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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꿀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5월의 마지막 날 밤, 저희 집 뒷마당에선 ‘벌의 대이동’이 펼쳐졌습니다. 지난봄, 벌이 산수유, 매화, 진달래, 벚꽃, 철쭉, 생강나무, 자운영, 찔레 등의 나무와 야생화에서 열심히 물어온 ‘야생화 꿀’을 이미 두 차례 거둬들인 후입니다.

뒷마당에 놓아기른 벌이 작디작은 돌나물꽃에 찾아들었다. 벌은 매실, 감, 복숭아, 산수유, 호박, 수박, 오이, 가지 등의 꽃에도 날아든다. 가루받이를 해주는 벌이 없으면 꿀만 못 먹는 게 아니라 과일도 채소도 못 먹고 결국엔 고기도 우리 식탁에서 사라진다.

들판의 꽃향기를 머금은 야생화 꿀
벌이 애써 모은 꿀을 얌체같이 따먹는 인간의 행위를 ‘채밀採蜜’이라고 하지요. 저는 “꿀벌 등쳐 먹는다”고 표현하는데, 그러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돌보았는지 아느냐”며 이제 겨우 2년 차 양봉가인 제 곁지기가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어쨌든 올해는 집 뒷마당에서 벌을 치기 시작한 지 두 번째 해이고, 이날의 이사는 이제부터 피어나는 밤꽃의 꿀을 본격적으로 따기 위한 일종의 출격이자, 선배 양봉가 옆에 바짝 붙어 서로 일손도 도우며 제대로 좀 해보자는 발걸음입니다.

사실 벌은 벌집을 50cm만 옆으로 옮겨도, 또 입구 방향만 바꿔도 제집을 못 찾아갑니다. 사방 2~3km까지 꿀을 따러 다니는 벌인데도 사정이 그렇답니다. 그래서 낮에 꿀을 따러 나간 벌이다 돌아온 오밤중에 이사를 해주는 거랍니다. 깜깜한 숲에서 트럭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두 장정이 낑낑대며 벌통을 옮겨 싣는 일은 왠지 웃음이 납니다. 벌통을 들고 ‘벌벌’ 떨며 옮기거든요. 무거워서 통을 든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자칫 벌통을 떨어뜨려 놀란 벌들에게 공격당할까 봐 떨리고. 그래서 움직임 하나도 조심스러운 야반도주 같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내검하는 모습. 말린 쑥으로 연기를 피워 벌을 교란시킨 다음 안을 살핀다. 

트럭에 실어 옮긴다고 말하니 무슨 큰 사업을 하는 것 같은데, 실은 겨우 세 통뿐입니다. 작년 처음 다섯 통 벌(봉군)을 사들여 달달한 꿀맛을 본 후 내년엔 “돈맛도 좀 보자” 했는데, 가을에 말벌의 습격으로 벌을 모두 잃는 바람에 규모를 키우기는커녕 다시 벌을 사 와서 시작해야 하는 원점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올봄 갑작스러운 더위에 꽃들이 거의 동시다발로 피어나 벌들이 꽃꿀을 모을 기간이 짧아졌고, 그 뒤엔 중간중간 꽃샘추위에 거센 비바람까지 불어 다시 시작한 다섯 통마저 이미 세 통으로 줄었지요. 벌 농사도 하늘이 짓나 봅니다.

그래도 야생화 꿀은 제대로 숙성되었는지, 최상급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혀끝의 달콤함을 넘어 들판에 만발한 크고 작은 꽃들이 다 내 코와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향기롭고 오묘한 꿀맛! 저는 클로버꿀, 유채꿀, 아까시(아카시아)꿀처럼 한 가지 꽃에서 얻은 꿀보다 여러 꽃에서 모아들인 야생화 꿀을 선호 합니다. 효소도 백초효소가, 차도 백초차가 훨씬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것처럼 말이지요.

