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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시골 빵집에 무슨 일이 있기에
시골에는 늙은 농부와 여유로운 은퇴자, 억대 농부를 꿈꾸는 귀농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연의 품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을 한 발짝 한 발짝 펼쳐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세상의 ‘시스템’ 밖에서 스스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며 우리에게 물음과 희망을 던진다.

추수가 가까워진 밀밭 풍경. 바람이 지나가는 풍경만으로도 지친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시장의 논리로는 존재할 수 없는 밀밭이 우리밀을 지키려는 사람에 의해 이어져간다. 언젠가 우리도 지역마다 다른 맛과 풍미의 밀을 골라 먹을 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지난 6월 28일, 우리밀 빵을 굽는 ‘월인정원’의 작업실이 있는 구례의 오미동 마을회관 앞이 또 한 번 시끌벅적했습니다. 올해 두 번째 ‘햇밀 축제’를 열었는데 올해는 장흥과 제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밀이 모였다는 게 아주 뜻깊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시장의 98%를 차지하는 수입밀에 밀려 종적을 감출 뻔한 우리 밀을 누군가가 아직 자신의 밭에, 앞마당에 조금씩 기르고 있었고, 이들이 서로 수소문해 갓 수확한 각 지역의 밀이 모여 인사를 나누었으니 이런 반가움이 없지요. 지역의 아마추어와 프로 가수들이 자발적으로 기타와 마이크를 잡았고, 또 각 가정에서 만든 잼과 효소, 페스토, 손바느질, 목공예품 같은 것을 들고 나와 아기자기한 좌판도 벌어진 한바탕 축제였습니다.


구례에서 열린 햇밀 축제
빵 작업자 월인정원의 우리밀 빵. 앉은뱅이밀, 금강밀, 흑밀은 물론 고대 스펠트 밀까지 굽고 또 굽는다. 그 집요한 연구 끝에 우리밀 빵의 레시피가 탄생한다.
주인공은 우리밀 햇밀입니다. 우리의 토종 밀인 ‘앉은뱅이밀’부터 앉은뱅이밀과 서양밀을 교배해 태어난 ‘금강밀’, 그리고 그 시작을 알 수 없으나 오랫동안 각 지역의 땅과 기후에 적응해 오늘에 이른 ‘토착화된 지역 밀’까지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온 아홉 명의 생산자와 스물다섯 명의 작업자는 축제 전날부터 모여 올해의 통곡을 비교하고, 자가 제분기를 동원해 그 자리에서 밀을 빻아 빵 반죽을 만들었습니다.

새벽부터 화덕에서 구워낸 우리밀 빵의 구수하고 따뜻한 온기가 이날 참여한 모든 이의 마음을 데우고 잇는 하나의 끈이 되었습니다. 사실 밀은 쌀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먹는 곡물인데도 우리밀의 자급률은 2.2%(2012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1980년대에 비하면 나아진 것으로 1984년 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15%에 달하던 밀 자급률이 0.03%까지 떨어져 밀 종자가 사라질 뻔했다지요. 수입밀과 달리 우리밀은 가을에 심어 겨울을 지나고 초여름에 수확하는 덕에 농약과 제초제 등에서 자유롭고 유통 과정상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몇 개월씩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를 지나는 일도 없으므로 흔히 ‘포스트 하베스트Post-harvest’라고 일컫는 수확 후 수십 가지의 약제와 방부제 처리의 폐해도 피할 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밀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에 좋은 것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몬산토Monsanto’란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유전자 변형 작물(GMO)을 연구ㆍ개발하는 기업입니다. 2013년 현재 전 세계 유전자 변형 종자 특허의 90% 이상을 보유하며, 세계 종자 시장의 27%를 장악한 세계 최대의 종자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각 나라에 침투해 그 나라의 종자 회사를 사들이면서 다양한 토종 종자와 육종 기술도 사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유전자 변형으로 수확량을 높인 자신의 종자를 판매하지요.

전국에서 모인, 때론 해외에서까지 찾아오는 ‘빵긋 테이블’의 손님들. 함께 모여 빵을 굽고 나누며 웃고 즐기는 이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 브레드’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이 회사에서 종자를 사서 써야만 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우리밀의 운명 또한 그러했습니다. 게다가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것은 ‘불임 종자’입니다. 올해 채종한 씨앗으로 내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하여, 매년 종자를 사서 써야 하고 독과점이므로 부르는 대로 값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나라의 농부들이 스러져갔습니다(여성농 민회가 주축이 되어 벌이는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장과 자본에 의존하면 수동적이 되고 무기력해집니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직접 구조를 만들자, 빵 만드는 작업자의 관점으로 애정을 가지고 좋은 상태를 만들어나가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봄부터 저에게 우리밀 빵을 가르쳐주는 이언화 선생의 말입니다. 그녀는 블로그와 책, 수업과 워크숍 등을 통해서 우리밀 빵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빵집을 내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그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 저마다 장기를 발휘해 우리밀 빵집을 내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렇게 많은 이가 건강하게 ‘시골에서 먹고사는 일’이 가능해지고 다른 이들에게도 건강을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대를 나온 그는 도시에서 멀티미디어 강사, 웹 디자이너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지리산 자락 구례로 온 지 어언 10년. 서울의 동사무소에서 하는 제빵교실에서 빵 만들기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데 빵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좀 더 좋게 만들 수 없을까, 재료 본연의 맛을 찾을 수 없을까 하는 의문에서 직접 연구에 나선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루 종일 다양한 재료와 레시피로 조건을 달리해가며 굽고 비교하고 기록하고 공유하고… 빵과 함께하는 그녀의 삶은 아주 성실한 ‘작업자의 삶’입니다. 또 좋은 것을 함께 나누려는 ‘전도사의 삶’ 같기도 합니다.


