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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이순자 명예교수 격의 없는 사귐을 주는 집밥
음식은 가족 관계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끈이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끈, 때로 반목이 생겨도 떨어지지 않게 하는 끈, 나아가 가정과 세상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그 끈을 즐겁게 매며 행복한 일상을 사는 이순자 교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의 쉽고 재미난 집밥 이야기를 소개한다.


“할머니 화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세요? 지구 환경 보호에 탄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저는 그 탄소를 공부하고 있어요.” “할머니, 같이 방을 쓰는 친구가 새로 왔는데 저하고 취미가 비슷해서 신기해요.” 대학 2학년에 올라간 큰손주가 할머니께 매주 저녁 전화를 건다. 부모님이 등 떠밀어 하는 안부 전화가 아니라 할머니가 편하신 시간에 맞춰 다이얼을 누르고 한 시간 넘게 하하호호 도란도란 이야기 풍선을 만드는 즐거운 대화 시간이 이어진다. 가족 얼굴 보기 힘 들고 함께 식사 한번 하기 어려운 시대에, 다른 할머니들에게 이런 광경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동경일까. 아니나 다를까 만년의 친구들이 어쩌다 그 장면을 보면 한결같이 부러움 반 신기함 반을 섞어 놀란 노루처럼 물어온다.

“어떻게 손주하고 한 시간을 이야기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라는 질문에 “너희 가족은 어째서 그런 유대감을 갖고 있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나이와 성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가족 구성원이 격의 없이 사귀는 가정이 있다. 함께하는 식사로 단단한 유대감이 생긴 가정의 모습이다.

유대감, 집밥의 진짜 의미
“가족이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동안 음식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 사회 간의 유대를 경험합니다. 집에서 밥을 해서 가족과 함께 먹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지금껏 인류가 늘 해오던 쉽고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누군가 어렵다고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미디어가 증폭하면서 사람들이 진짜 어렵다고 착각하게 된 건 아닐까요?”

할머니와 그 어머니의 할머니부터 내려온 고유한 손맛이 미식의 기준이 되고, 물리적 포만감보다 정서적 행복감에 더 배부른 게 집밥의 미덕이다. 사람 사는 일이 곧 삼시 세끼 먹고 사는 일이니 가정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두 이 집밥의 미덕을 매일 누리며 사는 게 가장 쉬운 인생 공식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쉬운 공식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번 논리에서 벗어나니 오답이 속출하고 가장 쉬운 것을 가장 어렵게 여기는 부작용이 우리 사회에 퍼졌다.

집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는 대신 ‘집밥’ 같은 음식을 제공한다는 레스토랑에는 열심히 찾아가 요리를 주문하는 아이러니가 생겼고, 가족 간의 풍성한 대화가 가물었으며, 부실한 건강과 면역력이 값비싼 영양제로도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게 가족과 식사하는 빈도가 줄어든 요즘 사람들의 퍽퍽한 현실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따스한 집밥을 찾아 헤매는 반면, 이 쉬운 공식을 가감 없이 그저 쉽고 재미있는 마음으로 풀어내는 사람은 가족의 유대감, 친구의 지지, 일상의 감사라는 명쾌한 답을 누린다. 대학생 손주와 한 시간 넘게 즐거운 전화 통화를 하고 초등학생 손주들과 전쟁기념관에 가서 탱크를 구경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이순자 교수가 그 주인공.


최근 <따뜻한 밥상>이라는 책을 낸 그에게 한 지인은 “이순자 교수의 요리는 마음까지 채워주는 집밥이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이 집밥에도 주어진다면 족히 별 다섯 개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찬사를 보냈다. 또 다른 지인은 “선생님이 차려놓으신 식탁에 앉으면 눈과 입과 마음이 즐겁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식솔이 좋아하고 식객도 반해 별 다섯 개를 아낌없이 선사하는 집밥의 비결은 무엇일까? 음식을 통해 가족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유대감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쉽고 즐겁게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라”는게 이순자 교수의 첫 번째 조언이다.

