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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도시락
도시락을 보면 그 사람의 요리 솜씨는 물론이요, 성정性情까지 알 수 있습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온갖 산해진미를 다양한 조리법으로 담은 도시락만큼 귀한 선물도 없으니까요. 솜씨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요리 전문가 6인의 도시락을 소개합니다. 반찬 가짓수가 다양해 푸짐하고 담음새도 남다르니 잘 차린 밥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김밥과 주먹밥으로


“도시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학창 시절의 소풍 도시락입니다. 요즘도 가끔 옛날 생각에 김밥을 싸곤 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모둠김밥보다 재료를 하나씩만 넣어 단출한 꼬마김초밥을 즐겨 만듭니다. 그 대신 찬에 공을 들이지요. 튀김, 조림, 절임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고기나 생선의 갈색, 달걀의 노란색, 채소의 붉은색이나 녹색이 흰색 밥과 고루 어우러지게 만듭니다. 도시락을 열었을 때 색이 다양하게 골고루 섞여 있어 눈이 즐겁다면 일단 합격입니다. 정성으로 만들어 기본에 충실한 영양 도시락이라는 의미니까요.” _메이(요리 연구가)
김밥처럼 돌돌 만 달걀말이와 명란춘권튀김, 연어조림과 함께 입가심으로 먹을 연근초절임, 연근간장절임을 함께 담았다. 명란과 연어구이를 넣은 주먹밥은 현미밥과 흑미밥으로 만들었는데, 손에 소금을 묻히고 모양을 만들면 간이 배어 일석이조. 꼬마김밥엔 당근과 붉은 시소 가루인 유카리를 묻힌 오이를 넣었다, 나무 옻칠 도시락은 정소영의 식기장, 원형 나무 도시락은 규방도감.



철에 맞는 쌈밥으로


“1년 양식이 되는 농작물이 쑥쑥 자라는 요즘은 제철 푸성귀와 맛이 든 장으로 쌈밥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때지요. 강된장과 약고추장을 미리 만들어두면 간단하게 차려내기 좋을뿐더러 쌈밥을 도시락으로 푸짐하게 쌀 때도 유용합니다. 여기에 쇠고기를 채 썰어 갖은 양념을 하여 볶은 장똑똑이와 살만 바른 조기구이를 더하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습니다. 이를 쌈에 싸 먹으면 그 맛 또한 별미지요. 쌈밥이 메인 요리라면 곁들이 음식으로는 전이 좋습니다. 달래, 부추 등 제철 채소를 넣어 만든 마새우전은 입맛을 돋워 제격이지요. 또 밥을 틀로 찍어 한 입 크기로 담아 먹기 좋게 하고, 마지막엔 음식 위에 담쟁이덩굴이나 엽란을 덮어 마르지 않게 하세요.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솜씨 도시락의 한 끗 차이랍니다.” _노영희(요리 연구가・철든 부엌 대표)
3단 찬합의 맨 아래 칸에는 다양한 종류의 쌈채소와 노랑・주황 파프리카를 스틱 모양으로 잘라 담았고, 가운데 칸에는 한 입 크기로 만든 밥과 마달래새우전을 넣었다. 맨 위 칸에는 장똑똑이와 살만 바른 조기구이를 약고추장, 강된장, 오이소박이와 함께 보기 좋게 담았다.


증편 샌드위치와 정과로


“떡에는 우리 식문화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대표 여름 절식인 증편은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떡으로, 기주떡이라고도 하고 술떡이라고도 부릅니다. 맛이 새콤해 식감을 자극하고, 더운 날씨에도 잘 쉬지 않으며 건강에도 이롭지요.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폭신하지만 식빵처럼 쫄깃하기도 해 샌드위치로 만들면 여름철 별미 도시락으로도 그만입니다. 새싹채소나 쌈채소, 양파채 등을 속으로 넣으면 깔끔한 맛이 일품이지요. 햄이나 달걀 등을 넣어 간단히 먹어도 좋지만, 우리 전통 고기구이인 너비아니에 메밀가루를 묻힌 전을 속으로 함께 즐겨보세요. 햄버거 패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고 맛에도 기품이 있습니다. 여기에 단호박 샐러드까지 더하면 단백질과 탄수화물, 식이섬유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한국식 런치 박스’로 정크 푸드의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_박경미(동병상련 대표)
그린빈스 새싹채소와 올리브유에 절인 코티지 치즈를 넣은 증편 샌드위치, 너비아니메밀전으로 구성한 도시락으로, 전을 햄처럼 샌드위치에 끼워 먹으면 별미다. 여기에 달달한 단호박 샐러드를 곁들이고, 후식으로 오미자배정과꼬치, 사과정과, 연근정과, 유자잣강정, 호두강정 등 정과를 준비하면 더없이 귀한 도시락이 된다, 하얀 누비 천 매트는 정소영의 식기장, 타원형 옻칠 도시락은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일본 가정식으로


