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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의 수도, 캘리포니아에 가다
아침에 먹은 시리얼 속에도, 점심 식사로 고른 샐러드에도, 출출함을 달래려 먹은 초콜릿에도, 건강을 위해 챙긴 한 줌 견과 속에도 아몬드는 빠지는 법이 없다. 그만큼 세계인이 가장 흔히 먹는 견과류가 아몬드다. 우리가 먹는 아몬드의 대부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는데, 바로 지금이 가장 잘 여문 아몬드를 만날 수 있는 제철이다.

1 나무에서 아몬드 열매가 떨어지면 바닥에 펼쳐서 약 열흘간 자연 건조시킨다. 
2 집게발이 달린 세이커가 아몬드나무줄기를 잡고 흔들면 아몬드 열매가 우수수 떨어진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두 시간 남짓을 더 달려 다다른 곳, 머데스토 Modesto는 인구 20만의 도시다. 미국의 주요한 농업 지역 중 하나인 샌와킨밸리San Joaquin Valley의 심장부에 위치한 이곳을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중부 지역에서 전 세계 아몬드의 82%가 생산된다. 그 밖에 아몬드를 재배하는 곳은 유럽 몇몇 나라와 호주 등 얼마 되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아몬드가 왜 유독 캘리포니아에서 집중적으로 자랄까? 그 대답은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 아시아 마케팅 매니저 베키 세레노Becky Sereno에게 들을 수 있었다. “아몬드는 추운 겨울과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을 지내야 제대로 여뭅니다. 이러한 기후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 중부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아몬드를 비롯해 호두, 와인 산지로도 유명한데, 바로 이곳의 비옥한 토양과 지중해성 기후가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몬드는 와인보다 까다로운 기후 조건을 갖춰야 해 이곳에서도 매해 꽤 차이가 납니다. ”

재배 면적만도 86만 에이커(약 3천4백80km2)에 이르며, 한 해 수확량은 약 21억 파운드(약 95만 톤)나 된다. 과연 ‘아몬드의 수도’라 부를 만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캘리포니아 아몬드 산업을 이끄는 것은 기업형 농장이 아닌, 대 부분 가족 농장이라는 점이다. 6천6백여 농가 중 약 90%가 가족 농장이며, 그중 절반은 5만 9천 평 미만의 소규모로 아몬드 농사를 짓는다. 수대에 걸쳐가업으로 이어오고 후손에게 물려줄 농장이기에 토양 등의 환경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엄청난 수의 농가에서 제각기 아몬드를 생산하지만, 캘리포니아 아몬드는 품질과 맛이 고르다. 농가가 주축이 되어 1950년대에 출범한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에서 생산 과정의 품질과 식품의 안전을 관리하고, 기술 정보 교류, 영양적 연구 등의 활동도 진행하기 때문. 영양분과 병충해, 관개 관리는 물론 공기 청정도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

1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시아르 오처드를 딸과 함께 운영 중인 랜디 디키 대표. 
2 녹색 껍질이 벌어져 아몬드 속살이 단단히 여물면 수확할 때가 된 것. 
3 아몬드는 가루, 슬라이스, 껍질을 벗긴 블랜치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유통한다. 

기계 세 대로 수확하는 아몬드
수확철이면 새벽 4시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농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시아르 오처드CR Orchards의 랜디 디키 Randy Dickey 대표와 그의 딸 젠 디키Jenn Dickey의 농장에는 약 3만 그루의 아몬드나무가 자란다. 이 가족 역시 3대째 아몬드 농장을 이어오고 있다. 수확철인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가 한 해 중 가장 바쁜 시기지만, 수확 후 한 달 정도를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농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날이 쌀쌀해지는 11월이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2월이면 아몬드나무에 연분홍 꽃이 흐드러진다. 중부 캘리포니아 전역이 분홍빛으로 물드는 이때가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꼽힌다.

“나무마다 솜뭉치가 내려앉은 듯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룹니다. 이때 또 하나의 볼거리는 쉴 새 없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수분하는 벌들이에요. 수분을 위해 농장마다 커다란 벌 통을 들여놓습니다. 아몬드나무는 품종이 같은 나무끼리는 수분할 수 없고 서로 다른 품종에서 수분해야 열매를 맺거든요. 캘리포니아에는 30여 품종의 아몬드나무가 자라지만 넌페럴Nonparei을 비롯한 열 가지가 주를 이룹니다. 맛과 크기, 경도가 조금씩 달라 통아몬드와 가공용 등 용도에 따라 품종을 달리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일반 소비자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1 아몬드가 충분히 건조되면 픽업 머신이 열매를 쓸어 담는다. 
2 아몬드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 CIA 리베카 페이저 셰프. 

