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만든 국수. 메밀이 유명한 봉평에서는 메밀국수를 삶아 배와 사과 등을 우린 과일 육수에 말아 먹는다. 위 메밀은 형태가 정육면체라서 도정하기가 힘든 곡물이다. 껍데기에는 살리실아민, 벤질아민 등의 유해 성분이 있는데 이는 무와 함께 먹으면 독성이 없어진다. 메밀국수에 무절임을 곁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요즘에는 도정 기술이 발달하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메밀에 대한 단편들 메밀,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다. 소금을 뿌린 듯 하얀 꽃들은 아찔하게 피어 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달빛이 은은한 밤, 장돌뱅이 허생원에게 낭만적인 사랑의 추억을 선물한 것이 메밀밭이었다. 농부들에게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병충해 없이 혼자서 잘 버티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것이 메밀이다. 이는 메밀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 때문인데 폴리페놀은 사람에게는 이롭지만 해충에게는 오히려 해롭다. 이렇듯 순탄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메밀은 성인병에서 구제해줄 ‘희망의 곡물’이기도 하다. 콜라겐을 만들어 혈관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루틴 성분 덕분이다. 하루 필요량이 30mg인 이 성분이 메밀 100g에 100mg이 함유되어 있다. 왜 학자들이 메밀에 열광하는지 충분한 답이 된다. 루틴 흡수율을 높이려면 메밀을 먹을 때 비타민 C가 풍부한 음식을 곁들이도록. 레몬이나 오렌지, 브로콜리 등 비타민 C가 듬뿍 함유된 음식은 루틴의 콜라겐 생성 능력을 더욱 활성화시킨다.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이로운 곡물 누군가에게는 로맨틱한 기억을 심어주고 누군가에게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며, 또 누군가에게는 영양분을 선사하는 메밀. 이처럼 메밀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메밀을 100%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갓 수확하여 껍데기를 벗기기 전의 상태를 통메밀이라 한다. 통메밀은 껍질이 단단하여 음식에 직접 쓰기는 힘들다. 잘 씻어서 그늘에 바싹 말려 뜨거운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다음 보리차처럼 끓이면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 이때 메밀의 수용성 영양 성분이 물에 우러나와 맹물과는 맛과 영양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추운 날 뜨겁게 하여 마시면 기운 차리기에도 좋다. 대표적인 메밀 음식인 묵 역시 통메밀을 이용한다. 물에 담가 떫은맛을 우린 후, 통째로 맷돌에 갈아 아래에 가라앉은 앙금을 낮은 불에서 계속 끓인 후 굳히면 메밀묵이 된다. 요즘에는 메밀 전문 사이트에서 메밀묵 가루를 판매하므로 좋은 메밀을 구하는 날에 집에서 한번쯤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메밀가루과 물을 1:4로 섞어 2시간 동안 상온에 두었다가 중간 불에 올려 끓인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 저으면서 끓이다가 되직하게 굳으면 불을 낮춰 같은 방향으로 계속 젓는다. 물방울이 생기면 10분 동안 더 젓다가 뚜껑을 덮어 5분 동안 뜸을 들여 굳히면 메밀묵 완성.
씨눈을 배유에 품고 있어 도정을 해도 영양이 그대로 통메밀의 껍데기를 벗긴 것을 메밀쌀이라고 한다. 메밀쌀은 보리나 현미처럼 쌀에 넣어 밥을 지으면 구수함이 더해진다. 메밀쌀을 섞어 밥을 지을 때의 물 양은 일반 쌀밥 지을 때와 같다. 여기서 잠깐. 쌀이나 밀이 도정 과정을 거치면서 영양 성분을 담고 있는 씨눈과 껍데기 부분이 없어지는데 메밀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메밀은 다른 곡물과 달리 씨눈을 배유胚乳에 품고 있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또 배유 자체에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껍데기를 벗겨도 영양 성분에 큰 차이가 없다. 메밀쌀을 잘 말려 곱게 가루 낸 것으로 밀가루와 섞어 부침가루나 면, 만두피, 수제비 등을 만든다. 맛이나 영양적으로는 메밀가루만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물을 넣으면 질퍽해지는 성질 때문에 요리하기가 영 불편하다. 이때는 밀가루를 섞을 것.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3:7의 비율로 섞으면 농도가 적당하다. 과거에 메밀은 먹을 것이 부족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 서민들의 배를 두둑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물이다. 그런데 먹을 것이 넘쳐나 도리어 병이 생기는 요즘에도 메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곡물이다. 구수한 맛은 물론, 현대인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두루 담고 있는 메밀로 오늘 저녁 식탁을 차려보자.