시골 제빵사가 주는 교훈
오미동 마을회관 자리에 둥지를 튼 작업실. 곡물 창곡가 있고 그 옆의 텃밭에는 그가 부린 밀이 허브, 베리와 함께 자란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빵긋 테이블’은 누구라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잔치입니다. 그와 빵순이들이 마당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과 샐러드, 스튜와 죽, 제철 밭에서 나는 것으로 테이블을 성대히 차리면 누구라도 와서 이를 누리고 즐길 수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악기를 연주합니다. 들판에서, 좁디좁은 그녀의 작업실에서 생명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삶에 왔습니다. 들에 숲에 있습니다./ 마을의 한 번도 길들여지지 않은 밀로 마을의 빵을 굽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과의 일입니다. 그날의 바람과 빛, 대기로부터 야생 효모의…/ 그런 게 다 무슨 의미냐, 소용이냐 한데도 제게는 전부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왠지 다른 일은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라온 그의 독백 같은 글입니다. 그리하여 좋은 빵을 찾는 일은 좋은 재료를 찾는 일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지리산닷컴’과 연계해 마을 들판에 밀 농사를 기획하고 이를 빻은 가루와 국수를 판매하고, 전국에서 수백 명이 모여드는 100% 민간 주최의 햇밀 축제까지 개인의 힘으로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해에는 ‘지역의 밀을 지키는 숨어 있는 농부들을 찾아내고 연계하는 데’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농부와 최종 소비자 간의 직거래 유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까지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입니다(우렁이 총각의 ‘한되닷컴’이 그 사이트입니다).

그녀의 꿈은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모인 ‘우리밀의 계약 재배’와 ‘우리밀 전용 제분소’까지 나아가 있습니다. 다수의 최종 소비자가 참여하고 투자해 농사를 짓고 하나 둘 문을 닫는 시골 제분소 중 하나를 인수해 운영한다면 농부는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소비자는 지금보다 부담 없는 가격에 우리 밀가루를 공급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가 상황을 낭만적으로 보거나 낙관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은 언제고 끝이 나고야 말 시간문제일지도 모르고, 자신조차도 언젠가는 지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빵 수업 종강 날, 우리는 수락폭포 아래에서 고대서부터 전해온 스펠트 밀과 폭포수 그리고 소금만으로 토르티야를 구웠다. 제법 의미심장한 마지막 수업이 아닌가!
그러나 그래도 누군가가 이 일을 이어서 해준다면 처음 뜻이 변질되거나 타협하지 않고 이어져만 간다면 언젠가는 이런 2%가 나머지 세상의 해답으로서 내일의 대안으로서, 그야말로 ‘한 알의 밀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꿈만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일본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제빵사가 있었나 봅니다. 최근 화제를 모은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이자 시골 빵집 ‘다루마리’의 와타나베 이타루 얘기입니다. 막연히 농부를 꿈꾸던 그는 서른이 넘어서야 유기농산물 도매 회사에 취직합니다. 그러나 원산지 허위 표시, 뒷돈 거래 등 부정적 모습을 보자 회사원으로 생활하는 시간을 짧게 끝냅니다.

자신의 빵집을 열고 싶던 그가 준비 과정에서 겪은 것은 ‘빵집 잔혹사’라 할 만한 노동 착취의 현장이었고, 재료 시장마저도 투기 자본이 날뛰는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자기 소유의 빵집마저도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부패하지 않는 빵처럼 ‘부패하지 않는 돈’이 얼마나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시스템 밖의 삶을 찾아 ‘시골 빵집’을 열고 원하는 삶을 건축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마르크스와 천연 누룩균과 시골 빵집 운영기가 재미나게 이야기 속에 버무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이 여름, 시골에서 빵을 만드는 제빵사 두 명이 제게 큰 교훈을 줍니다. 시스템의 한계와 모순을 불평만 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해나가려는 용기와 실천. 자신이 믿는 것,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나가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정말 소중한, 변방의 조용한 혁명가인 듯합니다. “빵 선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투사시네요”란 말에 자신은 작업자일 뿐 투사도 무엇도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98%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그저 반대로 서 있는 것만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정현선 | 사진 월인정원(www.healingabread.net), 정현선 | 담당 김민정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