초봄의 야생화. 아까시 꿀을 따고 나면 밤꽃이 피어 벌에게 마지막 먹이를 제공한다. 밤꿀은 약선 음식에 많이 사용한다. 

또 하나의 우주를 보는 양봉

“여왕벌이 늙어 힘이 빠지면 일벌들도 일을 열심히 안 해. 그것들도 다 알아! 그러면 벌들은 젊고 힘 좋은, 애를 잘 낳을 새 여왕을 추대하지. 그래서 늙은 여왕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랑 함께 쫓겨 나가는 거야!” 대규모 단감 농사를 짓는 동네 김 씨는 감꽃의 가루받이를 위해 양봉을 시작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게 꿀벌의 이야기인지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인지 헷갈립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며, 벤저민 프랭클린, 톨스토이, 셜록 홈스 같은 인물들이 양봉을 한 것은 이런 꿀벌의 왕국, 또 하나의 우주를 들여다보는 재미 때문이었나 봅니다.

벌통 하나에는 여왕벌 한 마리와 일벌 약 2만 마리, 그리고 번식기(4~9월)에 나타나 교미를 하고는 죽어버리는 수벌 수천 마리가 모여 하나의 ‘봉군蜂群’을 이루고 생활합니다. 그래서 한 곳에 벌통 수백 개가 있다고 해도 벌들은 자기가 사는 벌통, 자기여왕의 세계로 정확히 찾아 돌아갑니다. 그 모습은 마치 가족 들이 모여드는 저녁의 아파트 단지 같습니다. 일벌은 어려서부터 일을 합니다. 밀랍 벌집을 만들고 집 안을 청소하고, 여왕벌과 동생 벌을 돌보고, 날갯짓으로 집 안 온도를 유지하고 입과 날개로 꽃꿀을 요리해 숙성시키는 등의 일입니다.

태어난 지 20일 정도 지나면 세상 밖으로 나가 꿀을 따는 ‘외역外役 벌’로서 일을 하는데, 한 번 나가서 따 오는 꿀의 양은 자기 체중의 절반에 가까운 30〜50mg이지요. 이 중 절반 가량이 수분으로 증발되고 나머지가 완숙된 꿀로 남습니다. 대충 계산해도 벌꿀 1kg을 저장하려면 4만 번 출역해야 하고, 하루 동안 벌꿀 1kg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일벌 1만 마리가 네 번 출역해야 한다는 셈이 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략 5백 50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하네요. 일벌은 늙어서도 벌통 입구에서 도둑벌, 말벌로부터 자신의 왕국을 지키는 일을 하다가 겨우 45일 정도의 짧은 삶을 마감합니다.

꿀을 쉽게 채취하려고 만들어준 벌집. 위가 봉해진 것은 여왕벌이 산란한 알이 들어 있는 방이다.

벌을 돌보며 보내는 1년
반면 여왕벌의 수명은 일벌의 30배가 넘습니다. 몸집도 2배 이상 크고 하루에 3천 개, 일생 동안 2백만 개의 알을 낳는 놀라운 생산 능력이 있습니다. 3천 개의 알이란 자기 몸무게보다도 무거운(대략 1.5배라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저는 일벌이 모두 수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여왕벌과 같은 암컷이랍니다. 어릴 때 자라는 방의 크기와 주어지는 먹이에 따라서 팔자(!)가 그렇게 극명하게 갈린답니다. 그 여왕벌이 먹는 음식이 바로 로열젤리인데 일벌은 태어나 처음 사흘만 먹을 수 있다고 하네요.

벌통을 일단 들여놓으면 1년에 걸친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강아지를 기르면 쉽게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벌 또한 시기에 따라서는 사흘 이상 집을 비우지 못하기도 합니다. 더우면 시 원하게 해주고 추우면 덮어주고, 여왕벌이 건강하게 알을 잘 낳는지 살펴야 하고, 개체 수가 늘어나 좁을라치면 알 낳을 집(소비)을 더 넣어주고, 새로운 여왕벌이 출현할라치면 집을 두 개로 나눠줘야 하고, 시기를 놓쳐 밀도가 높아져 더워진 벌통에서한 무리의 벌이 여왕벌과 함께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사태 (분봉)가 벌어지면 이를 또 수습해야 합니다.