“일본만큼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없지요. 도시락의 기본인 식어도 맛있는 음식으로 식초, 설탕, 소금을 넣어 쉴 염려가 없는 초밥은 여름 도시락의 단골 메뉴입니다. 그중에서도 단촛물로 간을 한 밥 위에 달걀지단, 채소, 해산물을 푸짐하게 올린 지라시스시는 일본 가정식 중에서도 도시락 메뉴로 단연 인기입니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별미 도시락으로 좋은 데다 여러 가지 식재료가 꽃잎 조각처럼 올라 있어 모양새도 빼어나기 때문이지요. ‘숟가락으로 떠먹는 꽃 초밥’으로 불릴 정도로 화려하니 귀한 이와 함께하는 나들이 도시락으론 더할 나위 없습니다. 얼마 전 딸을 위한 나들이 도시락으로 지라시스시와 함께 쇠고기 소보로와 달걀 소보로를 얹은 유부초밥, 비트 우린 물로 곱게 색을 들인 팥앙금초밥을 준비했는데, 인기 만발이었답니다.” _김정은(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깻잎 돈가스 꼬치는 깻잎 향이 좋아 소스가 필요 없고 식어도 비리지 않아 도시락 찬으로 제격. 비트물을 들여 팥 앙금을 넣은 초밥은 절인 벚꽃으로 장식해 고구마 레몬 콤포트와 함께 용기에 담았다. 소보루 모양으로 얹어 참나물로 묶은 유부초밥은 치자물을 들인 우엉과 함께 싸고, 지라시스시와 과일은 용기를 따로 준비했다.


초밥과 튀김으로


“초밥은 어쩐지 우리의 고봉밥과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꾹꾹 눌러 만드는 것이며,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그렇지요. 대개 초밥 하면 떠오르는 날생선을 얹은 니기리스시는 에도 시대에 일하면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원 자체가 직장인을 위한 맞춤 도시락인 셈이지요. 초밥은 계절감이 중요한 요리인 만큼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충분히 써서 맛을 내는 게 포인트입니다. 보통 한국은 흰 살 생선을 좋아하지만 일본은 등 푸른 생선을 더 윗길로 치지요. 초밥은 조리 방법과 재료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오사카에서는 틀에 생선과 밥을 넣어 눌러 만든 오시스시가 유명합니다. 고명으로는 새우나 장어가 대표적이지요. 여기에 튀김과 절임 등을 찬으로 곁들이면 다채로운 매력의 초밥 도시락이 완성됩니다.” _윤종민(츠지원 요리 아카데미 아카데미팀)

새우와 장어간장구이를 얹은 누름초밥(오시스시)과 식초에 절인 고등어를 얹은 봉스시를 메인으로, 찹쌀을 얇게 가공해 말려 바싹 튀긴 오카키를 가루 내어 튀김옷으로 입힌 닭고기 오카키 튀김과 시금치절임, 참마초절임, 삶은 달걀, 데친 브로콜리, 모양낸 생마 등을 찬으로 푸짐하게 담았다.
나무 칸이 있는 흑유 도시락은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인기많은 중국음식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뜻이지요. 건강하고 풍족한 밥상이 귀하게 대접받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도시락에도 프리미엄 열풍이 부는 것이겠지요. 맛있는 음식의 영양을 고려해 한데 담아 즐기는 것이 도시락이니 중국 음식 중에서도 인기 많은 삼풍냉채, 깐풍 전복, 칠리 새우볶음 등을 1인분씩 소담하게 담았습니다. 해산물 위주의 식단이라 고기 샐러드를 곁들여 영양의 균형을 맞추었지요. 호텔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코스를 골고루 맛볼 수 있게 구성한 것이니 나들이 도시락이기보다는 손님을 초대했을 때 즐겨도 좋을 듯합니다.” _정수주(웨스틴조선호텔 중식당 홍연 주방장)

해파리와 새우, 문어숙회로 구성한 삼풍냉채는 각각 마늘 소스, 토마토케첩 소스, 겨자 소스 등을 곁들였다. 홍초 소스를 드레싱으로 사용한 쇠고기 샤부샤부, 깐풍 전복조림, 칠리 새우볶음, 짜사이 무침으로 식사를 마친 후에는 제철 과일로 입가심을 한다. 칸칸이 합, 백자 볼, 찻주전자와 잔은 모두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세트 스타일링 강혜림, 김지나 캘리그래피 강병인 그릇 협조 규방도감(02-732-6609), 정소영의 식기장(02-541-6480),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02-541-8484) 촬영 협조 동병상련(02-391-0380), 웨스틴조선호텔 중식당 홍연(02-317-0494), 츠지원 요리 아카데미(02-516-4678)

진행 신민주 수석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