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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 ‘이성당’ 상경 이야기
언젠가부터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세상일이 바쁘다 보니 밥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대신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아졌다. 간식으로 시작해 어느덧 한 끼의 식사가 된 빵 문화. 그렇다면 우리는 빵을 언제부터 사 먹기 시작했을까? 바로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1945년, 전라북도 군산에 문을 연 ‘이성당李姓堂’이 우리나라 빵집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성당 서울 프로젝트 초석이 된 콘셉트 북의 첫 페이지. 
군산 빵집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의 ‘이성당’은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빵집 투어를 다닐 만큼 맛있고 맛도 종류도 다양한 빵을 파는 가게가 줄을 섰지만, 이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기 위해서는 여전히 줄을 서는 수고를 해야 한다. 게다가 몇해 전, 옛것을 그리워하는 복고 바람이 불면서 옛날에 먹던 빵을 맛보려 군산까지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관광객이 많은 주말에는 단팥빵이 하루에 9천~1만 개가 팔리니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다음 빵이 나올 때까지 보통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처럼 전북 군산시 중앙로에 위치한 이성당 본점에는 단팥빵 하나로 조용한 마을 한복판에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매일 한결같이 펼쳐진다.

1 최고의 실력가로 구성한 이들의 팀워크도 ‘최고’였다. 왼쪽부터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이성당 김현주 사장,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경옥, 병과점 ‘합’ 김미회 대표. 
2 군산 이성당 상경의 중요한 역할을 한 문구.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이성당李姓堂은 한자 그대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가게’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과자를 구워 팔던 동네의 작은 가게였는데 이제는 대한민국 빵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현재는 3대째인 김현주 사장이 이성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성당 가족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1년 전이다. 군산에 위치한 최고最古의 빵집이 서울로 올라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줄 서서 먹는다는 그 단팥빵과 야채빵을 실컷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 후에는 출장으로 군산에 내려갈 때마다 지인들이 빵을 몇 박스씩 부탁해 곤란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유행하는 단팥빵과는 달리 이성당의 단팥빵은 옛날빵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단팥빵처럼 작지도, 봉긋하지도, 귀엽지도 않다. 그에 비해 빵의 두께는 두껍지 않고 모양은 넓적하다. 한 입 베어 물면 겉의 빵이 부드럽게 씹히며 안에 들어 있는 팥소의 단맛과 잘 어우러진다. 맛있다. 사람들은 이 그리운 맛을 느끼기 위해 수고를 무릅쓰고도 군산까지 찾아오는 것이리라.

1 ‘그대로의 이성당’을 표현하기 위해 제안한 전체 공간의 색. 
2, 3 군산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구성한 인테리어 시안. 

군산의 분위기를 그대로 서울까지
이번 서울 프로젝트는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의 빵집 ‘이성당’과 잠실 롯데월드몰 6층의 ‘카페 이성당’ ‘이성당 과자점’ 세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군산 이성당을 서울이라는 새로운 곳에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최고의 실력가로 구성한 팀을 꾸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군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서울에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부 공간 디자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경옥, 공간의 구현은 스튜디오베이스, 유니폼과 패키지 등의 스타일링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BI 작업은 보임커뮤니케이션, 이미지와 디자인 작업은 물나무, 마지막으로 서울 입맛에 맞는 메뉴를 구성하기 위해 병과점 합의 신용일 셰프와 김미회 대표가 함께했다.

군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울에 두 군데 새로운 둥지를 트는 데까지는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팀을 꾸리고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모든 멤버가 군산을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이성당 본점은 물론이고, 빵을 생산하는 공장, 고객들이 앉아 빵과 음료를 즐기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터전인 군산이라는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익히기 위해서였다.

4 빵의 역사에 대한 글을 오래된 원고지에 적어 빵의 의미를 되새겼다. 
5 옛 맛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군산 공장에서 오래 사용한 기계와 기구를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했다. 
6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가장 큰 제과점이던 ‘이즈모야 제과점’이 이성당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 5대째 제과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즈모야 제과점과 이성당의 이야기를 담은 책 <빵의 백년사>가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군산항을 자주 이용했기 때문에 군산에는 일본식 적산가옥이 많다. 서울과는 너무나 다른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군산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이성당 팀과 프로젝트를 맡은 서울 팀은 매주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전체 콘셉트를 정하고 그 안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수정하는 방식으로 몇 개월을 보냈다. 그 사이사이 서울의 빵집을 함께 다니며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공유했다.

최근 지역 명소로도 자리 잡았을 정도로 잘 알려진 윈도 베이커리 ‘오월의 종’ ‘르알래스카’ ‘카페리브레’의 대표들과 이성당 김현주 사장 사이에서 중간 역할도 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요즘 간식을 넘어 주식으로 자리 잡은 빵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며 자연스레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 만남의 자리 자체가 한국 빵 역사의 신新과 구舊의 만남이었다. 70년간 한자리에서 빵을 만들어온 이성당, 그리고 그 이후 새로운 한국의 빵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진정이 묻어나는 자리였다. 이렇게 서울 프로젝트 팀은 군산의 모습을, 군산의 이성당 팀은 서울의 모습을 통해 빵집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 예스러운 이성당 카페의 간판에서도 이곳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2 잠실 롯데월드몰 6층에 위치한 이성당 카페 전경. 세련되면서도 정감 어린 한국적 스타일이 돋보인다. 
3, 4 공간 구석구석 오래된 소품을 사용해 이성당의 옛 모습을 구현하고자 했다. 
5, 6 대표 메뉴인 단팥빵과 야채빵 외에도 이성당 카페에서는 다양한 음료와 스낵을 맛볼 수 있다. 달콤한 꿀단지와 촉촉한 카스테라는 각각 5천 원. 
7 이성당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요소인 유니폼. 

그대로의 이성당, 고맙습니다
군산과 서울을 오가며 정한 콘셉트는 ‘그대로의 이성당’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다. 70여 년간 꾸준히 유지해온 이성당의 빵 맛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군산 공장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기계와 기구들을 공간 내부 요소에 직접 사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빵을 반죽하는 기계의 믹서를 이용해 천장의 조명등을 만들었고, LCD 화면을 감싼 나무 틀과 문손잡이는 50년간 사용해온 카스텔라 틀을 분해한 후 재가공해 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공간 안에 이성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의 빵집과 잠실 롯데월드몰 6층의 카페를 방문할 때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본다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성당이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것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는 김현주 사장의 마음을 빵을 담는 패키지 곳곳에 새겼다. 그래서 서울 매장에서도 군산에서 사는 가격 그대로 빵을 구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70주년을 앞둔 이성당. 앞으로도 이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해 유서 깊은 백년 빵집으로 미식 문화를 이끌길 바란다.

#군산 #이성당
글 김한나 | 사진 이정민 | 담당 신민주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