껍데기조차 쓸 데가 많은 곡식, 메밀
1 메밀차 팝콘을 연상시키는 하얀 메밀꽃은 차로 마시면 좋다. 보통 녹차와 허브 등을 섞어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판매한다. 메밀 중에서도 영양 성분이 풍부한 타타리 메밀에서 핀 꽃으로 만든 차를 ‘봉평영농조합’에서 1만5천 원에 판매. 뜨거운 물에 우린 뒤 체에 걸러 마시면 된다. 티백 형태로 나온 제품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2 메밀국수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3:7의 비율로 섞어 만든 메밀국수는 두께가 얇아 금방 익는다. 멸칫국물을 내어 신 김치를 송송 썰어 삶은 메밀국수를 말아 먹으면 별미다. 춘천막국수처럼 고춧가루와 설탕, 식초 등으로 만든 매콤달콤한 양념장을 곁들여도 좋다. 메밀이 유명한 봉평에서는 배와 사과, 양파 등의 과일과 채소로 낸 국물을 사용하는데 달콤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넣으면 진한 감칠맛이 메밀의 고소함과 잘 어울린다.
3 메밀껍데기 껍데기는 베갯속으로 주로 사용된다. 물에 가볍게 흔들어 씻어 먼지를 없애고 넓게 펼쳐 그늘에서 잘 말린 뒤 베갯속으로 사용하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때 바스락 소리가 날 정도로 바짝 말려야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메밀껍데기는 흡수성이 뛰어나서 더운 여름날 이용하거나 땀이 많은 사람이 사용하면 땀이 덜 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베갯속의 메밀껍데기는 자주 꺼내어 씻어야 위생적이다. 잘 말려 사용하면 여러 번 쓸 수 있다.
1 메밀싹 메밀싹에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루틴 성분이 풍부하다. 비린 맛이 없고 특유의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돋우며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린다. 나물로 무쳐도 좋고, 고기나 생선 요리 등에 곁들이면 느끼한 맛이나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준다. 평소 혈압이 높다면 하루에 200~300g씩 꾸준히 메밀싹을 먹어볼 것. 농촌진흥청의 최병한 박사에 의하면 저녁에 메밀싹 200g을 먹은 다음 날 아침 혈압이 10mmg이나 내려간다고 한다. 메밀 전문 요리점 ‘혜교’(02-518-9077) 또는 홈메이드 이탤리언 레스토랑 ‘예환’(02-798-4752)에서 메밀싹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2 메밀묵 메밀묵은 통메밀을 갈아 가라앉은 앙금으로 만든다. 메밀묵으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이 묵무침. 쑥갓과 오이, 당근 등의 채소를 썰어 고춧가루와 간장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다. 좀 더 특별한 별식을 원한다면 메밀묵밥이 어떨까. 멸칫국물과 송송 썬 신 김치, 잘게 채 썬 메밀묵 그리고 간장 양념 등 재료도 간단하다. 국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그릇에 담고 마지막으로 멸칫국물을 부으면 끝. 오이나 김 등의 고명을 올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3 메밀가루 메밀가루는 볶은 것과 볶지 않은 것 두 종류가 있다. 메밀쌀을 노릇하게 볶아 곱게 빻아 만든 것은 미숫가루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다른 곡물(현미나 콩, 율무 등)과 함께 물, 우유를 섞어 선식으로 만들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든든하다. 볶지 않은 메밀가루는 부침개나 면, 만두피, 죽 등 익혀 먹는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다.
4 메밀을 껍데기째 볶아 물을 부어 끓이면 수용성 성분인 루틴이 나와 뽀얗게 된다. 보리차처럼 멀겋게 끓인 메밀물을 꾸준히 마시면 심장병이나 고혈압 등 혈관 관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메밀 전문가들의 메밀 사랑
메밀은 맛만 구수한 것이 아니라 영양도 풍부한 식품이다. 2~3년 전부터 메 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동안 숨겨져왔던 메밀의 좋은 성분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 다. 메밀을 연구하다가 메밀에 반한 전문가들의 메밀 자랑.
