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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권도자문화재단이 준비한 아시아 주교단을 감동시킨 아주 특별한 오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지난 8월 15일, 공주의 황새바위 성지에선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주교단 1백 명을 영접하는 오찬이 열렸다. 이 한 끼의 거룩한 식사를 위해 신심과 진심을 다한 조상권도자문화재단의 조상권 이사장 부부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얻은 건 뜻밖에도 우리의 거룩한 역사였다.


약속과 믿음이 이삿짐처럼 사라진 2014년 여름,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복된 소식을 만났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내가 나를 가둔 죄, 내 이웃을 가둔 죄, 내 가슴을 닫은 죄, 내 이웃의 가슴을 닫게 한 죄, 그 앞에서 모두 고해성사하고 싶게 만드는 이를 만났죠. 그의 말씀 한마디, 행적 하나하나가 나를 뜨거운 눈물로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내내 함께하고 싶던 분,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그의 가르침대로 살다 보면 나의 남은 날들을 막 새순 올린 나무처럼, 막 새벽빛 걷는 아침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잠시 착각하게 된 그런 시간이었죠.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받은 위로에 보은하려는 이들은 단심丹心을 다해 그와 일행을 접대했습니다. 물론 허례허식 없이 소탈한 일상을 바라는 교황의 신념에 맞춘 접대였지요. 8월 15일, 충남 공주의 황새바위 성지에선 잠시 교황과 따로 일정을 갖는 아시아 주교단 일행 1백 명의 오찬이 열렸습니다. 박소하면서도 격조를 갖춘 이 오찬 소식은 굳이 소문내려하지 않아도 바람처럼 떠도는 풍문을 따라 사람들에게 전해졌죠.

그 정성스러운 주찬이 사뭇 궁금했는데,마침 <행복이가득한집>과 막역지간인 조상권선생(조상권도자문화재단, 전 광주요문화재단의 이사장이자, 조소수 광주요 창업주의 장남. 2009년 <행복> 10월호 라이프&스타일 기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이 그 귀한 밥상을 차렸다는군요. 그의 아내인 도자문화재단의 김현 이사와 ‘광주요의 1대 딸’로 불리는 조광자, 조정희 씨가 함께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귀동냥하러 찾아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조상권도자문화재단, 입간판 아래 은발의 노인이 그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 객을 맞이합니다.

조상권 선생이 2주 동안 그림을 그리고 구워낸 1천여 개의 그릇과 교황 방문을 기념해 ‘장미의 나라’ 에콰도르에서 선물한 에콰도르 장미가 식탁을 장식했다.
아버지 같은 교황님과 사촌 형제 같은 주교단을 위해
“나는 천주교 신자야. 그런데 아주 못된 신자야. 일본에서 영세를 받았는데 사춘기 때인 내가 예뻐 보였는지 신부님하고 수녀님이 영세를 주셨어. 그러고도 난 성당에 간 일이 없다고. 신부님과 수녀님이 매일 날 찾아다니셔도 말이야.” 자신은 ‘냉담자’도 못 되는 아주 못된 신자라는 그는 아시아 주교단과 수행단 1백여 명의 한 끼 식사를 위해 2주 동안 면벽 수도하듯 밤을 새워가며 백자 식기 1천여 개(1백 명의 식기라면 디저트 접시, 커피 잔까지 총 1천여 개의 식기가 필요하다)에 한 점 한 점 모두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인 김현 이사와 ‘광주요의 1대 딸’들은 머리를 맞대 메뉴를 짜고, 서빙팀을 꾸렸죠. “이번 교황 방한에 결정적 역할을 한 대전교구청의 유흥식 주교님이 전하더군요.

‘교황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니까 어떤 걸 내놔도 괜찮고 어떤 치부를 보여도 괜찮지만, 아시아 주교들은 사촌 형제들이나 비슷한 분들이다. 가장 어려운 이들이니 정중함은 잃지 않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아야 하고, 교황님도 드시지 못하는 오찬이니 진수성찬은 절대로 안 된다. 가짓수는 최대한 줄이고 김치류에 마늘은 쓰지 말아달라.’ 주교님들은 인도, 필리핀, 네팔, 브루나이 등 국적도 다양하고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니 소화가 잘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기품 있는 한식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고요.” 김현 이사의 전언처럼 ‘어려운 사촌 형제들’의 식사 준비는 이 집의 안주인과 광주요 1대 따님들의 몫이 됐습니다.


황새바위 성지의 특별한 한식 메뉴 
콩 주스 서리태를 콩국처럼 갈아 만든 주스로, 얼음이 녹아도 맛이 희석되지 않도록 얼음도 콩 주스를 얼려 띄웠다. 그 위에 수박과 무순 몇 잎을 장식했다. 

