 물에 담가 1시간 정도 불린다.
2 ①의 불린 콩을 냄비에 담고 콩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뚜껑을 덮고 불에 올려서 우르르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1분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체에 쏟아 물에 헹군다. 콩을 바락바락 주물러 껍질을 벗기고 물로 여러 번 헹궈가며 껍질을 씻어낸다.
3 ②의 콩은 믹서에 넣고 물 2컵을 부어 곱게 간다. 체에 젖은 면포를 깔고 밭쳐 콩국물을 거르고 다시 찌꺼기에 물 1컵을 부어서 내린다.
4 냄비에 ①의 불린 쌀을 담고 물 3컵을 부어서 쌀알이 퍼지게 가끔 저으면서 끓이다가 ③의 콩국물을 붓고 끓인다. 그릇에 담아 소금을 곁들인다.
어산적
재료(4인분) 흰 살 생선 1마리, 무 1/4토막, 배춧잎 4장, 쇠고기 육수 1컵, 소금・국간장 약간씩, 밀가루・식용유・참기름 적당량 부침옷 부침가루・찬물 1/2컵씩 생선 밑간 청주 1큰술, 얇게 썬 생강 2쪽, 국간장 1/2작은술, 참기름 1/5작은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흰 살 생선은 포를 떠서 가로 3cm, 세로 10cm, 두께 2cm로 잘라 4장을 준비한다. 무는 가로 3cm, 세로 10cm, 두께 5mm로 썰고 배춧잎도 가로 3cm, 세로 10cm로 잘라 4쪽씩 준비한다.
2 분량의 밑간 재료를 섞어서 ①의 생선에 끼얹고 10분간 재운다.
3 쇠고기 육수에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한 뒤 무를 넣어 6~7분 삶고, 배춧잎은 2분간 삶아 건져 물기를 뺀다.
4 꼬치에 무, 생선, 배추 순으로 꿴 뒤 밀가루를 고루 묻혀 여분의 가루는 털어내고 부침옷을 입힌다. 팬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섞어 두르고 노릇하게 지진 다음 꼬치를 빼고 먹기 좋게 반 자른다.
백설기
재료(20cm 틀 1개분) 멥쌀가루 31/2컵, 찹쌀가루 1/2컵, 꿀 1/4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멥쌀가루와 찹쌀가루, 소금을 섞고 꿀을 넣어서 양손으로 싹싹 비벼 체에 내린다. 손으로 뭉쳐서 30cm 높이에서 쌀가루에 떨어뜨려 부서지지 않고 덩어리로 두세 동강 나면 수분량이 적합한 것.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서 싹싹 비빈 다음 다시 한 번 체에 내린다.
2 젖은 면포를 깐 찜통에 ①을 평평하게 안쳐 김이 오른 찜솥에 얹고 20~25분 정도 찐다.
섭산삼
재료(4인분) 더덕 100g, 찹쌀가루 1컵, 물 1/4컵, 소금 약간, 튀김기름 적당량
만들기
1 더덕은 껍질을 벗기고 길이로 반 쪼개서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만든 뒤, 소금을 약간 뿌려 밑간한다.
2 찹쌀가루 1/3컵은 물과 소금을 약간 넣어 푼다.
3 ①의 더덕에 ②의 반죽을 입히고 찹쌀가루를 고루 묻힌다. 오목한 팬에 튀김기름을 부어 달군 뒤 노릇하게 튀긴다.
요리와 스타일링 노영희 캘리그래피 강병인 참고 도서 <우리 음식의 맛을 만나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조선의 탐식가들>(따비)
- 白味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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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에서 백색 두루마기까지 조선시대를 풍미한 순백색을 우리 민족은 귀히 여겼다. 음식도 다르지 않다. 잡스러운 맛이 섞이지 않은 순백색의 음식은 복을 기원하는 자리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정월 초하룻날에 떡국으로 새해를 맞듯, 순백의 음식으로 조상들의 아취를 맛보자. 순백의 음식에는 한국인의 성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