꽃이 진 후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면 수분이 성공했다는 증거. 이때부터 솜털에 싸인 회녹색 열매가 맺힌다. 크기가 자라면서 점점 단단해지는데, 강한 햇볕과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 서서히 겉껍질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아몬드 낱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껍질이 벌어져야 아몬드 속까지 건조해진다. 농장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나면 아몬드를 수확할 채비가 끝난 것. 커다란 집게발이 달린 기계 ‘세이커shaker’가 나무줄기를 껴안고 세차게 흔들면 열매가 우수수 떨어진다. 뿌리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하는 것은 내공이 필요한 일이므로 경력이 십수 년 된 전문가만이 세이커를 운전할 수 있다.

아몬드나무의 수명은 약 25년 정도인데, 땅에 뿌리내리고 3~4년은 지나야만 세이커로 수확할 수 있고, 이보다 어린 나무는 사람이 직접 긴 막대기로 툭툭 치며 열매를 딴다. 사방팔방으로 떨어진 열매를 가지런히 줄 맞춰 모으는 작업은 ‘스위퍼sweeper’의 몫이다. 이렇게 열매를 한데 모은 뒤에도 끝난 것이 아니다. 일주일에서 열흘간 그대로 두어 충분히 건조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픽업 머신pickup machine’이 바닥의 아몬드를 쓸어 담아 가공 시설로 운반한다.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가공 시설 1백여 곳이 있는데, 외피와 껍질을 벗겨 크기와 품질에 따라 분류하고 가공, 포장하는 일을 한다.

1, 2, 3 아몬드를 활용한 시판 제품들. 슈거 파우더, 고추냉이, 바비큐 소스로 코팅한 와사비 스낵과 우유 대체 식품으로 주목받는 아몬드 우유, 아몬드 초콜릿. 
4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의 글로벌 헬스&영양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제니 힙. 

건강한 단백질의 보고
“아몬드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질문을 어느 누구에게 던져도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아몬드는 다방면에 두루 쓴다. 통아몬드, 껍질 벗긴 블랜치, 파우더, 슬라이스 등 다양하게 가공하는 것도 그만큼 쓰임새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일 터. 통아몬드의 유통량이 제일 많지만,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아몬드 버터다. 고콜레스테롤 식품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피넛 버터나 채식주의자에게 외면 받는 버터를 대체하게 된 것.

그뿐 아니라 아몬드유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중적이다. 참기름만큼이나 풍미가 진해 샐러드드레싱이나 익히지 않는 요리에 많이 사용한다. 중동 지역에 서는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풋 아몬드(그린 아몬드)가 고급 식품으로 꼽힌다. 샐러드 재료나 피클, 바다 소금으로 간해 간식으로 먹는다고. 페르시아와 아랍에서 먹기 시작한 아몬드 우유는 우유를 대체하는 식품으로 최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에는 국내에서도 몇몇 유가공 회사에서 아몬드 우유를 출시했다.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이에게는 우유 대체 식품으로 그만이며,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스무디나 커피로, 시리얼과 함께 즐기면 맛과 영양을 두루 만족시킨다. 미국의 유명 요리 전문 학교 CIA(Culinary Institue of California)의 수석 강사 리베카 페이저Rebecca Peizer 셰프는 “이토록 다양하게 아몬드를 활용하는 이유는 다른 견과류보다 달콤하고 맛이 좋은 데다 오일 등으로 가공하면 풍미가 진해지기 때문”이라며, 아몬드를 통해 건강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1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자리한 CIA 요리학교 그레이스톤 캠퍼스. 
2, 3 리베카 셰프가 요리한 아몬드 크러스트 어니언링과 아몬드 브루스케타.

건강에 이로운 식품으로 견과류의 인기가 높은 요즘, 특히 아몬드는 나무에서 자라는 견과류 중 비타민 E, 식이섬유, 리보플래빈, 니아신을 가장 많이 함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적정 섭취량인 한 줌의 아몬드(30g, 약 23알)를 매일 먹으면 비타민 E 하루 섭취량의 73%를 충족할 수 있어 노화 예방과 피부 건강 유지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이 크고 공복감을 줄여줘 다이어트용 간식으로도 제격이다.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의 글로벌 헬스&영양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이자 영양학자인 제니 힙 Jenny Heap은 아몬드의 영양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몬드 30g의 열량은 기존에 알려진 160kcal보다 20%나 낮은 129kcal로 밝혀졌습니다. 세포 구조가 견고해 아몬드 지방은 체내 흡수율이 낮아 섭취한 것보다 흡수되는 칼로리가 적은 것이지요. 암,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을 20%나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어 장수 식품으로도 불리니 아몬드는 현대인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꼭 챙겨 먹어야 할 영양 식품입니다.” 건강에 좋다면 맛이 덜한 것쯤은 참을 수 있는 시대에 아몬드 한 줌을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 열매인가.


취재 협조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www.almonds.or.kr)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박정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