일상의 식사는 생존의 필수 요건이고 식도락은 취미에 속하는 영역이다. 취미만 가지고는 중요한 일상을 운영할 수 없다. 일상의 식사가 소박할수록 특별한 것을 더욱 특별하게 누릴 수 있으며 또 그 특별한 도락을 큰 값을 치르지 않고도 일상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게 할 수 있다. _일상 요리의 즐거움, 19p 

사실 이순자 교수는 요리 선생님도 그만의 고유한 레시피를 보유한 요리 전문가도 아니다. 1938년에 태어나 해방되던 해에 국민학교에 입학해 한글을 배운 첫 세대로, 이화여고를 나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정부가 나서서 학생 도시락의 잡곡 비율까지 점검하는 어려운 시대에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가난한 장학생으로 고군분투하며 공부를 마쳤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1년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직을 명예퇴직할 때까지 평생을 쉬지 않은 1세대 워킹 우먼이었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뒤 남편은 공직에서 일했어요. 당시 공무원의 월급은 너무 적어서 가정 경제를 도우려면 저도 일을 해야 했지요.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된 남편은 낮시간에 다 하지 못할 만큼 업무가 많아서 저녁에도 외신 기자나 외국 손님을 집에 데려오곤 했습니다. 남편의 전화를 받으면 퇴근길에 장을 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음식 몇 가지로도 전식, 주식, 후식을 차릴 수 있는데, 요리가 쉽고 즐겁다고 생각하니 계속해서 더 손쉽게 하는 응용력이 생겼지요.”

기업에서 임원들에게 식사 매너를 교육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비즈니스에서든 친구 사이에서든 함께하는 식사는 마음을 유연하게 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소통의 통로가 된다. 특히 가정으로 식사 초대를 하는 것은 더없는 친밀감의 표시이자 격의 없는 우정을 나누자는 열린 마음의 표현과 같다. 집밥에는 문화와 세대를 뛰어넘는 이런 오묘한 공감의 능력이 있다.


대화, 가족의 위기 극복법
이순자 교수의 요리에 대한 호기심과 사람 좋아하는 성격은 어릴 때 부모가 한 밥상머리 교육의 열매다. 그의 가정은 개화된 가정 문화를 갖고 있었다. 고종의 계비인 순헌황귀비가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에 들어가 첫 장학금을 받고 일본 유학을 한 신여성인 어머니는 당대에는 드물게 학교 교사로 일하는 워킹 우먼이기도 했다. 삼대가 모여 사는 가정의 맏손주이던 그는 장을 보고 상 차리는 일을 도왔고 어른들과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면서 엄격한 식사 예절을 배웠다. 특히 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려주면서 “남 먹는 건 너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자주 강조했다. 덕분에 이순자 교수는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훗날 자라서 보니 다양한 식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은 유학을 하면서 외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어떤 사람이든 일이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능력을 길러주었다. 대가족이니 찾아오는 친척이 많아서 손님과 함께 식사하는 날이 많았고 특히 해방 후 국립박물관의 부원장이던 아버지가 외국인 손님을 데려오면 어머니는 한식과 서양식을 적절히 가미해 대접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결혼해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총명한 시어머니에게서 음식을 두루 배웠고 그 솜씨로 남편이 데려오는 손님을 잘 대접하곤 했다. 그러다 뜻밖의 절망이 그의 가족에게 찾아왔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순방에 나선 대통령과 함께한 남편이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곧이어 살갑던 시어머니도 타계하자 대학생 맏아들과 초등학생 둘째 그리고 이순자 교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저마다 자신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교육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정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이전에 자신의 생리적인 자생력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세수하고 목욕하는 것의 연장선으로 배고프면 집에서 아이가 스스로 음식을 챙겨 먹는 생존 교육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생존하는 무능한 국민으로 채워진 무력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_요리로 인한 풍성한 일상, 70p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부모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남이 하는 건 너도 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저는 전문직에 종사하니 다행이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남자 선생님도 학교 월급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니 나도 내 월급으로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지요.” 평소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사소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가정 문화 덕분에 당시 그는 두 아들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아버지 없이도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 염려 말라’는 말 대신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너희가 나를 잘 도와주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도움을 구한 것. “평소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많은 대화를 하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도 아이에게 현실을 확실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 함께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아이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요.”

다행히 씩씩하게 잘 자라준 두 아들은 저마다 가정을 이루었고 손주 세 명을 어머니께 선물했다. 미국에서 근무하는 큰아들네는 매해 여름 한 달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까이 사는 작은아들 가족은 매주 토요일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그의 집에 온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팬케이크를 준비하고 아들과 며느리는 즉석에서 오믈렛을 만든다. 다 함께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속마을 터놓고 대화하는 덕분에 그의 손주들은 할머니에게 요즘 아이들 특유의 무뚝뚝한 단답형 대답 대신 “할머니 어제는요, 할머니 학교에서요”라고 친절히 설명해주는 대화 습관을 들였다.

