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르 셰프 블루 로랭 달레 셰프와 이미령 대표 이전에도, 이후에도 즐거운 요리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美와 맛을 이르는 미味는 한자음이 같으며, 자연스러움이 미덕인 것도 같다. 프랑스인 셰프 로랭 달레Laurent Dallet와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부부가 꾸려가는 르 셰프 블루Le chef bleu는 음식을 ‘자연스럽게’ 선보여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기보다 미식을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쿠킹 스튜디오로, 르 셰프 블루가 빛나는 이유는 이곳이 열정으로 시작해 초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르 셰프 블루(02-6010-8088)에서는 매일 딱 한 팀만 식사할 수 있어 예약은 필수다. 가격은 점심 3만~7만 원, 저녁 5만~20만 원. 원데이 쿠킹 클래스는 월ㆍ목요일에만 진행하며, 가격은 10만 원. 

삶의 에너지를 찾고 행복을 나누는 미식
1 외할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나무 주걱. 
2 이미령 대표가 스튜디오에 있을 때 가끔 연습하는 피아노. 
3, 5 로랭 셰프가 즐겨 사용하는 식자재와 화단의 텃밭. 식재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는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강한 양념이나 지나친 장식도 자제한다. 
4 프랑스에 계신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커틀러리 세트와 로랭 셰프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에서 근무할 때 만든 메뉴판. 

요즘은 눈만 뜨면 어디서든 접하는 것이 음식 이야기다. 골목마다 넘쳐나는 맛집 덕에 유명한 맛집 몇 곳은 꿰고 있어야 트렌디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다. 미식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탐식의 결과이니 여기서 ‘진짜’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프랑스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르셰프 블루’의 등장이 유독 반가웠던 이유다.

‘음식 맛 좀 안다’는 이들이 한적한 방배동 주택가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생겼다는 제보를 전해온 것은 지난겨울의 일. 그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곳에 가면 맛도, 속도, 분위기도 편안해 입이 즐겁고 마음이 흐뭇하단다. 한데 막상 찾아가보니 첫인상이 널찍한 주방이 있는 지식인의 문화 살롱 같다. 음식으로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여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음식만 한 것이 없다고 믿는 남자, 이들이 함께 꾸려가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바로 푸드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이미령 대표와 프랑스인 셰프 로랭 달레 부부 이야기다.

“르 셰프 블루는 레스토랑으로 한정한 공간이 아니라 쿠킹 클래스도 진행하는, 말하자면 쿠킹 스튜디오예요. ‘정체성 있는 프랑스 음식’을 맛보고, 경험하고, 즐기며, 배울 수 있는 곳이지요. 한국 사람들이 프랑스 음식을 어렵고 엘리트만 즐기는 최고급 음식으로 인식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사실 편안하고 먹기 쉬운 가정식이나 향토 음식도 많거든요.”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음식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분야도 드물다고 믿는 로랭 달레 셰프는 프랑스와 한국의 음식 문화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덧붙인다.

밥상으로 소통하고, 음식으로 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물론 안타까운 점도 있다. 바로 자연스럽지 못한 식재료다. “장에 가면 당근이고, 감자고, 애호박이고… 하나같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모양이 똑같고 단일 품종만 있어서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심지어 마트에 있는 것들은 모두 화장이라도 한 듯 번쩍번쩍 빛이 나더군요. 좋은 식재료란 자연 그대로인 것이 불변의 진리인데, 식재료마다 품종이나 크기, 모양이 천편일률적이라면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분별력을 갖출 도리가 없죠. 음식을 음미하며 즐기는 미식 능력도 좋은 식자재를 직접 골라 정성껏 다듬고 조리하고, 그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갖추는 것이니까요.” 그가 말하는 미식은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화려한 고급 정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미식가도 비싼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다.

프랑스어로 ‘미식가’를 의미하는 구르메gourmet는 좋은 음식과 와인의 진가를 알아보고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여느 가정에서 즐기는 평범한 음식도 최상의 식재료로 만들면 좋은 음식이요, 미식이라는 것. 이미령 대표는 미각이 획일화되고 겉만 화려한 요리에 끌리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단다. “절대 미각을 가진 사람은 1백 명 중 열다섯 명 정도라고 해요. 대부분은 경험과 학습으로 미각을 발달시키는 거죠. 좋은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많이 먹어보면 미각도 개발돼요. ‘맛있다’는 느낌은 혀뿐 아니라 두뇌도 느끼는 법이거든요. 머리가 맛있다고 느끼면 사람은 즐거워져요. 저와 로랭이 진짜 음식을 즐기고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유죠.”