수삼 샐러드 가늘게 채 썬 수삼과 셀러리 줄기, 래디시를 차곡차곡 올려 흰색, 푸른색, 빨간색이 어우러지도록 했다. 레몬청과 유자청 소스를 함께 곁들여 수삼의 쓴맛을 상쇄시켰는데, 한 분도 남기지 않은 인기 메뉴였다.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채끝등심구이 살짝 데쳐 소금 간을 한 아스파라거스에 마늘 올리브 소스(가늘게 채 썬 마늘을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하루 정도 담가놓으면 마늘 맛 대신 밤 맛이 나는 소스로 변한다. 이걸 아스파라거스에 뿌리면 정말 근사한 맛과 식감의 요리가 된다)를 뿌려 곁들이고, 이천시 모가면에서 나는 한우(한우 경진 대회 등에서 수상한 A++ 등급 한우)의 채끝 등심에 간장 등으로 한국식 양념을 해 구웠다. 

삼색전 새우를 다져 넣고 부친 표고버섯전, 단호박전, 애호박전을 곁들였다. 

녹두닭죽 각국 사람들이 다 먹는 고기가 닭고기여서 구성한 메뉴. 김현 이사의 친정집에서 즐겨 해 먹는 음식으로, 삼계탕을 끓여서 건더기는 건져내고 살코기는 실처럼 찢어 넣었다. 여기에 녹두를 넣으면 담백하면서 풍미도 한껏 살아나는 요리가 된다. 이번에 많은 이가 감탄사를 쏟아낸 음식 중 하나. 

밥과 빵, 김치 아시아 주교들의 식탁엔 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해물을 살짝 넣은 볶음밥과 맛이 담백한 빵을 함께 냈다. 마늘을 넣지 않아 맵지 않은 김치도 꽃처럼 말아서 한 테이블에 몇 종지씩 올렸다. 



1백 명의 주교단 만찬을 준비한 조상권 이사장, 김현 이사, 조정희 씨.
손님 접대의 달인들
이쯤에서 광주요 집안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도자 그릇의 대표 브랜드이자 전통 도자 산업을 부활시킨 광주요의 명성은 이미 아실 테지요. “1970년대 광주요의 디너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상류층이 아니다”란 말이 생길 정도로 이 집안의 손님 접대는 유명했다는군요. 슴슴하거나 아릿하거나 구수한 맛, 그 유현하고 격조 높은 반가 음식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집안이자, 음식을 담는 그릇과 테이블, 꽃과 식탁 위의 모든 소품과 그 방의 분위기와 거기에 함께한 이들, 음악, 술 등이 어우러지는 멋을 일찌감치 맛본 집안이었다죠.

집에서도 한 상 푸지게 차려놓고 먹는 법 없이 매 끼니 코스로 서빙되는 음식을 즐겼다는군요. 조상권 선생이 기억하길, 아버지가 손님을 초대한 날이면 온 식구가 계단 청소를 말끔히 마쳐야 했는데, 손님이 오시기 직전 계단에 물이 있어도, 바짝 말라 있어도 안 되는 상태여야 했답니다. 살짝 물기가 돌아 손님이 봤을 때 막 청소가 끝난 상쾌한 느낌이 들어야 비로소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난 거라는군요. 조상권 선생의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식탁 문화를 우아하고 격조 있게 만들 것인가 늘 궁리하는, 말하자면 당대의 스타 일리스트였다고 합니다.

세 딸에게 요리, 꽃꽂이, 자수 등 가정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걸 배우게 했다는군요(이것이야말로 <행복이가득한집>의 지향점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그렇게 교육받은 이 중 큰딸 조광자 씨와 막내딸 조정희 씨가 이번 주교단 만찬의 메뉴 구성과 요리에 참여했습니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서 대전교구의 본당들이 손을 내두른 1백 명의 오찬은 교황과 주교단을 순전한 마음으로 모시고 싶어 한 최상순 비오 신부(황새 바위 성지의 전담 신부)와 “한국의 음식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아시아 각국에서 온 주교단에 제대로 된 한식 한 끼는 대접해야 하지 않겠냐”며 팔 걷어붙인 조상권 선생이 ‘기획’한 한여름의 거룩한 이벤트였습니다.

요리 모임인 ‘아우회’와 자원봉사자로 구성한 서빙팀까지 모여 황새바위 성지에 천막을 치고, 휴대용 가스버너를 동원해 임시 조리실을 만들었답니다. 밤을 새우며 미리 준비한 재료로 성심을 다해 요리하고 정성을 다해 식탁에 올리니 “수많은 나라의 특급 호텔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품격 있고 진실한 마음의 서비스를 받아본 건 처음이다”라는 주교단의 상찬이 되돌아오더라는군요.

1 황새바위 성지의 오찬을 주선하고 준비한 최상순 신부(가운데). 와인은 디아지오 코리아에서 기부했다. 
2 자원봉사자로 구성한 서빙팀의 정성스러운 서빙도 감탄을 자아냈다. 