‘남 먹는 것은 너도 먹을 수 있다’는 교육 방침에 따라 어릴 때부터 손주들에게 다양한 요리를 경험하게 해준 것도 어른과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대학교수를 퇴직한 후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전보다 더 자주 상상과 응용력이 가미된 맛난 요리를 해줄 수 있게 되었고 부모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색다른 요리를 많이 경험하게 해주니 식사와 놀이를 겸하는 사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어휘가 놀랍도록 발달한 것도 집밥의 효용이다.


놀이, 밥상머리 교육의 재미

“미국에 있 는 큰손주와도 가까이 있는 두 손주와도 레스토랑 놀이를 아주 재미있게 했어요. 남자아이들이라 소꿉장난 대신 종이에 요리 그림을 그리면서 놀지요.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고 한때는 어려운 와인 이름까지 저절로 외우더군요.” 세계의 다양한 음식 문화에 눈을 뜨고 글로벌 식사 예절과 에티켓 교육까지 덤으로 할 수 있는 이순자 교수의 레스토랑 놀이는 손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손님 역할을 하고 형과 동생이 서로 티격태격하며 총주방장과 웨이터, 부주방장과 계산원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 손님이 들어가면 웨이터가 친절히 테이블로 안내하고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봉골레 파스타를 주세요.” 웨이터가 메모하는 척하다가 재빨리 종이를 내오면 할머니는 봉골레 파스타를 쓱쓱 그려준다. 그다음은 부주방장이 총주방장에게 확인을 받을 차례. “할머니, 우리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인데 조개도 더 많이 넣어야지요!” 총주방장의 요구에 맞게 요리가 완성되면 웨이터가 그림을 손님 테이블에 놓으며 와인을 권한다. 그러면 또 와인을 그리고 적절한 가격으로 계산하며 물가와 셈법도 익힌다. 스테이크, 생선 요리, 미트볼 등 깔깔깔깔 호호호호 아이들이 신나게 놀이를 하는 사이 요리 그림 수십 장이 식탁 위에 쌓이고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상상력과 어휘가 놀랍도록 팽창되고, 문화적 경험이 확장되고, 외국어 공부가 절로 되며, 무엇보다 음식이나 요리가 특정한 사람이나 성별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어머니나 배우자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먹고 사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자생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샤워를 할 줄 아는데 정작 자기 몸에 더 중요한 한 끼 식사를 준비할 줄 모르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갈 ‘자생력’이 없다고 이순자 교수는 강조한다. 남자든 여자든 냉장고에 있는 음식도 제대로 차려 먹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다. 부부가 아무리 해로를 해도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 부인이 먼저 떠났을 때 남자가 스스로 밥을 지어 먹고 옷도 기워 입어야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엄마가 바쁠 때 아이가 스스로 자기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어야 가족이 서로 도우며 지내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가정에서 알려주어야 한다. 자생력이 있는 사람이 종국에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없으니까 가정교육을 할 기회도 없지요. 가정교육이 곧 국가 교육으로 이어지는데 가정과 학교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 교육을 서로 미루면 결국 우리 사회는 인간 됨의 기본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되는 거예요. 자생력이 없이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죠.” 얼마 전에는 두 손주와 함께 전쟁기념관에 갔다가 이순자 교수는 깜짝 놀랐다. 레스토랑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각종 요리를 해박하게 꿰뚫고 있던 것처럼 박물관에 전시된 첨단 장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여기 ‘F’라고 써 있는 것은 파이터Fighter라는 뜻이에요. F16이 라고 들어보셨지요? B는 범Bomb을 뜻하고요”라고 설명하는 아이들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전시 관람을 마치고 점심을 사 주면서 “이건 할머니가 사주는 게 아니라 너희가 오늘 할머니를 잘 가이드해주고 벌어서 먹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더니 아이들이 뛸 듯이 기뻐했다.

나중에 며느리에게 들으니 아이들이 직접 벌어서 점심을 사 먹었다고 연거푸 자랑을 했다고한다. “가족과 특히 아이들과 잘 소통하려면 할머니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해요. 우리 아이들이 요즘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그 공부를 조금씩 해야 하지요. 아이들이 단답형으로 대답할 때는 문장으로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됩니다.” 가족이 평소 집밥을 즐기고 화목한 분위기를 누리면 주변 사람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 가정을 방문하고 식사 초대가 일상이 된다. 집밥을 통해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가정도 사회도 더 깊은 소통과 공감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사람이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회로 연결된다.