집 나간 벌 떼를 근처의 1차 집합지에서 찾아 데려오기도 하지만, 정찰병이 최종 정착지를 마련해서 모두 떠나는 데까지는 불과 두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다시 찾아오는 건 행운에 속합니다. 그 많은 벌을 어떻게 데려오느냐고요? 벌이 붙은 나무나 바위 아래에 벌통을 놓고 나뭇가지나 빗자루로 확쓸어 담아 온답니다. 운이 좋으면 이웃 농가에서 기르던 집 나온 아이들을 발견해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술자리에서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아무래도 이장네서 날아온 벌 같지?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더라고” 키득키득. 벌에 이름을 써놓지 않았으니 주워 담은 사람이 임자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전 세계 양봉가들에게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갑자기 멀쩡하던 벌통의 벌이 다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2007년 말, <뉴욕타임즈>가 발표한 올해의 신조어 중에 ‘CCD’란 용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Colony Collapse Disorder’, 즉 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집단적으로 사라지면서 죽는 괴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꿀벌에게 치명적 해충인 ‘바로아 응애’와 같은 여러 기생충과 병원균 때문이라고도 하고, 무분별한 농약 살포, 유전자 변형 작물, 신종 바이러스, 지구 온난화 같은 기후 변화, 핸드폰 등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로 인한 벌들의 방향 감각 교란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아직 확실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친 참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이 처음 따온 꽃꿀은 벌집 안에서 숙성한다. 이 숙성 꿀이 비싼 것은 당연. 꿀은 시나몬과 함께 먹으면 건강에 좋다해 만든 ‘시나몬 허니’. 크루아상에 발라 먹으면 그만이다.

꿀벌은 먹이사슬 생태계의 중심
꿀벌이 사라지면 꿀만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마시고 있는 딸기 주스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아삭한 복숭아도, 여름의 주식인 토마토, 호박, 오이도 모두 우리 식탁에서 사라집니다. 과일과 열매채소 대부분이 꿀벌, 새, 곤충 등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그리고 그중 80%를 꿀벌이 차지한다고 하니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뉴욕에서 ‘도시 양봉’의 소식이 들리더니, 최근엔 서울의 빌딩 숲과 공원에서도 도시 양봉 운동이 벌어진다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시민 모임에선 ‘우리 동네 불광천 변의 가로수는 어떻게 관리될까’ 궁금해 해당 기관에 ‘정보 공개 청구’ 란 것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어드마이어, 로맥틴, 다니톨 등의 농약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수시로 뿌렸다”는 답변을 들었다지요. 다니톨과 로맥틴은 1급 어독성魚毒性 농약으로 다니톨은 나무에 뿌려서는 안 되는 제초제이며, ‘양어장•저수지• 상수 취수원•해역 등으로 날리거나 빗물에 씻겨 직접 흘러 들어갈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말라’는 취급 제한 기준이 있습니다.

어드마이어는 꿀벌을 사라지게 한다는 이유로 유럽 연합에서 금지한 농약이랍니다. 한쪽에서는 사라지는 꿀벌을 걱정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여전히 무분별하게 농약을 살포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시민 모임에선 이를 알리기 위해 캠페인까지 벌였답니다. 다른 마을에서도 이런 운동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보 공개 청구’라는 권리 행사와 참여를 통해 우리 주변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이지요.

귀촌 3년 차인 저도 여전히 벌레가 징그럽고 무섭긴 하지만, 벌레보다 나쁜 것은 벌레조차 살지 못하는 환경일 겁니다.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자연답습니다. 지금 우리가 꿀벌을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꿀벌이 꽃가루받이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는 먹이사슬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꿀벌은 어떤 식으로든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태적 삶, 에코 라이프의 지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글과 사진 정현선 | 담당 김민정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