남자는 단단하게, 여자는 매끄럽게 메밀싹에 푹 빠진 유승삼 대표 메밀싹 브랜드 ‘참한싹’(02-3453-9789)의 유승삼 대표가 메밀싹에 빠진 것은 4년 전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다. 메밀싹을 연구하는 제자들을 돕다가 그 자신이 효능을 눈으로 확인한 게 계기였다. 그러나 수분과 온도, 빛을 정확하게 맞춰줘야 하는 메밀싹 키우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IT 분야에서 근무했던 그는 그동안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결국 ‘참한싹’을 설립했다. 왜 하필 그냥 메밀이 아닌 메밀싹일까. 그것은 루틴 성분이 메밀의 30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메밀싹은 ‘비아그라’다. 성기 주변의 해면체는 모세혈관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인데, 나이가 들면 혈관 기능이 약해져 성 기능도 떨어진다. 따라서 혈관벽을 튼튼하게 해주는 루틴 성분이 도움이 된다. 여자들에게 메밀싹은 많이 먹으면 피부가 고와지는 효능이 뛰어난 수분크림과도 같다. 이 역시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수분과 영양,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원리다. 그래서 유승삼 대표는 “남자는 단단하게, 여자는 매끄럽게”를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메밀싹을 권하고 있다.
식이섬유 덩어리 메밀로 날씬한 몸매를 메밀로 비만 잡는 강재헌 교수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허리 사이즈가 걱정이라면 메밀을 먹어라! 백병원 비만클리닉 강재헌 소장의 조언이다. <비타민> <생로병사의 비밀> 등 건강 TV 프로그램에서 비만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한 그는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잡곡밥을 먹다가 흰 쌀밥을 먹으면서 당뇨나 비만, 고혈압 등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쌀을 도정하면서 식이섬유나 여러 가지 무기질 등이 없어지고 탄수화물 덩어리만 남게 되는데 이게 문제인 거죠. 그런데 메밀 같은 잡곡을 섞으면 영양 면에서 균형이 맞게 됩니다.” 강재헌 씨는 메밀에서 현대인들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했다. 메밀은 식이섬유가 풍부한 곡물이다. 쌀보다 5배가 많고, 식이섬유의 왕이라고 불리는 현미보다도 2배나 많이 들어 있다. 게다가 포만감에 비해 열량이 낮은 것도 메밀의 장점이다. 강재헌 씨 역시 메밀의 이런 영양적 가치를 알기에 밖에서도 메밀로 만든 요리를 자주 먹는다. 장충동의 ‘평양면옥’(02-2267-7784)과 을지로의 ‘평래옥’(02-2267-5892)은 단골 평양냉면집. 메밀을 사용한 면발은 씹는 맛이 부드럽고 구수하다. 판메밀국수가 생각날 때는 을지로의 ‘동경우동’(02-274-3440)에도 간다. 쫄깃한 면발을 자랑하는 우동이 메인 메뉴인 집이지만 달큼한 육수에 곁들여 먹는 판메밀국수 맛에 중독된 지 오래라고.
루틴 성분으로 성인병을 잡는다 국내 메밀 연구의 원조, 최병한 박사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메밀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메밀을 연구한 사람은 농촌진흥청의 최병한 박사. “메밀은 영양적학으로 따졌을 때 매우 우수한 작물이에요. 일반 곡물에는 거의 없는 단백질의 일종인 리신이 풍부하죠. 리신은 세포를 활성화시켜 노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요.” 그가 메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6년 아시안 게임 때 러시아의 IOC 대표를 안내하는 자원봉사를 맡으면서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물이 메밀이고 전 세계 90% 이상의 메밀이 러시아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울러 메밀이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도. 1백여 종의 메밀을 우리나라에 들여와 실험했고 최고 품종을 선발하여 전국에 보급했다. 메밀은 1년에 두 번 수확한다. 봄에 파종하여 여름에 수확하는 메밀, 여름에 파종하여 가을에 수확하는 메밀이 그것이다. 두 종류가 맛에는 차이가 없지만, 메밀의 주요 성분인 루틴은 여름 것이 가을 것보다 20~30% 많다. 1986년 이후로 최병한 박사는 근 20년 동안 메밀을 꾸준히 애용해왔다. “오늘도 메밀가루로 만든 부침개와 수제비를 먹었어요. 메밀은 점성이 강해서 물을 부으면 끈적끈적해지지요. 그래서 제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밀가루를 조금 섞어요.” 자신뿐만 아니라 부인과 아이들 역시 메밀 마니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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