내 것, 나다움, 우리 것, 우리다움을 찾아서
냉담자라 하면서 화폐도 훈장도 되지 못하는 이 일에 힘들여 수고하고 애쓴 조상권 선생, 그의 이야기를 보탤까 합니다. 지금이야 그의 일대기가 꽤 유명해졌지만, ‘북한 공작원 출신’이라는 걸 굳이 부각하는 미디어의 선정성엔 나도 치를 떨지만…. 그 내력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가 보여준 단심을 쉽사리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소수 광주요 초대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 광주요 그룹 조태권 회장의 형인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며 일찌감치 일본 상류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몸으로 직접 경험한 이입니다.

해방 후 6년 반 정도 고국에 머물다 사업 중인 아버지를 따라 다시 일본으로, 전도유망한 건축학도가 되어 파리로 옮겨가게 됐답니다. 프랑스 국립 보자르 건축 학교 본과 진학 시험에서 수석을 한 그에게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에서 축전을 보내오면서 그의 삶에 예기치 않은 뇌우가 내리치기 시작했다는군요. 남한이든 북한이든 다 같은 우리 민족이라 여기는 당시의 유럽 유학생들처럼 그도 큰 고민 없이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의 초청에 응했고 북한까지 다녀왔는데, 이것으로 그는 1967년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공작단 사건)’의 혐의자가 되었답니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믿어 북한으로 도피한 이후 30년 동안 해외를 떠돌며 북한 공작원으로 살다 1997년 한국으로 귀순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인생의 태반을 해외에서 떠돌며 고국과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그의 추운 곡절, 그가 유독 ‘우리 것, 우리다움’을 목마르게 찾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일본 말에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라는 게 있어. ‘백제 것이 아니네’란 뜻으로, ‘하찮다, 시시하다. 좋고 훌륭한 것은 다 백제에 있는데, 이건 백제에 없어. 그러니 시시한 거야’라는 뜻이야. 일본의 상류층이 현재 즐기는 모든 고급 문화의 원형 틀이 사실 모두 우리 거예요. 다도도 그렇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 품격 있는 상류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거의 잃어버렸어요. 수없는 외침을 경험하면서 오늘 하루 잘 견디면 된다는 하루살이처럼 살게 됐고 우리 삶이 거칠 이어졌지만, 이제는 그 이전 시대를 보자는 거예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초기의 귀족 문화에 우리 문화의 미의식과 가치가 숨어 있으니 거기서 뭔가를 끄집어내야 한다고요. 귀족 문화라는 게 민중에 반대되는 문화가 아니라, 차분하고 깊이 있고 지속성 있는, 그러면서 짜임새 있는 문화란 말이지요.”

3 식기는 모두 조상권 도자문화재단에서 준비했다. 물잔으로 쓴 도자기 잔이 조상권 선생의 작품으로, 가야시대 마상배를 모티프로 만든 것이다. 
4 공주 황새바위 성지. 

 <환단고기>(한국 상고사에 대한 책), 일제가 날조한 원삼국시대 이야기, 요하문명(우리 고대사의 뿌리인 홍산문화로 중국의 황허문명보다 1천 년가량 빠른 문명) 등 강물처럼 길게 이어진 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도 모두 ‘우리 것, 우리다움’이었습니다. “남들은 없는 역사도 날조해 자기 역사를 돋보이려 하는데, 왜 우리는 있는 역사도 제대로 알고 널리 알리려 하지 않나” 하는 통탄과 함께 말이죠. 아시아 주교단에 요즘 시절에 맞춘 우리 음식을, 우리 그릇에 담아, 우리만의 격식으로 대접하며 그가 알리려 한 것도 결국 이것이 아닐까요. “혓바닥은 형이하학적인 부위야. 그래서 애국심도 없어요. 지금 같은 시대엔 먹는 건 퓨전이라야 해요. 하지만 문화까지 퓨전이 되면 큰일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문화까지 퓨전이 되는 걸 당연시하는데 그건 철저히 경계해야해요. 그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여름날 찰나처럼 치른 오찬이 이렇게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니요!

그는 그의 무기이자 닻인 ‘열정’ 하나를 지니고 십수 년 전부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료인 흙으로 새로운 생명을 빚어냅니다. 삼국시대와 가야, 고려로 이어지는 귀족 문화에서 찾은 전통미를 도자기에 담으려 애쓰면서 말이죠. 가야시대 마상배를 모티프로 한 막걸리 잔과 탑, 불을 붙이면 폭포수처럼 연기가 떨어지는 기암절벽 형상의 침향로 등이 그 예지요. 이제 도자 인생 15년 차이니 앞으로의 날들도 결연하게 새로이 배우는 초년병의 마음으로 살겠다는, 미수를 앞둔 노인의 가열찬 앞날이 기다려집니다. 그와 작별하며 나는 잠시 그가 인생의 추운 계절에도 끄떡없는 청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의 몸처럼 에너지로 들끓는 그가 우리에게 보여줄 낮과 밤은 아주 많을 테지요.

글 최혜경 | 사진 강진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