초대, 나눔의 선순환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이순자 교수의 서울 집이 마치 글로벌 게스트 하우스 같았다. 아시아에 여행 온 아들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찾아왔는데, 그들에게 방을 내주고 따듯한 집밥을 대접하는 게 즐거웠다. 문화가 다르고 입맛이 달라도 집밥에서 느끼는 정성만큼은 교감할 수 있기에 그의 집에서 묵고 간 아들 친구들은 “다음에 제가 취직을 하면 어머니를 좋은 레스토랑에서 대접할게요”라고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중에 큰돈 들여서 나를 대접하지 말고 오늘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내 생각을 하고 도와주라”고 일러주었다. 두 아들과 손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것을 든 노인을 보면 짐을 들어드려라. 너의 힘 두었다 뭐하니. 그러면 언젠가 내가 혼자 여행할 때 누군가 내 짐을 들어주지 않겠니”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따스한 집밥을 먹고 내면에 정과 예의를 채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큰 마음 큰돈 안 들이고 지금 이 순간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호의가 호의를 낳아 우리 사회가 호의가 선순환하는 더욱 구수한 사회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손님을 초대하는 마음가짐도 마찬가지다. 그는 초대를 받으면 직접 담근 피클, 멸치볶음, 고추장 등을 작은 병에 담아 선물로 가져간다. 돈을 들이거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선물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무엇보다 정성이 들어 있기에 사람들은 이순자 교수의 작은 선물에 큰 행복감을 느낀다. 간혹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면 똑같은 대접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꺼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때면 우리 집에 와서 드시고 나중에 밖에서 맛난 것을 사달라고 이야기한다. 식사가 즐거우려면 초대하는 사람도 초대를 받는 사람도 마음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내 기분이 좋을 만큼 깨끗하고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집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깔깔거리며 식사를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그게 제일 장점이지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고 보글보글 끓는 소리, 바삭바삭 씹는 소리, 입안에서 느끼는 보드랍거나 단단한 감촉 등 음식이 주는 자극에 인간의 오감이 활짝 열려 반응한다. 이러한 강력한 속성 때문에 음식은 효과적인 교육 매체가 될 수 있고 가족의 식탁은 좋은 환경이 조성된 교육 현장이 될 수 있다. _밥상머리 가르침, 57p

가족이나 손님을 위한 초대 요리는 재료의 가격이 비싸지 않은 제철 요리를 주로 준비한다. 외국 요리의 재료가 없을 때는 적절한 대안을 찾으면 되는데 손님들은 이런 응용력과 창의력에 더 많은 감동을 받는다. 예를 들어 나물을 무칠 때 올리브유를 사용하면 훨씬 부드럽고, 라자냐에 리코타 치즈가 부족해 두부를 넣어봤더니 훨씬 담백한 맛의 요리가 탄생하는 식이다. 무엇이 없으니 무슨 요리를 하지 못하겠다며 가족과 손님을 위한 식사 준비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유연한 사고와 융통성을 발휘해 쉬운 요리를 정갈하게 차리는 것만으로 손님에게 따뜻함과 정성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남도 하는데, 남도 가는데, 남도 먹는데’라는 것이 우리 부모님이 내게 해주신 가장 좋은 교육이었어요. 이 교육 때문에 우리 인생이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좀 더 살기 편해진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었으니 언젠가 가정교육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겠지요.” 시간이 부족해서, 공간이 협소해서, 몸이 피곤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에 소홀한 가정이라면 이순자 교수 가정의 밥상머리 교훈을 되뇌어보자. “저렇게 바쁜 집도 함께 식사를 하는데, 저렇게 좁은 곳에서도 함께 식사를 하는데, 저런 음식도 나누어 먹는데”라고. 집밥을 준비하고 차리는 것이 반드시 주부의 몫은 아닐 것이다. 자녀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도 일상에서 가족과의 식사를 소중히 여기는 자생력을 발휘할 때 그 가정은 안정감과 위안, 유대감과 격의 없는 사귐이라는 단단한 끈으로 묶인다. 격의 없이 사귀는 가족, 격의 없이 소통하는 이웃, 격의 없이 행복한 사회로 연결되는 집밥의 참 의미와 재미는 이토록 든든하고 풍성한 것이다.

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이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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