초심의 미식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1 르 셰프 블루의 이름처럼 파란 차양이 인상적인 외관. 
2 황동 소스 팬, 소시지를 썰 때 사용하는 기요틴, 빵 자르는 도구, 소스 건 등 로랭 셰프가 아끼는 조리 도구들. 
3 부부가 최근에 즐겨 읽거나 아끼는 요리 관련 서적.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의 프랑스 출신 셰프 에리크 리퍼트는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사다.

반전 있는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서는 필수 덕목처럼 남다른 열정이 느껴진다. 요리사로 푸드 칼럼니스트로 입지를 다져가는 이 부부는 이력도 남다르다. 피아노를 전공하다 독일 유학 시절 돌연 전공을 바꿔 영국 유학길에 오른 이미령 대표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인 로랭 달레 셰프를 만났다. 그도 당시엔 요리사가 아니었다. 프랑스판 ‘신이 내린 직장’인 브이그텔레콤에서 각각 국제 마케터와 엔지니어로 일하던 부부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곳은 뜻밖에 뉴욕이었다. “살아보니 인생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 기회가 되기도 하더군요.

로랭이 11개 월간의 안식년을 맞은 2007년, 견문도 넓힐 겸 함께 요리 공부를 하러 뉴욕으로 갔어요. 최소 2년 과정인 프랑스와 달리 미국 뉴욕의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FCI)에선 6개월이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거든요. 성격이 워낙 섬세하고 꼼꼼한 로랭이 일을 하면서 요리 공부에 집중하기란 어려울 테니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 거죠.” 더 늦기 전에 요리 공부를 하고 싶었을 뿐 요리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결단력과 추진력이 없는 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그들은 또 저질렀다. 마흔 살에 늦깎이로 요리사가 된 로랭 셰프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의 부주방장으로 근무하게 되자, 회사에 2년 간의 창업 휴가를 내고 요리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 이 대표도 이참에 함께 근무하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푸드 칼럼니스트로 직업을 바꿨다.

“여러 가지 식재료를 조합해 만든 나만의 창의적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하면서 요리하는 재미를 느꼈어요. ‘맛의 하모니’로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요리사로서 희열을 맛본 거죠.” 뉴욕에서 6년 이상 요리사로 일하던 셰프는 자신감이 생기자마자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의 문화와 식재료를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프랑스에서는 주방에 견습생이나 초보 요리사가 새로 들어오면 ‘C’est un bleu.’라고 불러요. ‘새파란 초보’를 의미하지요. 르 셰프 블루라는 이름에는 늘 초심을 잃지 않는 초보의 자세로 주방을 열심히 지키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어요.” 초심의 순수함 속에서는 마음도 정화 되는 법. 르 셰프 블루를 찾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입이 즐겁고 마음이 흐뭇해지는 이유다. 이곳에는 요리 기술자가 아니라 열정과 초심으로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요리를 하는 예술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가정의 저녁 식사를 보면 대부분 식사 전 아페리티프aperitif(식전주)를 마시거나 핑거 푸드인 아뮤즈 부슈를 먹으며 얘기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전채 요리, 해산물과 육류의 메인 요리, 모둠 치즈, 디저트, 코냑 같은 디제스티프digestif(식후주)로 마무리한다.”


1 아뮤즈 부슈amouse-bouche(식전 핑거 푸드)

식전에 입맛을 돋우는 아뮤즈 부슈로 두 가지 피망을 이용한 가스파초 수프, 토마토 타르타르를 잘게 썰어 넣은 치즈 퍼프, 토스트한 빵 위에 얹은 리에트를 한 접시에 담았다.

2 앙트레Entree(전식) 
각종 샐러드와 애호박으로 만든 채소 수프. 부드러운 흰자 거품과 노른자를 수프와 함께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으로 달걀노른자는 심장을 상징한다. 달걀흰자로 머랭을 만들어 볼에 넣고, 살짝 삶은 노른자를 얹은 뒤 다시 머랭을 올린 흰자로 덮는다. 



3 플라 프랭시팔plat principal(본식)
겨자 소스를 곁들여 소테saute(육류나 생선 등을 버터 녹인 팬에 굽는 조리법)한 돼지 안심에 다양한 제철 채소를 동그랗게 모양내 한 입 크기로 만 들었다. 감자와 당근 퓌레를 곁들여 퍽퍽한 고깃살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4 데세르Dessert(디저트)
바닐라 향을 곁들인 캐러멜 소스와 함께 구운 크림. 프랑스인은 디저트까지 다 먹어야 조화로운 식사 한 끼를 먹었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벌이 디저트를 안 주는 것일 정도로 인생의 큰 낙으로 여기는 것.

글 신민주 수석기자 | 사진 이우경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